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요지연도의 새로운 사례

조선후기 궁중회화의 주요 주제인 요지연도瑤池宴圖는 현재 여러 점이 전하고 있다. 대부분 19세기에 궁중화원들이 그린 작품이며, 전설 속 서왕모西王母의 처소와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이 핵심 장면을 이룬다. 구도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지만, 기본적인 모티프의 구성에는 차이가 없다.
요지연도는 간혹 미공개작들이 소개되었지만 대부분 기존의 유형에 귀속되었고,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 8폭 병풍은 수준 높은 화격畫格에 기존의 작품과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어 조선후기 요지연도의 전개과정에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작품의 전체 구성과 세부의 특징을 살펴보고, 제작시기를 추정함으로써 실증적인 연구 자료로서의 의의를 간략히 살펴본다.

– 글 윤진영(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화면의 구성

여기에 소개하는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 8폭 병풍은 각 폭의 너비가 60~64㎝로 상당히 넓은 편이다.(도1) 전체 여덟 폭이지만, 실제로는 일반 병풍 열 폭을 넘어서는 크기여서 화면 안에서의 경물과 공간의 배치가 여유로워 보인다. 병풍 왼쪽의 세 폭(제6~8폭)은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고, 가운데 두 폭(제5·6폭)에는 서왕모와 초대 손님인 주나라 목왕穆王을 각각 한 폭씩 배치하였다. 그 오른쪽 세 폭(제1~3폭)에는 서왕모의 처소를 그려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었다.

도1-1 <요지연도>의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의 모습

화면 왼쪽의 넓게 트인 공간에는 바다를 건너는 여러 신선과 공중에서 내려오는 선인들이 등장하고, 바다의 아래쪽에는 노자를 비롯한 신선들이 걸어 나오는 길이 나 있다.(도1-1) 이렇게 보면 신선들이 서왕모를 찾아오는 경로는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등 모두 열려 있는 셈이다.
바다를 그린 병풍 왼쪽의 세 폭을 제외한 오른편의 다섯 폭은 서왕모의 처소인 요지를 그린 것이다. 이 공간에는 아래 위쪽에 바위와 나무 사이를 경계로 난간이 둘러져 있다. 아마도 이 공간은 서왕모의 궁궐에 딸린 누대樓臺로 짐작된다. 그림의 아래쪽으로는 부분적으로 구름이 피어오르고, 청록색의 바위를 드문드문 그려 넣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3천년 만에 열매를 맺는 반도나무는 모두 세 그루가 그려져 있다. 병풍 제2폭 상단의 바위 뒤편에 한 그루가 있고, 제3폭의 연못가에 한 그루가 있는데, 크기가 가장 크고 가지가 굽이를 이루며 힘차게 뻗어 올라 있다. 제5폭에는 바위 위에 한 그루가 뿌리를 박고 있다. 각 반도나무에는 커다란 신비의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도1-2 <요지연도>의 서왕모와 목왕

