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민화사에 새겨질 1세대 민화작가와의 만남 시리즈 ② 설촌雪村 정하정 작가

민화 창작의 화두를 던지는 일이 나의 사명

설촌 정하정 작가는 창작민화 분야에서 가장 뚜렷한 성과를 이끌어 낸 것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창작민화라는 씨앗을 뿌려 현대 민화화단의 초석을 일구어 온 그에게 민화는 하늘에서 내린 사명이었다. 고희를 넘긴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민화 창작의 화두를 제시하는 정하정 작가는 이 시대 민화계의 선지자로 불리워 마땅하다.

글·사진 우인재 기자


설촌雪村 정하정 작가는 우리 민화계의 태동기를 이끌어 온 대표적 인물로 민화 공방시대를 거쳐 작가이자 지도자, 이론가 그리고 활동가로서 창작민화 분야에서 가장 뚜렷한 성과를 이끌어 낸 인물로 회자된다. 그가 지금까지 참여하거나 기획한 국내외 개인전 및 단체전은 무려 450여 회. 민화를 향한 끝 모르는 열정으로 달려온 지난 수십 년 세월, 고희를 넘긴 나이도 잊은 채 현대 민화화단의 초석을 일구어 온 그에게 민화는 하늘이 그에게 내린 사명이었다.
정하정 작가가 뿌리고 가꾼 창작민화의 씨앗은 모사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한국민화화단의 스펙트럼을 획기적으로 넓혀놓는 데 매우 큰 기여를 했다. 그와 더불어 회화이론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작가로서는 드물게 뛰어난 글솜씨를 통해 저서인 《민화창작, 이렇게 하라》를 펴내는 등 민화계 전방위에 걸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절정에 다다른 필력으로 어느 때보다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이자 이론가, 활동가로서 그가 이토록 지치지 않는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매우 큰 비결이 있기는 해요. 내 가슴 가득 품은 사명의식이 그것입니다. 나는 민화인이자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훗날 주님 앞에 불려갔을 때 무얼 하다 왔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까 걱정이에요. 창작민화운동을 시작했던 입장에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더불어 민화인들이 스스로를 일깨워야 할 부분도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지요.”

민화를 향한 원초적 이끌림

청년 정하정이 처음 민화를 접하게 된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미대 진학을 반대했던 부친의 뜻이 완강하여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했지만 미술에 대한 원초적인 이끌림까지 지울 수는 없었던 터. 그는 지금의 경기도 하남에서 광주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는 산곡리라는 동네의 고시촌에서 동서양 미술사와 각종 미술 관련 이론서들을 구입하여 탐독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는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토론도 해가며 1년여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름대로 미술에 대한 밑바탕을 다졌던 것. 또한 당시 고물상이나 엿장수 혹은 고화古畵 전문 표구사 등을 통해 다양한 옛 그림들을 접하면서 민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민화 모사를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60년대 후반, 당시 남양주에서 경기도 광주 방면에 위치하는 산곡리라는 동네에 있는 고시촌에서 동서양 미술사와 각종 이론서들을 되는대로 구입하여 끌어안고 들어가 탐독했어요. 식사시간에 만나는 고등고시 준비생들과 잠깐씩 토론도 하면서 내 나름대로는 미술 이론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거죠. 미대 진학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제도권의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민화와 가까워지는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정하정, <신장생도>, 지본, 수간채색, 78×53㎝

조상들의 피고동 느껴지는 전통회화에 매료되다

이후 1973년 군복무를 마친 정하정 작가는 친구 운봉 이규완 작가의 제의로 경산 송윤안 선생의 공방에 들어가게 된다. 운봉과 동문수학하며 경산 송윤안 선생으로부터 민화 기법과 이론을 배웠던 그는 서울 답십리 공방에서 수당 강희원, 백운 김영민 선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산수화, 화조도를 익히며 기본기를 다졌다. 그의 민화 인생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정하정 작가가 민화와 연을 맺은 것은 경산 송윤안 선생의 공방에 들어가면서부터였지만 민화라는 전통회화에 매혹된 결정적 이유는 조상들의 ‘피고동 소리’가 느껴지는 우리 민족 특유의 예술적 특징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특징은 단지 오방색에 그치지 않는다. 궁중에서 소비되던 장식화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그림 이면에 담긴 조선후기 서민적 삶과 해학, 그리고 현대의 컨템포러리 아트에 비견될 만한 파격적인 구도는 궁중에서 민간으로 전래된 민화에서 더욱 강렬하게 나타났기 때문.
“나와 동료들은 민화에서 조상들의 피고동 소리가 울린다고 표현했어요. 그만큼 민화라는 그림 속에는 서민 삶의 본질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어떤 외래의 그림과도 다른 특징에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매력을 오방색의 개념에 한정해 묶어두고 싶지는 않아요. 민간에 전래된 옛 그림은 현대적 구도 및 해학적인 면모가 더욱 강렬하기 때문이죠.”

