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기획전 ‘민화 Today’ 세 번째 테마 – <문자도 Today>를 기다리며

월간<민화>가 주최하고 경주대 정병모 교수가 기획과 총괄진행을 맡은 대규모 기획전 ‘민화 Today’는 현대민화가 거둔 성과를 민화의 주요 화목별로 점검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시로 2년 만에 우리 민화계 최대의 이벤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19년 책거리, 2020년 화조화에 이어 올해는 ‘문자도’가 테마로 결정되었다. 2021년 8월 4일부터 2주에 걸쳐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리게 될 <문자도 Today>를 앞두고 이 전시의 기획자인 정병모 교수와 안현정 큐레이터를 초청해 전시의 의의와 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리 강미숙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장소협찬 나마갤러리

참석자
정병모 (경주대학교 초빙교수), 안현정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진행 : 유정서 (월간<민화> 편집국장)

새로운 개념의 기획전
‘민화 Today’ 시리즈의 파워

유정서 연말의 바쁜 일정 중에서도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이야기의 주제인 <문자도 Today> 전시회는 월간 <민화>가 주최하고 오늘 모신 정병모 교수님이 기획을 맡아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민화 Today’ 시리즈의 그 세 번째 테마입니다. ‘민화 Today’ 전시회는 <책거리 Today>, <화조화 Today>를 거치며 불과 2년 만에 민화계를 대표하는 권위 있는 전시회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감히 자부해 봅니다.
더욱이 올해 <문자도 Today> 부터는 동덕여대가 월간<민화>와 함께 공동주최로 참여, 전시기간이 2주간으로 대폭 늘어나고 1차 전시 후에는 동덕여대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옛 민화와 함께 한 달간 이어지는 2차 연장 전시에 들어가게 됩니다. 규모와 내용이 훨씬 크고 충실해진 것이지요.
우선 이 전시회를 처음 기획하시고, <책거리 Today>와 <문자도 Today>를 유례없이 성공적인 전시로 이끌어주신 정병모 교수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이 ‘민화 Today’ 전시회가 불과 2년 만에 많은 민화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화제의 전시회로 자리 잡은 요인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정병모 당연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우선은 첫 테마였던 <책거리 Today>의 큰 성과가 미친 영향이 크지 않았나 합니다. 사실 <책거리 Today>는 전시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3월에 열릴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로 연기된 국립중앙도서관 초청 앙코르 전시가 올해 2월에 열리고 또 여러 건의 해외전시가 예정돼 있습니다. 가장 가깝게 5월에는 프랑스 낭트시에서 열리는 ‘한국의 봄’ 축제(Printemps Coréen Nantes) 기간 중에 책거리 전시가 예정돼 있고 이어 프랑스한국문화원과 스페인한국문화원에서도 책거리 전시가 계획돼 있습니다. 특히 이 해외전시에는 (사)한국민화협회와 (사)한국전통민화연구소 등 민화계의 대표적인 단체들이 참여해 판이 매우 커졌습니다. 우선 이런 성공적인 결과들이 전시에 대한 관심과 전시회의 권위를 크게 높여주지 않았나 합니다.
다음으로는 민화작가 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일반 회화 작가들에게도 문호를 개방, 전시의 영역을 크게 넓힌 ‘열린’ 전시 방식과 현대 민화의 성과를 화목별로 정리함으로써 현대 민화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점도 작가들의 관심을 모은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유정서 정확히 진단하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한두 가지만 첨언하자면, 기획과 진행을 책임지신 정 교수님의 노고, 그리고 좋은 장소를 흔쾌히 내 주시고 행사 진행을 뒤에서 도와주신 동덕아트갤러리의 적극적인 후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지난해 <화조화 Today>를 꼼꼼히 참관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 안현정 선생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미술평론가이자 전문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지난해 전시를 어떻게 보셨는지, 아주 솔직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안현정 저는 지난해 <화조화 Today> 전시회를 관심 있게 관람하면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함께 뚜렷한 한계를 함께 보았습니다. 이 전시회에는 일반 미술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들이 초대되어 이들의 작품들과 민화작가들의 작품이 조화를 이뤄 화조화의 넓은 스펙트럼과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좋은 작품들도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소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전시회의 성격이나 민화의 특성 상 소재주의를 탈피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의 민화와는 확실하게 다른 독창적 영역으로서 현대인들과 어떻게 교감하고 호흡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성찰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뒤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보다 대담한 기획과 창의적인 진행에 의해 어느 정도 커버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자인가 그림인가,
세 번째 테마 ‘문자도’의 세계

