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 I. 머리말
• II. 세화와 부적에 그려진 호랑이

1. 세화와 문배
2. 벽사용 부적

• Ⅲ. 민화 호랑이 그림의 유형

1. 까치호랑이 그림
2. 용호도
3. 산신도
4. 호렵도
5. 호피도

• Ⅳ. 맺음말

※ 이 글은 2015년 1월 5일, ‘대갈문화축제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을 옮긴 것입니다.

Ⅰ. 머리말

옛날 이야기는 으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하면서 시작한다. 호랑이가 주인공이 아닌 이야기임에도 호랑이로 운을 뗄 만큼 호랑이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가까웠던 존재이다. 우리나라의 신화·전설·설화에서 호랑이 이야기의 비중은 단연 세계 으뜸인 바, 최남선의 말대로 호랑이 만으로 ‘천일야화(千一夜話)’를 꾸밀 수 있는 ‘호담국(虎談國)’이었다.¹⁾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도 “조선의 호랑이 이야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 가장 다양하고 다채롭다”면서 조선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호랑이 이야기를 청했다고 한다.²⁾
옛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힘세고 날래면서도 한편 어리석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반면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사람이나 짐승으로 변신도 하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며 의(義)를 지키고, 약자와 효자, 의인(義人)을 도우며 부정함을 멀리하는 신비스럽고 교훈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어리석어 바보가 되거나 잔인하여 잡아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호랑이 관련 기사 중 다수는 호랑이가 나타나 가축이나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호환(虎患)’에 관한 것이었으니, 호랑이는 친근하기보다는 대적키 힘든 맹수였음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구한말인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나 여행한 뒤 쓴 책에서 “‘조선 사람은 일년의 반을 호랑이를 쫓느라 보내고 일년의 나머지 반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는 중국 속담이 거짓이 아니다.”고 하면서 당시 호환의 심각성과 조선인의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서술하였다.³⁾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부터, 사라져가는 한국의 기층문화와 민화 연구에 천착하며, 그 중에서도 호랑이 그림에 관심이 깊었던 조자용(1926-2000) 선생도 청소년들을 향해 “…중국에 가니까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아직도 호랑이가 많이 있느냐고 물어요. 일본에 가보았더니 일본 사람들도 한국 호랑이 이야기를 물어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한국 호랑이를 무서워합니다. 월남 사람들은 더욱 무서워하더군요. 우리 맹호부대 군인 아저씨들이 호랑이 같이 무서우니까요.…”라고 했다.⁴⁾
호랑이의 무시무시한 힘은 ‘벽사(辟邪)’와 ‘용맹(勇猛)’의 상징이 되었으니, 정초에 세화(歲畵)로 그린 호랑이 그림이나 용호문배(龍虎門排), 그리고 호랑이 발톱이나 이빨을 장신구로 만들어 착용하거나, 신부의 가마를 호랑이 가죽으로 덮어씌운 것 등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무관을 ‘호반(虎班)’이라고 별칭하며, 무관의 관복 앞뒤에 호랑이 무늬 흉배를 달았던 것도 이 상징과 연관된다.
이 글은 먼저 조선후기에서 말기 세화와 문배 및 벽사부적(辟邪符籍)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고, 그 중에서도 호랑이 그림이 적용된 사례와 기능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이어서 민화 호랑이 그림의 유형들인 호작도(虎鵲圖)·용호도(龍虎圖)·산신도(山神圖)·호렵도(虎獵圖)·호피도(虎皮圖) 등에 그려진 호랑이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범 이야기 수효 많기로 조선만한 데가 없으려니와, 그것만 듣기 좋아하긴들 조선만한 데가 또 있을 것인가. 인도나 그 외 어떤 나라가 있다 해도 범 이야기 하나만으로 다 조선의 적이 아니다. 범 이야기만을 모아서 『千一夜話』, 『太平廣記』, 『데카메론』 등 이런 유의 책을 꾸밀 나라는 세계가 넓다 해도 오직 조선이 있을 뿐이다. 범의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 안데르센, 그림 형제 노릇이든지 다 할 것이다. 또 언제든지 이것의 실현을 볼 날도 있을 것이다” 최남선, 「朝鮮歷史 및 民俗史上의 虎, 건국초두 이래 久遠朝鮮의 표상」, 『東亞日報』(1926년 1월~2월); 김호근, 윤열수 엮음, 『한국 호랑이』(열화당,1986), 16-18쪽. 발췌 수록.
2) 이가원 엮음, 『조선 호랑이 이야기』(학민사, 1993), 4쪽.
3) 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살림, 1994), 154쪽.
4) 조자용, 『청소년에게 드리는 한얼의 미술』(에밀레미술관, 1971), 34쪽.

Ⅱ. 세화와 부적에 그려진 호랑이

1. 세화와 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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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는 연말연초에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려지는 그림이다.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해 동안 행운이 깃들이기를 기원하는 벽사적(辟邪的)이고 기복적(祈福的)인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으며, 새해 첫날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이루어졌다.⁵⁾ 세화의 내용으로는 신라시대 이래로 역귀를 쫓는 벽사신인 처용(處容)(도1)이 조선 초기에 제작되기도 하였지만, 주로 중국의 도교(道敎)와 관련된 문신(門神)들이 많이 그려졌다. 일반 민간에서는 동물 중에 벽사력을 지닌 것으로 믿어져오던 닭과 호랑이를 비롯하여 해태 모양의 사자와 개를 그려 붙였으며, 삼재(三災)가 든 해에는 특별히 매 그림(鷹圖)을 붙였다. 그리고 기복적인 송축(頌祝) 등으로는 장수를 상징하는 수성(壽星)과 선녀(仙女)그림을 비롯하여 길상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화훼영모·누각 등이 그려졌다. 화훼영모류의 그림 가운데 세화로 그려진 소재는 십장생과 화조도 모란 등이 있다.⁶⁾

조선후기 세시기인 『경도잡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에는 1800년을 전후한 시기의 세화 및 문배에 대한 기록이 있다. 대체로 내용이 중복되므로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1840년경 전후에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원일(元日)’의 기록만 제시한다.⁷⁾

서화에 관한 임무를 맡고 있는 도화서(圖畵署)에서는 수성선녀도(壽星仙女圖)나 직일신장도(直日神將圖)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바치고 또 서로 선문하는데 이것을 세화(歲畵)라고 하며 축하하는 뜻을 나타낸다. 또 금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을 그려 임금에게 바치는데 키가 한 길이 넘는 장군들은 각각 천자의 신임을 상징하는 도끼와 절월(節鉞)⁸⁾을 들고 있다. 이 그림을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라고 한다. 또 붉은 도포를 입고 까만 사모를 쓴 화상을 그려 편전의 겹 대문에 붙이기도 하고, 사악한 귀신을 잡는 종규(鍾馗)⁹⁾라는 귀신상을 그려 문에 붙이기도 하며,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 상방에 붙이는 등의 방법으로 사귀와 전염병을 물리친다. 모든 왕실 내외척들의 문간에도 이런 것들을 붙이며 일반 백성 집에서도 이를 많이 따라 한다. 금갑옷을 입은 두 장군은 사천왕(四天王)¹⁰⁾ 신상이라고도 하고 혹은 당나라 태종 때의 명장인 울지공(尉遲恭)¹¹⁾과 진숙보(秦叔寶)¹²⁾라고도 하며, 진홍색 도포를 입은 자는 당나라 때 학자인 위정공(魏鄭公)¹³⁾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사람 송민구(宋敏求)¹⁴⁾가 쓴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에 도가(道家)에서 상소를 올려 천문(天門)을 지키는 금갑옷을 입은 두 사람 중 갈장군(葛將軍)¹⁵⁾은 기를 잡고 있고 주장군(周將軍)¹⁶⁾은 절월을 잡고 있는 것으로 그린 것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 문배에 나오는 그림은 이 갈·주 두 장군인 듯 하며, 세속에서 괴담소설에 나오는 당나라 태종 때의 일이라고 한 것은 억지로 붙여낸 말이다.¹⁷⁾