도1-3 <요지연도>의 서왕모의 정원 부분

서왕모와 목왕은 각각 병풍을 배경으로 하여 대칭형으로 앉았으나 앞에 찬탁饌卓은 놓지 않았다.(도1-2) 그 뒤편으로는 태호석太湖石과 같은 기이한 바위와 소나무, 오동나무를 정교하게 그려 배경으로 삼았다. 서왕모와 목왕의 앞쪽으로는 넓은 공간을 비워두었고, 조금 아래에 편경과 편종, 북, 비파와 피리를 연주하는 여인들이 좌우로 나뉘어 자리 잡았다. 빈 공간의 아래쪽에는 상서로운 모양의 봉황 두 마리가 거닐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 공간은 서왕모의 정원으로 보인다.(도1-3) 탁자 위의 도자기를 다루며 술을 준비하는 여인, 공작을 돌보는 시동, 학과 노니는 여인 등이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요지로 추측되는 연못에 연꽃이 피어올랐고, 커다란 괴석 두 개가 연못에 잠겨 있으며, 그 위로 모란과 대나무가 부분적으로 자라나 있다. 맨 오른쪽 폭에는 요지로 나갈 수 있도록 난간을 열어놓은 부분이 있다. 그 아래쪽에는 목왕이 타고 온 마차와 준마駿馬, 그리고 마부들이 보인다.
병풍이 접히는 경계 부분에 약간 변색된 부분이 남아 있지만, 전반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화풍의 특징과 세부 묘사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에는 전반적으로 19세기 요지연도에 보이는 강렬하고 두터운 색감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얼굴이나 복식에도 음영법이나 입체감을 드러내기 위한 복잡한 기교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림 전반에 걸친 세밀한 묘사와 산뜻하면서도 단정한 채색은 이 그림의 제작시기를 조선후기의 앞쪽으로 다소 올려 잡게 한다.
청록색의 바위는 갈색이 깔린 채색 위에 녹색을 올렸고, 부분적으로 짙은 청색조를 가하여 담도의 조절과 변화를 주었다. 예컨대 이러한 채색 방식의 경향은 17세기 작 채색화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요지연도>의 바위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1695년 작 <제갈무후도(諸葛武侯圖)>에 그려진 바위의 묘사와 유사하다.(도2) <요지연도>의 청록색은 17세기 후반기부터 비롯된 채색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다.
또한 제1폭에서 제5폭으로 이어지는 요지의 땅 위에는 녹색조의 풀들을 짧은 점과 선으로 드문드문 묘사하였다. 이러한 요소는 곽분양행락도 등 조선후기 궁중회화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1689년 작 <기로연회도병耆老宴會圖屛>의 사례에서도 잡풀의 묘사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화법들은 19세기 작에도 나타나지만, 그 선행 사례가 17세기 후반기부터 비롯된 화법의 흐름에 있음을 주지하게 된다.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 8폭 병풍은 어느 그림보다 세부묘사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서왕모와 목왕, 신선, 시녀들의 세부 묘사를 살펴보면, 필력이 놀라울 정도로 탄탄하고 묘사가 정밀하다. 이러한 그림과 동일한 수준으로 비교할 만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서왕모는 갸름한 얼굴에 봉황 장식이 달린 오량관五梁冠을 썼다.(도1-4) 얼굴의 윤곽선과 이목구비를 그린 선묘에는 상당히 날렵한 필력이 감지된다. 여기에 음영이나 입체감을 나타내고자 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녹색 상의와 적색의 안감 치마에는 금분으로 문양을 그려 실물의 정교함을 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섬세한 인물 처리는 서왕모의 시녀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특히 시녀들은 목에서 팔로 이어지는 형태에 어깨를 약화시킴으로써 더욱 갸름하고 날씬한 인상을 전해준다.
목왕의 경우도 면류관을 쓴 얼굴은 간결하게 처리하였으나 수염의 묘사는 초상화처럼 세밀하다.(도1-5) 옷 주름의 선은 매우 단순화시켰지만 필세에는 꼿꼿함이 서려있다. 북을 연주하는 시녀들의 모습에도 역동적인 동세와 우아한 자태가 돋보인다.(도1-6) 특히 복식의 색감과 촘촘하게 그린 문양은 회화적 실재감을 높여준다. 북의 붉은 가죽 표면에는 발톱 다섯 개의 오조룡五爪龍이 금분으로 그려져 있다. 신선들의 묘사도 속도감 있는 필선으로 형상을 규정하였다. 개성미 넘치는 얼굴 표정의 묘사는 각각의 신선마다 고유의 존재감을 강조해 주고 있다.(도1-7) 특히 신선 장지화張志和의 모습을 보면, 필선이 마치 수묵화의 선묘처럼 탄력있고, 형태감이 매우 선명하고 명확하게 마무리 되어 있다. 이러한 세부 묘사는 탁월한 기량을 지닌 정상급 화원화가의 솜씨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왼쪽) 도1-4 <요지연도>의 서왕모 부분/ (오른쪽) 도1-5 <요지연도>의 목왕 부분

