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㉝ 곽분양행락도, 책거리, 문자도, 시왕도

지난호에 이어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 소재한 브루클린미술관(Brooklyn Museum) 소장
한국 회화 5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그간 한국 미술 수집가로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던
존 그루버와 존 라이든이라는 두 인물의 내력과 그들의 수집품을 살펴본다.

글 김수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조선 후기 전형적 양식 갖춘 <곽분양행락도>

존 그루버(John W. Gruber, 1927-2001)는 본래 일본 미술 수집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한 그루버는 젊은 시절 회계사로 승승장구했던 인물로 30대 후반까지도 동양 미술과 별다른 접점을 갖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63년부터 사업차 9년간 도쿄에 체류하게 되면서 일본 미술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이 시절 70점 넘는 일본 미술공예품을 수집하면서 완전한 아시아 미술 전문가가 되었다. 특히 그의 컬렉션 중에서는 단시〔箪笥〕라 불리는 서랍장 류類의 가구와 병풍화가 유명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루버는 일본에서부터 점차 중국으로 관심을 옮겨가 1980년대부터는 주로 중국 미술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현재 브루클린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곽분양행락도>(도1)는 그가 수집했던 몇 안 되는 한국 회화이다. 정확한 구입 연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가 중국 및 일본 미술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구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곽분양행락도> 병풍의 크기, 도안, 양식의 범주 안에 있는 전형을 갖추고 있다. 다만 보통 곽분양행락도가 8폭으로 꾸며지는 것이 흔한데 이 작품의 경우 6폭으로 꾸며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또한 일반적인 <곽분양행락도>는 화면이 끊기지 않게 연폭으로 장황을 꾸미는 것이 상례인데 이 작품은 각각의 폭을 개별 장황하고 다시 이것들을 연폭으로 연결하여 후대에 다시 수리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30여년간 한국 미술품 구입해 기증한 현직 의사

도2 존 라이든
(John P. Lyden) 박사

브루클린미술관에 400점이 넘는 한·중·일의 미술품을 기증한 존 라이든(John P. Lyden)은 현재 8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현직 의사이다(도2). 라이든은 1961년 하버드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했고 컬럼비아 의과대학을 마쳤다. 의사가 된 라이든은 미국 해군 대위로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남부 베트남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을 뿐 아니라 미국 내 병원 평가에서 정형외과 부문 1위로 매년 선정되는 뉴욕의 HSS(Hospital for Special Surgery)에서 수십 년째 근무 중이다. 라이든은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50년 넘게 지금까지도 매일 환자를 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30년 넘게 라이든이 아시아 미술품을 구입하여 뉴욕 일대의 여러 미술관에 기증해왔다는 사실이다. 비단 브루클린미술관뿐 아니라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과 뉴어크미술관(Newark Museum)에도 라이든 박사의 단독 명의 혹은 1982년에 결혼한 라이든 박사의 부인인 캐럴 머피(Carol S. Murphy) 여사와의 공동명의로 기증된 유물이 많다. 브루클린미술관에 있는 라이든 박사의 한국미술 컬렉션에는 도자기, 가구, 회화, 공예가 고루 섞여 있으며 한국 회화는 10여점 정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간 한국미술을 수집한 인물로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에 존 라이든 박사에게 정식으로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자신이 한국미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인터뷰를 할 자격이 없다며 고사했다. 자신은 오직 브루클린미술관에서 한국미술 구입을 담당했던 큐레이터 로버트 모즈(Robert Moes) 박사가 골라주는 것을 구입했을 뿐, 문화재를 감정할 만한 감식안鑑識眼을 갖추지 못했으며 그저 돈을 댔을 따름이라는 겸사謙辭를 반복했다. 그러나 지난 4월호에 소개했던 백학기白鶴起의 낙화烙畫 또한 라이든 박사가 어느 갤러리에서 처음 발견한 작품이었다. 라이든 박사는 낙화가 흔한 재료로 만든 것이 아님을 한 눈에 알아보고 브루클린미술관에 이를 알림으로써 미술관이 낙화를 최종 구입하도록 했다. 흥미로운 점은 라이든 박사가 지난 30여 년간 한국미술품을 꾸준하게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으로 가져간 작품은 단 한 점도 없다는 점이다. 라이든 박사는 언제나 유물을 구입한 직후 미술관에 기증했다.


도3 <책거리>, 지본채색, 60.5×34.7㎝, 브루클린미술관 소장



도4 ‘수양매월’ 먹이 있는 <책거리> 부분, 지본채색, 55.7×31.7㎝, 개인소장


당대의 미학 깃든 책거리, 문자도, 시왕도

먼저 <책거리>(도3) 단품은 라이든 부부의 공동명의로 기증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높이가 60.5㎝로 본래부터 단품은 아니고 높이가 낮은 침병枕屛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화면 가장 뒤에는 화병에 탐스러운 모란꽃이 꽂혀 있고 그 앞에는 술병 위에 술잔이 올려져 하나의 세트를 이루고 있다. 화면 가장 앞에는 ‘남지홍련南池紅蓮’이라 적힌 먹이 보인다. 여기서 ‘남지’가 숭례문 근처에 있던 연못을 말하는지 다른 지역의 연못을 지칭하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유명한 먹에는 글자를 새겨 유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해주海州나 양덕陽德에서 만들어진 먹 가운데에는 한림풍월翰林風月·초룡주장草龍珠張·수양매월首陽梅月 같은 글귀가 새겨진 먹들이 있다(도4). ‘남지홍련’이 어느 지역 먹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아마도 알려진 먹 브랜드 중 하나일 것으로 짐작된다.
<문자도>(도5)는 현재 낱폭으로 전하고 있지만 이 또한 본래 높이가 낮은 8폭 병풍에서 수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작품도 라이든 부부의 공동명의로 기증되었다. 현재 브루클린미술관에는 3폭만 전하는 상태인데 ‘제弟’와 ‘신信’의 경우 어렵게 읽히지 않으나(도5-1, 5-2) ‘염廉’이 다른 문자도에서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도5-3). 이 세 글자는 모두 차분한 톤의 안료로 새 한 쌍과 소박한 식물로 장식되어 있다. 새와 식물 중에는 ‘제’ 자에 쓰인 비둘기와 연꽃, ‘염’ 자에 쓰인 대나무 잎사귀 정도를 알아볼 수 있지만 도상의 형태와 색감에서 민화 문자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단아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왼쪽) 도5-1 <문자도> 제(弟), 지본채색, 45.7×28.3㎝, 브루클린미술관 소장
(오른쪽) 도5-2 <문자도> 신(信), 지본채색, 45.7×28.3㎝, 브루클린미술관 소장



(왼쪽) 도5-3 <문자도> 염(廉), 지본채색, 45.7×28.3㎝, 브루클린미술관 소장
(오른쪽) 도6 <시왕도>, 견본채색, 72×32㎝, 브루클린미술관 소장



마지막으로 시왕도十王圖 계열 가운데 염라대왕의 단독상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작품도 라이든 부부의 공동명의로 기증된 것이다(도6). 이 작품은 잘 훈련된 필치로 명부冥府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왕과 판관判官 및 녹사錄事가 유려하게 묘사되어 있다. 염라대왕의 뒤에 세워진 삽병揷屛 형식의 병풍과 마블링 문양이 들어간 책상, 판관과 녹사의 복식에 들어간 음영 표현에서 그라데이션 효과가 아주 탁월하다. 녹사와 판관의 모습이 한 명은 백면서생처럼 다른 한 명은 험상궂게 생긴 무관武官처럼 그린 것도 눈에 띈다.

김수진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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