위의 세 편의 세시기에 나오는 세화 및 문배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세화 및 문배 그림의 종류	간행, 작성년대
경도잡지 (유득공)	수성선녀도(壽星仙女圖), 직일신장도(直日神將圖), 금갑(金甲)의 두 장군-울지공(尉遲恭)과 진숙보(秦叔寶), 위정공(魏鄭公), 갈장군(葛將軍), 주장군(周將軍)	1800년 전후
열양세시기 (김매순)	금갑신장(金甲神將), 신선을 그린 그림, 닭이나 범을 그린 그림	1819년
동국세시기 (홍석모)	수성선녀도(壽星仙女圖), 직일신장도(直日神將圖), 금갑옷을 입은 두 장군, 종규(鍾), 사천왕(四天王), 울지공(尉遲恭), 진숙보(秦叔寶), 위정공(魏鄭公), 갈장군((葛將軍), 주장군(周將軍)	1840년경 전후

이를 다시 요약해보면 위의 세시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19세기 무렵의 세화와 문배용 그림은 ①수성선녀도, ②직일신장도, ③울지공, ④진숙보, ⑤위정공, ⑥갈장군, ⑦주장군, ⑧종규, ⑨사천왕, ⑩닭이나
범을 그린 그림 등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먼저 수성선녀도는 수성노인과 선녀를 그려 장수를 축원한 그림일 것이다. 수성노인도는 남방의 별자리인 노인성을 의인화하여 그린 그림으로 수노인도(壽老人圖)·노인성도(老人星圖)·남극성도(南極星圖)라고도 불린다(도2). 수성노인은 보통 작은 키에 흰 수염, 위로 불룩 튀어나온 정수리, 발목까지 내려오는 도포차림의 노인으로 그려진다. 손에 두루마리 책이나 불로초, 복숭아, 지팡이 등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고 나무를 배경으로 사슴이나 학, 선동자와 함께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수성노인이 하는 일은 세상 사람의 수명과 부귀빈천을 다스린다.¹⁸⁾
직일신장도(直日神將圖)(도3)는 그 날을 담당하는 도교의 수호신인 십이지신장을 그린 그림이다. 현존하는 민화 가운데 쥐·소·호랑이 등 십이지 동물을 의인화하여 그린 그림들이 있는데, 세화 직일신장도도 이와 같은 형식의 그림이라 생각된다. 옛날에는 정초에 닭날, 돼지날, 소날 등 해당되는 날마다 지켜야 하는 특별한 풍습과 금기가 있었다. 직일신장은 이와 관련해 그날의 안녕을 위해 그려 주거 공간에 장식했던 것으로 믿어진다.¹⁹⁾
옛날에 정초가 되면 갑옷을 입고 손에 도끼를 든 문신(門神)을 그려 궁궐 대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다. 문에 붙이는 그림이라고 해서 문배(門排)라고 불렀는데, 그림 크기가 말 그대로 대문짝만 했다. 일제강점기 전까지만 해도 경복궁 광화문에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대문에 문신 그림을 그리거나 붙이는 것은 대문을 통해 들어올지도 모를 역신(疫神)·사신(邪神)·화난(火難)·재앙(災殃) 등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입구에서부터 막아 궁궐의 경사스러운 일과 평안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²⁰⁾ 근대기에 문신 풍속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한 점 있다. <기독교 선교사가 제작한 1931년 달력>(도4)은 문신(門神)이 그려진 표지 외에 12달이 한 장씩 넘기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각 장마다 윗면에 한국인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 아랫면에는 월별 달력과 그림의 설명이 영문으로 인쇄되어 있다.²¹⁾
문신은 보통 진숙보[秦瓊], 울지공[蔚遲敬德], 신다[神茶], 울루[鬱壘], 그리고 종규[鍾馗] 등을 말한다(도5, 6, 7). 이들은 위엄 있고 용맹스러우며 눈빛이 날카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벽사의 효험과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고대인들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중국이나 대만의 민가에서는 아직도 정초에 문신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이는 습속이 남아 있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대문에 입춘방을 붙이는 풍속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문신의 대표격인 진숙보와 울지공은 원래 당나라 무장(武將)인데, 당 태종의 안위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태종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밤이 되면 침실 문밖에서 벽돌과 기왓장을 던지는 소리가 나고, 귀신이 우는 소리도 나니, 대낮부터 밤이 오는 게 두렵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진숙보는 울지공과 함께 그날 저녁 금과(金瓜)와 월부(鉞斧)를 들고 갑옷투구를 갖추고 궁궐 문밖에서 보초를 섰다. 그날 밤 다시는 악귀의 침입이 없었고, 태종은 모처럼 평안하게 잠을 잤다. 다음 날 왕은 화공에 명하여 보석이 장식된 전투용 도끼를 들고 채찍과 사슬, 활과 화살을 허리에 둘러 완전무장한 그들 모습을 두 장 그리도록 했다. 이 그림을 궁성의 오른쪽 문과 왼쪽 문에 걸어 놓았더니 더 이상 악귀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후대에 사람들은 이 두 장군을 문신으로 삼았는데, 진숙보는 얼굴을 하얗게, 울지공은 얼굴을 검게 표현했다.²²⁾
그런데 문신인 두 장군에 대해서 『동국세시기』의 저자 홍석모는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두 장군이 촉한의 모사(謀士) 제갈량과 오(吳)의 지략가 주유(周瑜)일 것이라고 했다.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송나라 학자 송민구(宋敏求)가 쓴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의 기사 내용이다. 즉 “도가에 상소하여 황금빛 갑옷을 입은 두 사람의 천문(天門) 수위(守衛)를 그렸는데, 갈(葛) 장군은 깃발을 들고, 주(周) 장군은 절월(節鉞)을 들었다”는 기사에서 갈 장군, 주 장군이 『삼국지』의 주인공인 제갈량과 주유를 가리킨다는 것이다.²³⁾
한편 문배 그림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신다·울루라는 문신이 있다(도6). 신다·울루에 얽힌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아주 먼 옛날인 상고시대에 신다와 울루라는 형제가 있었다. 푸른 바다 가운데 도삭(度朔)이란 산이 있었는데, 이 산 위에는 큰 복숭아나무가 있었고, 그 가지 사이에는 삼천 리나 되는 긴 굴이 있었다. 이 굴의 동쪽에 있는 귀문(鬼門)으로 수많은 귀신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그 동쪽 문 입구를 지키는 문신이 신다와 울루 형제였다. 형제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귀를 잘 잡았는데, 악귀들은 두 형제 앞에서는 꼼짝 못했다고 한다. 두 형제는 문을 지키며 사악한 귀신이 그 굴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갈대 끈으로 묶어 늙은 호랑이에게 먹였다고 한다. 그래서 황제는 의식을 집행할 때 큰 복숭아 인형을 세우고, 문에는 신다와 울루 그리고 호랑이를 그려 놓고 갈대 끈을 달아둠으로써 악귀를 막았다.²⁴⁾
정초에는 종규(도7)라고 하는 문신을 그려 대문이나 문 위에 붙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진숙보·울지공 두 장군 그림을 대문에 붙이는 것과 같이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사물기원(事物起原)』에 의하면 당나라 현종이 병석에 누워 있을 때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속에 허모(虛耗)라고 하는 작은 귀신이 나타나 평소 현종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향주머니를 훔치기도 하고 옥피리를 불기도 하며 법석을 떨었다. 이에 현종이 큰 소리로 신하를 부르자 한 큰 귀신이 나타나서 그 작은 귀신을 붙잡아 손가락으로 눈알을 파 먹고 죽여버렸다. 현종이 놀라서 누구냐고 물으니 답하기를 종남산(終南山) 진사(進士) 종규라고 하는데, 관리 채용시험에서 낙제하여 자살한 자로서 만일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준다면 천하의 해악(害惡)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현종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 병은 깨끗이 나아 있었다. 현종은 꿈에서 본 대로 검은 의관을 걸치고 눈이 크고 수염이 많은 무서운 얼굴에 칼을 차고 있는 종규의 모습을 화공 오도자(吳道子)에게 명하여 그리게 했고, 이때부터 종규의 그림을 대문에 붙여 사악한 귀신과 고치기 힘든 병을 쫓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처음에는 세시의 풍습이었으나 후에 5월 5일로 옮겨졌고, 종규가 칼을 들어 박쥐를 쳐서 떨어뜨리는 그림을 선호했다. 이것은 박쥐의 한자말 편복(蝙蝠)의 복(蝠)자가 복복(福)자와 비슷해 이것을 통해서 복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와 같은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종규가 악귀를 잡는 그림을 그려 벽이나 문에 붙이고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했다.²⁵⁾
한편 지금의 서울 광교(廣橋)에 해당하는 청계천(淸溪川) 입구의 광통교에서 그림을 팔던 그림 시장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1844년경의 저작으로 추정되는 『한양가(漢陽歌)』에는 광통교에서 팔던 그림들이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광통교의 그림 시장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광통교(廣通橋) 아래 가게 각색(各色) 그림 걸렸구나.
보기 좋은 병풍차(屛風次)의 백자도(百子圖) 요지연(瑤池宴)과
곽분양(郭汾陽) 행락도(行樂圖)며, 강남(江南) 금릉(金陵) 경직도(耕織圖)며
한가(閑暇)한 소상팔경(瀟湘八景) 산수(山水)도 기이(奇異)하다
다락벽 계견사호(鷄犬獅虎), 장지문 어약용문(魚躍龍門)
해학(海鶴) 반도(蟠桃) 십장생(十長生)과 벽장문차 매죽난국(梅竹蘭菊).
… 중략(中略) …
문에 부칠 신장(神將)들과 모대(帽帶)한 문비(門裨)들을
진채(眞彩) 매워 그렸으니 화려하기 측량 없다²⁶⁾

