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㉚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 한국미술품




1799년에 개관한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 미국 내의 기관 중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 미술을 수집한 곳이기도 하다. 이달에 소개할 유물은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소장한 <요지연도 8폭 병풍>과 <평안감사향연도>이다.
글 김수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abody Essex Museum)은 미국 메사추세츠 주州의 세일럼(Salem)이라는 도시에 있다(도1). 세일럼은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이 정착하여 만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1692년 마녀사냥과 1850년에 발표된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쓴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활동지로도 유명하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은 1799년에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220년 넘게 운영되고 있어 미국에서 지금까지 운영되는 박물관 중 가장 오래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한국 유물이 1,800점이 넘게 소장돼 있으며 2003년부터는 단독 한국실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 미술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882년 한미 수교가 이루어진 이듬해인 1883년부터이다. 이는 미국국립박물관이었던 스미소니언(Smithsonian Institution)이 1884년 3월부터 1885년 4월까지 존 버나두(John Baptiste Bernadou, 1858~1908)를 파견하여 공식적인 차원에서 한국 유물을 수집한 것보다 1년 이상 앞선 것이다. 따라서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미국 내에서 가장 먼저 한국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도1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abody Essex Museum

묄렌도르프와 유길준을 통해 한국 유물을 대거 구입한 에드워드 모스

도2 에드워드 모스
(Edward S. Morse, 1839~1925)

당시 박물관장이었던 에드워드 모스(Edward S. Morse, 1839~1925)는 본래부터 아시아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이미 중국 및 일본의 유물을 수집하고 있었다(도2). 미국이 조선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기 시작하자 모스는 당시 조선에 파견되어 있던 독일인 고문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 1848-1901)를 통해 한국 유물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한편 모스는 직접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그곳에서 여러 한국인들을 만나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모스의 청탁을 받은 묄렌도르프는 1883년 처음으로 225점의 한국 민예품을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보냈다.
이후 모스의 한국미술품 수집 프로젝트가 결정적으로 힘을 받게 된 계기는 모스가 1883년 미국을 방문했던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라는 인물을 만나면서였다. 조선은 1883년 5월에 서방 세계로 최초의 외교 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했는데 유길준은 보빙사의 일원이었다. 반 년간의 미국 견학을 마치고 1883년 11월 다른 사절단이 조선에 돌아올 때 유길준은 미국에서의 수학修學을 위해 잔류를 결정했다. 유길준은 얼마간 모스의 집에 머물다 독립하여 19개월간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모스는 유길준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조선 왕실은 1893년에 처음으로 외국 엑스포에 참가했는데 이것이 시카고 만국 박람회(Chicago World Columbian Exposition)이다. 이때 출품된 한국 유물 중 일부는 펜실베니아대학, 스미소니언 등으로 흩어졌고, 일부는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입수되었다.


(위) 도3-1 도3의 부분. 우측 축연 장면 중 주목왕周穆王
(아래) 도3-2 도3의 부분. 좌측 해상군선 중 문수보살 및 보현보살

조선 왕실 하사품으로 추정되는 요지연도

이달에 소개할 유물은 <요지연도 8폭 병풍>과 <평안감사향연도> 두 가지이다. 먼저 <요지연도 8폭 병풍>은 허버트 나다이(Mrs. Herbert Nadai)와 토마스 빌(Mr. Thomas Beale, Jr)에 의하여 기증된 작품이다(도3). 두 사람은 1905년 대한제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에드윈 모건(Edwin Vernon Morgan, 1865~1934)의 자손들이다(도4).
모건은 1892년 해양관세사무국에서 일할 때 조선 왕실과 관련한 일에 관여한 바 있으며 1899년부터 1905년까지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만주국의 다롄[大連]에서 근무했다. 1905년 3월 미국 공사公使로 서울에 부임했는데 11월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조선이 외교권을 잃자 그해 12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는 1981년에 모건 컬렉션 70여 점이 한꺼번에 기증되었다. 대부분 조선의 저고리, 바지, 버선, 망건, 가죽신을 포함한 복식류와 민예품이며 소수가 일본 칠기漆器 및 중국 도자기이다(도5). 모건이 정확하게 <요지연도>를 언제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지연도>는 다른 모건 컬렉션에 비해 월등하게 수준이 높은 작품이다. 비록 병풍의 장황은 일본식으로 바뀌어 있으나 우측에 축연祝宴 장면을 배치하고 좌측에 군선群仙들이 해상을 통해 속속 육지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린 전형적인 요지연도의 구성을 보여준다(도3-1, 도3-2). 조선 왕실에서는 서양인 외교관에게 그림을 하사하는 일이 자주 있었고, 이 작품의 짜임새와 안료의 수준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요지연도> 또한 모건이 직접 조선 왕실에서 하사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왼쪽) 도4 에드윈 모건(Edwin Vernon Morgan, 1865~1934)
(오른쪽) 도5 <백동자문 청화백자>, 경덕진景德鎭 제작 추정

