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㉗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소장
한국미술품 Ⅱ 묵포도도&호렵도

이번 시간에 다룰 작품은 최석환의 묵포도도 단품과 왕공 귀족이 등장하는 호렵도로,
당대의 미감과 관심사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각 작품들을 들여다보며 19세기 화단의 역사적, 문화적 풍경을 두루 살펴보도록 한다.

글 김수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생명력 넘치는 묵포도도

이달에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퍼시픽아시아박물관(USC Pacific Asia Museum, 이하 퍼시픽아시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최석환의 포도도 단품과 작자미상의 12폭 대형 호렵도 병풍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최석환(崔奭煥, 1808-1883년 이후)의 <묵포도도墨葡萄圖>는 최석환이 한평생 장기長技 삼아 그렸던 수묵 포도도이다(도1). 최석환은 19세기에 현재의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에 거주하며 그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직업화가이다. 최석환의 작품을 소장했던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최석환은 이미 당대에 그 지역을 넘어서서 상당한 화명畫名을 얻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최석환의 작품은 50점이 넘게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꾸준하게 국내외 경매에 소개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퍼시픽아시아박물관뿐 아니라 프리어갤러리(Freer Gallery of Art),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디트로이트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 등에 최석환 포도도가 소장되어 있다. 이는 그의 포도도가 누렸던 높은 인기와 상업적 수요를 방증한다.

도2 최석환, <포도도, 파초도>, 지본수묵, 각 106.5×36.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최석환의 포도도 가운데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구불구불한 넝쿨이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며 뻗어나가는 병풍 형식이다. 이는 초룡草龍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포도나무 덩굴의 용트림을 생생하게 살린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작품은 절지折枝가 이루어진 포도의 모양이나 그림의 크기로 볼 때 본래부터 단품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절지형 포도도 또한 최석환이 자주 그리던 것으로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본과 거의 유사한 형태이다(도2). 국립중앙박물관 본은 파초도와 함께 하나의 쌍으로 그려졌는데 포도알을 진한 먹으로 강조하면서도 포도잎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여 역동성을 강조한 점이 퍼시픽아시아박물관 본과 유사하다. 병풍에서처럼 넝쿨을 강조할 수 없는 만큼 사방으로 뻗은 잎사귀가 마치 그 생생한 기세와 생명력을 대신한 느낌이다. 화면 오른편에는 ‘當年若得傳方法,博取涼州亦一奇, (포도가) 한창일 때 그것을 나눠줄 방법을 얻고자 하면, 양주(의 포도)를 얻어내는 것이 놀라운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시구가 보인다. 이는 원나라 때 활동했던 홍희문洪希文(1282-1366)이 쓴 칠언 율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양주涼州는 중국 감숙성과 청해성 일대를 칭하는데 이곳은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아 포도 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중국 한나라, 송나라, 원나라 때에는 포도를 읊은 시문에 양주가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석환이 남긴 포도도는 모두 채색이 없이 오직 먹의 농담濃淡만으로 탐스러운 포도 알갱이, 풍성한 포도 잎사귀, 생명력 넘치는 포도 덩굴을 표현하고 있다. 최석환의 작품은 이러한 포도 그림에 걸맞는 제시題詩가 곁들여지는 게 보통인데 이 시들은 대개 중국에서 포도를 읊은 시문의 일부를 가지고 온 경우가 많다. 최석환 스스로 시를 쓸 만한 재능은 갖추지 못했던 것 같지만 수묵으로 그린 그림과 포도시는 하나의 쌍으로 어우러지며 최석환의 작품세계를 빛내고 있다.

도3 <호렵도 12폭 병풍>, 견본채색, 115.6×430㎝,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소장

