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를 잃은 초본집, 민화 초본집Ⅱ

지난 시간에는 민화 초본집이 형태를 잃은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초본집에 남겨진 문장 중 일부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이 초본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초본에 쓰인 글씨

가회민화박물관에 소장된 민화 초본집은 총 8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그림을 살펴보면 많은 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도1~4)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글은 어떤 내용일까? 그중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己酉夏抄(기유하초)
기유년 여름 끝에
坐漱玉堂几上(좌수옥당궤상)
수옥당漱玉堂 *궤에 앉았는데
適有素絹揮之(적유소견휘지)
마침 흰 비단이 있어 (붓을) 휘둘러 그렸다
頗 有得於白陽山人意(파유득어백양산인의)
백양산인白陽山人의 필의筆意를 꽤 얻었구나
南沙 蔣廷錫(남사 장정석)
남사 장정석

* 안석案席 : 앉을 때에 벽에 세우고 몸을 뒤쪽으로 기대는 방석

본 속 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초본에 쓰인 글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 글의 마지막에는 남사南沙 장정석蔣廷錫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장정석의 글임을 알 수 있다.(도5)
장정석(蔣廷錫, 1669~1732)의 호는 남사南沙로, 그는 청나라의 궁정화가이다. 옹정雍正연간에 예부시랑, 문화전 대학사, 태자태부 등을 지낼 만큼 문신으로서도 능력이 있던 인물이다. 장정석의 그림은 매우 유명해서,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1760년에 장정석의 그림을 보고 연지쌍압도蓮池雙鴨圖(호암미술관 소장)를 옮겨 그리기도 했다.
장정석이 필의를 얻었다고 쓴 백양산인白陽山人은 진순(陳淳, 1484~1544)의 호이다. 진순은 중국 명대 후기의 문인화가로, 미법米法 산수화 화훼도를 잘 그렸으며 나중에 팔대산인八大山人 중 한 명으로서 수묵 화훼화의 선구자가 됐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그림에 장정석의 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장정석이 그린 그림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는 점이다. 우선 지난 시간에도 설명했던 것처럼 이 초본에는 다양한 종류의 그림이 있는데, 그림들 가운데 화가들의 화첩처럼 정돈된 그림의 형태를 띠는 것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이 초본의 그림들은 작가가 여러 화첩을 모방해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 있는 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작가가 그림을 베껴 그릴 때 원본에 있던 글까지 그대로 베꼈을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글까지 베낀 이유에 대해서는 그림을 베낄 때 시화일치詩畵一致의 사상에 따라 글도 같이 베꼈을 가능성, 누구의 그림을 베꼈는지 기억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은 그림을 익히기 위해서는 누구나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그림을 무작정 베껴 그리다 보면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을 무작정 그대로 따라 하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이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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