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ë…„ê°„ì˜ ê¸€ 간추려 ëª¨ì€ ì±… 발간한 ì›ë¡œ ë¯¸ìˆ ì‚¬í•™ìž í—ˆì˜í™˜-ì°½ì¡°ì  ì†Œìˆ˜ìžë¡œì„œì˜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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ì°½ì¡°ì  ì†Œìˆ˜ìžë¡œì„œì˜ 여정


ìƒë°±çˆ½ç™½ í—ˆì˜í™˜ êµìˆ˜ëŠ” ìžì‹ ì˜ ì¸ìƒì„ ì—®ì€ ì±… <살아온 í”ì ì˜ 아름다움>ì„ ì¶œê°„í–ˆë‹¤. “팔십 í‰ìƒì„ ì¦ê±°ìš´ 소í’ì´ë¼ê³  ìƒê°í•˜ì§€ëŠ” 않았지만, 소í’보다 ë” ì¦ê²ê³  행복하게 살다가 갑니다â€ë¼ê³  ìží‰í•˜ëŠ” ì‚¶ì€ ì–´ë– í–ˆìœ¼ë©°, ì¸ìƒ ì´ì•¼ê¸°ì™€ 함께 그가 ë¯¼í™”ê³„ì— ê±´ë„¤ëŠ” ì¡°ì–¸ì€ ë¬´ì—‡ì¼ê¹Œ.


1936ë…„ìƒ. 올해로 82세를 맞는 í—ˆì˜í™˜ 명예êµìˆ˜(성신여대 ë™ì–‘화과)는 지난 4ì›” 50ì—¬ë…„ê°„ì˜ ê¸€ì„ ê°„ì¶”ë¦° ì±…ì„ íŽ´ë‚´ê³  ‘살아온 í”ì ì˜ 아름다움’ì´ë¼ëŠ” ì œëª©ì„ ë¶™ì˜€ë‹¤. 지난 2010ë…„, ê·¸ë™ì•ˆ ì½ì€ ì±…ê³¼ ì“´ 글 ë“±ì„ ëª¨ì•„ì„œ 출간한 <ì–´ëŠ ì¸ë¬¸í•™ìžì˜ 글 ì½ê¸°ì™€ 쓰기> ì´í›„ì˜ ìžì„œì „ì´ë‹¤. ìƒí’ˆì„±ì„ ì—¼ë‘ì— ë‘” ì±…ì€ ì•„ë‹ˆì§€ë§Œ, 미술사학ìžë¡œì˜ 50ë…„ ì¸ìƒì´ ì˜¤ë¡¯ì´ ë‹´ê²¨ìžˆìœ¼ë‹ˆ 멘토mentor로서는 물론 미술사ì ìœ¼ë¡œë„ ì˜ì˜ê°€ 있는 ì±…ì´ë¼ í•  수 있다. “기ë¡ì´ 있어야 역사가 있습니다. 남다르게 ì‚´ì•„ë³´ìžëŠ” ì¼ë…으로 열심히 ë…¸ë ¥í–ˆëŠ”ë° ì´ë§Œí•˜ë©´ 잘 ì‚° 듯하니 아름답다고 í•´ë„ ê´œì°®ì„ ì—­ì‚¬ 아니겠습니까.â€

