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㉟ 미국 호놀룰루 미술관 소장 민화Ⅰ – 백동자도, 백수백복도

호놀룰루 미술관은 미국 내에서 아시아-태평양을 아우르는 유물을 가장 많이 가진 기관으로 손꼽힌다. 이달에 살펴볼 작품은 곽분양행락도 도상과 결합된 백동자도와 목판으로 인출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백수백복도이다.
글 김수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도1 호놀룰루 미술관(Honolulu Museum of Art)



이번 호부터는 미국 하와이에 소재한 호놀룰루 미술관(Honolulu Museum of Art) 소장 한국 회화 컬렉션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미술관은 1922년 애나 라이스 쿡(Anna Rice Cooke, 1853–1934)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미국 내에서 아시아-태평양을 아우르는 유물을 가장 많이 가진 기관으로 손꼽힌다(도1). 1927년 개관 이래로 호놀룰루 아카데미 미술관(Honolulu Academy of Arts)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던 중 2011년 현대미술관(Contemporary Museum)의 기금 유입과 유물의 기증이 이루어진 것을 기점으로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현재는 하와이와 아시아 유물뿐 아니라 미국, 유럽,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미술을 넘나드는 총 50,000점 이상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이 미술관의 설립자 애나 라이스 쿡은 1853년 하와이의 오아후(O‘ahu) 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예술을 애호하는 가풍 속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도2). 1874년 애나 라이스 쿡은 젊은 사업가 찰스 몬테그 쿡(Charles Montague Cooke, 1849-1909)과 결혼하여 호놀룰루에 정착했다(도3). 찰스 몬테그 쿡은 젊은 시절 무역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1893년에는 하와이 은행을 공동 설립하는 한편 도서관, 학교 등에 꾸준히 기부를 이어갔다. 찰스 몬테그 쿡의 사업이 번창하는 사이 애나 라이스 쿡은 미술품을 수집하는데 골몰했으며 이들 부부가 축적한 자산은 훗날 자선기금으로 조성되어 미술관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 기부되었다. 애나 라이스 쿡은 자신의 딸과 며느리들과 함께 꾸준히 미술품을 수집하고 도록을 출간했으며 1922년에는 미술관을 설립할 부지를 마련했다. 그들은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오스발드 시렌(Osvald Sirén, 1879-1966)(도4) 같은 학자와 C.T.Loo(盧芹齋, 1880-1957), 야마나카 사다지로(山中定次郎, 1866-1936), 노무라 요조(野村陽三, 1870-1965) 같은 거물급 아트 딜러들의 도움을 받아 놀라운 수준의 컬렉션을 완성할 수 있었다. 특히 애나 라이스 쿡의 동아시아 미술 수집은 당시 뉴욕 등 미국 본토에 샵을 열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일본 출신 골동상과의 도움에 힘입은 바가 크다.
미술관의 건축은 뉴욕에서 활동했던 건축가 버트램 굿휴(Bertram Goodhue, 1869-1924)의 작품으로 단순한 화이트 톤 외양에 타일로 마무리 한 지붕을 시그니처로 하는 고전적인 하와이 양식으로 지어졌다(도5). 애나 라이스 쿡은 미술관을 개관하면서 당시까지 모았던 수집품 4,500점을 기증했는데, 이 중 절반이 아시아 미술품이었다. 그 중 한국 미술은 100점 가량 되었고, 도자기가 80점 정도를 차지했다. 호놀룰루 미술관은 이 기증품을 바탕으로 이후로도 꾸준히 유물을 구입하고 기증 받아 현재는 1,000점이 넘는 한국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도6-1 도6의 부분, 멱감기 / 도6-2 도6의 부분, 폭포



