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별 민화 특강 ④ 조선시대 왕세자 책봉을 기념하는 궁중회화로 그려진 요지연도

도1 요지연도, 1800년, 비단에 채색, 8첩, 각 145×54cm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요지연도瑤池宴圖는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 요지瑤池에서 서왕모와 주나라 목왕이 벌이는 연회 장면과 함께 잔치에 초대받아 오고 있는 여러 신선 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요지연도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십장생도와 함께 장수를 염원하는 대표적인 채색장식화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요지연도를 주제로 왕세자 책봉을 기념하여 그린 병풍화가 있어 주목된다.

글 박본수(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


요지연도 도상의 연원과 문헌기록

화려한 청록진채와 공필로 그린 조선시대의 요지연도는 중국의 요지선경도瑤池仙境圖나 반도회도蟠桃會圖,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는 ‘요지연도’라는 제목이 없고, ‘요지헌수도瑤池獻壽圖’, ‘군선회축수도群仙會祝壽圖’ 등 축수를 강조한 그림이 존재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의 요지연 관련 그림은 그 내용과 도상에서 차이를 보인다(도2). 중국의 경우 주로 세로로 긴 축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반면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요지연도는 대체로 가로로 긴 연폭의 병풍 형식이며 요지에서의 연회 장면과 요지를 향해 각각 하늘과 바다, 땅에서 오는 인물군을 그린 부분이 화면의 절반 정도를 이룬다. 요지를 향해 오는 신선들은 명청 대에 유입된 중국의 소설인 《서유기西遊記》 등에서 언급된 석가모니, 노자, 보살, 수로인과 팔선을 비롯하여 선계의 수많은 신선들이다. 요지연이라는 주제와 기본적인 도상은 중국에서 빌려온 것이지만 조선시대 화가들은 이를 한국인의 기호를 살려 응용하였다. 서왕모가 이야기의 중심인 만큼 궁극적으로 장수와 기복의 의미를 담은 점은 양국이 공통적이지만 제재의 선택과 화면 구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고문헌에는 서왕모나 요지 관련 기록이 대략 보아도 300여 건 넘게 산견되는데, 조선 중기 정문부(鄭文孚, 1565~1624)의 문집에 <요지연도瑤池宴圖>라는 시가 있다. 또 서화書畵에 대한 취미가 강했던 숙종은 <제요지대회도題瑤池大會圖> 뿐만 아니라 <여동빈도呂洞賓圖>와 <팔선도八仙圖> 등 신선 그림에 대한 글을 남겨 놓았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 요지연도가 전래되어 그려지고 감상이 된 때는 16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숙종 대인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는 요지연도와 함께 여러 신선도들이 감상화로서 향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2 전傳 유송년劉松年, 요지헌수도瑤池獻壽圖, 16세기 초, 비단에 채색, 198.7×109.1cm ,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요지연도로 그린 왕세자책례계병

현존하는 조선 후기 요지연도는 주로 병풍 형식으로 전하며 그 수는 대략 30여 점에 이른다. 특히 왕세자의 책례冊禮와 탄강誕降을 축하하는 계병으로 제작된 사례가 4~5건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요지연도>이다(도1). 8첩 병풍 각 폭의 크기가 세로 145cm, 가로 54cm인 이 작품은 1800년(정조24)에 훗날 순조 임금이 될 왕세자의 책봉을 기념, 선전관청에서 발의하여 제작한 왕세자책례계병王世子冊禮契屛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는 서문과 좌목이 있어 그 제작 연대를 알 수 있고, 그림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미술사적 의의를 충분히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좌) 도2-2 <요지연도> 제8첩 좌목 (우) 도2-1 <요지연도> 제1첩 서문



병풍의 오른쪽으로부터 살펴보면 첫 번째(제1첩)와 마지막 첩(제8첩)은 각각 서문과 좌목이고, 제2첩에서 7첩까지의 여섯 첩에 걸쳐 요지에서의 잔치 장면과 잔치에 오는 군선群仙과 여러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서문(도2-1)을 지은 이시수(李時秀, 1745~1821)는 영조대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이조·호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이 되었다가 순조대에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로 정조와 순조의 근신近臣이었다.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나라에 큰 경사스런 예식이 있을 때면 근신들이 병풍으로 그 일을 그리게 한 다음 왼쪽에 이름을 써서 후세 사람들이 옛 일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그림의 제작 동기를 밝혔다. 둘째, 정조 24년(1800) 2월 2일에 조선의 23대 왕인 순조(純祖, 1790~1834) 임금이 될 왕세자의 관례와 책례의식을 거행했다. 셋째, 그 행사를 기념한 병풍그림을 만든 후에 선전관청에서 선전관을 겸직한 적이 있는 우의정 이시수에게 서문 작성을 부탁하였다는 점이다. 넷째, 이 그림은 천 년에 한 번 만날 성대한 예식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책례계병도冊禮稧屛圖’라는 점이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이다. 첫째 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는 두 살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다섯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문효세자가 죽고 나서 4년 후에 순조가 태어났다. 정조는 원자가 11살이 되기를 기다려 왕세자로 책봉했다.
좌목(도2-2)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선전관宣傳官 이격李格’을 필두로 하여 이동선, 이신경, 이억, 이응복, 김상순, 이식, 이경덕, 신굉, 조문석, 이존경, 조윤긍, 이기정, 한계풍, 이길회, 안광찬, 이광도, 남석구, 안광질 등 19명의 관직명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선전관宣傳官이다. 선전관은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관직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서문을 쓴 이시수의 관직명이 우의정에서 좌의정으로 바뀐 시점을 찾아보면 1800년 7월 4일이다. 이시수의 관직은 책봉례 당시에는 우의정이었다가 정조가 붕어한 후에 좌의정이 되었다. 정조는 이 해 2월 2일에 왕세자 책봉의 예를 치른 후 6월 28일 재위 24년 3개월 만에 49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1800년 2월 2일 이후에서부터 7월 4일 이전까지의 어느 시점에 그림의 서문을 받아 병풍의 형식으로 완성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왼쪽부터) 도1-3 <요지연도> 제4첩 / <요지연도> 제3첩 / <요지연도> 제2첩