이 노래에서 ‘병풍차(屛風次)’란 병풍을 꾸밀 그림이나 글씨를 말하므로 여기서는 곧 병풍용 그림이다. 세화는 처음에 주로 궁궐을 중심으로 왕공 대부들에 의해 향유되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 서민층에까지 그 풍속이 확산되었다. 서민들도 궁중 풍속을 흉내 내어 정초가 되면 세화로 그들이 사는 곳을 장식했다. 특히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이런 그림이 대량으로 제작되어 시장거리의 가게에까지 나올 정도로 보편화되었다.²⁷⁾
이 노래에 언급된 그림들 중에서 ‘다락 벽 계견사호’와 관련된 사진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10여년 전인 1902년부터 1903년까지 7개월간 주한 이탈리아 영사를 지냈던 카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 1876-1948)가 한국에 머물면서 수집한 그림들 중에는 바로 이 계견사호(鷄犬獅虎) 그림이 들어 있다(도8).²⁸⁾ 또 1919년에 처음으로 한국을 여행 온 스코틀랜드 태생의 화가인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가 한옥 내부를 그린 그림과 설명은 민화류의 치장과 관련되어 있다(도9).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한국에서는 방 출입문 흰 벽(앉아 있는 여자의 양쪽 벽)에 값싼 종이에 그린 전통적인 문양을 붙이는데, 처음 붙였을 때는 색깔이 유치하지만, 시간이 지나 퇴색하면 아름답고 부드러운 색으로 변한다. 이는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개는 도둑을 방지해 주고, 사납게 생긴 사자나 호랑이의 그림은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진다.²⁹⁾

일제 강점기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치레를 꼼꼼하게 그림과 글로 묘사하였다. 대청마루 기둥 마다 주련(柱聯)이 붙어 있고, 열린 방문의 양편에는 선면화(扇面畵)나 백납병(百納屛) 같은 작은 그림들이, 상인방(上引枋) 위에는 가로 방향으로 화려한 채색의 십장생(十長生) 풍의 그림이 걸려 있다. ‘값싼 종이에 그린 전통문양’을 ‘처음 붙였을 때는 색깔이 유치하지만, 시간이 지나 퇴색하면 아름답고 부드러운 색으로 변한다’고 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또 그림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집안 어딘가에 엘리자베스 키스가 언급한 ‘도둑을 방지해’주는 개나 ‘악귀를 쫓는, 사납게 생긴 사자나 호랑이’그림이 걸려 있을 것만 같다.

2. 벽사용 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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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을 중심으로 행해지던 문배 관련 세시풍속은 민간에 퍼져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민간에서는 집 벽이나 대문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였다(도10, 11). 정초에 벽사의 목적으로 양(陽)의 성질을 가진 닭의 피를 문에 바르거나 닭 머리를 문에 걸어 두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닭 그림으로 대체되었다. 호랑이 그림은 정월이 인월(寅月)이므로 백수의 왕인 호랑이를 길상의 동물로 삼고 호랑이의 용맹성을 빌어 재액을 물리치려는 마음에서 그려졌다.³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원일’조에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³¹⁾

일반 백성들은 바람벽에 닭그림과 호랑이그림을 붙여 액을 물리친다. 내 생각에는 후한시대 학자인 동훈(董勛)의 『문례(問禮)』에 “세속에 초하룻날 닭을 그린다.”고 했다.³²⁾ 또 생각건대 『형초세시기』에 “정월 초하룻날 닭을 그려 창호 위에 붙인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호랑이를 그리는 것은 인월(寅月), 즉 호랑이달이란 뜻을 취한 듯하다.³³⁾

이어서 삼재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³⁴⁾

남녀 모두 나이가 삼재(三災)³⁵⁾에 든 자는 매 세 마리를 그려 문 상방에 붙인다. 삼재법(三災法)이란 사(巳)·유(酉)·축(丑)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해(亥)·자(子)·축(丑)이 되는 해에, 신(申)·자(子)·진(辰)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인(寅)·묘(卯)·진(辰)이 되는 해에, 해(亥)·묘(卯)·미(未)가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사(巳)·오(午)·미(未)가 되는 해에, 인(寅)·오(午)·술(戌)이 든 해에 내어난 사람은 신(申)·유(酉)·술(戌)이 되는 해에, 각각 삼재가 든다는 것이다. 세속에서는 이 복설(卜說)³⁶⁾을 믿고 매 그림을 사용하여 액을 예방한다. 태어난 해로부터 9년 만에 삼재가 들기 때문에 이 삼재의 해에 해당하는 3년 안에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삼가고 꺼리는 일도 많다.

