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한국미술품 Ⅱ – 기명절지도 병풍, 쌍금계도, 황룡청룡도

이달에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하 메트로폴리탄)에 소장되어 있는 기명절지器皿折枝 병풍 한 점과 야마나카 상회(Yamanaka & Co)를 통해 미국으로 반출된 그림 두 점을 보려고 한다. 특히 이 작품들은 각 그림의 미학뿐 아니라 미국에 들어가기까지의 내력 또한 흥미로워 이를 알고 보면 한층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김수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박정희 대통령의 깊은 사의가 담긴 병풍

<기명절지도 병풍>은 청동기와 화분을 주요 소재로 한 10폭 병풍이다(도1). 마지막 폭에 1894년 봄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이 그렸다는 기록이 있어 작가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장승업이 한문에 능숙치 못해 다른 이들이 제발을 쓴 경우가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 글씨 자체를 장승업의 것으로 확단하기는 어렵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기물을 세로로 배치한 구성을 보이는데 각각의 화폭마다 화분과 고동기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오른쪽부터 1폭에는 배추, 청동기, 화분, 2폭에는 수선화와 모란 화분, 3폭에는 향로, 석류, 포도, 벼루, 4폭에는 주전자와 국화 화분, 5폭에는 산예狻猊 향로, 6폭에는 파초가 꽂힌 빙렬氷裂 자기, 7폭에는 삼족 향로와 대나무 가지가 꽂힌 수반水盤, 8폭에는 빙렬 자기에 꽂힌 모과, 9폭에는 방형 향로와 솔가지가 꽂힌 화분, 10폭에는 연잎과 연꽃이 꽂힌 커다란 화분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기물의 묘사를 찬찬히 살피는 재미 못지않게 병풍의 뒷면에 적혀 있는 내력이 흥미롭다(도1-1). 병풍 뒷면에는 두 개의 첨지가 붙어 있는데 왼쪽에는 이 병풍이 장승업의 진작임을 밝혀 놓은 구룡산인九龍山人 김용진金容鎭(1878-1968)의 감정鑑定이 있다. 김용진은 ‘張承業神品 九龍山人觀並題’라 하여 이 작품이 장승업의 필치이며 김용진 자신이 그림을 보고〔觀〕 제를 쓴다〔題〕는 기록을 남겼다(도2). 오른쪽 첨지에는 ‘駐韓美合參團大使 삼웰 디 버거 귀하 一九六四年七月九日 大韓民國大統領 朴正熙’라는 기록이 있다.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쓴 이 기록은 이 작품이 1964년 7월 9일에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새뮤얼 버거(Samuel David Berger, 1911-1980)에게 선물한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도3). 마지막에는 ‘박정희지인朴正熙之印’이라는 방형의 인장도 찍혀 있다.
여기서 새뮤얼 버거는 1961년 6월 27일에 한국에 부임하여 1964년 7월 10일까지 한국에 재직했던 미국대사였다. 버거는 한국에서의 임무를 마친 이후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전쟁 중이었던 남부 베트남에서 부대사로도 근무한 바 있는 냉전시대 외교전문가로, 박정희의 집권에 큰 공로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가 발발하고 한 달여 후인 1961년 6월 27일에 한국에 부임한 버거는 바로 다음 날인 28일 박정희와의 첫만남을 가졌다. 여기서 박정희는 미국에 조속한 민정民政 복귀와 경제 개혁의 이행을 조건으로 정권을 인정받게 된다.

