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점의 장판교 전투 그림 ‘장비, 조조의 대군을 홀로 막아서다’

삼국지에는 도원결의, 삼고초려, 적벽대전 등 수많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삽화, 화첩, 병풍, 족자의 형태로 그려져 사람들에게 감계의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집안에 장식되어 방안을 꾸미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 여러 번 출판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삼국지를 그림으로 그린 것을 삼국지도(三國志圖)라고 한다.

조선에서 널리 사랑받은 삼국지

삼국지도(三國志圖)는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인 삼국지(三國志)의 내용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삼국지는 조선 건국 이래 명나라와의 사대사행(事大使行)을 통해 경서, 시 문집은 물론 명대의 유행하던 소설류도 함께 들어왔는데 그중의 하나가 삼국지였다. 삼국지는 조선시대에 여러 번 출판되었다. 처음에는 관각(官刻)으로 간행되었다가 후기에는 주로 방각본(坊刻本)으로 간행되었고,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집집마다 통독할 만큼 유행하여 과거 시험장에 시제로도 등장하게 되었다.
삼국지에는 도원결의, 삼고초려, 적벽대전 등 수많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삽화, 화첩, 병풍, 족자의 형태로 그려져 사람들에게 감계의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집안에 장식되어 방안을 꾸미는 역할을 하였다. 그중에서 이번 가회민화박물관 컬렉션 소개에서는 삼국지도 중 장판교(長坂橋)에서 조조의 군대를 막은 장비의 이야기 장면에 대해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장비의 담력과 용맹이 한껏 떨친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는 이 장면은 삼국지 관련 그림 중에서 도원결의와 함께 가장 많이 제작되는 그림이다.

홀로 조조의 대군 막아선 장비의 기개

208년(건안 13년) 대군을 이끌고 형주를 시작으로 남방을 정복하러 나선 조조에 쫓겨 유비군은 퇴각하고 있었다. 그 뒤를 적진에 남겨진 유비의 아들을 구해 가슴에 품고 조조군의 포위를 뚫고 달려오는 조자룡을 돕기 위해 장비가 장팔사모(丈八蛇矛)를 들고 장판교 위에 서 있었다. 유비군의 최후를 담당하던 장비는 20여 기의 기병을 다리 뒤편 숲으로 보내 말꼬리에 나뭇가지를 달아 흙먼지를 일으켜 대군이 숨어 있는 것으로 위장하였다. 그런 후 장비는 홀로 말에 올라 장사팔모를 들고 다리 앞을 막아서서 대군이 있는 듯 조조군을 향해 목청껏 소리를 내질렀다. 이에 조조 옆에 있던 장수 하우걸은 말에서 떨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조조군은 장비의 엄청난 기개에 눌려 달아나고 말았다. 그 후 장비는 장판교를 부수어버리고 유비를 쫓아 뒤돌아 간다.