민화 공방시대에 태동한 창작민화운동

1980년대 직접 공방을 운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그는 옛 민화의 우수성을 이어받아 현대적 개념의 그림으로 재탄생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굳혀가기 시작했다. 이 시대 창작민화의 주역으로 불리고 있는 정하정 작가가 끊임없이 설파한 ‘창작민화운동’이 바로 이 무렵 태동을 시작한 것. 1987년부터 <민화 – 오늘의 시각과 방법>展을 기획하면서 본격적으로 민화 창작에 뛰어들었던 그는 1세대 민화작가로 분류되는 후배들과 함께 어느 시골 강변에서 창작민화론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는가 하면 현대적 민화의 원형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거 오브제를 사용하는 등 전시 기획과 이론, 민화 창작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민화계를 선도했다.
물론 오늘날 민화가 화사한 봄날을 맞이하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창작민화라는 화두가 등장하자 화단에서는 전통의 대척점에 위치하는 것이 창작이라는 오해가 불거졌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 그러나 전통민화와 창작민화는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 관계라는 것이 설촌의 지론이다.
“재현과 창작은 어느 한 쪽이 더 중요하거나 우월한 관계가 아닙니다. 창작민화도 결국은 전통을 밑바탕에 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전통이라는 본질이 사라진 새로움(창작)은 의미가 없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서양 복식을 하고 생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한국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걸 간과하고 새롭기만 하면 된다거나 혹은 옛날 방법 그대로 재현해야 민화라고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양쪽 모두 본질을 놓친 겁니다.”

정하정, <베드로의 물고기>, 지본, 수간분채, 82.5×112㎝

민화화단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다

정하정 작가는 민화화단의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획전을 동료 작가인 운봉과 함께 준비한다. 지난 2013년 개최한 <한국민화창작대작>展이 바로 그 프로젝트. 창작민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한 이 기획전을 계기로 창작민화라는 명칭이 화단에서 보다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개념과 목적 등 민화 창작을 뒷받침할 이론적 배경과 함께 재료와 제작 방법까지 제시되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창작민화 작가들이 참여한 제1회 <한국민화창작대작>展의 경우 ‘창작민화 100호 크기의 대작 전시회’, ‘약속된 주제를 반복 스터디하여 작품을 준비할 것’, ‘현대공간에 잘 어울리는 조형언어로 표현할 것’ 등 그간의 여느 행사들과 차별화된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추진되었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뒤이어 그는 제자들과 함께 준비한 <설촌창작민화연구회>展에서 실용성과 조형미를 겸비한 창작민화를 선보이며 창작민화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리메이크 창작민화>展을 통해 고전(전통민화)을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으로 창작민화에 새로운 독창성을 부여했다. 또한 그는 지난 2019년 ‘설촌창작민화장학상’을 제정해 유능한 창작민화 작가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초대전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작가적 창작열을 고무시키는 한편 월간민화 지면에 ‘민화창작, 이렇게 하라’를 연재하며 이론가로서 창작민화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뚜렷하게 밝힌 바 있다. 2년에 걸쳐 연재한 글은 한데 묶어 동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올해 2월, 그는 250여 명의 작가가 대거 참여한 <2023 한국민화의 조망전>을 기획하고 총감독하여 개최했다. 현대 민화화단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던 이 대형 기획전은 창작민화는 물론 리메이크민화와 재현민화까지 민화의 모든 장르를 폭넓게 아우른다는 점에서 민화계에 매우 큰 의미를 갖는 행사였다. 이처럼 정하정 작가는 자신의 사명이 여전히 민화계에 화두를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자신의 개인 작품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지난 2021년에야 비로소 30년 만의 개인전을 치른 것은 그러한 사명의식 때문이리라. 화단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민화 전도사. 정하정 작가는 의심할 여지 없는 선지자이자 민화계의 영원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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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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