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한국미술품 Ⅲ
신선도, 산신도, 여인초상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한국미술품을 다루는 마지막 순서로 <신선도>, <산신도>, <여인초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작품 속 필치, 안료, 유래 등을 통해 당대 유행했던 본의 양식과 그림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배경 등을 엿볼 수 있다.

– 글 김수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19세기에 유행했던 신선도 초본

이달에는 <신선도> 3점, <산신도>, <여인초상>을 소개하며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한국미술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살펴볼 <신선도>는 세 점의 연작으로 재료, 크기, 주제, 입수 내력을 고려할 때 하나의 화첩에서 나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화풍도 거의 동일하여 같은 화가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먼저 <그림 보는 신선과 동자>(도1)는 늙은 선인仙人과 젊은 선인이 동자들을 데리고 두루마리 그림을 보는 장면을 묘사했다. 세 명의 시동侍童은 모두 그림을 펼치거나 들고 있는 일에 조력하고 있다. 늙은 선인은 시동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젊은 선인의 옷자락은 선염渲染으로 마무리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강조했다. <천도天桃를 보는 수노인과 신선들>(도2)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성南極星을 의인화한 수노인壽老人, 늙은 선인, 젊은 선인이 시동이 들고 있는 천도天桃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세 명의 신선 도상 모두 꼬마들을 등에 업거나 안아서 ‘수명’을 관장하고 있음을 강조한 점이 독특하다. 마지막으로 <관冠을 쓴 인물과 신선들>(도3)은 염라대왕으로 추정되는 관을 쓴 이와 수노인, 늙은 선인이 5명의 동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장면이다. 신선들은 모두 동자를 안거나 업거나 쓰다듬고 있으며 조금 큰 시동은 복숭아를 들고 있다. 이 그림들은 모두 도교적 도상을 통해 장수長壽, 다남多男, 다복多福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모두 진 로슨(Jean Lawson)으로부터 1915년에 구입한 것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진 로슨이 누구이며 어떤 연유에서 한국 미술을 거래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인물이 1915년에 또 다른 신선도 연작을 미국 클리블랜드 출신의 한 개인에게 판매한 사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은 현재 영구대여 형식으로 클리블랜드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클리블랜드 시리즈 세 점은 모두 신선들이 코끼리와 기린을 타고 있다는 점에서 메트로폴리탄 본과 도상적 차이가 있다(도4~6). 아울러 클리블랜드본은 메트로폴리탄본과 크기, 재질, 안료가 거의 동일하며 무엇보다 세부 묘사가 겹쳐 동일 화가의 필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도1-1, 도6-1, 도1-2, 도6-2). 이와 거의 동일한 세트로 보이는 작품이 국내 개인소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4년 한국고미술협회에서 주최한 ‘개인소장문화재특별전’에 출품되었던 <신선도> 2점(도7~8)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또한 위아래가 잘려 나가면서 높이가 달라졌을 뿐 메트로폴리탄본 및 클리블랜드본과 너비가 동일하며 유사한 주제로 꾸며졌다. 특히 <신선도>(도7)의 경우 <그림 보는 신선과 동자>(도1)와 도상이 완전히 일치한다. 안료의 종류나 세부 표현에서 차이를 보여 동일 작가의 솜씨라 하긴 어렵지만 이들이 같은 도안을 공유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19세기 신선도 제작에 초본의 사용이 유행하면서 유사한 도상이 반복 제작된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주자가 등장하는 산신도

다음 작품은 주로 사찰 내 삼성각三聖閣이나 산신각山神閣에 봉안되던 <산신도>(도9)이다. 산신도는 산신山神 신앙을 불교에서 수용하면서 산신을 인격화하여 묘사한 일종의 불화라 할 수 있다. 대개 산신도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배경으로 하여 호랑이의 변화신變化身인 백발의 신선을 중심에 두고 그 옆에 호랑이와 동자를 배치했다. 대표적인 예로 광서光緖 14년의 연호가 남아 있어 1888년에 제작한 것이 분명한 국립중앙박물관 <산신도>(도10)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파초선芭蕉扇을 들고 절벽에 앉아 있는 산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산신은 호랑이를 타고 있는데 스무 개 남짓한 호랑이의 이빨이 무섭게 묘사되었다.