사람은 누구나 구 년에 한 번씩 삼재에 들게 된다. 민간에서는 삼재가 들면 정월 초하룻날 삼재부적을 대문에 붙여 그 해의 액을 피하고자 했다. 대개 삼재부는 머리가 셋 달린 매 그림과 호랑이가 그려진 것을 많이 사용했다(도12, 13, 14). 호랑이를 삼재부의 중심동물로 그린 것은 매와 달리 야행성동물이라는 점과 잡귀를 능히 잡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호랑이와 함께 매를 그린 삼재부, 관재부(官災符) 등 여러 가지 부적이 전해진다.³⁷⁾
호랑이 부적은 삼재를 쫓고 자손창성을 도우며 업장을 소멸케 하고 벼슬길을 열어준다고 했다. 주사로 그린 호랑이 부적을 지니면 병귀가 달아나고 출입문 위에 붙여두면 귀신을 쫓는다고 했다. 또한 민화에서 악귀를 퇴치하고, 임신부에게는 태교의 방편으로 쓰였다. 이와는 별개로 무덤 앞의 돌호랑이는 죽은 자를 망량(魍魎, 도깨비) 귀신으로부터 지켜준다고도 했다. 호랑이 부적은 호랑이만 나타나는 부적, 호랑이와 매가 함께 그려진 부적, 그리고 호랑이와 용, 호랑이와 현무 등이 그려진 부적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³⁸⁾

– 안전사귀치소멸(眼前邪鬼齒消滅)
– 축삼재(逐三災)
– 삼재소멸길상 호신진언(三災消滅吉祥 護身眞言)
– 호랑이와 현무
– 독수리
– 금난장(禁亂將)
– 부귀수호 삼재관재소멸부(富貴守護 三災官災消滅符)

위의 부적에는 모두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축삼재에는 호랑이와 매가 그려져 있고, 삼재소멸길상 호신진언에는 호랑이와 삼두매가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호랑이와 현무가 어우러져 있기도 하고, 호랑이만 그려진 금난장(禁亂將)도 있다(도15). 금난장은 어지러운 것을 금지하는 장군이라는 뜻으로 호랑이가 그러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의미한다. 호랑이의 강인한 힘은 주술적으로도 강인함을 나타낸다. 호랑이는 홀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까치나 삼두매, 현무, 독수리 등과 공존하기도 한다. 까치나 삼두매와 공존하는 것은 삼두일족응이 그려진 삼재소멸부와 마찬가지로 삼재를 소멸하는 부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호랑이만을 그린 부적은 눈앞의 사악한 귀신을 소멸시키는 데 이용된다.³⁹⁾

5) 세화는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門排 또는 門畵라고도 하였다. 세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 남방의 농경적 巫문화인 儺禮와 연관된 ‘門神’에서 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즉 除夕에 잡귀를 쫓고 새벽이 되면 대문에 門神像을 붙이는 중국 궁중의 나례가 우리나라에 전해져 세화풍습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神像 대신 신라의 疫神放枚鬼였던 處容의 형상이 문에 그려지면서 점차 우리 식의 門神 풍습이 자리 잡고 점차 길상적 성격이 첨가, 강화되면서 세화 풍습이 형성된 것이다. 전경욱, 「탈놀이의 형성에 끼친 나례의 영향」, 『民族文化硏究』 28 (1995), 199-223 ; 홍선표, 앞의 책, 317-318쪽 ; 정병모 교수는 門排에서 길상, 감계 등의 기능이 확대되면서 세화로 발전하였고, 세화가 민간에 확산된 것이 民畵로 전개되었다는 견해,즉 門排→歲畵→民畵로 연결되는 순차적인 전후관계를 설정하였다.(정병모, 「민화와 민간년화」, 『강좌미술사』7(한국미술사연구소, 1995), 그러나 문배와 세화는 순차적인 관계에 있기보다는 병렬적인 관계로 공존한 그림이라고 본다. 김윤정, 「朝鮮後期 歲畵 硏究」(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2), 13쪽 참조.
6) 김윤정, 위 논문, 67쪽.
7) 이 책은 매 달의 풍속을 왕실, 양반, 서민의 순서를 지키며 기술하였고, 각 달의 끝 부분에는 「월내(月內)」라고 하여 그 달의 특정한 날을 지정할 수 없는 세시 내용들을 담았다. 마지막에는 윤달의 풍속을 간략히 정리하여 실었다. 그리고 각 세시 내용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등 중국의 예를 들어 그 근원을 밝히려 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편, 『조선대세시기-경도잡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국립민속박물관, 2007), 160쪽 해제 및 179-180쪽 본문 인용. 이하 본문의 구절에 대한 세세한 각주는 위의 책에서 인용.
8) 절월(節鉞)은 부절(符節)과 부월(斧鉞)로 이것을 장수에게 내려 권력을 더하는 뜻을 나타내었다.
9) 종규(鍾馗)는 역귀(疫鬼)나 마귀를 쫓는다는 중국의 신으로, 이것의 형상을 문에 붙여 악귀를 막는 풍속이 당송(唐宋) 때 성행했다고 한다.
10) 사천왕은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 있는 네 신(神)으로 사방을 진호(鎭護)하는 주신(主神)이다.
11) 울지공은 중국 당나라 선양(善陽) 사람으로 울지는 성이고 공은 이름이며 자는 경덕(敬德)이다. 태종을 도와 전공을 올린 공로로 악국공(鄂國公)에 봉해졌다.
12) 진숙보는 중국 당나라 역성(歷城) 사람으로 울지공과 동시대인이며 태종을 도와 전공을 올린 공로로 익국공(益國公)에 봉해졌다.
13) 위정공은 중국 당나라 태종 때의 학자이자 재상인 위징(魏徵)을 말한다. 자는 현성(玄成)이다.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14) 송민구는 중국 송나라 때 학자로 자는 차도(次道)이다. 당의 무종(武宗) 이후의 실록을 사찬(私撰)하였고 용도각(龍圖閣) 직학사(直學士)를 지냈다. 유명한 장서가다.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 『당대조령집(唐大詔令集)』, 『장안지(長安志)』 등이 있다. 『춘명퇴조록』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5) 갈장군(葛將軍)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모사(謀士)인 제갈량(諸葛亮)을 말한다. 제갈량이 장(杖)과 절(節)을 군문(軍門)에 세워 상대방을 이긴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16) 주장군(周將軍)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서(舒) 지방 사람인 주유(周瑜)를 말한다. 자는 공근(公瑾)이다.
17) 문황(文皇) 때의 괴담이란 당시의 재상 위징(魏徵)이 남해의 용왕에게 해를 가한 이후 용왕이 문황을 자주 괴롭히자 이를 울지공과 진숙보가 막아주었다는 내용이다.
18) 허균,『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북폴리오, 2006), 188-191쪽 본문 및 도판 인용.
19) 허균, 위의 책, 207-209쪽 본문 및 도판 인용.
20) 허균, 위의 책, 192-198쪽 인용.
21) 『달력, 시간의 자취』(실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2014), 93쪽 도판 50.
22) 허균, 위와 같음.
23) “용맹스럽고 지략이 뛰어난 고소설의 주인공이나 실제 인물이 벽사진경에 관여하는 수호신으로 숭배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관왕묘(關王廟)기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關羽)를 모시는 사당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인 당삼장(唐三藏)을 비롯하여 저팔계, 손행자, 사화상 등의 등장인물이 궁궐 지붕 위에 잡상으로 올려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들에게 신격을 부여한 것은 실제나 소설 속에서 보여준 지략과 용맹성을 악귀를 물리치는 데 발휘케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서 생각해볼 때 문배 그림의 주인공이 제갈량과 주유일 것이라는 홍석모의 말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허균, 위와 같음.
24) 허균, 위의 책, 196-197쪽 본문 인용 및 도판.
25) 허균, 위의 책, 196-197쪽 본문 인용.
26) 강명관, 『한양가』(신구문화사, 2008), 81-85쪽
27) 허균, 위의 책, 186-188쪽.
28) 이돈수·이순우, 『꼬레아 에 꼬레아니』(사진해설판)(하늘재, 2009), 314쪽 도판.
29) 엘리자베스 키스. 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책과 함께, 2006), 62-63쪽. 밑줄은 필자.
30) 허균, 위의 책, 192-198쪽.
31) 국립민속박물관 편,『조선대세시기-경도잡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국립민속박물관, 2007), 182-183쪽.
32) 동훈(董勛)은 중국 후한시대 사람이다. 『문례(問禮)』란 『한위유서초소록문예속(漢魏遺書鈔所錄問禮俗)』이란 책의 약칭이다. 이 책에 나오는 그가 한 말 중에 설날 도소주(屠蘇酒)를 나이 어린 사람부터 마시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린 자는 나이 먹는 일이 축하할 일이지만 늙은 자는 세월을 잃었으므로 벌을 주는 의미라고 하였고, 설 다음날부터 서로 불러 음식을 나누어 먹었는데 이것을 전좌(傳座)라고 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편, 위와 같음.
33) 각 달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계절에 따라 구분한 것으로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 맹춘(孟春), 중춘(仲春), 계춘(季春), 맹하(孟夏), 중하(仲夏), 계하(季夏), 맹추(孟秋), 중추(仲秋), 계추(季秋), 맹동(孟冬), 중동(仲東), 계동(季冬) 등으로 부른다. 12간지의 동물을 붙인 이칭(異稱)도 있는데, 동지가 들어있는 11월부터 다음해 10월까지 각각 쥐달[子月], 소달[丑月], 호랑이달[寅月], 토끼달[卯月], 용달[辰月], 뱀달[巳月], 말달[午月], 양달[未月], 잔나비달[申月], 닭달[酉月], 개달[戌月], 돼지달[亥月]로 부른다. 그 밖에도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는 달의 별칭이 있는데, 1월은 원월(元月), 동지가 들어있는 11월은 지월(至月), 12월은 납월(臘月) 등이 그 예다. 국립민속박물관 편, 위와 같음.
34) 국립민속박물관 편, 위와 같음.
35) 삼재(三災)는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를 말한다.
36) 복설(卜說)은 미래의 운세나 길흉을 알기 위해 치는 점에 관한 설명체계를 말한다.
37) 김종대,『33가지 동물로 본 우리문화의 상징세계』(다른세상, 2001), 422~439쪽.
38) 김영자,『한국의 벽사부적』(대원사, 2008), 149-150쪽.
39) 김영자, 위와 같음.

