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별 민화 특강 ⑥ 고사인물화, 고전에서 찾은 삶의 지표

고사인물화란 고사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고사란 무엇인가? 역사 속에 있었던 옛 이야기를 말한다. 우리가 기억할 만한 사람들, 우리가 본받고 싶은 사람들의 훌륭한 행적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공감하는 감성을 표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옛날에 있었던 일들이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에도 살아있다. 교훈이 있고 풍류가 있어 오늘에 되살리고자 그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고, 우리의 생활공간에 펼쳐 놓았던 것이다.

글 유미나(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고사인물화를 왜 그렸을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치 않는, 후세에 모범이 되는 것을 ‘고전’이라 한다. 서양에서는 그리스·로마의 저술과 미술을 고전으로 여겼으며 이는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고대 역사와 경전이 ‘고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에게 요구된 덕목은 “한 가지 일이라도 ‘고전古典’에 상고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었다. 이는 군왕뿐 아니라 모든 조선의 군자에게 요구되었던 가치였다.
그렇다. 우리 선조들은 옛 사람들의 본받을만한 행적을 기억하고 본보기로 삼아 그들의 삶이 언제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하였다. 이를 위해서 역사와 유교 경전의 학습이 중요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고사인물화는 그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이었다. 성리학을 신조로 했던 조선시대 문사들에게 그림은 도道를 수양하고 도에 도달하는 매개로서 존재 가치를 지녔다. 고사인물화는 교훈이 되는 역사 속 옛 사람들의 행적을 그렸고, 감상자는 그림을 펼쳐보며 자기 수양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고사인물화는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켜왔다.

고사인물화에 그려진 옛 이야기

고사인물화에 그려진 이야기는 무엇이 있었을까. 가장 인기 있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민간의 그림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고사인물도 병풍 또한 민간에서 상당히 인기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고사인물도> 8폭은 이 시기 전형적인 고사인물화의 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도1). 이 병풍을 중심으로 고사인물화에 그려진 옛 이야기를 살펴보자. 주로 8폭으로 구성된 병풍에 포함되었던 주제는 대략 3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도1 <고사인물도> 8폭, 지본채색, 각 93.8×35.6㎝,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① 개국공신·왕조중흥의 현신賢臣 고사도

첫째, 새로운 왕조를 창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뛰어난 지략가 혹은 나라의 중흥을 이끈 능력 있는 재상의 이야기다. 먼저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인기 있었다. 이윤, 강태공과 같은 신하를 찾아내어 기용했던 고사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고사인물도> 병풍을 예로 들어보자. 제7폭은 <신야삼빙도莘野三聘圖>라는 제목을 지닌다(도1-⑦). 이윤伊尹의 이야기다. 이윤은 유신有莘의 들에서 농사 짓다가 탕왕의 부름을 받았으며,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탕왕이 이윤을 초빙하고자 세 번 청했기에 삼빙三聘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제5폭 <위빈군신도渭濱君臣圖>는 강태공의 고사를 담은 그림이다(도1-⑤). 강태공은 위수 강가에서 낚시질하던 중 주周 문왕文王이 전격 기용한 인물이며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강태공의 원래 이름은 강상姜尙이지만 문왕의 선왕先王인 태공太公이 고대해 마지않던 인재를 찾았다고 했기 때문에 강태공이라 불리었다. 인재 등용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흥망이 걸린 중요한 문제임은 말할 나위 없다. 고사인물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주제였던 이유일 것이다.
이 병풍에서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건국의 공신으로 중요한 또 한 사람이 한 고조가 기용한 장량張良이다. 진시황의 통일 후 사비에 숨어 지내던 장량은 흙다리 위에서 노인을 만나 신을 주워주고 그에게서 병법서를 받아 병법의 대가가 되었다. 한나라를 개창하는 데 큰 공헌을 했던 인물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 또한 빠뜨릴 수 없다. 후한 말 유비劉備가 제갈량을 제사帝師로 모시고자 남양南陽의 초당을 세 번이나 찾아갔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② 은둔하며 청절을 지킨 은자隱者 고사도