(왼쪽) 도1-6 <요지연도>의 북을 연주하는 기녀 / (오른쪽) 도1-7 <요지연도>의 신선 부분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의 구성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에서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은 대부분 병렬적竝列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선들을 나열하듯이 간격을 두어 그렸으며 겹쳐 그린 부분은 거의 볼 수 없다. 이 점은 기존의 요지연도에 그려진 신선들과 다른 점이다. 기존의 도상에는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짓거나 겹쳐 그려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요지연도> 속의 신선들은 마치 ‘거리두기’라도 한 듯 모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듬성듬성 위치해
있다. 신선들의 개별적인 특색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데에는 효과적이다. 이러한 구성은 요지연도에 해상군선海上群仙을 결합하여 그린 초기 단계의 도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행렬도나 군선도群仙圖에서 사람이나 경물景物을 나열하듯 그리는 병치(juxtapose)식 구성은 대부분 초기 단계의 도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러한 묘사방식이 진전되면, ‘겹쳐 그리기’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도상의 일반적인 발전과정이다. <요지연도> 속 신선들의 행렬에 나타난 병렬식 구성은 군선群仙이 서왕모의 처소와 결합된 초기 단계의 특징이거나 아니면 뒷 시기에 제작한 그림에 초기의 도상을 반영하여 그린 형식으로 볼 수 있다.

불교 관련 도상의 문제

일반적인 요지연의 왼쪽 상단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여러 신선과 군상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석가釋迦와 사천왕四天王, 보살菩薩 등인데, 이 <요지연도>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사실 불교와 관련된 존재들은 19세기의 요지연도에 빠짐없이 들어가 있어 유불도儒佛道의 사상과 의미를 부각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석가를 비롯한 불교 관련 이미지가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에 빠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유기西遊記》를 비롯한 중국 명대明代의 소설류에는 서왕모와 관련하여 승려, 석가, 보살, 선승, 나한 등 불교적 존재들이 언급된다고 한다. 필자가 사료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불교적 도상은 중국의 <요지선경도瑤池仙境圖>나 <반도회도蟠桃會圖>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이고, 19세기의 요지연도에서만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이는 명대의 소설류에 등장하는 불교관련 존상이 특정 계기를 만나 조선후기의 요지연도에 반영되었음을 말해준다. 즉 소설의 내용이 그림의 도상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이다. 다만 소설 속의 불교적 모티프가 최초 그림에 반영된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개인 소장 <요지연도>는 불교관련 이미지가 도상으로 적용되기 이전 단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왼쪽부터)
도1-8 <요지연도>의 봉황
도2 <제갈무후도>, 1695년, 견본채색, 164.2×99.4㎝, 국립중앙박물관
도3 <요지연도> 8폭 병풍(부분), 18~19세기, 견본채색, 160×430㎝, 개인 소장

찬탁饌卓이 그려지지 않은 이유

여기에 소개하는 <요지연도>가 기존에 알려진 그림과 다른 점은 서왕모와 목왕을 대등하게 구성한 부분이다. 이전의 19세기 그림에는 서왕모가 정면을 향하였고, 목왕은 왼편에서 거의 직각 방향으로 찬탁饌卓을 놓고 서왕모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다.(도3) 연회의 주관자가 서왕모이므로 서왕모가 중앙에 앉는 구성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에서 눈여겨 봐야할 또 하나의 특징은 서왕모와 목왕 앞에 찬탁을 그리지 않은 점이다. 19세기 작으로 간주되는 대부분의 요지연도에는 찬탁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서왕모가 목왕을 접견하여 연회를 열고, 목왕은 서왕모를 배알하고 축수하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찬탁을 그리지 않은 것은 그것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의 그림일 여지가 있다. 요지연도에 찬탁이 놓이면, 그 앞에 춤을 추는 시녀가 등장하고 이내 내부의 분위기는 공연이 펼쳐지는 장면으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찬탁은 연회를 의미하는 단서로 볼 수 있다.
요지연도에는 연회장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왕실의 연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궁중의 진연進宴과 진찬進饌의 장면을 그린 궁중기록화에는 어좌御座와 어탁御卓을 중심으로 한 연회의 모티프가 그려진다. 요지연도에 찬탁이 그려진 것은 궁중기록화 속의 찬탁을 서왕모의 연회 장면에 포함시키거나 재구성하여 그린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모티프를 요지연도에 옮겨 담게 되면 연회의 분위기가 강조된 도상의 설정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하는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는 아직 연회의 장면이 성립되기 이전의 도상으로 간주된다.