Ⅲ. 민화 호랑이 그림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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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호랑이를 소재로 한 역사적 조형물로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하여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상, 고려시대 석관과 석호 등을 들 수 있다.⁴⁰⁾ 조선시대에도 왕릉의 석호 조성은 계속 이어지고 특히 호랑이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호랑이를 포함하여 동물과 새를 그린 영모화(翎毛畵)가 감상용 회화로서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고, 중국 영모화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토대로 내재적인 발전을 모색했을 것으로 여겨진다.⁴¹⁾ 조선전기의 기록인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당시에도 호랑이 그림이 벽사적인 의미의 문배로서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⁴²⁾ 이러한 류의 호랑이 그림은 조선말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음을 앞에서 보았던 여러 세시기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호랑이와 표범을 한 종류로 보고 범이라고 통칭했었다. 호랑이라고 하면 줄범[虎] 만을 가리키지만, 범은 줄범과 돈범[豹] 모두를 일컫게 된다. 민화에는 흔히 줄범과 돈범을 함께 그려 어미와 새끼로 보거나 암수 관계로 표현했다(도16, 17).⁴³⁾
민화에 등장하는 한국의 호랑이들은 사납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점잖게 입을 다물고 있거나 혹은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거나 때로는 바보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어 마치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를 대하는 듯 다정스럽고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도18). 호랑이를 소재로 한 그림은 수호신적인 역할을 했던 사신도(四神圖)의 한 변형으로 보이며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로 왼편은 용이 막아주고 바른편은 호랑이가 막아준다는 벽사용으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결혼식에 온 손님>(도19)이란 그림을 보면 조바위를 쓰고 앉아 있는 여인의 뒤편 벽에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⁴⁵⁾
호랑이의 모습은 단독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여러 마리가 그려지기도 한다(도20). 소나무에 앉은 까치와 함께 그려지는 호랑이 그림(호작도 또는 작호도)이 단연 민화 호랑이 그림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하겠다. 또 용과 함께 그려지는 용호도, 산신령과 함께 그려진 산신도, 유목민족의 사냥 장면 속에 호랑이가 등장하는 호렵도, 그리고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그린 호피도 등이 민화 호랑이 그림의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1. 까치호랑이 그림

호랑이 그림은 조선후기의 영모화(翎毛畵)와 민화의 주제로 널리 그려진 그림이다. 여러 상징과 은유가 담긴 조선시대의 호랑이 그림은 화원화가 양식과 민화로 나뉘어져 다양한 층위를 이루며 그려졌다. 시기적으로는 화원화가들의 호도가 18세기에 주로 그려졌고, 민화 호도는 19세기에 제작된 사례가 많았다. 지금까지 화원양식의 호랑이에 대해서는 김홍도와 몇몇 화원 화가들의 그림을 중심으로 정형을 제시한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명대 ‘출산호도(出山虎圖)’양식의 전래가 확인되고, 관련 도상이 소개됨으로써 화원들이 남긴 호도의 계통을 좀더 자세히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까치호랑이 그림의 도상은 원대(元代)에 정립되어 범동아시아적 제재로 널리 유통되던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표현방법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조선후·말기의 민화화된 까치호랑이 그림이다. 만력(萬曆) 임진년(1592년)에 제작된 개인 소장의 <호작도>(도21)는 두 마리의 까치가 가지 위에 앉아 지저귀고 있는 늙은 소나무 밑에서, 세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다룬 것이다. 새끼와 함께 그려지는 유호상(乳虎像)의 경우, 어미 호랑이가 앉아 있거나 엎드린 ‘좌호(坐虎)’와 ‘복호(伏虎)’ 상태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에는 산이나 수풀에서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려 방향을 틀며 걸어 나오는 ‘출산호(出山虎)’ 또는 ‘출림호(出林虎)’의 도상을 토대로 묘사된 것이 다르다. 출산호는 북송대에 최고의 호랑이 화가로 손꼽힌 조막착(趙邈齪)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앞 다리와 뒷다리를 모두 서로 교차시키며 걸어나오는 동작을 나타낸 것과, 두 발을 좌우로 벌려 잠시 멈춘 상태로 공경 자세를 취하는 듯한 모습의 두 유형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이들 유형에 비해 임진년 <호작도>는 좌호상에서처럼 앞발을 나란히 모으고, 뒷발도 약간 벌린 채 동일 선상에서 지면을 디디고 선 정지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임진년 호작도의 전반적인 구도와 도상은 명대의 작품으로 판단되는 개인소장의 <출산호작도(出山虎鵲圖)>(도22)와 대체로 유사하다. 두 그림 모두 화면 왼쪽 하단의 규각이 심하고 흑백대비가 강한 석두의 묘사법과 배치에서 절파화풍을 완연하게 보여준다. 간략하게 살펴보았듯이, 1592년 임진년의 <호작도>는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까치호랑이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그 시원적 주제의식과 화풍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흔히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까치호랑이 그림은 원체풍의 송호도에 까치가 첨가되어 민화화된 것이 아니라, 호랑이 그림의 한 화제로서 원대부터 유형화되어 동아시아로 확산된 것이다.⁴⁶⁾
까치호랑이 그림은 민간에서 주로 제작했던 세화 중 하나로 까치와 호랑이, 그리고 소나무를 기본 구성 요소로 하고 있다. 때로 바위나 불로초, 난초 또는 해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한 까치호랑이 그림(도23)에는 ‘갑술년 설날 아침에 신재현이 그렸다(甲戌元旦 申在鉉寫)’는 관지(款識)와 함께 ‘호랑이가 남산에서 부르짖으니 까치들이 모두 모여들었다(虎嘯南山 群鵲都會)’는 화제가 적혀 있는 것을 보면 까치호랑이 그림류가 세화의 하나로 그려지던 그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⁴⁷⁾
중국에서는 까치와 표범을 함께 그리는데, 이 그림은 ‘기쁨을 전한다’는 길상화가 된다. 중국어로 표범을 뜻하는 ‘표(豹, bào)’의 독음과 알린다는 뜻의 ‘보(報, bào)’의 독음이 같고, 까치는 ‘희작(喜鵲)’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표범과 까치가 함께 있는 그림은 ‘보희(報喜)’가 되며 여기에 정월을 뜻하는 소나무가 함께 있으면 ‘신년보희(新年報喜)’, 즉 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이 들어온다는 뜻이 된다. 중국의 까치와 표범 그림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표범 대신 호랑이를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표범이 호랑이로 바뀐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신년보희라는 화의로부터 역추론하여 신년의 정월을 뜻하는 호랑이로 대체되었을 가능성과, ‘신년보희’의 ‘보’가 표범을 뜻하는 ‘표’에서 온 것임을 몰랐던 화공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호랑이로 대체했을 가능성이 다른 하나다. 어쨌든 옛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소재가 호랑이거나 표범이거나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⁴⁸⁾