공자는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숨어서 살 것”을 권했다. 이에 조선의 선비들은 ‘출出’, 곧 현실 정치에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처處’, 곧 은일하며 도를 연마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역사 속에 은일을 택한 현자들이 다수 있었으니 이들의 삶과 행적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은자로 허유와 소부, 백이숙제, 상산사호, 엄광을 빼놓을 수 없다.
허유許由와 소부巢父는 요임금 때의 은자이다. 그런데 요임금은 허유를 불러 그의 자리를 양위하겠다 제의했다. 허유는 이를 거절하고 소부에게 얘기했는데, 소부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영천穎川 흐르는 물에 그의 귀를 씻었다. 마침 소를 몰고 온 번중부樊仲父가 이를 듣고 더 상류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는 고사다. 이렇게 세 사람이 등장하는 고사 외에 또 하나의 버전이 있는데 허유가 요임금의 양위 제의를 듣고 더러운 얘기를 들었다며 허유가 영천에서 귀를 씻었고 소부가 소를 몰고 왔다가 상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는 내용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고사인물도> 중의 제6폭 <세이견독도洗耳牽犢圖>를 보면 제목에 사람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서 어느 쪽 버전인지 명확하지는 않다(도1-⑥).
사실 요임금과 허유·소부의 고사는 전설에 가까운 것이고 역사 속에서는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절의가 대표적인 청절淸節의 고사로 꼽힌다.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던 백이와 숙제는 주무왕周武王이 군사를 일으키자 비록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왕일지라도 은殷나라와 주왕紂王에 대한 절의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다. 여의치 않자 그들은 수양산에 들어가 나물만 캐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는 고사다.
또 다른 은일자로서 진·한 교체기 상산商山에 들어가 영지를 캐어 먹으며 살았다는 네 명의 현인賢人 상산사호商山四皓가 있다. 동원공·녹리선생·기리계·하황공 네 사람은 모두 수염과 눈썹이 하얀 노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산사호의 고사도는 네 노인이 바둑을 두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두 사람이 대국을 벌이고 한 사람은 지켜보고 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졸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고사인물도> 중의 제4폭의 경우도 동일한 도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가만히 보면 등에 지게를 지고 바둑 구경을 하고 있는 젊은 사람이 하나 더 그려져 있다(도1-④).
이는 왕질王質의 고사가 혼융되었기 때문이다. 즉, 육조시대 진나라 왕질이라는 사람이 나무하러 갔다가 동자들의 바둑 구경을 하고나니 도끼자루가 썩었고 집에 와 보니 세상이 두 번 바뀌었더라는 이야기다. 이처럼 전혀 다른 시대의 다른 이야기가 바둑을 매개로 결합된 경우가 있다.
후한 광무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끝내 은둔한 엄광(嚴光, BC.39~A.D.41)의 고사 또한 유명하다. 엄광은 광무제 유수劉秀와 죽마고우로서 그가 군사를 일으켰을 때 도왔지만 황제로 즉위하자 부춘산에 은거하고 나오지 않았다. 엄광은 칠리탄七里灘에서 낚시를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엄광의 고사인물도 역시 낚시질하는 인물의 도상이기 때문에 강태공의 고사도와 혼돈을 일으키기도 한다.
북송의 역학자이자 도가道家인 진단(陳摶, 871~989)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고사인물도에 종종 등장하는 대표적인 은일자이자 학자이다. 진단은 수공법睡功法이라고 하는 수면명상법을 수련해서 겉으로 보면 잠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코와 입을 통한 호흡이 아닌 태색호흡을 하며 양신출태(陽神出胎: 일종의 유체이탈)를 통하여 신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고사인물도> 8폭 중에 제3폭이 진단을 그린 그림이다(도1-③). 동굴 앞에 앉아있는 모습은 그가 산에서 은둔했고, 신선의 경지에 도달했다던 행적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도가에서는 동천洞天이라 불리는 동굴이 곧 신선 세계로의 통로라고 여겼다. 진단이 고사인물도에 자주 다루어졌던 것은 그의 도가로서의 측면보다는 그의 학문이 성리학에 끼친 영향 때문일 것이다. 진단은 <선천도先天圖>를 그렸다고 하고, 이를 보고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太極圖>를 그리는 등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상수학象數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기에 숭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③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를 지은 시인詩人 고사도

