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속에서 꿈꾸고 싶은 이영덕 작가 – 화접도 꽃향기에 이끌려 시작한 민화의 삶

우연히 접한 화접도 향기에 취해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영덕 작가에게 민화는 여전히 몽유도원의 꿈결처럼 아름다운 대상이다. 아마도 험상궂은 맹견의 얼굴에 꽃이 피고, 금강산의 비경 사이로 구름이 흘러가는 풍경이 그가 꿈꾸는 이상향이 아닐까. 한겨울에 만난 따뜻한 봄처럼, 이영덕 작가의 삶에 찾아온 민화라는 꿈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인, 광고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던 나는 우연히 빛바랜 화접도를 접한 뒤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민화의 기법과 색채는 나를 민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고, 흐드러지게 핀 꽃의 향기에 나비가 이끌리듯 민화의 세계에 빠져든 지 어느덧 23년이나 흘렀다. 지금에 와서 민화와의 만남을 떠올리면 마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음을 회상하게 된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민화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그려지게 될 줄 몰랐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민화에 열광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라 요즘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기도 한다.
처음 민화를 배우던 시절에는 복사기의 성능이 변변치 못해 제대로 된 본을 그리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나마 어렵게 복사한 본은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의 거의 새로 그리다시피 했고, 작품 사진을 촬영하려면 1장에 오만원이나 하는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어놔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8폭 병풍을 찍으려면 필름 값만 40만 원이라는 큰돈이 들어갈 정도였다.

민화를 가르치며 더욱 성숙한 작가로 거듭나다

안양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강의를 시작으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대진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민화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과천 부림동 문화센터, 울산대 평생교육원 민화전문가과정, 인사동 이영덕민화갤러리 화실 강의까지 나의 일주일은 빠듯하다. 그러나 어렵게 배운 민화를 타인에게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필자 스스로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배움을 갈망하는 민화인들이 열정 하나로 브라질, 미국 뉴저지 등지에서도 필자를 찾아왔다.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자식을 낳은 일이고, 그 다음이 금송 이영덕 선생님을 만나 민화를 배우는 일”이라고 이야기한 어느 회원의 칭찬 한 마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보상처럼 느껴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던가. 대학교에 재학중인 20대는 물론 팔순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민화를 배우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민화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네이버 밴드가 일반화 될 즈음인 2015년에는 최초의 민화 밴드 모임인 ‘민화사랑밴드’를 만들었다. 민화의 보급과 대중성을 위해 시작한 밴드는 현재 회원수가 1,500명이 넘는다. 2016년에는 사회관계망 서비스 사상 최초로 순수한 민화동호인들의 전시인 민화사랑밴드의 첫 단체전을 인사동 갤러리 명작에서 개최하게 되었고 그 결과 대성황을 이루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낯모르는 사람들끼리 민화를 공통주제로 모여 전시를 하게 된 일은 실로 대단한 성과였다. 그 이후 매년 민화사랑밴드 회원전을 치르고 있다.

<맹견도>를 모티프로 탄생한 <꽃보다 dog> 시리즈

이렇게 일주일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지만 틈틈이 짬을 내서라도 나만의 독특한 작품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전업작가회 전시를 통해 맹견도를 그려 출품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에 힘입어 <꽃보다 dog> 시리즈(도1, 도2, 도3)를 세 번째 작품까지 그려보았다.
<꽃보다 dog> 시리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중인 작자미상의 <맹견도>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굵은 쇠사슬에 묶인 채 기둥 밑에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한 마리의 맹견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전통적인 재료를 이용하되 서양화 기법으로 그려진 <맹견도>는 건물의 기둥과 마룻바닥 등이 음영법과 투시도적 시각으로 표현되어 있어 사실성을 높여준다. 아마도 일제 치하인 조선 후기, 천주교에 의해 청나라에서 유입되었던 서양화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꽃보다 dog> 시리즈는 일제에 짓밟힌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나름대로 스토리를 만들었고 작품명 역시 <꽃보다 dog>라고 이름 지어 그려보았다. <꽃보다 dog Ⅰ>은 원본에 충실한 재현작품이며, <꽃보다 dog Ⅱ>는 봄을 나타내는 매화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그려 넣음으로써 꽁꽁 얼어붙은 일제치하에서 자유에 대한 열망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꽃보다 dog Ⅲ>은 해방을 맞이하여 목을 옥죄는 굵은 쇠줄도 없이 온통 꽃밭으로 둘러싸인 맹견의 머리에 희망을 나타내는 길조의 색깔인 붉은 모란을 달아주어 해방의 기쁨을 표현했다.

몽유도원 같은 이상향의 민화를 소망하다

한편 <신금강산도>라 이름 지은 두 폭의 그림은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산이라는 금강산을 보다 이상향에 가까운 환상의 무릉도원으로 표현하고 싶어 그렸던 작품이다.(도4) 특히 학과 구름을 몽환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12월에 열렸던 금송민화회 회원전의 제목 ‘민화 속에서 꿈꾸다’처럼 어지러운 세상사, 모든 것을 잊고 몽유도원 같은 이상향의 세계에서 민화를 통해 꿈을 꾸고 싶은 심정을 담았다.

그림을 전공했고 23년 동안 민화를 그렸지만 필자는 아직도 민화가 고프다. 더 잘 표현하고 싶고, 과감하게 색다른 시도도 해보고 싶다. 또한 더 체계적으로 민화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디자인 대학원 석사과정을 통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 하루가 짧고 일주일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생활 속에서도 또 다른 내일을 위해 민화 속에서 꿈꾸고 싶다.


글, 그림 이영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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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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