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8회 경주국제민화포럼 특별강연 맡은 노거장 영화감독 임권택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제8회 경주국제민화포럼에서 특별강연을 펼쳤다. 임 감독은 지난 2월 22일 저녁 경주 호텔현대 컨벤션홀에서 300여 명의 민화인에게 영화 〈취화선〉을 소재로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갔다. 영화 속에 묘사된 조선시대 화가 장승업의 모습은 현대의 민화 작가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임권택 영화감독이 지난 2월 22일 열린 제8회 경주국제민화포럼에서 ‘아흔여덟 번째 영화, 자신을 위한 진경산수’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했다. 조선시대 천재 3대 화원 중 한 명인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영화로 감상하면서 오늘날 화원의 참된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오후 7시 30분부터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강연은 유정서 월간 〈민화〉 편집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영화 산업의 전성기에 비디오 매거진의 편집장을 역임한 유 편집국장은 “100여 편에 이르는 임권택 감독의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 〈취화선〉에는 장승업이라는 인물뿐만 아니라 감독이 걸어온 예술가의 길이 투영되어 있다. 이번 특별강연이 거장의 예술세계를 만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임 감독은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 자전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화 〈서편제〉와 〈취화선〉의 주요 장면에 대한 코멘터리를 이어갔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달리 영화광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끝날 때쯤 밥벌이로 영화 일을 시작해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를 했다. 특히 1960~70년대에는 미국 영화의 아류를 다수 제작했다고 회상했다. “1년에 50여 편을 찍는 속도로 영화를 만들어내던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영화의 작품성도 달라졌지만, 그 때를 돌이켜보면 부끄러웠다.” 그 이후 한 작품이라도 신중하게 연출하고, 평생 영화만 찍을 것이라면 인간의 진솔한 삶을 담아내자고 결심했다.

한국의 정체성과 시대성을 표현해야

임권택 영화감독은 1980년대부터 예술영화에 주목했다. 그는 배우 강수연이 국제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입지를 굳혔다. 1990년대에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예술을 영상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1993년에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 〈서편제〉와 2002년에 조선 화단의 거장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취화선〉으로 영화감독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한국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판소리 장르가 잘 되었다고 해서 그것에만 머무르면 안 되고, 새롭게 거듭나도록 애써야 했다.” 그는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5분 20초 동안 롱 테이크(long take, 하나의 숏을 편집 없이 길게 찍는 방법)로 찍어 영상미가 돋보였다. 지금도 많은 감독들에 의해 오마주(hommage, 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일)되는 장면이다.
임 감독은 제55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취화선〉에 장승업의 생애와 함께 한국적 미학을 표현하려 했던 기억을 풀어놓았다. 그의 관심이 우리의 음악에서 그림으로 옮겨간 것은 장승업의 〈붉은매화와 흰매화 10폭병풍〉을 마주하고 느낀 감동에서 비롯됐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시절에 장승업의 예술가 정신과 곧은 성정을 전해 듣고, 그림을 배워서라도 영화로 다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은 호방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력으로 산수화, 인물화, 화조영모화, 기명절지화 등 모든 회화분야에서 조선후기의 대표양식을 확립한 천재화가다.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 화풍의 변곡점이 되는 주요 장면을 살펴보며, 배우 최민식(장승업 역) 대역으로 그림을 그린 중앙대학교 한국화학과 김선두 교수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오랜 기간 한국화의 전통기법을 확장해온 김 교수가 장승업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기교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흉내를 내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림이든 영화든 연륜이 쌓이고 깊은 이해가 생기면 그것이 고스란히 작품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장승업이 불가마에 들어가 죽음을 맞는 장면에 대해서 “자기 의지를 표명하는 인간이 불과 하나가 되어 작품을 완성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화가로서 거듭나고자 하는 장승업의 예술혼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며 강연을 마쳤다.
영화 안과 밖에 그려진 예술가의 인생은 민화 작가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민화에 대한 그릇된 인식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온 300여 명의 예술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글 강미숙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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