이에 반해 메트로폴리탄본 <산신도>는 배경이 심산 절벽이 아니라 복숭아나무라는 점, 시주자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특히 동자 외에 추가로 나오는 두 명의 인물 중 여성은 양손을 모아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이다. 화면 하단에 남아 있는 시주질施主秩에는 이 작품이 1874년을 의미하는 동치同治 13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도9-1). 아울러 시주자로 ‘배철도裵捪道’라는 성명과 여성인 ‘김씨金氏’가 기록되어 있어 동자 옆의 남녀가 두 시주자를 그린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화면의 색감은 전반적으로 붉은색과 녹색이 중후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복식의 원단에 보이는 문양과 글씨는 금분金粉으로 마무리되었다. 점잖은 색감과 기도하는 도상의 진지한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호랑이는 깜짝 놀란 듯 동그란 눈을 하고 앞니 두 개를 드러내어 작품에 위트를 더했다.

당시 사진 촬영 구도와 동일한 초상화

마지막으로 소개할 그림은 조선시대에 보기 드문 <여인 초상>(도11)이다. 누르스름한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주머니, 왼손에는 모란꽃 가지를 쥐고 있다. 여인의 땋은 머리는 등을 타고 내려와 무릎을 거쳐 발목까지 닿을 정도이다. 머리끝에 붉은색 댕기를 달아 그 길이가 더욱 길게 보인다. 여인의 뒤편에는 병풍을 쳤고 바닥에는 화문석을 깔았다. 사실상 화문석 위에 의자를 두고 주인공이 앉아 있는 자세는 조선시대 남성 문인들의 초상화와 궤를 함께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좌우에 큰 탁자를 두고 화병과 화분을 올려둔 설정은 19세기 말부터 주로 사진 촬영 때 사용하던 세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예를 들어 <여인 사진>(도12)은 1914년에 촬영된 것으로 에드나 반 펠츠 브라더(Edna Van Pelts Brother) 촬영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생으로 추정되는 여인의 배경에는 이금泥金 병풍이 펼쳐져 있고 탁자 위에는 조화造花를 꽂은 꽃병과 금속제 탁상시계가 놓여 있다. 일찍이 수신사修信使를 따라 역관譯官으로 일본에 다녀왔던 박기종朴琪淙(1839-1907)을 찍은 사진(도13)에서도 배경으로 양탄자를 깔고 산수 병풍을 친 후 탁자 위에 화분을 올려놓은 것이 확인된다. 사실상 조선시대에 실존 인물로서의 여성 초상화가 제작되기 어려웠다는 정황을 고려해도 이 작품은 사진이 도입된 이후인 20세기 전반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이 작품은 구입 내력도 흥미로운데 메트로폴리탄은 이를 1943년에 디크런 캘리키언(Dikran G. Kelekian, 1867-1951)으로부터 구입했다(도14). 캘리키언은 이슬람 미술을 전문적으로 취급한 수집가이자 딜러였다. 오스만 제국 출신인 캘리키언은 형과 함께 1892년 이스탄불에 처음 골동상을 개업했다. 이듬해인 1893년 시카고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World’s Columbian Exposition)에 페르시아관을 짓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이들은 금방 뉴욕에 지점을 열었다. 이후 형제는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이집트 카이로에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캘리키언은 19세기 말부터 수십 년간 헨리 월터스(Henry Walters, 1848-1931), 존 락펠러 쥬니어(John D. Rockefeller, Jr., 1874-1960), 루이신 해버마이어(Louisine Havemeyer, 1855-1929), 이사벨라 가드너(Isabella S. Gardner, 1840-1924), 찰스 프리어(Charles L. Freer, 1854-1919)와 같은 유명한 수집가들을 상대하며 미국 내 아시아 미술의 수집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조선의 여인을 그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초상화가 왜 페르시아 미술을 주로 다루었던 딜러에 의해 거래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아시아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이해와 분류가 부족하던 시절 ‘서구가 아닌’ 모든 것이 ‘오리엔탈 아트’로 뭉뚱그려져 취급되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김수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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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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