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순범 작가와 연임당 민화 갤러리, 마음의 병 치유한 민화의 힘

허순범 작가와 연임당 민화 갤러리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해문리에는 특별한 민화 갤러리가 있다.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 위에 ‘연임당’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고, 그 표지판을 따라가면 가정집 외양의 갤러리가 보인다. 겉모습만 가정집이 아니다. 실제로 1층은 갤러리 관장인 허순범 작가와 남편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접근성도 높지 않은 시골 한복판에 멋들어진 민화 갤러리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심하게 앓은 후 마음의 병이 생기다

허순범 작가와 연임당 민화 갤러리허순범 작가가 민화를 시작한 건 여든의 나이가 다 되어서였다. 4년 전, 사고로 몸이 심하게 아팠고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해 병은 나았지만,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
“팔십이 되도록 제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못했어요. 머리가 백발이 되고 허리는 구부러지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눈은 어두워지고. 모든 것이 볼품없는 모습이 됐어도 그냥 이것이 인생인가 했죠. 여태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 세상 왜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열심히 살았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4남매를 낳고, 큰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공부를 제대로 시킬 요량에 쌀 한 자루를 동여매고 아이들과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연고도 없고, 수중에 돈도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고향과는 너무 달랐다. 고향에서는 농사짓고 나무를 때고, 석유만 있어도 등잔불 켜고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서울에서는 모든 게 돈이었다.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 또한 변변치 않았던 시대였다. 막노동도 연줄이 있어야 가능했던 그 시절, 보세 가공으로 온종일 십 원 이십 원 벌어가며 4남매를 키워냈다.

우울증 치료 위해 시작한 민화, 삶의 활력소 되다

고생이 많았지만 4남매가 모두 번듯이 성장했으니 바랄 게 없었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몸이 아프면서 시작된 몸의 병이 마음으로 번졌다. 딸은 엄마가 우울증을 좀처럼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권했던 것이 민화였다. 처음에는 크레용과 스케치북으로 하는 색칠 공부 수준이었지만, 아는 사람 화실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받아온 후 본격적으로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허순범 작가는 6개월도 되지 않아 밤새 6폭 병풍을 다섯 점 그릴 만큼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식구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림을 보여주자 앞 다투어 병풍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표구사에 표구를 맡겼을 때, 집에서만 보지 말고 전시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이곳저곳을 소개해줬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허순범 작가의 민화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 그후 여러 공모전에 출품하여 이곳저곳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012년 대한민국 강릉 서화대전에서는 ‘궁중모란도’로 특선을, 2012 한국민화 전국민화대전에서는 송학장수도로 ‘특별상’을 받았다. 매스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한 후에는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일본 사람들도 방송을 보고 갤러리를 찾아오고, 젊은 민화 작가들도 창작의 벽에 부딪혔을 때, 갤러리를 들러 그 열정의 기운을 받아갈 정도란다.

훌륭한 매니저이자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준 남편

이처럼 허순범 작가가 작품에 몰입하고 괄목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에는 가족들의 응원이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남편 최도영 씨는 최고의 조력자였다. 전시회나 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할 때는 손수 운전대를 잡고 사람들에게 안내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혹여나 단어의 선택이나 의미 전달에 오해가 있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매니저의 역할이었다. 허순범 작가의 팔순을 맞아 집을 증축해 갤러리를 만들겠다는 생각도 남편의 아이디어였다.
“그동안 자식들 키우느라 당신만을 위한 삶이 없었던 걸 알아요. 항상 자식이 삶의 우선 순위였죠.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부인의 삶을 응원하고 돕고 싶습니다.”
수상이나 작품에 대한 감정보다는 본인의 그림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행복과 보람을 찾는다는 노부부의 모습이 어쩌면 진정한 민화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화를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인생 2막을 시작한 허순범 작가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글 : 박인혁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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