요지연도 및 궁중회화 양식 추정의 기준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요지연도〉(도1)의 화면 우반부 세 첩(제2~4첩)에 걸쳐 그려진 요지연 장면을 보면(도1-3), 상단에 상서로운 구름이 드리워지고 청록의 절벽과 바위로 둘러싸인 서왕모의 거처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서왕모와 주 목왕은 병풍을 배경으로 앉아 있고, 그들 앞에는 복숭아와 석류 등의 음식이 진설된 상이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시중을 드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마당에는 편종과 편경, 피리와 생황 등을 연주하는 동자들, 북과 박으로 박자를 맞추는 옥녀들, 봉황 두 마리와 함께 춤을 추는 옥녀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요지연 잔치 장면의 오른쪽 윗 부분을 보면 고동기물이 놓인 상 주위에는 옥녀와 공작, 학과 함께 노는 동자, 그리고 길게 내려오는 계단 아래로는 주 목왕이 타고 온 팔준마와 수행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잔치 장면의 왼쪽 끝 부분은 돌을 쌓아 만든 축대와 그 위의 난간에서 잔치 장소로 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옥녀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곳곳에 보이는 소나무의 모습은 갈색의 줄기에 옹이의 묘사가 두드러지며, 태호석의 색도 붉은색, 파란색, 분홍색조를 띠고, 3천년 만에 한 번 열린다는 반도의 모습도 눈에 띤다. 서왕모가 앉은 병풍 뒤로 사슴 두 마리가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도1-4 <요지연도> 제7첩 / <요지연도> 제6첩 / <요지연도> 제5첩



화면 좌반부 세 첩(제5~7첩)에는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 위와 공중, 그리고 육지로 연결된 곳곳에서 요지를 향해 오고 있는 도석인물상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도1-4). 먼저 공중의 구름을 타고 있는 인물들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화면의 좌측(제7첩) 상단의 구름 위로 한 마리의 사슴과 붉은 옷을 입은 동자와 함께 서 있는 인물은 수성노인이다. 대부분의 요지연도에는 높고 길다란 정수리의 모습으로 학을 탄 인물로 그려지는데, 여기에서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스님 같은 형상이다. 그 오른쪽 편에 두 명의 동자와 함께 선 붉은 옷의 여인은 월신 항아이다. 항아의 앞에는 사자와 코끼리의 등에 올라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일행이 보인다. 그 오른편으로는 구름을 탄 석가여래와 사천왕의 일행이 있는데, 사천왕의 지물 중에서는 비파와 보검, 보탑 등이 보인다. 이 일행 앞에는 붉은 옷을 입은 동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원숭이가 그려져 흥미롭다. 이는 요지연도 도상이 조선에서 적극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서유기》와 같은 중국 소설 삽화류와의 관련성을 생각하게 한다. 석가여래보다 더 위쪽에 홀로 학을 타면서 피리를 불고 있는 인물은 왕자교이다.
다음으로는 해상의 인물들이다(도2-3). 제5첩 중간 누대와 가장 가까운 바다 위에서 연꽃잎 형태의 바구니에 영지를 가득 담아 들고 가는 이는 팔선 중에서 유일한 여성인 하선고이다. 제6첩 중간의 무리는 팔선의 구성원들인 장과로, 한상자, 조국구, 종리권으로 파악된다. 각자의 지물인 어고간자, 퉁소, 딱따기, 부채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다. 제6첩 중간 해상, 팔선의 뒤로는 자루 모양의 물건을 탄 이백이 물 위를 떠간다, 그 뒤로 제7첩 중간 해상에 나무로 된 자리를 타고 있는 장지화와 그 뒤편으로는 물고기를 탄 자영이 그려졌다.


(좌) 도3-1 《선불기종》 삽도 중 ‘헌원집軒轅集’ / (우) 도3-2 《선불기종》 삽도 중 ‘풍간선豐干禪’



요지와 연결된 화면 아래쪽의 육지 부분을 보면 제5첩 하단의 영지가 든 바구니를 지고 가는 인물은 안기생으로 추측된다. 그 뒤 정수리에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는 유자선과 함께 오고 있는 인물은 팔선 중의 한 명인 여동빈이다. 여동빈의 뒤로 검은 소가 끄는 수레를 탄 이는 노자이다. 노자 일행의 뒷 편으로 호랑이를 탄 인물이 있는데, 두 명의 동자가 앞뒤를 호위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 인물은 정체가 불확실하나, 중국의 도석인물화 자료집인 《선불기종仙佛奇踪》을 참조해보면 호랑이를 탄[騎虎] 도상인 헌원집軒轅集이나 풍간선豊干禪의 모습과 연관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도3-1, 도3-2).
1800년에 왕세자의 책봉을 기념하여 제작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요지연도〉는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고, 그 서문과 좌목으로 인해 제작 배경과 함께 역사적 의의를 알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요지연도뿐만 아니라 여타 궁중회화의 양식 및 제작연대 추정에 단서를 주는 기준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박본수, <《정묘조왕세자책례계병》연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요지연도를 중심으로>, <고궁문화>제13호, 국립고궁박물관, 2020


박본수 – 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


삼성문화재단(호암미술관·삼성미술관),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경기문화재단(경기도박물관, 경기도미술관,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민화학회 학술·총무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연구이사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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