2. 용호도

용과 호랑이가 함께 나타나는 용호도(龍虎圖)는 영웅이나 왕과 같은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아울러 한대(漢代)부터 호랑이를 벽사의 상징으로 인식하면서, 용과 호랑이를 정초에 대문 앞에 붙이는 문신 혹은 문배의 풍속으로 전개되었다. 조선의 용호도는 기본적으로 남송의 화승 목계(牧谿, 1225-1265)의 용호도가 전형이 되었다(도24). 명나라 용호도의 영향도 감지되지만, 이들 그림 역시 그 기본은 목계의 그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계의 용호도는 제문에 쓰여 있듯이 영웅의 출현을 상징한다. 이러한 용호도는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용호도가 조선에 전래되면서 16세기 용호도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 당시 제작된 용호도를 보면 기본적으로 목계와 같은 송나라 때의 도상이지만 화풍은 명나라 절파화풍을 보여 송대 용호도의 명대 버전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목계풍의 용호도 도상은 19세기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 용도는 목계의 용호도처럼 권력을 상징하는 장식용과 더불어 세시풍속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세시풍속용의 용호도란 바로 용수오복(龍輸五福, 용은 오복을 가져온다), 호축삼재(虎逐三災)의 길상과 벽사를 상징하는 문배도이다. 민화 용호도는 용호문배도가 주류를 이루면서 용호도의 원 의미인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화도 포함되어 있는데 해학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였다(도25, 26).⁴⁹⁾ 한편 용호도 대신 글자를 써서 그 벽사적 기능을 대신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도27).

3. 산신도

산신도(山神圖)에 그려지는 호랑이는 산신을 등에 태우고 가는 모습이나 산신 옆에 엄숙한 표정으로 얌전하게 엎드려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호랑이는 영물로 모셔지면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무속사상과 연결되어 민간 신앙으로 뿌리를 내렸다. 산신이 타고 다니는 것으로, 혹은 산신의 심부름꾼으로서 으레 산신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때로는 호랑이 자체를 산신령으로 모시는 경우도 있다(도28, 29).⁵⁰⁾
산신도는 산신을 중심으로 호랑이, 동자, 천녀, 그 밖의 자연 경물과 함께 그려져 있으며 불화 중에서도 회화적인 표현이 많다. 그 중 호랑이는 산신이 거느리고 있는 대상 가운데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며 다양하다. 산신도에 나타나는 호랑이의 특징은 유형별로 자세에 따라 서 있는 호랑이인 입호(立虎), 앉아 있는 호랑이인 좌호(坐虎), 엎드려 있는 호랑이 복호(伏虎) 등으로 나눌 수 있다.⁵¹⁾ 형태별로는 무늬에 따라 호랑이 무늬 호(虎)와 표범무늬 표(豹), 호랑이와 표범 무늬가 섞여 있는 호표(虎豹)로 구별할 수 있다. 또한 호랑이의 눈과 발톱, 꼬리의 표현 등을 통해서 형식을 분류할 수 있다. 호표는 호랑이 무늬와 표범 무늬가 섞여 있는 형태로 실제로는 볼 수 없지만, 산신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형태이다. 호랑이와 표범의 특징을 한 마리의 단일 동물로 이미지화 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호랑이에서 볼 수 없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만의 특징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⁵²⁾ 호표의 경우 주로 몸은 호랑이 무늬인데 가슴과 얼굴, 등 부분에 표범 무늬를 하고 있다.
산신도에 나오는 호랑이의 눈과 관련하여 『삼재도회』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안동각용변증설(眼瞳各用辨證設)」을 보면, 범은 밤길을 거닐면서 한 눈으로는 빛을 발사하고 한 눈으로는 사물을 본다고 했다.⁵³⁾ 즉 호랑이와 같은 종류의 맹수는 밤에 주로 활동하므로 눈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말한다. 산신도에 보이는 호랑이 눈의 동공 표현을 3가지로 나누어보았다. 사람의 동공처럼 동그랗게 생겨 공안(孔眼). 고양이의 눈동자와 같은 묘안(猫眼), 묘안을 추상화시킨 금강석안(金剛石眼)으로 나누었다.⁵⁴⁾ 두 개의 마름모꼴이 합쳐져 금강석같이 빛난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고양이의 눈을 추상화시킨 것으로 금박이나 황색을 주로 쓰며 벽사의 상징이 강하다. 묘안은 고양이의 눈처럼 생긴 것으로, <산신도> 호랑이 눈에서 볼 수 있다. 묘안은 완전 마름모꼴은 아니고 가로로 긴 타원형으로 표현되었다. 그 밖의 산신도 호랑이에 보이는 표현은 발톱, 이빨, 꼬리부분이다. 산신도에 보이는 호랑이는 대부분 발톱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간혹 발톱을 보이고 있는 호랑이는 용맹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는 위험한 적을 만나면 방어책으로 발톱을 드러내고 귀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고 한다. 조선 호랑이의 멋은 다름아닌 바로 천하를 휘두를 듯 기개 넘치는 멋들어진 꼬리에 있다고 말한다. 꼬리의 끝이 살짝 꼬부라져 있어 평소 호랑이가 활동할 때의 생태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라 한다.⁵⁵⁾ 산신도에 표현된 호랑이도 활기찬 꼬리를 하고 있다. 입호의 경우 반드시 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고 좌호는 앉아 있기 때문에 꼬리가 내려져 있다. 또한 복호의 경우 산신보위형과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복호를 제외하고 움직임이 강하다.