(왼쪽부터) 도6-3 도6의 부분, 곽분양 / 도6-4 도6의 부분, 곽분양의 부인


곽분양행락도의 도상과 결합된 백동자도

이달에는 호놀룰루 미술관 소장품 중 대표적인 민화 유물이라 할 만한 백동자도百童子圖와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병풍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백동자도는 8폭 대형 병풍으로 백동자도로서는 보기 드물게 연폭으로 꾸며져 있다(도6). 현재 전하는 대부분의 백동자도는 높이가 낮은 침병枕屛으로 규모가 작고, 아이들이 원님놀이, 닭싸움, 잠자리 잡기, 멱 감기를 하며 노는 모습이 각폭 형식으로 꾸며졌다. 그런데 이 작품은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화면 전체를 연결해서 그린 연폭 형식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특이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만 상당히 수준 높은 도안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료는 저렴한 것을 사용하여 발색 면에서는 궁중 회화와 큰 차이를 보인다(도6-1). 도안상으로도 눈에 띄는 점이 있는데, 이는 중심부에 자리 잡은 화려한 전각들과 왼편 상단에 배치된 폭포가 주로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에서 볼 수 있는 도상이라는 점이다(도6-2).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에서부터 3폭과 5폭에는 각각 분양왕汾陽王, 곽자의郭子儀 (697-781)로 보이는 이와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도 그려져 있다(도6-3, 6-4). 따라서 이 유물의 제목은 ‘곽분양백자도’ 혹은 ‘곽분양백동자도’ 정도로 고쳐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곽분양행락도와 백동자도의 도상이 결합된 작례는 호놀롤루 미술관본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Grassi Museum fuer Voelkerkunde zu Leipzig)에 소장된 작품 가운데에도 곽분양행락도의 세팅에 백동자도 도상이 결합된 작품이 있다. 곽분양이 앉아 있어야 할 중국식 건축물에 동자들이 대신 들어가 있는 설정인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작품 또한 곽분양행락도와 백동자도 도상이 결합된 사례를 보여준다(도7, 도7-1). 안료의 상태로 보아 비교적 현대와 가까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각폭 형식의 화면 속에 곽분양과 백동자의 도상이 조화롭
게 결합되어 있다. 왼쪽 끝부분의 9폭과 10폭에 보이는 연못은 비록 연결된 것처럼 되어있지만 나머지 도상은 모두 한 폭에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여 각폭 형식으로 꾸몄다. 이러한 고안들은 19세기부터 곽분양행락도와 백동자도가 급격히 유행하며 점차 민간으로 저변화 되는 과정에서 서로 결합된 결과로 추정된다.


도7 <곽분양백자도 10폭 병풍>, 지본채색, 123.5×390㎝,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7-1 도7의 부분, 곽분양 부부


목판으로 찍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백수백복도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백수백복도>이다(도8). 본래 백수백복도는 ‘수’ 자와 ‘복’자를 반복해서 구성하거나, 한 면에 ‘백’자, 다른 한 면에 ‘수’자만을 채워 화면을 구성한 작품이다. 호놀룰루 소장본은 전자에 해당하여 ‘수’와 ‘복’자가 번갈아 가며 화면을 채웠다(도8-1, 8-2). 이는 1988년에 엘리자베스 한 백크만(Elizabeth E. Han Backman)에 의해 기증된 작품이다. 본래 ‘백수백복’에서의 ‘백百’은 실제 100개의 글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많다’, 혹은 ‘완전수’를 의미한다. 이 작품 또한 화면 한 면에 4행 12열로 총 48자가 있어, 총 8폭의 화면을 합치면 384자의 글자로 채워져 있다. 현재 전하는 백수백복도의 작례들은 육필肉筆로 그린 것과 자수로 꾸민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호놀룰루 소장본은 판각한 목판을 종이에 찍어 만든 인출印出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안료는 오방색五方色을 중심으로 한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푸른색, 흰색, 검정색을 썼다(도8-3). 낱개의 글자에서 육필의 필선을 확인할 수 없으며 글자마다 전반적으로 번짐이 확인된다. 육필에 비해 인출 기법은 다량으로 제작하는 것이 용이하여 민화에 자주 활용되곤 했다. 호놀룰루 소장본은 인출 기법을 활용한 대량 제작품임일 것으로 추정되나 전서篆書의 글자 구성이 단아하고 멋스럽고 완성도가 높아 본래 밑그림으로 사용한 본本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


도8 <백수백복도>, 지본채색, 각 182.3×39.3㎝,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왼쪽부터) 도8-1 도8의 부분 / 도8-2 도8의 부분 / 도8-3 도8의 부분


김수진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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