3단 구성을 알차게 활용한 화면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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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삼국지도 중에서 위의 이야기를 그린 장면 다섯 점을 모아 보았다. 그림들의 구도는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에는 산과 언덕 등의 경물과 조자룡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산 뒤로는 깃발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이는 숲 뒤편에 숨어 있는 장비의 기병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산수의 표현은 그림1의 경우에는 먹 선으로 그린 다음에 옅게 채색을 하였다. 구불거리는 산세의 표현은 능숙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울창한 산림을 세로로 그은 먹선 위로 가로질러 세 개의 선으로 표현해 놓은 것으로 보아 이 그림을 그린 작가가 미법산수의 기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산 뒤로 빽빽하게 침엽수림을 표현해 놓았다. 그림3, 그림4, 그림5의 산수 표현은 먹선으로 윤곽을 그린 후 먹으로 음영 표현한 것에만 그치는 등 산수의 표현은 생략되어 있다. 상단에 유비의 아들 아두(유비의 아들 유선의 아명)를 가슴에 앉고 말을 달리고 있는 조자룡의 모습을 함께 그린 그림도 있다(그림2, 그림5). 조자룡의 품 안에 들어 있을 아두의 모습을 조자용의 가슴을 둥그렇게 뚫어 보여주는 방법이 특징적이다.
중단에는 장판교와 장비가 그려져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장비는 말을 타고 장팔사모를 두 손으로 높게 들고 다리 위에 서 있다. 이런 모습은 다섯 점 모두에 공통으로 나타나는데 조조의 대군에게 장비가 벽력같은 호통을 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장비의 표정은 조조의 군사들을 위협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며 그가 타고 있는 말, 표월오도 그의 주인에 맞추어 으르렁거리고 있다.(그림1) 장비의 얼굴은 검고, 거친 수염을 하고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장비를 ‘키가 팔척(약 1m 84cm)에 표범 같은 머리, 번쩍이는 눈, 근육질의 아래턱, 호랑이 같은 수염에다 목소리는 우레와 같고 힘은 거친 말과 같다’고 묘사했다. 장비의 얼굴이 검었다는 기록은 없는데 그림 속 장비의 얼굴은 보통 검게 표현된다. 이는 중국 경극의 분장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전통극인 경극에서 얼굴에 각각 검은 칠, 붉은 칠, 하얀 칠로 분장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각각 서로 다른 성격 특징을 나타낸다. 붉은 얼굴로 분장한 인물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인물 역할을 맡아 연출하고, 하얀 얼굴을 한 사람은 악한 사람, 까만 얼굴 분장을 한 사람은 정직하고 충신인 사람, 인정사정 보지 않고 공정한 사람 혹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 우악스러운 사람 역을 맡는다. 그래서 경극에서 삼국지의 관운장은 붉은 얼굴, 조조는 하얀 얼굴, 장비는 검은 얼굴로 등장한다. 이것이 사람들의 머리에 박혀 그림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장비가 타고 있는 말은 그의 애마인 표월오라는 말인데 검은 갈기에 검푸른 털이 있는 말로 옥추마라고도 한다. 이 말들은 다섯 그림 모두 오른쪽 앞발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여 역동감을 나타내려고 하였고, 갈기나 꼬리털은 세필로 표현하였다. 말이 발을 딛고 있는 장판교는 그림1의 경우는 그 구조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데 반해 그림2나 그림5처럼 다리 판 부분만 그려 간략화한 경우도 있다.
하단에는 조조와 그의 군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1의 조조는 붉은 계통의 관복을 입고 장비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동자는 정면상이다. 조조 아래로 모두 다른 얼굴을 한 군사들이 도열해 있는데 맨 앞줄의 군사들의 말들만 그려 놓았고 그 뒷줄부터 조조까지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조조의 병사들은 장비를 바라보며 나열해 있거나(그림4) 아니면 장비의 호통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모습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그림3). 그림4의 병사들은 비슷한 얼굴을 한 여러 명의 인물이 패턴처럼 도열하여 다리 위의 장비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다른 표정과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병사들이 끼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 아래로 장비의 호령에 놀라 말에서 떨어지고 있는 하우걸이 그려졌는데, 눈을 감고 있는 그의 표정이 이미 혼절한 듯하다(그림1, 2). 그림3처럼 하우걸은 말에서 이미 떨어져 땅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의 말은 달아나는 조조와 군사들과 함께 달려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생생히 살아나는 삼국지의 한 장면

조조의 대군을 앞에 두고 장판교 앞에 버텨선 장비. 일기당천이라 할 만하다. 이렇듯 삼국지에는 독자들을 가슴 떨리게 하는 수많은 명장면이 있다. 그 명장면들을 담아낸 삼국지도를 통해 옛 우리 조상 중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눈으로는 이 그림을 보고, 귀로는 강담사(講錟師)의 구성진 목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 장면을 재현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을이 시작되었다. 옛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삼국지를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한 사람도,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도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글 : 박혜진(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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