문치文治의 시대였던 조선조의 선비들은 대문호에 대한 숭상 또한 깊었다. 수많은 시인 중에서도 도연명, 맹호연, 이백, 임포 등이 고사인물도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동진東晋의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지방 현령의 직을 과감히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지으며 살았던 시인이다. 어쩌면 조선시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시인이 아니었을까 여겨지는데 고사인물도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기도 했지만 다양한 도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고사인물도> 증 제2폭이 도연명을 그린 그림이다(도1-②). 도연명이 팽택현령직을 벗어던지고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시 중에는 고향에 돌아와 전원생활을 만끽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는데, 이 중 “홀로 선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이네[撫孤松而盤桓]”라 읊은 구절이 유명하다. 이 그림에서는 도연명이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당나라 맹호연은 이른 봄이면 나귀를 타고 장안의 파교를 건너 그 해 가장 먼저 꽃피우는 매화를 찾아나섰던 시인으로 유명하다. 맹호연의 고사를 그린 그림은 나귀를 타고 눈 덮힌 산 속으로 향하는 시인의 모습을 담았다.
<고사인물도> 중 제1폭에 맹호연이 동자와 함께 길을 나선 모습이 보인다(도1-①).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는 항주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며 독신으로 살았다. 매화를 키우고 학을 길렀는데, ‘매처학자梅妻鶴子’, 즉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았던 것으로 잘 알려졌다. <고사인물도> 8폭 중 마지막 화폭이 임포의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도1-⑧). 그는 매화 사랑이 지극했고, 매화를 노래한 주옥같은 시를 다수 남겼는데, 달밤에 감상하는 매화를 으뜸으로 꼽으며 “은은한 향기가 흐릿한 달빛 속에서 떠 움직이네[暗香浮動月黃昏]”라 읊은 구절이 유명하다.


도2 초산草山, <고사인물도> 8폭 병풍, 지본채색, 각 46×27㎝, 동아대박물관 소장


(위 왼쪽부터) 적선농월/ 이교수리/ 위수조어/ 견려완매
(아래 왼쪽부터) 삼고초려/ 개화방학/ 영상세이/ 매자득금



도3 <고사인물도> 8폭 병풍, 지본채색, 각 74.5×34.5㎝,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격식을 벗어난 다채로운 표현의 고사인물도

앞에서 살펴본 국립민속박물관의 <고사인물도> 8폭(도1)은 비록 무명화가의 솜씨이지만 인물과 산수 배경을 꼼꼼하고 상세히 묘사하였으며, 특히 근경과 중경, 원경으로 물러나는 산수의 공간감을 비교적 합리적으로 구성하였다. 전체적으로 담채를 사용하되 화면의 핵심부 인물을 중심으로 진채를 사용하여 강조하였다. 기본에 충실한 작품 유형으로서 당시에 어떤 범본이 있어 이를 성실하게 따라 그리고자 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근현대기에 들어서 고사인물도의 유행은 꾸준히 이어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민간의 많은 수요에 응하기 위해 회화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화사들도 적극 제작에 참여했고, 이들의 그림은 때로는 격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과 혁신적인 파격의 미를 창출하기도 하였다. 서양의 현대미술에서 추구한 원시적 조형에 다가가는가 하면, 형태와 채색의 경계를 허문 새로운 화면도 연출되었다.
동아대박물관의 <고사인물도> 8폭 병풍을 보면 인물을 근접 포착했는데, 몸의 형상이 비정상적으로 늘어지거나 휘어지기도 하여 일견 기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표현이 동작을 오히려 강조해주는 효과가 있고 더욱 활력 있는 느낌을 주게 되었다(도2). 산수의 표현에서는 톱니같이 능각을 살린 선을 중첩시켰고, 홍·청·녹의 색점을 흩뿌리듯 찍어 넣어 전체적으로 비구상非具象에 가까운 조형을 연출하였다. 언덕과 길, 수면과 지면의 경계가 모호하여 비현실적 공간이지만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져 해학과 익살이 뿜어져 나온다.
가회민화박물관의 <고사인물도> 8폭 병풍은 또 다른 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도3). 수묵의 필묘 위주로 처리한 산수 배경에서 모든 나무는 X자로 교차하여 역동적인 움직임을 느끼게 하고, 버드나무 잎은 마치 늘어진 주렴처럼, 소나무 잎은 꽃봉우리를 잇댄 듯 꼼꼼하게 그려 넣어 도안적 효과를 내었다. 수묵의 산수에 홍색과 황색으로 채색한 인물이 돋보인다. 특히 바람에 날리는 붉은 색의 허리띠는 화면에 발랄한 움직임을 부여했다. 이처럼 산수배경을 수묵으로 처리한 것은 비싼 안료 값을 아끼기 위한 경제적 이유였겠지만, 도리어 수묵과 채색이 대조를 이룬 색다른 미감의 표현으로 이어졌다.


