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㉜ 책거리, 낙화

브루클린미술관은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기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이곳은 회화뿐 아니라 도자기, 공예, 불교미술, 고가구, 민속품 등 다양한 한국 유물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 달에 살펴볼 유물은 책거리 한 점과 낙화 한 점이다.

글 김수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도1 브루클린미술관(Brooklyn Museum)



이달에 소개할 브루클린미술관(Brooklyn Museum)은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 소재하고 있다(도1). 본래 이 기관은 1823년에 브루클린도제도서관협회로 창립됐기 때문에 수집 활동 초기에는 각종 도서를 비롯하여 지도·드로잉·기계 같은 것들을 모았다. 그러던 중 1890년에 브루클린연구소로 명칭을 바꾸면서부터 미술품을 적극 수집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브루클린미술관이라는 이름은 1913년부터 사용된 것이다. 브루클린미술관은 한국 미술품을 수장하고 있는 미국 기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한국 관련 소장품은 지금까지 665점 이상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보스턴미술관과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이곳은 회화뿐 아니라 도자기, 공예, 불교미술, 고가구, 민속품 등 다양한 한국 유물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 달에는 먼저 책거리 한 점과 낙화烙畫 한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왼쪽) 도2-1 도2의 그림 두루마리 부분 / (오른쪽) 도3-2 도3의 그림 두루마리 부분



(왼쪽) 도2-3 도3의 책갑 구름 문양 부분 / (오른쪽) 도3-1 도3의 책갑 구름 문양 부분


보스턴미술관 소장품과 같은 작가 혹은 동일 공방 작품

책거리는 책가冊架가 포함된 형식으로 6폭으로 꾸며져 있다(도2). 보통 책가가 있는 책거리 중에서 상품上品에 속하는 것은 화면 가운데에 하나의 소실점을 상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음영법과 원근법을 더하여 완벽한 시각적 환영을 구사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소실점의 위치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음영을 가한 방향에도 일관성이 없다. 작가가 소실점과 음영 간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6폭의 책거리는 각 폭당 책장이 세 칸씩 나누어져 있어 총 18칸에 각기 다른 기물과 책갑冊匣이 올려져 있다. 가장 오른쪽 1폭 상단에는 ‘간이簡易’라고 적힌 문집이 총 12권 보인다. 이는 아마도 최립崔笠(1539~1612)의 문집인 《간이집簡易集》을 칭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간이집은 9권 9책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에 실제 문집을 보고 그린 것 같지는 않다. 1폭의 중단에는 필통과 먹이 보인다. 먹에는 ‘상원갑자上元甲子’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1폭 하단에는 유리 어항이 있고 그 안에는 수초와 함께 두 마리의 물고기가 노닐고 있다. 2폭 상단에는 구근球根 식물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자주 그려지는 수선화로 보이진 않지만 흰 꽃이 두 송이 놓여 있다. 2폭 중단에는 5권짜리 문집이 총 3질이 쌓여 있다. 이 문집에는 ‘추첩秋帖’, ‘정암靜庵’이란 글씨가 있다.

도2-2 도2의 인장 부분

여기서 ‘정암’은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문집인 《정암집靜菴集》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2폭의 하단에는 ‘이천선생화첩伊川先生畫帖’이라고 되어 있는 두루마리 한 점과 ‘가어家語’라 적힌 책이 보인다(도2-1). 이는 아마도 《공자가어孔子家語》일 가능성이 있다. 3폭의 상단에는 그림 두루마리가 아래에 있고 책더미가 위에 있는 비현실적 장면이 보인다. 3폭 중단에는 ‘열列’이라고 적힌 책 14권이 있는데 각각 1~6권과 7~15권로 나누어 있다. 여기서는 중간에 십삼十三이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위로는 ‘천석泉石’ 혹은 ‘석천石泉’으로 읽히는 인장이 보인다(도2-2). 이는 화가의 호이거나 화가가 속한 공방의 이름일 것이라 추정된다. 3폭 가장 하단에는 빙렬氷裂 자기가 한 점 있고 꽃이 한 송이 꽂혀 있다. 책거리 4폭의 가장 상단에는 ‘서書’라고 적힌 책이 총 10권 쌓여 있다. 이는 아마도 《서경書經》을 의미할 것이다. 그 위로 복숭아 두 과가 놓인 접시가 있다. 4폭 중단에는 ‘시詩’라고 적힌 책이 10권 있어서 이는 아마도 《시경詩經》일 것이다. 4폭 하단에는 3폭 하단과 마찬가지로 빙렬 자기가 있고 연꽃 가지가 꽂혀 있다. 5폭 상단에는 불수감佛手柑 두 과가 놓인 접시 아래로 10권짜리 책이 한 질 쌓여 있는데 책마다 각각 ‘중용中庸’, ‘용해庸解’, ‘대학大學’, ‘학해學解’, ‘연의演義’라 적혀 있다. 중용과 대학을 언해본으로 만든 것을 각기 중용언해, 대학언해라 칭했는데 이를 줄여서 용해와 학해라고 불렀다. 5폭 중단에는 삼족 향로와 함께 맹자孟子와 맹자연의孟子演義, 논어論語와 논어연의論語演義가 총 20권 쌓여 있다. ‘연의’란 내용을 풀고 주해를 달아놓은 것을 말한다. 5폭 하단에는 책갑冊匣이 열려 있는 춘추春秋 6권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6폭 상단에는 산호가 꽂힌 삼족 향로와 태극 문양이 그려진 필통이 보인다. 6폭 중단에는 ‘천문天文’이라 적힌 책과 여의如意가 놓여 있는데 여의 위로 마치 책이 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6폭 하단에는 귤 두 과가 놓인 접시와 책갑에 든 책 10권, 매화가 그려진 화병이 놓여 있다.


