[Start Message] 민화인들과 함께 해온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월 앞에서

더없이 심오할뿐더러 복잡해 보이기까지 하는 유학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해주는 구절의 하나가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귀일 것입니다.
“물유본말物有本末 사유종시事有終始 지소선후知所先後 즉근도의則近道矣.”
즉 세상 만물에는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부분이 있고 세상 일에는 처음과 나중이 있으니 먼저 할 일과 뒤에 할 바를 구분하는 ‘선후先後의 순서’를 알면 도道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대강령에 따라 제시된 보다 구체적인 덕목이 이른바 ‘팔조목八條目’이라고 불리는 원칙입니다. 팔조목은 선후의 순서에 따라 나열된 격물格,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격언이 바로 이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는 큰 뜻을 품었다 하더라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칼을 빼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닦고 가정을 잘 돌보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주자의 주석에 따르면, 본말本末과 종시終始 중 근본과 시초는 먼저 하고 끝과 마침은 나중에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 즉 선후의 도리를 아는 것만으로도 도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잡해 보이는 유교적 가치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자들이 유가의 근본이념을 명확하고 일관된 체계로 설명하고 있는 최고의 책으로 <대학>을 꼽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입니다.
월간민화의 창간 8주년을 맞이하면서 문득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구분하라는 <대학>의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참으로 외람된 말이지만, 창간 이후 우리 월간민화가 결코 잊지 않고 지키려 했던 유일한 덕목이 있다면 바로 이 ‘지소선후知所先後’의 가르침입니다.
민화 잡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영악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민화인들로부터 믿음과 신뢰를 얻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자인 민화인들에게 이 잡지가 진심으로 민화를 사랑하는구나, 진심으로 민화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믿음을 드리는 일이 먼저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두 짐작하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척박한 출판 토양에서 잡지, 특히 월간민화와 같이 극히 제한된 독자층에다 광고시장이 거의 없는 전문 매거진이 8년이나 되는 세월을 견뎌온 것은 사실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슨 특별한 비결이나 요령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월간민화의 진심을 독자님들이 알아주시고 믿어주신 것이 전부입니다.
몇 년씩이나 이어지는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서도 감격스런 창간 8주년을 맞은 것이 작은 기적일 수 있다면, 그 기적은 전적으로 우리 민화를 사랑하시는 독자님들과 민화인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가없는 사랑과 성원이 만들어 낸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누군가의 시구를 오마쥬 해서 표현하자면 ‘월간민화를 키운 것은 8할이 독자님들의 사랑’인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월간민화가 꿈결처럼 지나쳐온 8년의 세월은 민화계의 발전과 발걸음을 같이 해온 나날이었습니다. 민화계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보며 걸어온 지난 세월은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민화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독자의 마음, 민화인의 마음을 얻는 일이 먼저라는 믿음은 창간 이후 월간민화가 한시도 잊지 않고 간직해 온 초심初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륜을 쌓아가는 동안에도 이 아름다운 초심을 잊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사유종시事有終始, 즉 세상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고 했으니 이 지루하고 숨 막히는 코로나 세상도 결국에는 끝날 것입니다. 나날이 찬란하게 다가오는 봄의 문턱에서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먼저 해야 할 일을 다짐하고 싶습니다.

2022년 4월
월간민화 발행인 유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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