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배 미술공간 – 파격의 미학을 반추하다

2017년 문을 연 황창배미술공간은 황창배 화백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올해 황창배 20주기를 맞이해 총 4차례의 기획전을 진행할 예정이며 향후 전시와 관련된 세미나 등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갈 예정이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한국화의 이단아 황창배

황창배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1978년 한국화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보수적인 한국화 화단의 시류를 탈피, 아크릴이나 연탄재 등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한 실험적 기법을 통해 독창적 작품을 제작했다. 동덕여자대학교, 경희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여러 교육기관에서 후학을 양성해오다 1991년 돌연 충북 괴산으로 내려가 10여년 간 개인 작업에만 몰두했다. 1997년 말에는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가 기획한 북한문화유산조사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한 뒤 북한 기행 전시를 열기도 하는 등 활발히 작업을 이어왔으나 2001년 5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통적인 필묵법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한 그는 오늘날 화단에서 한국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연희동에 위치한 황창배미술공간은 소정 황창배(黃昌培, 1947-2001) 화백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문화공간이다. 황창배 화백은 끊임없는 실험과 파격적 작품으로 1980년대 이른바 ‘황창배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화의 테러리스트’이자 ‘스타 작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남편은 항상 새로운 걸 추구했습니다. 한 곳에 진득이 머무르는 걸 싫어해서 출강하는 학교도 자주 옮겼죠(웃음). 그나마 가장 오랫동안 다닌 곳이 5년 간 강의했던 이화여자대학교인데, 이 근처에서 작업을 많이 했어요. 바로 길 건너에 작업실이 있었거든요.”
현재 이재온 황창배미술공간 관장이 황창배기념사업회와 함께 황창배미술공간을 꾸려가고 있다. 황창배기념사업회 운영위원회는 운영위원장을 맡은 오숙환 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교 학장을 비롯해 이종목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정종미 고려대학교 교수, 홍순주 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김상철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이승철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금보성 금보성아트센터 관장, 김복기 아트앤컬쳐 대표, 김선두 중앙대학교 교수,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로 구성됐다.
“남편이 워낙 사람을 좋아해 각별한 인연이 많았지요.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올해 황창배 화백이 작고한지 20주기를 맞이해 4명의 외부 기획자에게 전시를 의뢰, 황창배를 다각도에서 조명한 기획전들을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 3월 16일부터 4월 17일까지 <의도를 넘어선 회화 - 숨은 그림 찾기>를 연 박영택 미술평론가를 시작으로 김복기 아트인컬쳐 대표(5~6월), 김상철 동덕여자대학교 교수(9~10월), 송희경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11~12월)가 전시를 이어간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
1. 황창배 화백의 전각작품으로 래핑한 엘리베이터 외관
2.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 <의도를 넘어선 회화 - 숨은 그림 찾기> 전경
3. 1층 로비에 전시된 황창배 화백의 전각 작품들

20주기 기념 기획전 첫 번째, 1986~1987년 작품 전시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 <의도를 넘어선 회화 - 숨은 그림 찾기>에서는 황창배 화백의 1986~1987년도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화폭에선 수묵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산수와 인물을 그려내고, 내밀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보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여겨 일부러 제목도 짓지 않았다”는 이재온 관장의 말처럼 황창배 화백의 작품엔 별도의 제목이 없다. 작가는 동양화의 정석으로 여겨지던 하도下圖 즉, 밑그림을 과감히 탈피하여 먹과 색을 선염하고 바탕 위에 풍성히 번져간 안료 위로 독창적 세계를 선보인다. 먹과 채색, 그림과 문자, 구상과 비구상 등 그림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해체되었다가 재조합되는 풍경 속에서 ‘무위無爲’를 추구한 작가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조선민화에도 심취한 그였기에 새로이 해석한 전통 도상도 주목할 만하다. 그림 하단에는 단기(檀紀, 단군이 즉위한 해인 서력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하는 기원)를 일일이 표기하여 한국화가로서의 정체성 또한 확고히 드러냈다. 전시를 기획한 박영택 교수는 황창배 화백의 대표작을 1986~1987년도 작품인 이른바 ‘숨은 그림 찾기’시리즈로 본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황창배는 그의 그림에 의도적인 내용을 가능한 지우고자 했다. 화면에는 구체적인 형상은 부재하고 모든 것은 해체되고 다시 종합되는 과정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는 다분히 동양의 자연관을 떠올려준다. 나무가 꽃이 되고 사람이 되고 다시 새나 구름으로 그렇게 서로 연기적으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구성이 흥미롭다. 이러한 범신론적 세계관이나 만물을 평등하게 보는 시선이야말로 한국인이 지닌 세계관이고 생명관이다. 황창배는 바로 그러한 인식을 이미지화하려 했다. 그가 1986~1987년 사이에 제작, 발표한 ‘숨은 그림 찾기’ 시리즈가 바로 그런 인식을 상당히 매력적인 회화로 보여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영택

황창배미술공간은 개관 이후 꾸준히 전시를 열어왔다. 다채로운 작품들 앞에서 보는 이들이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전시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황창배가 이런 그림도 그렸어요?’에요. 남편은 전시를 끝내고 나면 곧바로 다른 방향의 작업을 준비했지요. 많은 분들이 한국화의 다양성을 확인하시곤 놀라워하셨어요.”

전시는 물론 아카데미까지,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향해

혹자는 황창배 화백의 독자적 화풍이 ‘전각篆刻’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황창배 화백은 철농 이기우(李基雨, 1921-1993) 선생으로부터 전각을 배웠다. 철농 이기우 선생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의 사인私印을 각인한 전각가이자 서예가로 국내 전각 예술을 개척한 선각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황창배 화백의 장인이기도 하다. 황창배미술공간의 로고 역시 그의 성으로 디자인한 전각과 친필로부터 가져왔다. 황창배미술공간은 2017년 10월 개관기념 2인전 <파격의 뿌리 - 철농 이기우·소정 황창배 서예 전각전>을 열고 이들의 전각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전시에 출품된 황창배 화백의 전각 작품이 건물 1층 엘리베이터에 랩핑돼 있으며 그 외 다양한 전각 작품들이 1층 로비에 진열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건물 곳곳에 서린 황창배 화백의 필치에서 작가의 재기才器, 나아가 그를 오래도록 추억하는 이들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향후 황창배미술공간은 아카데미, 작가 발굴 등을 통해 행보를 확장해갈 계획이다.

Mini Interview


황창배미술공간 관장 이재온

2021년, 황창배 화백이 작고한지 20주기를 맞이해 작품을 다각도에서 조명한 전시를 연달아 개최합니다. 4월 17일까지 열리는 <의도를 넘어선 회화 - 숨은 그림 찾기>를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다양한 기획전이 열립니다. 전시장을 방문하신 분들은 황창배 화백이 남긴 다양한 작품에 무척 놀라워합니다. 그의 작품에서 남다른 열정과 한국화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향후 전시와 연계해 세미나 등 관련 행사도 기획중입니다. 황창배 화백의 예술혼이 깃든 이 공간이 예술인들의 편안한 사랑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황창배 화백의 전각 작품을 모티프로 작업한 로고. 건물의 명칭은 스페이스창배, 황창배미술관을 거쳐 현재 황창배미술공간으로 변경되었다.


황창배미술공간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 89-8, 3층
02-332-1781
hwangchangbae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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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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