조지 피바디가 타계한 장인과 공동 명의로 기증한 평안감사향연도

<평안감사향연도>는 조지 피바디(George Augustus Peabody, 1831~1929)와 그의 장인이었던 윌리엄 엔디콧(William Cowninshield Endicott, 1826~1900)의 이름으로 1927년에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기증되었다(도6~도8). 윌리엄 엔디콧은 하버드대학과 하버드로스쿨을 졸업한 후 세일럼 시에 소속된 변호사로 경력을 쌓은 후 국회와 행정부의 여러 요직을 거쳤다. 1862년에는 미국 골동품 협회(American Antiquarian Society)를 창립하여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일에 기여하기도 했다. 윌리엄 엔디콧은 1900년에 타계하면서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재산의 일부를 기부했는데 이 펀드를 기반으로 훗날 사위인 조지 피바디가 <평안감사향연도>를 구입하여 장인과 공동명의로 기증한 것으로 보인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1883년 이래 한국미술품을 대량으로 구입한 해는 1913년, 1916년, 1927년, 1930년, 1938년이다. 이 거래는 모두 일본의 골동상인 야마나카 상회(Yamanaka & Co.)의 보스턴 지부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야마나카 상회는 1894년에 뉴욕에 진출한 이래 1898년부터 보스턴에 지부를 설치하여 미국 내 아시아 컬렉션의 유통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상 1927년 <평안감사향연도>의 유통에도 야마나카 상회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6 <평안감사향연도>, 견본채색, 각 128×58㎝,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 Courtesy of the Peabody Essex Museum. Photography by Walter Silver.



(왼쪽) 도7 조지 피바디(George Augustus Peabody, 1831~1929)
(오른쪽) 도8 윌리엄 엔디콧(William Cowninshield Endicott, 1826~1900)


수려한 자연 경관과 화려한 풍류가 충실히 묘사된 수작

이 유물은 본래 병풍이었을 것이 확실하지만 현재는 8장면의 낱장 그림으로 전한다. 사실상 본래의 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는데 대략의 순서를 꾸며 보면 오른쪽부터 첫 폭은 평양에 도착하여 평안감사에게 인사를 전하는 장면, 두 번째는 평양성에 입성하는 행렬 장면, 세 번째는 선화당에서 향연을 베푼 장면, 네 번째는 선화당에서 행사를 가지는 장면, 다섯 번째는 밤에 연광정에서 잔치를 즐기는 장면, 여섯 번째는 부벽루에서 베푼 향연 장면, 일곱 번째는 대동강을 건너는 장면, 여덟 번째는 야간에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묘사가 정교하고 안료의 품질이 좋다. 심지어 곳곳에 금분金粉 안료가 사용되는 등 작품 수준이 상당히 높다. 다만 인물의 비율이나 세부 도상을 고려할 때 19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위) 도6-1 도6의 부분. 대동강을 건너는 장면
(아래) 도6-2 도6의 부분. 대동강을 건너는 관군官軍



(위부터)
도6-3 도6의 부분. 평양성에 입성하는 행렬
도6-4 도6의 부분. 연광정 야간 연회에서의 검무劍舞 장면
도6-5 도6의 부분. 선화당의 관서순죽보문關西巡竹菩門과 신장상



평양은 평안도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감영監營이 소재했던 곳으로 조선시대 내내 행정적 요지였다. 아울러 서울에서 출발한 조선의 사절단과 북경에서 들어오는 중국 사행단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거점 도시로서 외교사적 의의가 높았다. 이는 조선과 중국 간 교역의 대상이 된 모든 물건이 이 도시를 거친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평양은 조선 북부 지역 최대의 상업도시라 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대동강과 재령강 하류가 만나는 평양의 지리적 입지, 서해안과 근접하여 육운·수운·해운이 모두 용이하다는 점도 큰 몫을 했다. 평안감사는 평안도 및 함경도의 조세를 중앙으로 상납하지 않고 접경 관리 및 수비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이 또한 특권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인 여유와 넉넉한 물산은 전국의 명기名妓가 평양으로 몰리게 했고 이로 인해 평양은 문화와 풍류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 <평안감사향연도>에도 수려한 대동강 경관을 배경으로 평안감사가 베푼 화려한 잔치와 풍류의 모습이 고루 담겨 있다. 대동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는 배를 탄 이, 음식을 파는 이, 배에 실린 말들을 빼곡하게 묘사하여 바삐 돌아가는 도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도6-1, 도6-2). 평양성으로의 입성 장면은 장대한 행렬의 규모를 보여주며(도6-3), 야간에 연광정에서 열린 연회 장면과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는 장면은 평양 풍류의 현장을 보여준다(도6-4, 6-6). 선화당 입구인 관서순죽보문關西巡竹菩門에는 신장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도6-5).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의 큐레이터였을 당시 <평안감사향연도>를 세상에 처음 알린 수잔 빈(Susan Bean)은 “<평안감사향연도>가 담고 있는 내용이 풍성하고 그림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유물을 다각도에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도6-6 도6의 부분. 야간에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는 모습



김수진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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