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㉘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소장 한국미술품 Ⅲ

이달에는 현왕도現王圖 및 화훼괴석도와 함께 한국의 병풍을 담은 채색 과슈(gouache) 그림 1점과 일본식 다색판화 1점을 소개하며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퍼시픽아시아박물관(USC Pacific Asia Museum: 이하 퍼시픽아시아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한 연재를 마치도록 하겠다.
– 글 김수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단출하면서도 중후한 현왕도

맨 먼저 살펴볼 <현왕도>의 주인공인 현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시왕[十王] 가운데 다섯 번째 왕인 염라대왕을 말한다(도1). 중국 당나라 말기에 찬술된 불교 경전인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에 따르면 현왕은 석가모니로부터 다음 생에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가 되리라는 수기受記를 받은 바 있다. 이로 인해 염라대왕은 다른 시왕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한 지위를 누리며 현왕이라 불렸다. 아울러 보통의 시왕은 사람이 죽은 후 7일째부터 망자에 대한 심판을 시작하는 데에 반해 현왕은 3일째에 망자를 심판하여 그를 빠르게 구제해 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시왕 중에서도 유독 현왕만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봉안되는 시왕도에도 5번째 그림에 현왕이 망자를 심판하는 모습이 묘사되는데 현왕도에서는 시왕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옥 장면이 생략되곤 한다.

도2 <현왕도>, 견본채색, 144.5×121.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퍼시픽아시아박물관 본도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망자의 모습이 생략된 채 오직 현왕과 권속眷屬만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현왕도라 할 수 있다. 화면 상단에 있는 현왕은 병풍을 배경으로 죄인을 심판할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현왕은 머리에 경전을 올려놓은 책관冊冠을 쓰고 있으며 붉은 관복을 입고 각대角帶를 차고 있다. 그 앞에는 녹사錄仕가 종이와 붓을 들어 망자의 죄를 기록하고 있으며 판관判官은 손에 홀笏을 쥐었다. 보통의 현왕도에는 판관, 녹사, 사자使者, 동자 등의 권속이 빼곡하게 등장하는 데에 반해 이 작품은 세 인물만 단출하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본 <현왕도>의 경우도 병풍을 두르고 책관을 쓴 현왕과 함께 녹사와 판관이 함께 등장하는 구성에서는 퍼시픽 본과 동일하다(도2). 그러나 화면 상단을 가득 메운 동자, 판관, 천녀天女라는 권속 구성에서는 퍼시픽 본과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퍼시픽 본은 녹색과 붉은색의 발색을 차분하고 중후하게 살리고 있어 안정감이 돋보인다.

도3 <화훼괴석도>, 견본채색, 168.6×301㎝,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소장



도4 <화훼괴석도> 대련, 지본담채, 각123×46㎝,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채소류가 등장하는 화훼괴석도

두 번째 소개할 작품은 화훼괴석도 병풍이다(도3). 총 8폭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매 폭에 괴석怪石과 화훼를 어우른 수작秀作이다. 가장 오른쪽 1폭에는 목련, 5폭에는 매화, 6폭에는 원추리, 7폭에는 모란, 8폭에는 국화를 그렸다. 모든 꽃은 흰색과 붉은색으로 처리 되었으며 괴석에는 녹색의 태점을 찍어 장식적인 효과를 배가했다. 이런 식의 화훼괴석도 가운데에 퍼시픽 본과 유사한 작례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살던 운현궁雲峴宮에서 수습된 바 있다. 운현궁 안에는 노락당老樂堂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의 도배지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벽장문에 바른 도배지가 총 11점 발견된 것이다. 이때 <화훼괴석도 대련> 한 쌍, 화조도, 죽조도竹鳥圖, 송학도松鶴圖가 수습되었다. 그 중 <화훼괴석도 대련>은 괴석을 배치하고 두세 종류의 꽃으로 장식해 구성했다는 점에서 퍼시픽 본과 꼭 닮았다(도4). 채색을 수채화풍의 담채淡彩로 마무리했다는 점 또한 유사하다. 특이한 점은 퍼시픽아시아박물관 본 병풍 2폭과 4폭의 하단에는 순무. 수선화 류의 구근식물, 배추, 무, 양파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채소류는 18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최북(崔北, 1712-1760), 강세황 (姜世晃, 1713–1791),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단독 소품이 전하는 바가 있지만 화조 계열의 병풍에 도상으로 등장하는 예는 드물다. 다만 케이옥션에서 2016년 12월에 출품된 <화훼도 8폭 병풍>에 유사한 도상이 등장하여 주목된다(도5). 케이옥션 본 병풍의 5폭에는 순무와 수선화로 추정되는 구근식물, 7폭에는 무와 배추가 보이는데 특히 무청과 배추 뿌리까지 자세하게 묘사된 점이 눈에 띈다. 채소류는 기명절지도에도 종종 등장하는 도상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전통적인 화훼도가 다른 화목의 도상과 결합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도5 <화훼도 8폭 병풍>, 지본담채, 각76×35㎝, 케이옥션 출품작