같은 해 8월 9일 버거를 비롯한 미국 대표와 5.16 주체들은 군정軍政의 기한을 2년으로 합의했다. 버거는 군사정권에 명시적인 지지를 표명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이해관계를 관철할 수 있도록 박정희 정권을 인정함으로써 이들의 안정적인 집권에 기여한 것이다. 이는 쿠데타 발발 당일 마셜 그린(Marshall Green, 1916-1998) 주한미국대사대리와 카터 매그루더(Carter B. Magruder, 1900-1988)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뒤집은 결과였다. 박정희는 이후 일정 절차를 거쳐 1963년 10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작품의 묵서에 보이는 1964년 7월 9일은 버거의 한국 임기가 끝나는 바로 전날에 해당한다. 1961년 12월 버거가 미국 국무부에 ‘한국은 정치적 안정을 되찾았고 쿠데타 세력이 진정한 개혁을 추진하고 능률적인 정부를 건설할 것’이라고 보고한 것은 박정희의 정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울러 버거는 한국과 관련해서 미국 언론에 극도로 말을 아낀 것으로 유명하며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지는 버거를 ‘사이런트 샘(Silent Sam)’이라 칭하기도 했다. 이 같은 행적들은 버거가 박정희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에서 온 주요 인사들에게 미술품을 선물한 일은 적지 않았다. 스미소니언 소장 <목련공작 자수 6폭 병풍>도 1960년대에 박정희가 미국 국방장관 데이비드 딘 러스크(David Dean Rusk, 1909-1994)에게 선물한 것이다(도4). 러스크는 1961년 11월, 1964년 1월, 1966년 7월, 1966년 11월에 방한한 바 있었고 스미소니언은 이 작품을 1970년에 입수했다. 러스크에게 보낸 선물이 당대에 제작된 ‘made in Korea’ 라벨이 붙어 있는 전승미술이었던 데에 반해 버거가 받은 것은 1894년에 제작된 작품임을 고려하면 박정희가 버거에게 표하고자 한 사의謝意가 상당히 두터웠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도4-1). 우리 모두의 자산인 문화재를 대통령이 단독으로 국외에 선물해도 옳은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박정희가 이 작품을 고르는 데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내력을 가진 작품이 2014년 버거의 유족에 의해 메트로폴리탄에 기증되었고, 이것이 뉴욕 한복판에서 세상에 공개되고 있는 현실은 예술이 가진 놀라운 힘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야마나카 상회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간 민화들

이달에 살펴볼 또 다른 작품은 <쌍금계도雙金鷄圖>이다(도5). 한 쌍의 닭이 그려진 이 작품의 경우 배경으로 십장생의 주요 소재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오동나무와 닭의 조합은 벽사辟邪를 상징하며 민화에서 자주 보이는 도상인데(도6) 여기에 수파水波, 영지, 바위, 구름, 해가 결합됐다. 닭의 몸 전체가 금빛으로 되어 있어 이것이 길조吉鳥인 금계를 의도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조선 말기에 유행한 민화에서는 이처럼 여러 주제의 도상을 하나의 화면에 결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유사한 작례가 현재 온양민속박물관에도 전하고 있다(도7).
모란꽃을 배경으로 수직으로 상승하며 얽혀 있는 두 마리의 용을 그린 작품도 눈길을 끈다(도8). 높이가 2미터가 넘는 이 유물은 화면 가득 박락剝落의 흔적이 남아 있어 본래 건축물 어딘가에 부착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화면 속 두 마리의 용 가운데 위의 것은 붉은색이며 아래의 것은 푸른색이다. 홍룡과 청룡은 모두 커다란 눈에 크게 벌린 입 사이로 날카로운 이와 널름대는 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다섯 개의 발톱을 세워 용트림을 하는 모습은 위용 넘치는 기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쌍룡의 묘사는 귀신을 쫓고 재앙을 막는 벽사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쌍계와 쌍룡 그림 두 점은 모두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에 일본의 야마나카 상회를 통해 메트로폴리탄에 팔려나간 것들이다. 야마나카 상회는 오사카를 기반으로 19세기 후반에 유럽과 미국에 진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일본의 고미술상이었다. 특히 야마나카 사다지로(山中定次郞, 1866-1936)가 사업을 이어받으면서 미국 진출이 시작되었고 이것은 구미의 많은 미술관에 아시아 미술이 흘러들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도9, 도10). 본래 야마나카 사다지로는 1866년 오사카 근처에서 아다치 사다지로[安達定次郎]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3살이 되자 오사카에 있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기치베에[山中吉兵衛]의 가게에 사환으로 들어가면서 골동상으로서의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사다지로는 아들이 없던 야마나카 가문의 장녀와 혼인을 하였고 이를 통해 장인의 가업과 성姓을 이어받게 되었다. 당시 자기 매장에 드나들던 서양인들을 보면서 미국 진출을 결심한 야마나카 사다지로는 1894년에 처음 뉴욕에 분점을 개업했다(도11, 도12). 이는 바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1899년까지 연이어 보스턴과 아틀란틱 시티에 분점을 열며 사업을 확장했다. 이후 야마나카는 미국 동부의 메인, 로드 아일랜드, 워싱턴D.C. 플로리다까지를 아우르며 사세社勢를 불려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야마나카 상회가 메트로폴리탄에 넘긴 작품은 400여점에 이르며 이 가운데 한국 미술은 90점 정도로 파악된다. 이것이 벽사의 상징인 금계와 용이 속절없이 태평양 건너의 머나먼 이국으로 건너가게 된 내력이다.

김수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와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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