유정서 그러면 이번에는 올해 ‘민화 Today’ 의 주제인 ‘문자도’로 이야기의 포커스를 좁혀보겠습니다. 문자도는 민화 여러 화목 중에서도 조형적 특징이 매우 강렬한 그림으로 알고 있는데, 문자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인지 어떤 조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문자도 Today>에서 어떤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런 점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정병모
● 경주대학교 초빙교수

정병모 우선 문자도라는 그림이 탄생한 배경에는 문자 자체가 어떤 주술呪術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뜻을 가진 글자를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면, 그 글자가 지닌 뜻이 진짜로 실현된다는 믿음이지요. 민화인들이 잘 아는 ‘백수백복도’ 같은 그림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자도에는 이런 길상적 의미를 지닌 것 외에 ‘유교문자도’라고 불리는 독특한 문자도도 있습니다. ‘효제충신예의염치’로 요약되는 유교적 가르침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풀어 표현한 문자도지요. 이런 문자도는 유교 국가였던 조선사회의 근본이념을 민간에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조형적인 측면에서 문자도는 민화 화목으로는 드물게 지역적 특성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제주문자도’, ‘강원도문자도’, ‘경상도문자도’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지요. 이것은 다른 화목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특징입니다. 또한 다른 화목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도 주목할 만한 특징입니다. 전해지는 문자도 중에서도 책가도, 화조도, 어해도 등 다른 화목을 폭넓게 수용해 멋들어진 이미지를 만들어 낸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문자도의 이러한 의미와 조형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해석하면 정말 다양하고 창의적인 현대의 문자도가 얼마든지 창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기대가 큽니다.

안현정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서민의 가치가 담긴 것도 아닌 유교문자도가 민간에서 크게 유행했던 상황이 이해되네요. 한자를 잘 모르는 서민들에게 어려운 뜻 글씨를 잘 이해하도록 그림을 활용한 것이군요. 문자도가 일종의 계도啓導 그림 역할을 했던 것이네요. 마치 서양의 중세시대 때 성서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종교화가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민화 자체가 그렇긴 하지만, 특히 문자도는 유교적 가치의 공유를 중요시했던 그 시대 조선 사회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병모 그렇습니다.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서민들에게까지 어떻게든 폭넓게 전파하고 싶었고,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 그림에 담긴 뜻이 자신들의 가치는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나 바람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유교문자도가 서민계층에서도 크게 유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유교 국가도 아니고 그런 이데올로기와도 관계가 없는 사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교 국가였던 조선 시대가 아닌 현대에 맞는 문자도의 출현이 오늘의 과제이자 바람이라고 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유정서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문자도 Today> 전시회의 의의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현대의 문자도, 현대의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는 ‘오늘의 문자도’는 어떤 그림이어야 하는지,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병모 궁극적으로 예술작품은 작가의 몫인 만큼 외부에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는 ‘문자도’라는 범주가 전제로 주어졌기 때문에 문자도의 속성과 기본적인 조형 원리 등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자도가 아닐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을 이해한다는 전제하에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우선 앞서 말한 문자도의 ‘주술적인 기능’은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문자도를 통해 많은 스토리를 시각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1970년대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된 그래피티(graffiti)가 좋은 사례입니다. 청년들은 사회적인 불만을 거리 담벼락에 낙서로 남기며 문자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한 것이지요. 우리도 문자가 지닌 전통적인 주술성에다 사회적 메시지를 포함시켜 어떻게 시각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 번째로,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ㄱ의 순간> 특별전의 경우처럼 한글의 기능을 재해석한 현대미술 작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자가 아닌 한글문자도를 통해 작가 자신의 스토리나 바람을 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현정 문자도에 지역 양식이 있다는 것도 현대적 문자도를 그리는 데 큰 시사점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문자도에 지역적 특색을 올바로 표현하려면 무엇보다 그 지역에 대한 인문사회적인 지식을 갖춰야 하고 그 점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데 사실 이게 그렇게 만만한 작업은 아니거든요. 저는 꼭 이번 <문자도 Today> 같은 전시회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기회에 강원도, 제주도 등 지역적 요소가 강한 지역을 대상으로 그 고장의 문화와 역사를 녹여낸 가칭 ‘지역 문자도 공모전’ 같은 전시를 기획해 유능한 작가와 함께 개성 있는 현대의 지역 문자도를 발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대미술과 문자도의 다양한 변주