도4 <고사도> 8폭 병풍, 지본수묵, 152×380㎝,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인물상을 배제하고 인물을 이야기한 고사인물도

도4-1 도4의 부분, <오류촌>

고사인물화가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고사도> 병풍(도4)과 같은 인물이 빠진 고사인물화라 할 수 있다. 제2폭 <오류촌>을 예로 들어보자(도4-1). 그림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서로 얽혀있고 나무 사이에 새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다. 상단에는 도연명이 사랑했던 국화꽃을 연속된 당초문으로 표현하였다. 그 사이로 엿보이는 작은 집은 도연명의 고향 집이다. 도연명과 관련된 주요 모티프를 문양화하여 색다른 맛을 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도연명이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 집으로 배 저어오는 모습이나, 소나무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나 국화꽃을 감상하며 술 마시는 모습 등 도연명 고사인물도의 전형적인 도상은 표현되지 않았다. 몇 가지 모티프만으로도 감상자는 충분히 도연명의 행적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방증이다.
영남대박물관 소장 <고사도> 8폭은 언뜻 보면 발묵법을 써서 농담의 변화를 주어 다양한 산의 형태와 토파, 강안江岸이 펼쳐진 아름다운 산수를 표현한 산수도 병풍이다(도5). 더구나 각 화폭에는 화제畵題도 적혀 있지 않아 고사도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화면 하단부에 인물이 조그맣게 표현되어 있고 익숙한 도상을 보인 것을 알 수 있다.
제1폭 맹호연의 파교심매, 제2폭의 태공조어, 제3폭의 상산사호, 제8폭의 소부세이 등 잘 알려진 고사인물도이다(도5-1). 이처럼 산수화와 고사도가 결합된 형식은 두 화목의 병풍을 동시에 만족시켜준다는 경제성도 있지만, 한편 근대기 유행했던 시가詩歌의 내용에서 볼 수 있는 중국 명승 유람에 대한 욕구와 선망을 그린 것일 수 있다. 근대기 판소리 사설, 단가, 시조, 가사, 잡가 등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노래에는 중국의 고사인 소부, 허유, 엄광, 맹호연, 제갈량 등의 고사를 현학적으로 나열하고 이들과 관련된 지명을 열거하면서 산수유람·명승유람 하고픈 마음을 표현한 경우가 많았다. 그림은 당시의 시류를 담아내기 마련이다. 중국 고사에 대한 지식의 과시와 선망, 중국 고사의 현장을 답사하고픈 강산유람, 유희지향의 대중문화가 이 같은 모습으로 시각적으로 표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5 <고사도> 8폭 병풍, 지본담채, 영남대박물관 소장



도5-1 도5의 세부


개화기 대중문화와 고사인물도

개화기 대중문화의 대두는 회화에도 영향을 미쳐 전통적으로 애호되었던 고사인물도의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도상의 등장을 불렀다. 전주역사박물관의 <설화도> 8폭을 보면 고려 공민왕의 고사가 추가된 점이 새롭다(도6). 이는 근대기 공민왕을 주제로 한 여러 편의 역사소설의 등장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장량의 고사 같은 경우 전통적으로 ‘이교수리坭橋授履’, 즉 흙다리 위에서 신발을 주워 황석공에게 신겨주는 장면이나 나무 아래에서 병법서를 받는 장면을 그렸지만, 이 병풍에서는 항우와 우미인의 이별 장면이 중심에 놓이고 장량은 멀리 산 중턱에 앉아 퉁소로 초가楚歌를 부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는 기존에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전거로 했던 장량의 고사인물도가 이제는 《초한지楚漢志》와 같은 대중적 소설을 토대로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병풍에 춘향전과 심청전과 같이 개화기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통속 소설이 주제로 등장한 점도 눈에 띈다. 흥미로운 점은 더 이상 중국의 고사인지 한국의 이야기인지 구분이 없어졌고,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 이야기인지, 소설로 쓰인 허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는 것이다. 고사인물도가 왕조시대부터 근대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랑받았던 것은 이처럼 시대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사인물도를 오늘에 살리려면

현대민화 작가들이 가장 다가가기 어렵고 되살리기 어려운 화목이 고사인물도일 것이다. 그림에 담긴 옛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안다고 하더라도 현대인의 삶과 괴리가 크다. 현대민화에서 고사인물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한국인의 옛 이야기 중에서 누구나 공유하는 이야기, 모두가 공감하고 감동받는 서사를 찾을 수 있다면 현대민화에서 고사인물도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도6 <설화도> 8폭 병풍, 지본채색, 각 79.5×31.8㎝, 전주역사박물관 소장


유미나 – 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부(고고·미술사학) 교수


한국민화학회 회장으로 한국민화의 학술적 연구발전에 힘쓰고 있다.
《한국의 채색화》, 《김철순 선생 기증 민화》 등 도록 해설 집필에 참여,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예술의 주체》 등의 공저와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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