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cence 연작 선보인 양재천 작가 – 민화에 담아낸 절제와 여백의 미학

양재천 작가는 민화 특유의 화려함 대신의 절제와 여백의 미를 추구한 작품을 선보여 민화계 내외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순수를 되찾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평온함을 전해주고 싶다는 그를 만나 진중한 작품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재천 작가는 최근 민화인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민화부티크 초대전에 출품한 Innocence 연작에서 민화의 남다른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민화의 주요 특징인 다양한 상징과 화려한 색감 등을 절제하고 대신 공간감과 여백의 미를 추구하며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오랜 디자인 경력 고스란히 담긴 민화

양재천 작가는 민화 경력이 비교적 짧은 신예로 현재 송규태 화백을 사사하며 열심히 민화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40여년 경력의 베테랑 디자이너라는 모습이 있다. 그는 홍익대학교 응용미술과 졸업 후 제일기획에 입사해 광고디자이너로 활동했고, 88서울올림픽의 브로슈어를 만들었으며,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 시리즈의 포스터도 제작했다. 당시 영화포스터는 명확한 정보 전달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원색으로 표현한 제목과 홍보 문구 등으로 여백을 가득 채우는 것이 주류 문법이었다. 그러나 양재천 작가는 반대로 접근, 안개 낀 풀밭에서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포착하고 이를 모노톤 바탕에 얹어 감성적인 장면을 연출해 국내 아트포스터 유행을 선도했다. 이 포스터는 한국광고대상 신문광고 영화부문의 수상작으로도 선정됐다.
양재천 작가는 포스터 등에서 선보인 작품세계가 민화에서 추구하는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전통민화는 한 폭에 다양한 상징적 요소를 삽입, 길상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엮어낸다. 그러나 양재천 작가는 한 폭에 담기는 상징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대신 이를 12점에 나누어 배치한 다음 1년이라는 컨셉을 부여해 각 작품마다 매달의 특성과 계절의 풍취를 담아냈다. 여백의 미가 도드라지며, 내재된 의미가 보다 명료히 드러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예전부터 여백을 선호했어요. 그러다보니 민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여백을 추구하게 된 것 같아요. 1년이라는 컨셉은 작품을 구상하기 전부터 캘린더 제작을 염두에 두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에요. 오랜 기간 디자이너로 일하다보니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고가 배어있어요.”

지난한 세상 속에서 순수와 평온을 추구하다

화폭 한 가운데에 꼭두동자가 그려진 것도 Innocence 연작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양재천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의 편린이던 꽃상여 위의 꼭두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다시 표현한 것으로, 선입견으로 존재를 왜곡하지 말고 그저 순수하게 바라보자는 의도를 담았다고 한다.
절제, 여백의 미, 그리고 순수함. 실제로 그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순수하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양재천 작가는 관람객들의 소감을 듣고 아이처럼 기뻐한다. “존경하는 스님이 두 가지 가르침을 전해주셨어요. 하나는 불상이 제 모습으로 보일 때 비로소 절을 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게 신세를 졌다면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힘든 세상 속에서 절을 하듯 민화를 그리며 순수함과 평온함을 되찾고 싶고, 제가 얻어낸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앞으로 양재천 작가는 민화에 담긴 동양적 정신을 현대미술의 관점으로 풀어내 그림 안에 자유로운 상상과 다양한 철학적 해석의 가능성을 담아낸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다만 아직은 구상단계이므로 구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우선 연습에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제 이름이 걸린 작품은 곧 저와 마찬가지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정진할테니 앞으로 지켜봐주세요.(웃음)”


글 김태호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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