봉황과 주작의 비교

서왕모와 목왕이 바라보는 앞쪽의 공간에는 봉황 한 쌍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봉황의 형태와 색감에는 고식적古式的인 특색이 역력하다.(도1-8) 19세기 이후 획일적으로 그려진 봉황과는 차이가 있다. 봉황의 머리 부분의 형태는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의 사수도四獸圖에 나오는 주작朱雀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의궤에 그려진 사수도는 제작시기를 알 수 있기에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요지연도> 속의 봉황이 그려진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요지연도> 속 봉황의 머리에는 붉은색의 입과 콧등에 난 돌기, 그리고 정수리에 붉은 벼슬이 있고, 턱 아래와 목 좌우에는 연녹색의 갈퀴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목 쪽에는 분홍색의 색감 위에 짧게 반복한 선묘와 붉은색의 반점이 들어가 있다. 이러한 표현은 18세기 전반기의 사수도에 보이는 주작과 상당히 가깝다. 예컨대 1702년의 《인현왕후명릉산릉도감의궤》와 1721년 작 《숙종명릉肅宗明陵 산릉도감의궤》의 주작을 비교해 보면(도4),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시대양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18세기 전반기 산릉도감의궤의 주작은 <요지연도> 속의 봉황이 18세기 전반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방증하는 단서가 된다.

(왼쪽) 도4 《숙종명릉 산릉도감의궤》(1721년)
<주작>,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오른쪽) 도5 <요지연도>, 18세기, 견본채색, 151.5×122.7㎝, 국립중앙박물관상태이다

중국 축수도祝壽圖와의 관련

서왕모와 관련된 중국회화 가운데 ‘요지연도’라는 제목의 그림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연회보다 장생을 축원하는 ‘축수祝壽’에 초점을 둔 ‘요지헌수도瑤池獻壽圖’나 ‘군선회축수도群仙會祝壽圖’ 등의 화제는 일부 사례가 전한다. 이러한 축수도의 계통과 가장 가까운 중국 그림으로는 구영九英의 《인물고사도책》 등이 알려져 있다.
서왕모가 등장하는 중국 축수도류의 그림은 17세기 말이나 18세기 초반경 조선에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 그러한 도상을 모방하여 그린 조선 화원들의 그림 가운데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의 <요지연도>로 추정된다.(도5) 이 그림은 조선후기 요지연도의 도상이 성립되기 직전 단계의 현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림의 핵심은 바닷가 절벽 위의 누대에서 서왕모를 배알하는 목왕과 그를 접견하는 서왕모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서왕모와 목왕은 화면에 나란히 등장하지만, 신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축수도 혹은 반도회에서 한 단계 진전된 그림이 요지연도이다. 요지연도가 축수회도 등과 다른 점은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축수회의 장면과 해상의 신선들은 각각 독립된 그림이지만, 현재의 요지연도는 이 두 가지 도상을 한 화면에 결합시킨 상태이다. 여기에 연회의 모티프가 들어가면 현전하는 요지연도와 같은 그림이 된다. 이러한 형식의 요지연도는 18세기 후반기와 19세기에 크게 유행했다. 여기에 소개하는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는 일반적인 요지연도가 본격적인 연회도로서 유행하기 이전인 18세기 전반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18세기 전반기 도상의 예시

요지연도의 기본 도상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의 화원들은 이를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조선시대 요지연도의 유래는 서왕모와 목왕이 만나는 장면에서 출발한 축수도나 반도회도의 형식이었다. 여기에 신선도의 일종인 ‘해상군선’이 결합되면서 연회도의 성격을 띠었고, 마침내 요지연도로 그려지고 불리게 된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 8폭 병풍은 반도회와 군선도가 절충된 초기의 도상으로 추측되며, 제작 시기는 18세기 전반기가 타당하다는 것을 여러 단서를 통해 알아보았다. 사실 그동안 소개된 요지연도는 기존에 구분해놓은 몇 개의 유형에 포함되었을 뿐 새로운 전형과 양식은 제시하지 못했다. 앞서 살펴본 개인 소장의
<요지연도>는 놀라운 묘사력과 새로운 형식을 통해 요지연도의 외연을 확장해 준 작품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요지연도 도상의 성립과 전개과정에 면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禹賢受, 「조선후기 瑤池宴圖에 대한 연구」(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1996).
박정혜 외 3인, 《조선궁궐의 그림》(돌베개, 2012).

윤진영 |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한국민화학회 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동덕여자대학교 특수대학원 민화학과 겸임교원이다. 궁중회화와 민화의 비교를 통한 생활문화사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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