4. 호렵도

호렵도(胡獵圖)는 조선에서 18세기 이후에 유행하였는데 그 연원을 살펴본 결과 청나라의 황실기록화에서 유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로서 만주족은 기사수렵(騎射狩獵) 전통을 가진 유목민족이었고 만주족은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통일하였던 것이다. 청나라에서는 수렵도를 황실기록화로 제작하여 보관하며 이를 통치에 활용하였다. 청 황실의 기록화로 그려진 수렵도가 조선에 전래된 것은 부연사행(赴燕使行)을 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17세기 이후 청나라로부터 병자호란을 당한 이후 배청의식(排淸意識)이 한층 고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이후에 청나라 황실의 중요한 기록화인 수렵도가 조선에 전래되어 자비대령화원의 녹취재에도 출제될 만큼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이해할 수 있다. 청나라의 기마전술(騎馬戰術)에 의해 두 차례의 호란을 겪은 후 기마전술을 기본으로 하는 융정(戎政)을 시행하였던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조선의 왕실에서는 청나라를 극복하는 길은 청나라를 유지하는 정체성과 같은 기사수렵을 통한 팔기제를 모방하고자 기마전술을 채용하였고, 이러한 기마전술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청대 수렵도를 수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청대수렵도를 조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그린 그림이 호렵도인데 그 용도가 감계용(鑑戒用)이었던 것이다. 청대 수렵도를 수용하여 호렵도(胡獵圖)란 명칭으로 궁중의 감계화(鑑戒畵)로 사용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변화되고 토착화되면서 사대부의 감상용(鑑賞用), 민간장식용으로 용도가 분화되었다. 사대부가 그린 호렵도는 대개 여기용으로 그린 것으로 보이고 민간에서는 장식용으로 사용하면서 벽사·길상의 의미를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도30).⁵⁶⁾
호렵도는 대체로 벽사와 길상의 긍정적 의미를 상징하던 호랑이가, 오랑캐들에게 잡히는 사냥감으로 전락되고 있다. 이러한 호격(虎格) 하락에는 동종주술(同種呪術,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낳는다) 관념이 작용하고 있는데, 벽사력이 왕성한 양물(陽物)인 호랑이를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용맹활달한 호인(胡人)이 수렵의 주체로 묘사된다. 즉 호랑이의 사나움과 용맹성에 대적 가능한 호인의 활달한 기상에 초점을 둔 것이 호렵도이다. 이러한 용맹, 기상, 힘의 이미지는 무인들의 덕목에 부합하였고, 이에 호렵도는 무인들의 모임이나 그들의 집안 장식용 병풍으로 애호되었다. 아울러 민간에서는 호인들의 포악함을 강조하여 액막이용 그림으로 사용하였다.⁵⁷⁾

5. 호피도

호피도(虎皮圖)는 화면 가득히 호랑이나 표범의 털이 그대로 있는 가죽을 장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진짜 호랑이 가죽을 펼쳐놓은 듯한 형태로 그린 민화를 호피도(虎皮圖)라고 하며, 호피장막도(虎皮帳幕圖)라고도 한다(도31). 주로 낱장의 그림들을 병풍으로 꾸민 것이 많다. 호랑이 털무늬를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주로 황색으로 처리하고 있으나, 묵화로 된 자료도 발견되었다. 똑 같은 구도가 여덟 번 반복되는 호피도의 단조로우면서도 박력있는 화풍은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고, 특히 표범의 가죽을 묘사한 바둑무늬가 별다른 의미없이 마음대로 널려진 호피도는 현대적 감각에 직결되는 까닭에 경악을 느끼게 한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호랑이 가죽 외에 표범 가죽을 그린 것도 많은데, 무늬를 매우 세밀하게 그려 미학적인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줄범이나 표범을 차별 없이 호랑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표범의 가죽그림도 표피도(豹皮圖)라고 하지 않고 호피도로서 통용되고 있다. 호피도는 책거리 그림과 마찬가지로 장식성에 역점을 두고 있으나, 장식적인 용도만 있는 것은 아니고 잡귀를 쫓는 액막이로서의 벽사용 역할을 하였다.⁵⁸⁾ 혼례 때 신부가 타는 가마의 덮개로 호피 그림을 사용했는데(도32), 처음에는 진짜 호피를 사용하다가 호피가 귀해진 후부터는 호피무늬 담요를 대신 썼다.
모피는 그 자체가 희소할뿐더러 복잡한 제작 공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대단히 고가에 거래되었다. 따라서 모피는 단순한 의복재료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권위와 신분을 과시하는 위신재(威身財), 국가 간의 무역품,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선호되어왔다.⁵⁹⁾ 일제강점기에도 호랑이 가죽은 일본에서 귀히 여겨져, 순사들은 호랑이를 잡아 그 가죽을 벗겨 고국의 고관들에게 선물로 주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⁶⁰⁾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고관들은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자기의 권력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징표로 사용했다. 그런 가죽들을 이처럼 권위주의의 징표로 사용하는 일은 지구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곤 했던 풍습이기도 하다.⁶¹⁾
이 밖에도 민화 중에는 모란 그림이나 십장생도, 어해도 등의 일부에 호랑이를 집어넣어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40) 윤열수, 「한국 전통예술과 호랑이」, 『12지신 호랑이』(생각의 나무, 2009), 188-192쪽.
41) 홍선표, 「한국의 영모화」, 『국보 10호 회화』(웅진출판사, 1992), 242-243쪽.
42) 성현, 『용재총화』, 제2권, “섣달 그믐밤의 전날에는 (中略) 이른 새벽에 그림을 그린 종이를 문, 창, 사립문에 붙인다. 그 그림은 (中略) 또는 닭, 호랑이 등의 그림 따위이다.(除夜前日(中略)淸辰附畵物於門戶窓扉(中略)畵鷄虎之類也)”
43) 이항,「대한민국 국가상징동물로서의 호랑이」, 『경주민화포럼 2014, 꽃 피고 새 울제』(한국민화센터, 2014), 97-100쪽.;“…옛날에는 줄범을 참호랑이라고 불렀고 표범을 개호랑이라고 불렀답니다.…”조자용, 『청소년에게 드리는 한얼의 미술』(에밀레미술관, 1971), 34쪽.
44) 윤열수,『민화이야기』(디자인하우스, 1995), 127-137쪽.
45) 윤진영,「조선중·후기 虎圖의 유형과 도상-기년작을 중심으로」,『장서각』28(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10), 192쪽.
46) 홍선표, 「만력 임진년(1592) 제작의 <호작도>: 한국 까치호랑이 그림의 원류」,『조선회화』(한국미술연구소, 2014), 384-390쪽. ; “대개 측면으로 그려진 몸체에 정면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걸어가고 있는 자세로 그려지는 일련의 호랑이들을 출산호(出山虎)라는 이름으로 묶어볼 수 있다. 出山虎(또는 出林虎)는 글자 그대로 ‘산에서 나온 호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호랑이가 자신의 주거지에서 나와 돌아다니다(橫行, 巡遶)’라고 하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하겠다.…좌호(坐虎)는 간단히 말해 앉아있는 호랑이를 가리키는데, 보통 제화시에서는 蹲(웅크릴 준)과 踞(웅크릴 거)라는 字로써 표현된다. ‘蹲踞(혹은 踞蹲)’는 무릎을 세우고 웅크려 앉아 있는 양태를 나타내는 말로서, ‘虎踞(호랑이처럼 무릎을 세우고 앉음)’와 같이 관용어로 사용될 만큼 호랑이의 특징적인 자세를 일컫는다고 하겠다.”이제원, 「동아시아 호랑이 그림 연구-‘出山虎’와 ‘坐虎’를 중심으로-」(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10-13쪽.
47) 허균,『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북폴리오, 2006), 91-96쪽.
48) 윤열수, 앞의 책, 133-135쪽.
49) 정병모,「민화 용호도의 도상적 연원과 변모양상」,『강좌미술사』37권(한국미술사연구소, 2011), 259-282쪽.
50) 윤열수, 앞의 책, 135쪽.
51) 정효심,「19세기 후반 산신도에 표현된 호랑이 연구」,『미술사와 문화유산』2(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2013), 181-208쪽.
52) 윤진영, 앞의 논문, 197-201쪽. 호랑이와 표범의 도상은 선행연구에 의하면 명나라 법전인 『大明會典』의 도상을 따른 것이라 한다. 명대의 호표흉배는 15세기에 전래된 사례가 많았는데 이때 건너온 명대의 흉배는 조선식 호표흉배의 선행양식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53) 『삼재도회』 鳥獸 권3. … 若鋸夜視市以一目放光一目物…“;『오주연문장전산고』「안동각용변증설(眼瞳各用辨證設)」, ”…虎夜行……目放光一目看物…“, 한국고전종합DB.; 정효심, 앞의 논문, 198쪽. 재인용.
54) 구본호는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동공을 點眼, 孔眼, 金剛石眼, 猫眼, 三角眼, 鬼眼 등으로 나누었다. 호랑이 눈의 형태에 따라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의미를 벽사적, 희보적, 풍자적의미로 분류하였다. 구본호,「민화에 나타난 호랑이의 눈 연구」, 『예술논문집』13(부산대학교 예술대학, 1998), 370쪽; 정효심, 앞의 논문, 재인용
55)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솔, 2006), 40-41쪽. 정효심, 앞의 논문, 199쪽. 재인용
56) 이상국,「조선 후기의 호렵도의 수용과 용도」,『한국민화』3호(한국민화학회, 2012), 56-89쪽.
57) 엄소연,「조선시대 호랑이 민화의 동물 상징 및 그 사회적 맥락」, 『조형예술학연구』6(2004), 53-54쪽.
58) 윤열수,「호피도」,『吉祥, 우리 채색화 걸작전』(가나아트센터, 2013), 256쪽.
59) “중국의 옛 기록을 보면 고조선 시대부터 모피의 수출이 이루어졌으며, 『후한서(後漢書)』의 기록에 따르면 강원도와 함경남도 지역에 위치한 예(濊)에서는 무늬 있는 표범(文豹)이 난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함경도와 평안도, 강원도 일대는 모피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이보다 더 북쪽 지역인 만주는 모피동물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었다. 따라서 부여와 고구려는 모피 생산이 활발할 수 있었다.”김용만, 「모피와 한국사, 방한복을 넘어 신분과 권력을 상징하는 품목」, 네이버캐스트 [한국 생활사] 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41&contents_id=9299
60) 예컨대, 1922년에 주재소에 근무하던 일본인 미야케(三宅) 순사는, 경주의 대덕산에서 김유근 할아버지를 물은 호랑이를 몰이꾼들의 도움으로 사살한 후, 그 가죽을 그 무렵에 경주를 방문한 일본 황족에게 헌상했다. 엔도키미오(遠藤公男) 지음, 이은옥 옮김,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이담, 2009), 342-343쪽.
61) 안건훈, 「희귀성 멸종위기동물 복원의 필요성과 그 대책(Ⅱ)-호랑이를 중심으로-」,『환경철학』9권(한국환경철학회, 2010), 117-144쪽.

