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터미널

시. 박철
그림. 조여영

너를 보내고 온 날은 화정터미널에 나가 앉았다
하나둘 거리의 집이 드나들고 하기 수양회에 뒤처진 아이가
둥근 눈으로 매표소를 오간다
네가 떠난 날은 모두가 떠나고
경비원도 차마 불을 끄지 못해 서성이는 밤
긴 의자만 나란히 성긴 잠을 자겠구나
재건축을 기다리는 건물의 화장실 앞 젖은 물빛도
가을 외투로 성큼 다가오는 밤
이층이나 삼층이 지금은 무슨 사무실일까
야근 중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소녀의 눈가에 걸린 달
발뒤꿈치도 계단에 목이 걸려 이면에 조는데
때 없이 서러워 막차로 떠난 너만 원망한다
텅 빈 터미널의 티브이에선
침몰하는 배의 승객들이 때를 기다리는 동안
선원들은 취해 잠을 잤다 하나
그게 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미 우리 모두 침몰했었고
떠나거나 기다리거나 잠시 자리만 바꿔 앉았을 뿐
염원하던 형광등도 천장을 타고 나와 문밖에 서면
뒤처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면을 알고
나는 산길을 걷듯 화정터미널로 가 잠을 청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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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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