도3 <책거리> 4폭 병풍, 지본채색, 각 99×27.2㎝, 보스턴미술관 소장



그런데 이 작품과 매우 유사한 책거리 작품이 보스턴미술관에도 전한다(도3). 보스턴미술관 소장품은 현재 병풍 네 폭이 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 본래는 이보다 규모가 더 큰 병풍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 또한 책가가 있지만 소실점과 음영의 묘사가 미숙하다. 특히 책갑을 둘러싼 비단 장정이 브루클린미술관 본과 동일한 것이 눈에 띈다(도2-3, 도3-1). 검은색과 푸른색 책갑에 운문雲紋이 그려져 있고 붉은색 책갑에 금빛 안료가 칠해진 것 또한 동일하다. 또한 작품 전반에 중국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 문사들의 문집들이 대거 포함된 것 또한 브루클린 소장본과 같은 점이다. 보스턴미술관 본에 그려진 책에는 ‘병곡炳谷’, ‘지불智弗’, ‘미수眉叟’, ‘한음漢陰’, ‘동호東湖’, ‘강목綱目’, ‘어양魚洋’, ‘수호水湖’, ‘강제康濟’, ‘남화南華’라는 글씨가 보인다. 아울러 서화 유묵 두루마리도 여러 점 보이는데 거기에 글씨를 쓴 서체도 브루클린미술관 본과 일치한다(도2-1, 도3-2). 두 작품 모두 책거리의 주인이 중국 및 조선의 고금 명저와 서화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아마도 두 작품은 동일한 공방에서 제작했거나 같은 작가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도4 (오른쪽부터) 낙화 <도화>, <연꽃>, <국화>, <난초>, 지본낙화, 각 98.3×30.4㎝, 브루클린미술관 소장


낙화 작가 백학기의 작품

두 번째로 소개할 낙화는 현재는 4점이 따로 떨어져 있지만 본래 하나의 병풍이었을 것이다. 각각 도화桃花, 연꽃, 국화, 난초를 그렸는데 난초를 제외한 나머지에는 새가 앉아 있다.

도5 수대조壽帶鳥

보통 화조화를 그릴 때 새는 두 마리를 한 쌍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에는 유독 새가 한 마리씩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화에는 꼬리가 유달리 길게 뻗은 수대조壽帶鳥가 앉아 있다(도5). 작가는 자신의 이름과 호가 적힌 백문방인과 주문방인 두 과를 찍고 매 폭 ‘운포雲浦’라는 호를 남겼기 때문에 이것이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낙화 화가인 백학기白鶴起(생몰년 미상)의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매우 유사한 백학기의 작품이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도 전하고 있다(도6).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또한 꽃, 소나무, 대나무, 매화, 모란, 새 등을 낙화로 그린 10폭 병풍이다. 화면의 상단과 하단에 각기 ‘화화火畵’라 새겨진 나뭇잎 모양의 인장과 화제畵題가 있고, 화폭 하단에 ‘운포雲浦’ 또는 ‘백운포白雲浦’라 쓰여 있다. 그 아래에는 브루클린미술관 소장본과 마찬가지로 백문방인과 주문방인이 찍혀 있다. 특히 3폭의 난초, 6폭의 연꽃, 9폭의 국화는 브루클린미술관 본과 완전히 일치하는 구성을 보인다. 난초는 좌우가 바뀌어 있긴 하지만 연꽃과 국화는 새의 위치만 조금 다를 뿐 거의 동일한 구성을 보여 백학기가 같은 초본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도6 <백학기 낙화> 10폭 병풍, 지본낙화, 각 96.4×27.3㎝,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운포 백학기는 낙화 그림을 그린 작가의 계보 중에서도 가운데 시기에 위치한다. 현대까지 계보가 이어지는 낙화 작가는 19세기 전반기에 주로 활동한 박창규(朴昌珪, 1796~1861년 이후)를 시조로 본다. 박창규는 일찍이 낙화 기법으로 이름을 얻어 헌종(憲宗, 1834~1849년 재위) 앞에서 시연을 한 적도 있다. 이후 박창규의 종형제와 자손들에 의해 낙화 기법이 독점적으로 전승되었다. 아울러 이 가문이 전주 일대에서 키워낸 백남철白南哲과 백학기가 그 명맥을 유지했다. 백학기의 생몰년은 분명치 않지만 현대 낙화 작가로 이어지는 계보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활발히 활동했던 낙화 작가로는 백학기 외에도 설봉 최성수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의 계보를 잇는 이가 바로 전원 전창진이다. 전창진은 1972년 서울 종로에서 한국낙화연구소를 차려 후학을 길렀고 그중 하나가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烙畵匠인 김영조(金榮祚, 1953년생)이다(도7). 민속촌이나 관광지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낙화 작품이 국내에서 미술관에 들어갈 기회를 얻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예술 작품으로서 후한 평가를 받기 어려웠던 시절,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태평양 건너 미술관에 둥지를 튼 낙화 작품이 따뜻한 위안을 건네는 듯하다.


도7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 김영조


김수진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저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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