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열정작가, 지역 민화계 발전의 주춧돌, 아정雅井 신영숙

아정雅井 신영숙 작가
아정雅井  신영숙

신영숙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사)한국전통민화협회 이사장으로 전국을 오가며 민화 저변 확대를 위해 애써왔다. 한 협회의 수장으로 궂은일을 마다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우리민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화가 곧 내 삶”이라 말하는 행동하는 열정가 신영숙 작가와의 만남.

민화에 퐁당 빠진 열정가

신영숙 作신영숙 작가는 지난 10년간 (사)한국전통민화협회 이사장으로서 전국을 바쁘게 누볐다. 지방에서, 그것도 여성작가가, 모든 편견을 이겨내고 사단법인으로 민화협회를 창립하고 전국 단위 민화 공모전을 개최해 지금까지 이끌어온 것이다. 타고난 추진력과 뛰어난 기획력, 민화에 대한 넘치는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즐겨했다. 여고시절 동양학과 교수님에게 따로 동양화를 배울 만큼 우리그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학창시절부터 한국적인 색과 미에 관심 두기 시작했던 것.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정을 꾸렸다. 80년대 후반부턴 사업하는 남편을 도와 실질적인 행정을 도맡기도 했다. 당시 남편 사업을 도왔던 실무 경험은 훗날 (사)한국전통민화협회 수장을 해내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신영숙 작가는 “협회의 수장이자 민화작가로서 활동이 가능했던 데에는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간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사회인이자 한 사람의 아내, 또 세 아이의 엄마로 충실했던 시간이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자녀들이 성장했고, 그녀의 삶에도 여유가 찾아왔다. 잊고 지냈던 여고시절 그때 그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림에 대한 알 수 없는 목마름이었다.
“1994년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을 찾아 윤인수 선생님을 통해 민화를 처음 만났어요. 여고시절에 배웠던 그림도 동양화였는데, 민화를 배워보니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한국적인 그림 민화에 그대로 빠져들고 말았죠. 충북대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 길로 6년을 주구장창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윤인수 선생님 화실을 찾아갔어요.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말곤 그림을 그릴만큼 집중했던 시간이었어요.”
민화수업을 듣기 위해 이른 새벽에 출발해 늦은 밤에 돌아오는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작품 하나를 시작하면 밤낮을 잊고 그림 그리기에 끈덕지게 열중했다. 그야말로 민화에 미쳐 지냈던 시간. 민화가 좋았고, 그 과정이 그저 행복했다.

협회를 이끄는 거침없는 행동가

신영숙 작가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력 중 하나가 바로 (사)한국전통민화협회(회장 윤인수, 이하 협회) 이사장직이다. 신영숙 작가는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2005년 사단법인 인가를 받아 협회를 꾸리고, 2012년 전국 단위의 공모전을 개최해냈다. 협회 공모전은 지난해 4번째를 맞으며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사단법인 인가부터 공모전 개최까지. 지역에 기반을 둔 민화 단체 중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과였다. 1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협회는 충북지역은 물론 서울 2곳, 대전, 경남 창원, 경북 포항, 경기도 수원, 충북 보은 각 1곳 씩 총 7곳에 지부를 두었다. 각 지부에 있는 회원까지 모두 합치면 200명이 훌쩍 넘는다. 어느 지역 단체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규모와 세勢를 갖추고 있는 것. 신영숙 작가의 추진력과 배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민화 저변 확대를 위한 활동에서만큼은 거침없는 행동가였다.
“당시 충북대 평생교육원 민화과정에 민화를 주제로 한 모임이나 단체가 따로 없을 때였어요. 그래도 충북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인데 협회를 꾸려 전시도 열고, 민화 저변 확대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윤인수 선생님을 찾아가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단체를 꾸려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허락 아래 2004년경 협회를 꾸리고, 1년 후에 사단법인 인가까지 받았어요.”
그 후 몇 해가 흘렀다. 그동안 민화만을 바라보며 외길을 걸어온 윤인수 작가와 함께 협회 이름을 걸고 공모전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청을 찾아가 전국 규모 민화 공모전을 열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어요. 처음엔 ‘왜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느냐?’라며 난색을 보이더군요. 어떤 이유로 안 된다고 하느냐 따져 물었지요. 허락해 주지 않으면 제 사비를 들여서라도 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어요. 결국 서류를 준비해 넣을 수 있었고, 도 차원의 지원을 받아 공모전을 개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 차원의 지원을 끌어냈지만 매년 전국 규모의 공모전을 개최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공모전 홍보, 심사위원 섭외, 전시 제반 작업 등 공모전 개최를 위해 필요한 모든 준비를 협회 내에서 처리 해야만 했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뛰어난 기법과 참신한 표현력을 가진 민화 작품과 작가를 발굴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은 신영숙 작가를 또다시 뛰게 만들었다. 협회에서는 도 차원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는 공모전이니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심사에서는 학맥이나 스승과 제자 관계 등의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협회와 거리가 있는 심사위원을 위촉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 모두 신영숙 작가의 “투명하고 공정한 공모전을 만들자”는 소신이 반영된 결과다. 때론 작가 본인도 사람인지라 심사 결과에 갸웃할 때도 있지만, 어떠한 반론도 제기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협회 공모전을 통해 전통과 창작이 균형을 이룬 참신한 표현력을 지닌 신진작가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제4회 (사)한국전통민화협회 전국공모전 시상식

▲제4회 (사)한국전통민화협회 전국공모전 시상식

(사)한국전통민화협회 민화 교육 현장

▲(사)한국전통민화협회 민화 교육 현장

생활민화 보급에 앞장서는 전도사

신영숙 作신영숙 작가는 민화를 각종 공예품에 접목한 생활민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작품 역시 실생활에 활용 가능한 생활민화가 주를 이룬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신영숙 작가의 집은 소규모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생활민화로 장식된 한 칸의 방에는 장롱부터 서랍장, 커튼, 이불, 배게, 병풍까지, 모두 신영숙 작가의 작품으로 꾸며진 모습이다. 생활민화는 신영숙 작가가 꼽는 민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민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전통은 전통대로 지켜가되, 생활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병풍도 생활화시키자면 얼마든지 가능하죠. 예전엔 실제로 그렇게 쓰이기도 했고요.”
협회 교육 시에는 민화를 각종 생활용품에 결합해 강사용 교재나 기념품으로 제작하여 제공한다. 민화의 본을 천에 새겨 커튼, 베개보 등으로 만들어 교보재로 활용하는 식. 신영숙 작가는 앞으로도 생활민화 보급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앞장설 예정이다. 그의 또 다른 희망 중 하나는 청주지역에 민화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 민화인들이 자유롭게 전시를 열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신영숙 작가는 올해 4월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20년 넘게 민화를 그리고 나눠온 그이지만 자신의 작품 앞에서는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민화를 사랑하고 나누는 중견작가이자, (사)한국전통민화협회의 수장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영숙 작가. 거침없는 그의 행보는 우리민화계 발전을 위한 단단한 초석이 되고 있다.

 

글 : 최민지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