Ⅳ. 맺음말

이상에서 세화와 부적에 그려진 호랑이 그림과 까치호랑이 그림을 비롯하여 용호도, 산신도, 호렵도, 호피도 등 여러 유형의 호랑이 관련 그림을 살펴보았다.
세화는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해 동안 행운이 깃들이기를 기원하는 벽사적이고 기복적인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으며, 새해 첫날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이루어졌다. 일반 민간에서는 동물 중에 벽사력을 지닌 것으로 믿어져오던 닭과 호랑이를 비롯하여 해태 모양의 사자와 개를 그려 붙였으며, 삼재(三災)가 든 해에는 특별히 매 그림을 붙였다. 호랑이 부적은 삼재를 쫓고 자손창성을 도우며 업장을 소멸케 하고 벼슬길을 열어준다고 했다. 주사로 그린 호랑이 부적을 지니면 병귀가 달아나고 출입문 위에 붙여두면 귀신을 쫓는다고 했다. 호랑이 부적은 호랑이만 나타나는 부적, 호랑이와 매가 함께 그려진 부적, 그리고 호랑이와 용, 호랑이와 현무 등이 그려진 부적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호랑이와 표범을 한 종류로 보고 범이라고 통칭했었다. 민화에는 흔히 이 둘의 관계를 암수 또는 어미와 새끼로 표현했다. 민화에 등장하는 한국의 호랑이들은 사납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점잖게 입을 다물고 있거나 혹은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거나 때로는 바보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호랑이의 모습은 단독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여러 마리가 그려지기도 한다. 소나무에 앉은 까치와 함께 그려지는 호랑이 그림이 단연 민화 호랑이 그림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하겠다. 또 용과 함께 그려지는 용호도, 산신령과 함께 그려진 산신도, 유목민족의 사냥 장면 속에 호랑이가 등장하는 호렵도, 그리고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그린 호피도 등이 민화 호랑이 그림의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까치호랑이 그림은 그 도상이 원대에 정립되어 범동아시아적 제재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후기 이후의 민화화된 까치호랑이 그림은 다양한 표현방법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이다. 중국에서는 까치와 표범을 함께 그려 ‘기쁨을 전한다(報喜)’는 뜻을 갖게 되며 여기에 정월을 뜻하는 소나무가 함께 있으면 ‘새 해를 맞아 기쁜 소식이 들어온다(新年報喜)’는 뜻으로 통용된다.
용과 호랑이가 함께 나타나는 용호도는 영웅이나 왕과 같은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용과 호랑이를 정초에 대문 앞에 붙이는 문신 혹은 문배의 풍속으로 전개되었다. 세시풍속용의 용호도는 바로 용수오복(龍輸五福)과 호축삼재(虎逐三災)의 길상과 벽사를 상징하는 문배도이다. 민화 용호도는 점차 해학적인 이미지로 변화되기도 하고, 그림 대신 글자를 써서 그 벽사적 기능을 대신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산신도에서 호랑이는 산신이 타고 다니는 것으로, 혹은 산신의 심부름꾼으로 산신과 함께 등장하는데, 서 있는 자세의 입호(立虎), 앉아 있는 자세인 좌호(坐虎), 엎드려 있는 자세인 복호(伏虎)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가죽의 무늬도 각각 호랑이와 표범의 무늬를 하고 있는 것과 호표(虎豹) 무늬가 섞여 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산신도에서는 호표무늬가 섞여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렇게 호랑이와 표범을 단일 동물의 이미지로 만들어낸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호랑이에서 볼 수 없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의 한 특징으로 보인다. 호표의 경우 주로 몸은 호랑이 무늬인데 가슴과 얼굴, 등 부분에 표범 무늬를 하고 있다.
호렵도는 청나라의 황실기록화에서 유래하여 18세기 이후 조선에서 유행한 그림이다. 청나라에서는 수렵도를 황실기록화로 제작하여 보관하며 이를 통치에 활용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에 전래된 것은 중국 사행(使行)을 통해서였다. 병자호란 이후 배청의식(排淸意識)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청나라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청나라의 기사수렵을 통한 팔기제를 모방하고자 기마전술을 채용하였고, 이러한 기마전술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청대 수렵도를 수용하였다. 따라서 청대 수렵도를 조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그린 그림이 호렵도인데, 궁중의 감계용에서 저변화되어 사대부의 감상용과 민간장식용으로까지 용도가 분화되었다. 민간 장식용 호렵도의 경우 벽사·길상의 의미를 띄었다. 호렵도에 그려진 호랑이는 오랑캐들에게 잡히는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반면 수렵의 주체인 호인(胡人)의 용맹활달한 기상과 이미지는 무인들의 모임이나 그들의 집안 장식용 병풍으로 애호되었다.
호피도는 화면 가득히 호랑이나 표범의 털이 그대로 있는 가죽을 장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호피도는 장식적인 용도와 함께 잡귀를 쫓는 액막이로서의 벽사용 역할을 하였다. 한편 고대의 모피는 그 자체가 희소하고 복잡한 제작 공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고가에 거래되었는데, 단순한 의복재료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권위와 신분을 과시하는 위신재(威身財), 국가 간의 무역품,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선호되었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고관들은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자기의 권력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징표로 사용했다.
호랑이는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호랑이 이야기를 많이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오래 전 이 땅에서는 호환이 많았으므로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이 역으로 호랑이에 대한 숭배나 경배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으며, 호랑이의 용맹함을 벽사의 표상으로 삼아 세화와 문배, 부적 등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민화 호랑이는 호랑이와 표범의 구분 없이 혼용되어 표현하고,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많아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근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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