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통도사 옻칠민화 특별전, 옻칠민화 속 희망 형형히 빛 발하다




전통예술분야의 손꼽히는 예인藝人 성파스님이 오는 8월 16일까지 통도사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 옻칠민화 특별전을 개최한다. 평소 “‘민화’ 대신 ‘한국화’라 불러야 한다”고 말할 만큼 민화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남다른 그는 100여점의 옻칠민화를 통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한껏 펼쳐낼 예정이다. 성파스님이 생각하는 민화, 그리고 비전에 대하여.

–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민화의 새로운 길 제시하는 옻칠민화 특별전

‘전통’과 ‘창작’에 대한 담론은 민화계의 오랜 화두이다. 성파스님이 통도사성보박물관(관장 송천)에서 개최한 <통도사 옻칠민화 특별전>은 이 두 가지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불이不二의 경지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귀한 전시다. 전시에서는 연화도, 일월오봉도, 책가도, 화조도 등 100여점의 옻칠민화 작품을 선보인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성파스님은 민화에 옻안료를 과감히 도입, 명실공히 옻칠민화붐을 일으키고 화단의 새로운 갈래를 개척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선구적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 두 눈을 번뜩이는 맹호, 백로가 연못을 호젓이 날아가는 풍경, 친숙한 책가 등 작품 곳곳에서 전통과 맞닿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도료塗料로 쓰였던 옻이 해묵은 관념의 틀을 벗어나 안료顔料로서 색색의 빛을 내뿜는 순간, 민화는 장중한 질감을 덧입고 새로이 태어난다.
“이번 작품들은 사실 현대의 민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민화 속 전통도상을 차용하긴 했지만 옻칠민화의 기법과 재료로 재탄생시켰으니까요. 과거를 답습踏襲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민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니까요.”

머잖아 민화를 한국화라 공인하게 될 것

전시의 주요 작품을 손꼽아달라는 질문에 성파스님은 허허 웃었다. 작품에 등장한 민화는 모두 중요하기에 작품에 차등을 매길 수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화 그 자체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
“전시를 통해 민화야말로 진정 우리 민족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민화는 한국인의 솜씨로 한국의 세시풍속, 정서, 염원을 담아낸 토종 미술이에요. 세계 어디에서도 민화와 같은 그림이 없어요. 산수화만 하더라도 기법이나 내용을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지 않았습니까. 한국에만 있는 민화야말로 ‘한국화’라는 명칭에 걸맞은 그림입니다. 지금은 제가 억지 부리는 것 같아도 나중에 틀림없이 한국화로 공인되는 날이 올 겁니다.”
성파스님과 민화의 인연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통도사 주지를 그만둔 뒤 방문한 일본 가나자와에서 우연히 만난 민화도록 《李朝の民畵》이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한국에서는 민화에 대한 관심도 드물 때여서 일본에서 민화가 명품도록으로까지 간행됐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무엇보다도 산수화나 풍속화와는 또 다른 민화의 독보적인 미감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성파스님이 첫 옻칠민화전을 개최한 때는 2014년으로 이는 표면적인 시기일 뿐, 현재까지 활발히 전시회를 개최하며 남다른 기량을 선보일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민화에 대한 오랜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파스님은 민화의 연원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가 가진 지론 중 하나는 민화가 불화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민화가 유행하던 조선 후기에는 제주도부터 함경도까지 전국을 망라하고 민화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데 이러한 대량작업이 가능한 집단은 단체로 불사佛事 활동을 했던 화승畵僧이라는 것.
“사람들이 모사하는 전통민화도 처음엔 창작품이었겠지요. 그렇다면 그 작품은 그림을 많이 그리던 사람의 솜씨일 겁니다. 당시 그림을 그릴 수 있던 사람이라고 해봐야 문인화를 그리던 사대부, 궁중화가로 활동하던 직업화가 정도인데 전국적인 수요에 맞춰 작업하기엔 제약이 따릅니다. 이에 반해 화승들은 단체활동을 하며 전문적으로 불화와 단청을 그렸어요. 민화가 유행했던 조선 후기는 억불정책이 시행됐던 시기였죠. 일감이 떨어진 화승들이 생계를 위해 속가로 내려가 서민들의 요구에 맞춰 그린 그림이 민화라고 봅니다. 실제로 민화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연꽃, 용, 호랑이, 토끼, 거북이 등은 불교조형물에도 흔히 등장해요.”
영축총림 방장인 그가 몸담은 통도사에는 명부전, 해장보각 등 전각에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전통민화가 그대로 보존돼 민화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성파스님의 말처럼 불교와 민화의 밀접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전통 공고히 다진 뒤에라야 창작 가능해

현대의 민화 시류 또한 유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민화가 발전하기 위해 전통을 바탕 삼아 창작의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조언한다. 옻칠민화를 선보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렇게 옻칠민화전시를 개최하는 이유도 ‘민화를 이렇게 그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민화화단에 창작의욕을 불 지피기위해서에요. 중요한 것은 전통을 철저히 익히는 과정이 전제되어야한다는 겁니다. 땅이 단단해야 높이 점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전통을 탄탄히 다진 뒤에라야 진정한 창작을 할 수 있어요.”
성파스님은 평생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원력을 세우고 정진해왔다. 성파시조문학상, 영남시조백일장 등 문학을 포함해 서예, 불화, 염색 등 폭넓은 분야에서 굵직한 전시회와 행사를 열었다. 특히 20여년간의 작업 끝에 16만도자대장경 불사를 회향한 일은 기념비적 이벤트로 손꼽힌다. 전통문화 부문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옥관 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이같은 업력을 내세울 법도 하건만 성파스님은 묵묵히 작품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라고 믿는다.
“전문화가도 아닌 제가 미술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화단측에서 심각히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니 말은 하지 않는 대신 그저 작품을 통해서나마 민화계에 스리슬쩍 이렇게 새 물꼬를 트는 겁니다.(웃음) 처음엔 변화의 물줄기가 작아보여도 나중엔 커질 거예요. 전시나 제자들을 통해 옻칠민화가 점차 퍼져갈 테니까요. 마치 안개 속에서 옷이 꿉꿉하게 젖어들듯이 말이지요.”

운여호학인동행云與好學人同行
(좋은 벗과 함께 하면)
여무로중행與霧露中行
(마치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수불습의雖不濕衣 (비록 옷이 젖진 않더라도)
시시유윤時時有潤 (때때로 윤택해진다)

그가 나지막이 읊조린 《명심보감》 교유편交友篇의 내용처럼,
옻칠민화는 안개와 같이 민화계에 천천히 스미며 고요히 빛날 것이다.

<통도사 옻칠민화 특별전>
5월 29일(금) ~ 8월 16일(일)
통도사 통도사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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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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