황실 여성이 등장하는 호렵도 병풍

퍼시픽아시아박물관에서 또 하나 눈 여겨 볼만한 것은 대폭의 호렵도 병풍이다(도3). 이 작품은 현재 4폭짜리 병풍 3점으로 전하고 있지만 본래는 너비 430㎝인 12폭짜리 연폭 병풍이었을 것이다. 여느 호렵도와 마찬가지로 만주족 복식을 입은 호인胡人들이 산과 들에서 말을 타고 사냥하는 장면을 그렸다. 다만 좀 특이한 것은 호인들의 화려한 복식과 의장을 갖춘 행렬, 이들이 빠져나온 화려한 건축물을 통해 이들이 일반 사냥꾼이 아니라 왕공王公의 신분을 가진 이들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청나라 황족들은 피서산장避暑山莊이나 목란위장木蘭圍場과 같은 별궁別宮을 조성하여 여름과 겨울에 휴식을 취하는 한편 사냥을 즐겼다. 이들에게 있어 수렵은 만주족의 긍지를 확인하고 위상을 높이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항시 기마술 연마와 사냥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황실 여성들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말을 타고 사냥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작품 속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건물은 황실의 별궁일 것으로 보이며 화면 중간에 보이는 행렬은 황실 여인을 포함한 청 황실 구성원이라 짐작할 수 있다(도3-1). 화면은 왼쪽으로 옮겨가며 사냥 장면과 포획 장면을 묘사했다. 사냥 장면에서는 노루, 사슴, 호랑이, 표범이 보이며 하늘에는 꿩, 땅에는 원숭이가 쌍쌍이 지나가고 있다. 원숭이를 그릴 때는 보통 나무에 매달린 장면을 묘사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마치 사람처럼 걷는 모습이 그려져 흥미롭다(도3-2).

(왼쪽)도3-1 도3의 부분. 그림 속 인물들은 황실 여인을 포함한 청 황실 구성원으로 추정된다.
사냥에 함께 참여한 여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른쪽) 도3-2 도3의 부분

조선 후기에는 계층을 막론하고 호렵도의 인기가 꽤 높았다. 조선 왕실에서는 예조禮曹에서 일반 도화서圖畫署 소속의 화원화가를 30명 정도 뽑았고 다시 이들 중 10명 정도의 정예 화가들을 선발했다. 이 정예 화가를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궁궐 밖의 도화서 화원화가들과 달리 항시 규장각에서 왕의 명을 기다리며 대령待令했기 때문이다. 차비대령화원은 연간 춘하추동 사계삭四季朔에 매 삭마다 3번씩 시험을 봐야만 했다. 이 시험에 출제된 화제 가운데 호렵도는 19세기 초반에 집중적으로 출제된 바 있다. 이를 통해 당시 화원화가들이 호렵도를 그리는 훈련을 충분히 받았으리라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정조대 최고의 화원화가로 꼽히는 김홍도 또한 호렵도에 능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은 서유구徐有榘(1764-1845)가 김홍도의 호렵도에 대해 남긴 글이다.

우리 집에는 오래전부터 김홍도가 그린
음산대렵도가 있다.
견본으로 여덟 폭 연결 병풍으로 되어 있다.
거칠고 누런 광야에서 활시위를 울리며
짐승을 쫓는 모습이 혁혁하여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김홍도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 평생의 득의작이니 다른 사람이 이것을 본떠서
그린 것이 있다면 밤의 어두움 속의 물고기 눈이라도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余家舊有 金弘道陰山大獵圖 絹本八幅連作一屛
荒茅曠野 鳴弦馳逐之狀 奕奕之生 弘道自云
平生得意筆 他人縱有彷放 魚目夜光一見可辨]

이 글은 김홍도가 그린 호렵도가 8폭 연결 병풍으로 김홍도 스스로 ‘득의필得意筆’이라 평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19세기 후반 궁중 나인들이 작성한 병풍 목록에도 동궁전과 대전에서 호렵도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나온다. 조선 왕실에서 호렵도는 19세기 내내 큰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여러 이유로 민간에서도 호렵도의 인기는 높았다.
호렵도 속 만주족이 사냥하는 장면은 조선에서 보기 어려운 이민족의 풍속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만주족 여인들의 모습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퍼시픽아시아박물관본처럼 사냥에 함께 참여한 여인들도 그려지지만 국립민속박물관본에서처럼 가마에 타고 사냥대를 따라나선 여인들이 그려진 경우도 있었다(도4. 도4-1). 이러한 모습은 조선인들이 품었던 머나먼 땅에 대한 호기심과 이국취미를 보여준다. 아울러 호렵도는 용맹한 호인의 위용을 강조한 도상으로 잡귀, 악귀, 병마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벽사辟邪의 용도로도 선호되었다고 한다.

도4 호렵도 8폭 병풍 세로 195cm, 가로 402cm 지본채색,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4-1 도4의 부분. 가마에 타고 사냥대를 따라나선 여인들이 그려졌다


김수진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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