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기메동양박물관 소장 꽃과 나비 – 나비에 담긴 애틋한 사랑이야기

정병모 교수의 명품 민화 순례⑦
파리 기메동양박물관 소장 꽃과 나비
나비에 담긴 애틋한 사랑이야기

나비그림은 나비 자체의 화려한 무늬 덕분에 장식적인 그림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더욱이 대부분 나비그림에는 비록 곤충이지만 러브스토리가 펼쳐져 있기 때문에 보는 이를 더욱 즐겁게 한다. 여기 단순하지만 현대적인 미감이 돋보이는 나비그림이 있다. 파리 기메동양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꽃과 나비 화접도花蝶圖>다.


단순하지만 현대적인 미감이 돋보이는 나비그림

파리 기메동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꽃과 나비 화접도花蝶圖〉 병풍에는 꽃과 나비와 괴석이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꽃과 나비 그림이라면 흐드러지게 핀 꽃과 그 유혹에 못 이겨 달려드는 많은 나비가 그려지게 마련인데, 이 병풍에는 두세 마리의 나비와 몇 송이의 꽃, 그리고 두 개의 괴석만이 등장한다.
갯수만 적은 것이 아니라 각기 종류도 하나다. 이를테면, 긴꼬리제비나비와 패랭이꽃과 괴석, 호랑나비와 모란과 괴석, 배추흰나비와 작약과 괴석, 부처나비와 매화와 괴석 등으로 한 화면에 한 종류의 나비, 한 종류의 꽃, 한 종류의 괴석으로 제한되었다. 더욱이 나비를 비롯한 생물을 화면에 비해 작은 크기로 한정하고 배경을 넉넉하게 배정하여 시원스런 공간감마저 느끼게 한다. 어떻게 보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호젓하다. 그덕분에 꽃과 나비가 분분한 그림과 달리 애틋함이 돋보인다. 아마 작가는 이 그림 속에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나비에 빌어 즐겁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비가 인도하는 꿈의 세계


나비그림을 이야기할 때, 으레 첫머리로는 ‘나비의 꿈[호접지몽胡蝶之夢]’을 든다. 이는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어느날 장자는 제자를 불러 이런 말을 들려줬다.

“예전에 나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틀림없이 나비였다. 스스로 기뻐 원하는 곳으로 날아다녔지만, 자신임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깨어나니 놀랍게도 나였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내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별이 있다. 이것을 ‘물화物化’라고 한다.”(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유명한 장자의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인지? 구분이 애매모호한, 그래서 하나로 연결된 세계가 장주가 말하는 물화의 세계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엄연한 현실만으로 지탱하기는 어렵다. 현실과 더불어 꿈이 있어야 삶이 풍요롭고 윤택해지는 것이다. 나비는 꿈과 현실을 연계시키는 매개체인 것이다.
헌데 나비그림에서 나비의 꿈보다 더 많이 거론되는 것이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꽃이 고운 여인이라면, 나비는 그 여인의 유혹에 이끌리어 춤을 추는 남정네로 설정된다. 당나라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씨 3되와 모란그림을 선물로 보냈다. 선덕여왕은 그 선물이 짝이 없는 자신을 조롱한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림 속에 모란꽃은 화려한데 나비가 없기 때문이다. 꽃 중의 왕인 모란은 여왕을 가리키고, 나비는 남자를 의미한다. 조선 전기의 학자인 장유張維(1587~1638)의 시인 <꽃가지를 꺾어 와 나비를 유인한 동양의 시에 희화적으로 화답하다 (戱和東陽折花引蝶之作)>에서 나비는 남정네, 꽃은 그를 유혹하는 농염한 여인으로 비유했다.

풍류 넘치는 우리 공자 꽃가지를 사랑하여 風流公子愛花枝
농염한 향화香花 손에 드니 나비가 절로 따르도다 手把穠香蝶自隨
우스워라 유마거사維摩居士 방장실方丈室에는 堪笑維摩方丈裏
만다라도 붙지 않았는데 머리 온통 희끗희끗 曼陀不着鬢如絲
– 『계곡집谿谷集』 제33권 칠언 절구

고려말 이제현李齊賢, 정자후鄭子厚 등과 함께 당대 사대부의 리더였던 민사평閔思平이 지은 <소악부>에서는 꽃과 나비와 더불어 거미를 등장시켰다.

연인을 보려는 생각이 있다면 情人相見意如存
황룡사 문 앞으로 와야 한다네 須到黃龍佛寺門
빙설 같은 얼굴은 비록 보지 못하더라도 氷雪容顔雖未覩
그래도 목소리는 어렴풋이 들을 수 있을 테니 聲音仿佛尙能聞
두 번 세 번 정중하게 거미에게 부탁하노니 再三珍重請蜘蛛
앞길을 가로질러 거미줄을 둘러 쳐 주오 須越前街結網圍
꽃 위의 나비가 자만하여 날 버리고 날아가거든 得意背飛花上蝶
거미줄에 붙여 놓고 제 잘못을 뉘우치게 願令粘住省愆違

이 인용문은 〈소악부〉 6장 중 두 장에 해당한다. 생뚱맞게 황룡사에서 연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이 소악부는 사랑이야기로 시작되어 사랑이야기로 끝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거미의 등장이다. 이 작품의 끝장에서는 나비를 바람둥이로 묘사했다. 꽃의 여인은 나비가 자신을 버리고 날아가 버릴까 염려하여 거미에게 가로질러 줄을 처서 나비를 가지 못하게 막아줄 뿐만 아니라 나비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민요에도 나비는 한량이자 나그네에 비유한다. 청산을 다니다가 길이 저물면 어느 여인의 품속에서 자고 가자고 한다. 혹여 라도 여인이 푸대접하거든 옆에서라도 자고 가자고 한다. 한량의 풍류를 읊은 노래다.