먼저 내딛고, í¬ê²Œ 내딛다

“남보다 먼저 알고 먼저 깨닫는 ì°½ì¡°ì  ì†Œìˆ˜ìžê°€ ë˜ê³ ìž 노력하였습니다. í—›ëœ ì„¸ì›”ì´ ì•„ë‹ˆì—ˆìŠµë‹ˆë‹¤.†허ì˜í™˜ êµìˆ˜ê°€ ì§ì ‘ ì§€ì€ ë¬˜ë¹„ëª…ì˜ ì¼ë¶€ë‹¤. â€˜ì°½ì¡°ì  ì†Œìˆ˜ìžThe Creative Minority’란 ì˜êµ­ì˜ ì—­ì‚¬í•™ìž ì•„ë†€ë“œ 토ì¸ë¹„(Arnold Toynbee, 889~1975)ì˜ ì €ì„œ ã€Šì—­ì‚¬ì˜ ì—°êµ¬ã€‹ì— ë‚˜ì˜¤ëŠ” ë§ë¡œ, ëŠìž„ì—†ì´ ë„ì „í•´ ì—­ì‚¬ì˜ ë³€í™”ë¥¼ ì´ë¤„내는 ì‚¬ëžŒë“¤ì„ ëœ»í•œë‹¤. í—ˆì˜í™˜ êµìˆ˜ëŠ” 대한민국 ë¯¸ìˆ ì‚¬ì— ìƒˆë¡œìš´ ë°”ëžŒì´ ë˜ê¸° 위해 80ì—¬ë…„ì˜ ì¸ìƒë™ì•ˆ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1963ë…„ 한국ì¼ë³´ì— 입사해 문화부 기ìžë¡œ 활ë™í–ˆê³ , 1971ë…„ì— ë¬´ë ¹ì™•ë¦‰ 발굴 기사를 ë‹¨ë… ë³´ë„하는 등 기ìžë¡œì„œ 성공가ë„를 달렸다. 그러나 í—ˆì˜í™˜ êµìˆ˜ëŠ” ê·¸ 모든 명성과 ì•ˆì •ì„ ë’¤ë¡œí•˜ê³  중국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35ì‚´ì˜ ë‚˜ì´ì— 홀연히 대만으로 떠났다. 당시 중국미술사는 êµ­ë‚´ì—서 ìƒì†Œí•œ 분야였고, 심지어 í—ˆì˜í™˜ êµìˆ˜ëŠ” 다섯 ì‚´ 딸과 네 ì‚´ ì•„ë“¤ì„ ë‘” 아버지였으므로 ì£¼ë³€ì‚¬ëžŒë“¤ì€ ê·¸ì˜ ìœ í•™ì„ ë§Œë¥˜í–ˆë‹¤. 하지만 ê·¸ì˜ ì—´ë§ì„ ëˆ„êµ¬ë„ ë§‰ì„ ìˆ˜ 없었다. “남다르고 싶었고, 우수하고 싶었습니다. 기ìžëŠ” ë‹¤ë°©ë©´ì„ ë‘루ë‘루 아는 사람ì´ì§€ë§Œ, 저는 ì €ë§Œì˜ ë¶„ì•¼ì—서 확실한 ì‚¬ëžŒì´ ë˜ê³  싶었습니다. 당시만 í•´ë„ ì¤‘êµ­ë¯¸ìˆ  전문가는 ê±°ì˜ ì—†ì—ˆëŠ”ë°, 마침 저는 중국어를 í•  수 있었기 ë•Œë¬¸ì— ìžì—°ìŠ¤ëŸ½ê²Œ ì¤‘êµ­ë¯¸ìˆ ì„ ì„ íƒí•˜ê³  대만 ìœ í•™ì„ ê²°ì •í•˜ê²Œ ë습니다.†ì´í›„ í—ˆì˜í™˜ êµìˆ˜ëŠ” ë¬¸í™”ìž¬ì²­ì†Œì† ë¬¸í™”ìž¬ì „ë¬¸ìœ„ì› ê²¸ ê°ì •위ì›ìœ¼ë¡œ 활ë™í•˜ë©° ì¤‘êµ­ë¯¸ìˆ ì‚¬ì— ëŒ€í•œ 박사학위를 ì·¨ë“í•´ êµ­ë‚´ ìµœì´ˆì˜ ì¤‘êµ­ë¯¸ìˆ ì‚¬ 전문가가 ë˜ì—ˆë‹¤. ê·¸ì˜ ë‚¨ë‹¤ë¥´ê¸° 위한 ì—¬ì •ì€ ì´í›„ì—ë„ ê³„ì†ë다. 성신여대 미술사학과 êµìˆ˜ë¥¼ 비롯해 성신여대 박물관장, ì„œìš¸ì‹œë¬¸í™”ìž¬ìœ„ì› ë“±ì„ ì—­ìž„í–ˆê³  ë™ì‹œì— 수필가와 시ì¸ìœ¼ë¡œë„ 활ë™í•˜ë©° <중국문화유산기행> 시리즈 등 20ì—¬ê¶Œì˜ ì„œì , 40ì—¬íŽ¸ì˜ ë…¼ë¬¸, 문화재ê°ì •서 30여편과 수필 30여편, 시 120여편 ë“±ì„ ë‚¨ê²¼ìœ¼ë‹ˆ 가히 â€˜ì°½ì¡°ì  ì†Œìˆ˜ìžâ€™ì˜ ë³¸æœ¬ì´ ëœ ì…ˆì´ë‹¤.

