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상황에서 만들어진 두루마리 초본Ⅲ

이번 시간에는 두루마리 초본의 재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를 통해 유물에 담긴 시대적 상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종이로 보는 역사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제지산업 현황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닥나무를 중국으로 수출하면서 좋은 재질의 닥나무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으며, 종이를 만드는 일이 어렵고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공이 많이 드는 질 좋은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점점 쇠퇴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일제의 내정간섭이 시작되면서 종이 제조기법에도 일본화지 제작 기술이 도입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종이를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취향에 맞는 얇은 종이를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일본의 제지 기술을 적극적으로 교육하였다. 그 결과 일본의 기술을 접목한 종이와 재래방식으로 제작된 종이가 동시에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근대 우리나라의 종이 시장에는 실로 다양한 품질의 종이가 유통되었다. 일본 기술은 한지 생산량과 농가 소득의 증대라는 긍정적인 결과도 가져왔지만, 전통 한지의 종류 감소와 전통 제지 기술의 소멸을 불러오는 부정적인 결과도 초래하였다.

도1 두루마리 초본 전체,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초본이 그려진 종이

지난 시간에도 말했던 것처럼 이 초본에 그려진 도상들은 상당한 공을 들여 그려진 것이다. 그리고 종이를 자르는 기술은 물론, 이어붙이는 기술 또한 정교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종이를 다루는 기술에 비해 종이 자체의 품질은 상당히 조악한 편이다. 실제로 초본을 보면 전체적인 종이의 품질이 떨어지고 이어붙인 각 종이의 품질이 서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루마리 초본 부분,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두루마리 초본 전체를 촬영한 것(도1)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종이의 왼쪽이 오른쪽보다 밝은 색을 띠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촬영해 배경색이 비쳐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어붙인 각 종이의 두께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초본은 큰 종이 한 장을 잘라 만든 것이 아니라 두께가 다른 여러 장의 종이를 잘라 만든 것이다. 아마 작품을 완성하고 남은 종이를 모아두었다가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얇은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세로줄과 가로줄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종이를 뜨는 발의 모양이 종이에 남은 것이다(도2). 종이의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발이 다른데, 이처럼 발의 형태가 종이에 남기 때문에 발의 촉이 고르고 가는 것을 사용해야 좋은 품질의 종이가 나온다. 종이에 남은 발의 모양을 통해 종이의 종류와 품질을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이의 국적도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얇은 종이 중간, 중간에 구멍이 나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구멍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지를 만들 때 한지의 섬유질이 균일하게 퍼지지 않아 생긴 것이다(도3). 이 사실을 통해 당시에 제작되었던 종이의 질이 균등하지 않고 종이가 제작된 장소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많이 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초본을 통해 민화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만 깊게 몰두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분야에 대해 깊게 아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민화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학문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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