“나비야 청산을 가자/ 호랑나비야 너도 가자/ 가다가 길 저물거든 꽃잎 속에서 자고 가자/ 꽃잎이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라도 자고 가자.”

그래서 속담에 ‘꽃 본 나비 담 넘어가랴’라는 말이 있다. 그리운 여인을 본 남자가 그대로 지나쳐 버릴 수 없다는 의미다. 남녀의 정이 더 깊어지면, 죽음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든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랴’다.


중국의 상징체계가 우리 그림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을까?

중국의 그림에서 나비는 행복과 장수와 다남과 같은 온갖 복을 가져다주는 상징이다. 호접의 호蝴는 중국 발음으로 ‘후(hu)’로, ‘복福(fu)’이나 ‘부富(fu)’와 발음이 비슷하여 서로 의미를 바꿔 쓴다.
나비가 행복이나 부유함이 되고, 행복이나 부유함이 나비가 된다. 접蝶은 중국 발음으로 ‘디(die)’로, 80세의 노인을 의미하는 ‘기耆(die)’와 상통하여 장수를 상징한다. 또한 나비는 무엇과 짝을 이루냐에 따라 그 상징이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심사임당의 초충도처럼 나비가 참외나 수박과 함께 등장하면, ‘과질면면瓜瓞綿綿’이란 뜻이 되어 자손이 번성함을 의미한다.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한다면, 고양이 ‘묘’자가 70세 노인을 나타내는 ‘모耄’와 중국 발음이 ‘마오mao’로 같아서 고양이가 70세 노인을 가리킨다. 따라서 고양이와 나비는 70세 내지 80세의 노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장수를 의미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아직 우리의 옛 기록에서 나비그림을 중국식 상징체계로 풀이하는 글을 아직 보지 못했다. 중국식 상징체계로 해석하는 시각은 최근 『중국길상도안』과 같은 책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그 논리에 근거하여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식 상징체계로 해석할 여지는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반드시 그렇게 풀이했다는 근거는 사실상 미약하다.
더욱이 중국어와 유사한 발음에 따른 상징성에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임금부터 서민까지 나비를 두고 노래했던 사랑타령이 우리의 보다 솔직한 모습이다. 중국처럼 행복, 장수, 다남 등 다양한 복을 기원하기도 했지만, 우리에겐 그보다 사랑이 우선이었다. 그 사랑은 다남 정도로 볼 수 있는데, 기록은 남긴 사대부들은 그나마도 노골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나비의 짝은 어디에 있는가?


조선시대 나비그림 하면, 남나비란 별명이 붙은 남계우南啓宇(1811~1890)가 유명하다. 나비를 10리나 쫓아가 잡아서 치밀하고 관찰하며 그리는 남계우의 실증적인 태도는 그림 속에 그대로 사실적인 화풍으로 나타났다. 그의 나비그림은 나비학자 석주명이 그의 그림을 보고 38종의 나비 종류뿐만 아니라 자웅, 발생 계절까지 밝혔을 만큼 정밀하게 묘사되었다. 아울러 남계우는 평면적인 공간에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의 다양한 자세와 양태를 깊이 있고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꽃과 나비〉는 사실적이고 다양하고 풍요로운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 화접도다.
변상벽, 김홍도의 작품처럼 혹은 서양화처럼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한 단순한 모습이 아니라 극적으로 흥미롭게 구성한 조선후기 영모화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민화 나비그림은 남계우의 나비그림처럼 복잡하지 않다. 단순하게 구성한다. 더욱이 남계우처럼 뛰어나 테크니션도 아니라 극적이고 절묘한 자세의 나비표현도 없다. 정면과 측면의 두자세 정도로 간단하게 그리는 정도다. 그렇다고 하여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희석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애절하고 강하게 전해진다. 앞서 거론한 파리 기메동양박물관 소장본보다 더욱 간단한 나비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 그림도 있다. 〈화접도〉(개인소장)에 등장하는 소재는 긴꼬리제비나비 한 마리, 모란한 송이, 토끼 한 쌍, 그리고 괴석 하나로 압축된다. 나비가 채색이 강하여 화면의 주인공으로 부각되었는데, 왜 나비가 한 쌍이 아니고 한 마리인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민화에서는 생물이 쌍으로 등장하지 외롭게 홀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비는 외로운 솔로가 아니다. 그 아래 모란을
보면 놀랍게도 모란이 나비모양으로 되어 있다. 정말 재치 넘치는 발상이다. 그래서 나비와 모란의 한 쌍, 토끼 한 쌍으로 짝짓기가 맞는 것이다. 화려한 채색의 여의문형 구름무늬로 장식된 액자 모양의 테두리는 이런 사랑이야기를 더욱 두드러지게 장식한다. 민화 나비그림의 사랑이야기는 간결하지만 더욱 애틋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글 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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