도6 엘리자베스 키스, <의례 복식 안에서 고상한(Gentle in Ceremonial Dress)>,
지본채색, 33×34㎝,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소장

서양인이 그린 조선 화훼도 병풍

마지막으로 소개할 두 작품은 ‘그림 속 그림’으로 조선의 화훼도 병풍류의 묘사를 포함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두 점은 모두 한국을 방문했던 서양인에 의해 제작됐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먼저 <의례 복식 안에서 고상한(Gentle in Ceremonial Dress)>은 1920년에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라는 인물에 의해 제작된 과슈 그림이다(도6). 키스는 1887년 스코틀랜드 가계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란 여성이다. 그녀는 스물여덟이 되던 1915년 당시에 도쿄에서 장기 체류 중이던 언니 부부의 초청으로 처음 일본을 방문했다. 이후 그녀는 40년 이상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이국의 풍경과 관습을 화폭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을 방문하기 전까지 이렇다 할 미술교육은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나 키스는 1915년부터 일본, 중국, 한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여 여러 차례 전시를 개최했다. 조선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9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로 추정되는데 이때 키스는 몇 달간 조선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다양한 풍광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듬해인 1920년 5월 키스는 도쿄의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처음 한국을 여행하며 그린 작품을 전시했다. 이후 키스는 일본의 판화가 와타나베 소자부로(渡辺庄三郎, 1885-1962)로부터 다색판화를 배우게 되고, 이를 계기로 다시 1921년 6월 도쿄에서 조선의 풍경을 담은 다색판화 전시를 개최했다. 이후로도 영국과 아시아를 오가며 에칭과 목판화를 배운 키스는 아시아의 다양한 정경을 판화로 남겼다. 퍼시픽아시아박물관 본에는 한복을 입은 여인 뒤편으로 봉황, 공작, 꿩, 연꽃, 국화가 묘사된 화조화 병풍이 묘사돼 당시 조선 상류층 여성의 복식과 병풍을 잘 보여준다.

도7 파울 자쿨레, <신랑, 서울, 한국 Le Marie, Seoul, Coree>, 다색판화, 39×28㎝,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소장



도8 파울 자쿨레(Paul Jacoulet, 1900-1960)

이와 함께 조선의 병풍을 포착한 또 하나의 작품은 파울 자쿨레(Paul Jacoulet, 1900-1960)가 1950년에 제작한 <신랑, 서울, 한국 Le Marie, Seoul, Coree>이다(도7). 자쿨레는 프랑스 출신으로 세 살 무렵인 1899년에 부모를 따라 일본에 이주하여 거의 평생을 일본에서 보냈던 인물이다(도8). 자쿨레는 1920년부터 일본 주재 프랑스대사관 근무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93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색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자쿨레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21년에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어머니인 잔느 자쿨레(Jeanne Jacoulet)가 당시 경성제국대학 의과 대학에 근무하던 나카무라 히로시[中村拓]와 1928년 재혼을 하면서이다. 자쿨레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하여 1929, 1930, 1932, 1934, 1938년에 한국을 방문했으며 1934년에는 서울 미쓰코시백화점에서 ‘폴 자쿨레 판화전’을 개최한 바 있다.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소장 <신랑, 서울, 한국>에는 연화蓮花와 물새의 도상이 포함된 화조 병풍이 펼쳐져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와 파울 자쿨레의 작품은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 특유의 병풍 문화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김수진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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