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숙 작가의 비단에 물든 창작민화 – 씨줄과 날줄 사이에 생명의 힘을 품다

경기도 시흥에서 활동하는 민경숙 작가는 색을 절제한 비단 작품을 통해 길상성을 세련된 감성으로 이야기하는 작가이다. 최근 다섯 번째 전시를 선보이며 인간의 행복과 사랑을 노래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연과의 공존을 표현했다. 작가는 비단길만 걸을 순 없겠지만, 그림 그리는 일을 호흡처럼 생각하며 살겠다고 한다. (편집자주)


경기도에서 연꽃을 즐기기 위한 대표 명소가 시흥 관곡지에 인접한 연꽃테마파크이다. 관곡지는 조선 전기 중국에서 들여온 전당연(우리나라 최초의 백련)의 씨앗으로 처음 시험 재배에 성공한 곳이라고 한다. 시흥에 살아서인지, 여름에 다섯 번째 개인전을 치르고 보니 그간 그려온 작품 중에 연화도가 많았다. 이곳에서 민화를 그리고 가르친 1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마도 가장 큰 변화는 20년의 세월을 건너 묻어둔 꿈이 되살아난 순간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다림

집에서 키우던 춘란이 만개하던 날, 타임캡슐을 열 듯 대학 시절 동양화를 전공하며 사용한 잡동사니가 담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화구박스, 물감, 붓, 미완성의 자화상, 일기장, 메모지, 앞치마 등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화가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서양화, 조소 등 다양한 장르를 접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머뭇거리다 결혼과 함께 예술에서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언젠가 내 삶의 모든 것이 예술로 표출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민작가의 작업실-잃어버린 꿈을 찾아서…>(도2)는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린 작품이다. 춘란의 자태를 보고 한 획씩 읊조리며 난초 잎사귀를 쳤다. 그림에도 우아한 난초의 의지가 느껴져,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버텨내며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초등학교 미술 수업을 준비하며 민화를 만나게 됐다. 민화는 가슴에 구멍을 내고 맴돌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며 새로이 눈을 뜨고, 황홀한 몰입을 경험하고,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불어 넣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결을 따라 변화하다

물론 화단에 서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섬세한 비단에 가는 붓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아교포수부터 정성과 시간을 요한다. 색을 올리고 말리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는 것은 한편의 시처럼,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감성을 표출하기 위해 필연적이다. 요즘에는 이런 조형이 진부한 것으로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마음 속 정서를 꽃과 새에 담아 표현하기를 즐긴다. <아름다운 꿈, 사랑의 노래>(도1)는 즐겨 그려온 화조도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접목시킨 작품이다. 그림에 등장한 소재들은 화가들에게 일상다반의 소재이지만 그만큼 회화적 서술이 어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여인만 그리지 않고 모란, 목련, 수선화 등 여러 가지 꽃과 새, 나비를 더해 구성했다. 그리 속에서 세상의 꽃봉오리들이 꿈틀거리는 생명력으로 환호하는 듯하다. 나는 자연이 지닌 생명의 힘을 작품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몇 년 전부터는 전통성과 현대성을 조화시켜 강한 생명력을 끌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각박한 삶에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길

<Don’t worry Be happy>(도3)는 우리 가족에게 친근한 새이자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이제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다시금 자연과 상생하려는 주제를 표현한 작품이다. 자연과 사람이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공존할 수 있어야 세상은 비로소 아름답다. 전통민화의 소재가 현대적인 조형과 색감으로 어우러진 <꿈, 꾸다>(도4)는 가장 최근에 작업한 그림이다. 뜨거운 태양이 지나간 오후, 자연의 강렬한 색감으로 즐거움과 따사로움으로 화면에 표현함으로써 운치 있는 여름날을 꿈꾸게 한다. 각박한 요즘 삶에서 여유 있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다. 앞으로 먹선이 살아있는 민화의 자유분방함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다. 물감을 개고 붓을 쥐느라 손은 거칠어졌지만 불혹도 지천명도 넘은 지금, 함께 주름져가는 손을 들여다보며 남은 날도 잘 부탁한다고 속삭여본다.



글, 그림 민경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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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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