유정서 좋은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문자도뿐만 아니라 민화의 지역색 되찾기는 현대 민화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아주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계속해서 문자도 이야기를 좀 더 해 보겠습니다. 저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문자도가 매우 개성 있는 화목이라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앞선 테마였던 책거리나 화조화와 달리 정형성이 매우 강한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매우 뚜렷한 전형적인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강한 정형성은 더러 다양한 응용과 해석에 장애로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만큼 다양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런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병모 그런 우려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것 또한 작가의 역량과 관계된 것이라고 봅니다. 원론적으로는 작가들이 조선 시대 문자도가 지닌 특징을 잘 파악해서 그것을 작품 속에서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우환이 민화의 큰 특징으로 언급한 ‘구조적인 짜임’이라는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문자도가 18세기의 서체 안에 스토리를 담는 정형성을 벗어나 책거리처럼 다양한 구조적인 짜임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자도라고 해서 단순히 문자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무한한 조합의 가능성에 주목해 새로운 조형을 만드는 데 주력할 필요도 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옛 문자도에서도 글자 획의 일부를 책거리의 쌓임으로 표현하거나, 화조화, 책거리, 산수화 등과 자유자재로 결합한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화목이나 모티브를 조합하는 방식만으로도 다양한 문자도가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정서 아무래도 이 질문은 현대미술의 복판에 계신 안현정 선생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현대미술에서도 문자를 작품세계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은 작가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고암 이응노 같은 작가를 꼽을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나마갤러리에서 열린 전병현 작가의 전시회에서 루즈로 그린 그림 중 사람의 머리 부분을 유교문자도로 처리한 작품을 보았는데,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미술계에서 이처럼 문자를 활용하거나 문자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 활동이 과연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현정 결론부터 한 마디로 대답하자면 글자 그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별히 요즘 들어 많은 유능한 작가들이 글자의 조형 원리를 활용한 좋은 작품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최근 갤러리 현대에서 선보인 김창열의 작품 중 문자와 물방울이 결합한 작품가격이 상당히 올랐다는 소식이 있고 선화랑에서는 단색화에 문자를 끌어들여 문자 추상 작업을 하는 이정지 작가의 개인전이 관심을 모았습니다. 미술시장을 이끄는 화랑들이 이런 작업을 선보인 시기와 맞물려 문자도를 전시 테마로 선정한 것은 단순한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글씨와 산수를 결합한 김호득 작가, 픽토그램으로 변용한 박이소, 손동현 작가 등이 21세기 문자도의 형태를 선보이면서 전통성도 획득해 가고 있습니다.

유정서 우리 현대 미술에서도 문자도가 대세라니 문자도展을 주최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듣기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자를 활용한 그림이 부상하고 있는 현상에 어떤 특별한 이유 같은 게 있는 것일까요? 혹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안현정 그렇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본래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서화동원書畵同源, 즉 글자와 그림이 같은 뿌리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애초부터 문자도라는 미술양식이 생겨날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문자도가 자체가 가진 조형상의 특징이나 장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민화 문자도는 표현에 대한 확장성이 높기 때문에 작품에 다양하게 녹여낼 수 있습니다. 문자가 지닌 주술성도 의미의 확장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치유의 코드’로 공감을 얻을 수 있겠지요. 또한 동시대성을 얻기 쉽고, 개념성으로 소재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민화의 무한한 진화 가능성

유정서 지금까지 문자도에 대한 두 분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주제를 조금 확장해서 민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듣고자 합니다. ‘민화 Today’ 시리즈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민화를 더 이상 과거의 그림에 묶어두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당대의 그림, 오늘의 그림으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시도의 하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화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 나가야 하는데, 과연 민화라는 그림이 그런 가능성을 얼마나 많이 지닌 그림인지 또 그런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전문가적인 시각을 통해 듣고 싶습니다.