ë¯¼í™”ê³„ì— ê±´ë„¤ëŠ” ì¶©ê³ 

í—ˆì˜í™˜ êµìˆ˜ëŠ” ë¯¼í™”ê³„ì— ê±´ë„¤ëŠ” ì¡°ì–¸ë„ ìžŠì§€ 않았다. “‘모든 ì˜ˆìˆ ìž‘í’ˆì€ ì–¸ì œë‚˜ ë…창성, 유ì¼ì„±, 그리고 ìž‘ê°€ì˜ ê°œì„±ì´ ëšœë ·í•œ ê°œë³„ì„±ì´ ìžˆì–´ì•¼ 한다.’ 제가 성신여대 êµìˆ˜ë¡œ ìžˆì„ ë•Œ ì œìžë“¤ì—게 ìžì£¼ ê±´ë„¤ë˜ ë§ìž…니다. 저는 ë¯¼í™”ìž‘ê°€ë“¤ì´ ë³´ë‹¤ 창조ì ì¸ ìž‘í’ˆì„ ê·¸ë ¸ìœ¼ë©´ 합니다. 물론 창조는 선례가 없는 ì¼ì„ 하는 것ì´ë¯€ë¡œ 어렵습니다. 하지만 ì˜¤ëŠ˜ë‚ ì˜ ì‚¬íšŒë¥¼ 잘 관찰하면 모티브를 얼마든지 ì–»ì„ ìˆ˜ 있습니다. 모티브를 발굴하고, ì´ì— 대해 ê¹Šì´ ìƒê°í•œë‹¤ë©´ 참신하고 창조ì ì¸ 주제가 나올 것입니다. ë˜í•œ ë¯¼í™”ì˜ ì£¼ìš” ì†Œìž¬ì¸ ì—¬ëŸ¬ 가지 ìƒì§•ë„ í˜„ëŒ€ì ìœ¼ë¡œ ë³€ìš©ë  ìˆ˜ ìžˆì„ ê²ƒìž…ë‹ˆë‹¤. 예를 들어 ìµœê·¼ì˜ ì£¼ìš” 사건으로는 촛불집회가 있지 않았습니까? ì´ ì‚¬ê±´ì„ ë‚¨ë‹¤ë¥´ê²Œ 받아들ì´ëŠ” ì‚¬ëžŒë“¤ì€ ì´›ë¶ˆì§‘íšŒë¥¼ 소재로 민화를 그려볼 ìˆ˜ë„ ìžˆì§€ 않ì„까요? 그러면 ì´›ë¶ˆë„ ì–´ë–¤ ìƒì§•ì´ ë˜ì§€ 않ì„까요?†ë˜í•œ í—ˆì˜í™˜ êµìˆ˜ëŠ” ê·¸ ìžì‹ ì´ í‰ìƒì„ 미술사학ìžë¡œ 살아온 ë§Œí¼, 미술사가나 í‰ë¡ ê°€ë“¤ì— 대한 ì¡°ì–¸ë„ ìžŠì§€ 않았다. “사진작가가 ê´œì°®ì€ ì‚¬ì§„ 한 ìž¥ì„ ê±´ì§€ê¸° 위해 ëª‡ë°±ìž¥ì„ ë‹¤ê°ë„ì—서 ì°ë“¯, 미술사가나 í‰ë¡ ê°€ë“¤ë„ í•˜ë‚˜ì˜ ì—°êµ¬ì£¼ì œë¥¼ 정하기 위해 다ê°ë„ì—서 ë‘루 살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으르지 않아야겠죠. í•™ìžëŠ” 작가보다 ë”ìš± 부지런해야 합니다.â€

여전히 꿈꾸는, 꽃보다 청춘

토ì¸ë¹„는 ì°½ì¡°ì  ì†Œìˆ˜ìžë“¤ì˜ ìƒë‹¹ìˆ˜ê°€ ì„±ê³µì— ë„ì·¨ë˜ê³  êµë§Œì— ë¹ ì ¸ â€˜ì§€ë°°ì  ì†Œìˆ˜ìžruling minority’로 타ë½í•œë‹¤ê³  ë§í–ˆë‹¤. 그러나 í—ˆì˜í™˜ 박사는 80세를 ë„˜ì€ ë‚˜ì´ìž„ì—ë„ ì—¬ì „ížˆ ì°½ì¡°ì  ì†Œìˆ˜ìžê°€ ë˜ê¸° 위한 ì¸ìƒì„ 꿈꾼다. “가능하다면 민화나 ì¤‘êµ­ë¯¸ìˆ ì— ëŒ€í•œ ê°•ì˜ë¥¼ 하고 싶습니다. ì§€ê¸ˆë„ ë‘ ì‹œê°„ì€ ê±°ëœ¬ížˆ í•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네요.†월간 <민화>ê°€ ê·¸ 기회가 ë˜ì–´ì¤¬ìœ¼ë©´ 한다고 어린아ì´ì²˜ëŸ¼ 천진한 미소를 건네는 í—ˆì˜í™˜ êµìˆ˜. 여전히 남다르기를 ì›í•˜ëŠ” 그는 ì•žë‚ ì´ ë”ìš± 창창한, ‘꽃보다 청춘’ì´ì—ˆë‹¤.


글 김태호 ê¸°ìž ì‚¬ì§„ ì´ì£¼ìš© 기ìž
장소 í‹° ë¼ìš´ì§€ â€˜ì˜¤ëž˜ëœ ë¯¸ëž˜â€™ (한국문화정품관 4층)

ì €ìžì—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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