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㉛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 한국민화
화조영모도, 화조괴석도, 제주문자도

지난 호에 이어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abody Essex Museum) 소장 한국 민화를 석 점 소개하고자 한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2001년 소장한 작품으로, 리아 스나이더와 익명의 기부자가 뜻을 모아 기증한 작품들이다.
박물관이 한국 민화를 수집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리아 스나이더의 삶과 더불어 각 작품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글 김수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도1 리아 스나이더
(Lea Ruth Sneider,
1925~2020)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의 한국 유물 수집에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면 한국 ‘민화’의 수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는 리아 스나이더(Lea Ruth Sneider, 1925~2020)라 할 수 있다(도1). 스나이더 여사는 2020년 1월 31일에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에 이달이 서거 1주기에 접어든다. 스나이더 여사는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했던 리처드 리 스나이더(Richard Lee Sneider, 1922~1986)의 부인으로 1974년 9월부터 1978년 6월까지 4년간 한국에 체류한 적이 있다. 사실 리처드 스나이더는 일본어에 능통하여 오랜 기간 일본에 근무한 일본통으로 평가받던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 전쟁 중 인천상륙작전 직후 얼마간 한국에 체류한 이력을 시작으로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로서 한미 통상, 한미 군사 동맹, 코리아게이트 사건 등을 담당하며 한국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리처드 스나이더는 세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인 1944년에 리아 스나이더와 결혼했다. 미시간 대학에서 음악과 철학을 전공한 스나이더 여사는 일본, 파키스탄, 한국 등 남편의 복무지를 따라 다니며 피아니스트로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외교관의 아내로서 여러 가지 역할을 했다. 스나이더 여사는 한국 체류 시절 도자기, 목공예, 회화, 불교 조각, 무구巫具 등 다양한 한국 유물을 모았다. 특히 조자용(趙子庸, 1926-2000)의 민화론에 감화를 받아 민화를 모으기 시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도2).
관광 산업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재학, 한국학, 미술사학과 같은 학문 체계가 지금 같지 않았던 1970년대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칠 수 있는 인물 자체가 매우 드물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이래 한국에서 민화 운동을 펼치던 조자용은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미술과 문화를 가르치며 길잡이 역할을 하곤 했다. 특히 조자용이 운영했던 에밀레박물관에서는 평화봉사단(Peace Corps) 소속의 미국인들과 미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정기적인 영어 강의가 열렸다.

도3 케이 블랙
(Kay E. Black,
1928-2020)

그때 조자용의 도움으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을 넓히며 작품을 수집하고 연구한 이들 중에 리아 스나이더와 케이 블랙(Kay E. Black, 1928-2020) 여사가 있었다(도3). 블랙 여사 또한 1973년 한국에서 조자용을 만난이래 평생을 책거리 연구에 매달렸으며 공교롭게도 연구 내용을 집대성한 책이 출간된 직후인 2020년 여름 타계했다.
스나이더 여사는 1978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서울뿐 아니라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유물을 수집했다. 미국에 돌아간 1979년 이후로는 한국과 일본에서 민예품을 수집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 한·일 미술을 알리는데 매달렸다. 1983년에는 브루클린박물관(Brooklyn Museum) 아시아 미술 큐레이터인 로버트 모즈(Robert Moes)와 함께 뉴욕에서 라는 전시를 개최했으며 뉴욕 시내에 ‘Lea Sneider Asian Art’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미술 전문 골동상을 열어 30년 넘게 경영하기도 했다. 스나이더 여사는 이후로도 꾸준히 한국을 방문하여 유물을 수집했다.
그러던 중 2001년에는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서 한국 민화를 구입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화조영모도>, <화조괴석도>, <제주문자도> 세 점은 모두 2001년에 리아 스나이더와 익명의 기부자가 뜻을 모아 기증한 작품들이다.


도2 1976년 조자용이 하와이대학교에서 민화를 강의하는 모습



도5 <화조괴석도>, 지본채색, 184×983㎝,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Courtesy of the Peabody Essex Museum)

상서와 길상, 보는 재미까지 두루 갖춘 우리 민화들

먼저 <화조영모도>에는 화조, 영모, 어해가 고루 섞여 있다. 오른쪽부터 학, 꿩, 원앙, 사슴, 봉황, 토끼, 금계金鷄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암컷과 수컷 한 쌍으로 그려졌다(도4). 그 배경 또한 모란, 작약, 장미, 연꽃, 단풍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석류, 영지까지 부귀와 다산을 상징하는 식물들이 가득하다. 오른쪽에서부터 4번째 폭에 보이는 물고기와 매의 도상만이 다소 생경한 조합일 뿐 모두 상서祥瑞와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것들이 결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화조괴석도>는 탐스러운 모란을 배경으로 한 쌍의 새가 모든 화폭에 내려앉은 모습으로 꾸며졌다(도5). 모란 나무 위쪽은 꽃봉오리들이 맺혀 있고 아래로 갈수록 만개한 꽃이 가득하여 화려함이 강조되었다. 서로를 향해 구애하고 있는 한 쌍의 새들은 모두 서로를 바라보거나 구도상의 대칭을 이루며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짙은 남색으로 채색된 괴석이다. 괴석은 색의 농담濃淡으로 음영이 표현되었고 녹색 계열의 이끼가 뒤덮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 괴석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정 형상을 찾을 수 있다. 토끼, 닭, 개, 오리 모양의 괴석은 매 폭 하나의 쌍을 이루며 새들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바라보거나 대칭의 구도를 이룬다. 한참을 들여다보다보면 ‘화조괴석도’가 어느 순간 ‘화조영모도’로 보이는 환시幻視에 이르게 된다. 착시 효과를 통해 추상적 도상 속에서 형상을 찾아내는 재미역시 민화에서 놓쳐선 안 될 ‘보는 맛’이기도 하다.

도6 <제주문자도>, 지본채색, 162×396㎝,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Courtesy of the Peabody Essex Museum)



도7 <제주문자도>, 지본채색, 각99×36㎝,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마지막으로 <제주문자도>는 제주도의 효제孝弟 문자도 가운데 가장 많이 전해지는 3단 구성을 보인다(도6). 제주문자도의 경우 효제충신예의염치孝弟忠信禮義廉恥 8개의 문자를 8폭의 병풍 중심에 쓴 후 가운데 4~5폭 상단에 사당祠堂을 그리고 하단에는 술과 음식을 포함한 제수祭需를 그린 사례가 많다. 다른 폭에는 연꽃, 이름 모를 꽃과 풀, 물고기, 오리, 새를 그린다(도7). 이 작품 또한 4~5폭 상단에 사당, 하단에 술병을 두 병씩 둔 상이 놓여 있다.

도8 가다랑어

나머지 여섯 폭의 상단과 하단에는 새, 식물, 물고기가 그려져 있다. 대부분의 제주문자도는 색이 매우 단조로운 편인데 이 작품 또한 푸른 안료를 중심으로 붉은 안료와 누르스름한 안료를 부분적으로 덧댄 정도로 완성됐다. 작품 하단에 보이는 물고기들은 참다랑어에 비해 몸이 날씬하며 푸른빛이 강하게 도는 것이 제주산 가다랑어로 보인다(도8).
리아 스나이더와 리차드 스나이더 부부의 아들인 다니엘 스나이더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 ‘우연히 동양학자가 된 사람들(Accidental Orientalists)’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스나이더 부부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일지언정 이들의 삶을 추모할 때 한국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필연으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김수진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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