안현정 모두 알고 계시듯이 우리 현대미술에서 민화적 요소를 중요한 모티브로 차용한 작가와 작품은 매우 많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민화의 진화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민화적 요소의 차용을 넘어 민화를 ‘오늘의 그림’으로 발전시키는 일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좀 더 창의적이고 지혜로운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정서 혹시 좀 구체적인 방안이나 사례들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안현정
●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안현정 예, 저도 민화에 관심이 많아서 그 방안에 대해 계속 고민해 왔습니다. 그 한 가지 사례를 국악에서 찾아봤어요.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이 함께 있던 시기에 국악오케스트라(요즘으로 치면 이날치 밴드의 힙한 국악)가 발족을 하자 한쪽에서는 이렇게 서양 스타일을 도입하면 국악의 원형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해 서로 대립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원형은 원형대로 더 깊게, 창작은 창작대로 더 넓게’ 서로의 영역을 만들기로 합의해 지금까지 상호보완적으로 국악을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은 민화로서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민화에도 모사를 중심으로 한 전통민화와 작가의 개성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창작민화로 작품활동의 범주가 나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분야가 국악의 경우처럼 ‘원형은 원형대로 더 깊게, 창작은 창작대로 더 넓게’ 각각의 소임을 다해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소중한 전통의 계승과 대중화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잘 해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예컨대 박물관에서는 전통 민화를, 현대미술 전시관에서는 창작민화를 대대적인 전시로 기획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에는 프로암(pro-am, professional–amateur)이라 해서 프로와 아마추어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을 하는 작가군도 있습니다. 시대와 대중의 다양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이 되겠지요. 아무튼 이런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병모 민화가 오늘의 그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재주의를 탈피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소재주의는 부정적인 부분도 있고 한계 또한 명확하지만, 민화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한 예로 양해일 디자이너와 작업할 때 만난 영국의 한 팝아티스트는 민화의 소재를 전혀 변형시키지 않았어요.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단순히 민화를 원형 그대로 적용했을 뿐인데도 매우 훌륭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현대 민화의 모사 영역에도 현상모사와 원형모사가 있고, 전통민화와 창작민화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이른바 ‘리메이크 민화’도 있습니다. 무조건 원형을 해체하고 뒤흔든다고 창의적이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소재주의 역시 작가가 택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철학과 취향이라고 봅니다.

안현정 원형과 창작 사이에 세련된 취향이 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또한 작가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취향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젊은 민화 작가들이 파격적일 만큼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작업을 선보이거나 젊은 감각의 기획자가 참여해 SNS 등을 통해 파급효과를 노리면 더욱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민화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콘텐츠나 디자인 같은 실용적 측면에서도 민화의 진화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유명 디자인 브랜드와의 콜라보나 광고, PPL 등을 통한 마케팅으로 민화가 옛날 그림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의 생활문화이자 취향이라는 것을 계속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정병모 한국의 민화를 디자인적으로 활용한 선구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와 함께 활약했던 일본의 염직공예가 세리자와 케이스케[芹沢銈介]의 작업을 들 수 있습니다. 그가 주목하고 활용했던 민화는 문자도였습니다. 그는 문자도를 수집하고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독창적인 감각으로 문자도를 응용한 디자인 작업을 펼쳤습니다. 그만큼 민화는 현대 미술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예술에서 활용될 여지가 많은 문화유산입니다. 무엇보다 디자인과 팝아트는 대중성을 공통분모로 하기 때문에 민화와 현대미술 간의 연결고리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문자도 전시가 많은 현대미술가는 물론, 특별히 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켜 민화 문자도를 활용한 한국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제작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더욱 원숙해진 모습의
<문자도 Today>를 기다리며

유정서 이제 마지막으로 앞으로 테마를 달리하면서 계속될 ‘민화 Today’ 시리즈가 더욱 알차고 좋은 전시가 되기 위해서는 개선하거나 보완해야 할 점도 많을 것입니다. 두 분께서 한 마디씩 이 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병모 사실 안현정 큐레이터를 특별히 이 자리에 모신 것도 두 번의 전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놓쳤거나,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큐레이터로서 제안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전시의 총괄 기획자로서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안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한 가지,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작가의 선정인데,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좋은 작가를 선정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형식으로 보면 공모전도 아니고 참여전도 아니어서 좋은 작가나 작품을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앞으로는 작가 선정의 방식을 좀 더 연구하는 한편, 작가군과 작품 활동을 충분히 파악해 좋은 작가를 선정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안현정 전시의 개선점이나 발전가능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지금 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의 선정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실 것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특히 오늘의 민화를 지향하는 전시 방향과 관련해 현대적인 민화로 확장성을 지닌 참신한 작가를 발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전시 구성에서도 더 새롭고 진보적이며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상업적 전시가 아닌 만큼 예산 등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콘텐츠나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거나 아니면 협업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민화를 사랑하는 큐레이터의 한 사람으로서 ‘민화 Today’ 시리즈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멋진 모습으로 변화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

유정서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새해맞이 첫 대담을 통해 테마기획전 <문자도 Today>의 의의와 바람직한 전시 구성, 현대 민화 화단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나눈 말씀들이 더 좋은 ‘민화 Today’를 만드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시고 좋은 말씀해주신 두 분 패널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 오는 8월 4일로 예정된 <문자도 Today>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고 많이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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