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㉓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한국미술품 Ⅰ
– 특별한 도상이 그려진 책거리 병풍과 화조화 병풍

미국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은 전 세계 관람객 수 1위인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과 2위인 중국 국가박물관에 이어 연간 70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미술관이다. 이번 달에는 메트로폴리탄 소장품 가운데 책거리 병풍과 화조도 병풍을 각 한 점씩 소개하고자 한다. 책거리와 화조라는 화목 자체는 구미권 한국 소장품에 흔히 포함되는 주제이긴 하지만 메트로폴리탄 소장품 두 점은 다소 특별한 도상이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로폴리탄)은 1870년에 개관한 이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다양한 유물을 적극적으로 수집해 오고 있다. 특히 이집트, 유럽, 미국,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비잔틴, 이슬람, 아시아 미술로 유명한데 방대한 수집품 가운데는 악기, 복식, 장신구, 무기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메트로폴리탄은 총 17개 분과로 나누어져 있으며 한국미술은 아시아 미술 분과의 산하에 있다. 이곳의 아시아 미술 소장품은 현재 총 35,000점 이상으로 미국 내 단독 기관 소장품으로는 가장 많은 수량이다.
이 중 한국 유물은 1893년에 처음 15세기 분청사기가 기증된 이래 현재는 약 600여 점이 집계된다. 가장 중요한 유물로는 금동반가사유상, 고려 청자, 고려 불화, 나전칠기가 꼽히지만 50점이 넘는 회화 소장품도 불화, 문인화, 민화가 균형 있게 갖추어져 있다. 메트로폴리탄은 이렇게 소장품만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2003년 이래 한국 미술 전담 큐레이터를 두어 한국 미술과 관련한 전시를 꾸준히 열고 있다는 점에서도 괄목할 만 하다.

서양 문물 유입 후 제작된 책거리,
괘종시계부터 파초 잎사귀가 비친 거울까지

우선 살펴볼 책거리는 2005년에 강 컬렉션(Kang Collection)을 통해 구입한 것으로 수입 안료로 보이는 형광빛이 도는 초록색 색감이 눈에 띈다(도1). 전반적으로 수壽자와 복福자가 화면 여기저기에 보이는 점에서도 19세기 이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3폭에 보이는 공작 깃털, 2폭과 5폭의 수묵 산수도, 6폭의 바둑판, 1폭과 2폭의 삼족三足 물병, 3폭과 4폭의 삼족 향로, 7폭과 10폭의 산호 등은 책거리에 등장하는 단골 도상들이다.
7폭과 10폭에 보이는 시계 또한 책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상이다. 두 시계의 로마자 12개는 모두 정확하다(도1-1, 도1-2). 사실상 책거리에 등장하는 시계 가운데에는 화가가 로마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Ⅰ, Ⅱ, Ⅲ까지만 정확하게 쓴 경우가 많다. 나머지는 글자를 쓴 것이 아니라 대충 그려서 얼버무린 정도도 많다. 대표적인 예로 자명종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책거리를 들 수 있다(도2). 이 작품은 정교한 도안과 고급 안료를 사용한 수준 높은 책거리임에도 불구하고 12개의 로마자 중 제대로 쓴 것이 없다(도2-1).

이에 비하면 메트로폴리탄 본은 7폭과 10폭의 시계가 모두 로마자뿐 아니라 분分 표시 간격까지 정확하다. 10폭의 시계는 산호에 걸려 있는데 이러한 걸이형 도안은 적어도 18세기 후반부터 꾸준하게 등장한다(도1-1). 특히 화원화가 이형록李亨祿(1808-1883년 이후) 계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이형록의 손자인 이덕영李悳泳(1870-1907년 이후, 1895-1904 화원 활동)의 작품에까지 계승되었다(도3, 도3-1). 메트로폴리탄 본도 이러한 계열의 도안이 활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책거리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형식의 시계는 로마자를 쓴 자명종과 산호 걸이 유형이다. 그런데 메트로폴리탄 본 7폭에는 추錘가 있는 괘종시계가 등장한다
(도1-2). 시계 얼굴은 팔각형이며 바닥에는 본래의 쌍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받침이 괴어 있다. 아마도 벽걸이형 시계를 탁상 위에 올려놓기 위한 고안이었을 것이다. 추가 있는 부분에는 ‘A-WEEK’이라는 알파벳 글씨가 보인다. 1910년대에 제작된 괘종시계 가운데에는 추 부분에 ‘regulator’라 적힌 작례가 많다(도4). 서양 앤티크 경매 리스트를 검토했지만 메트로폴리탄 본처럼 ‘A-WEEK’이라 적힌 실물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로마자나 알파벳 사용의 정확도를 고려할 때 메트로폴리탄 본은 서양 문물이 우리나라에 상당히 확산된 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사례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책거리 중에는 아라비아 숫자의 시계 도안이 포함된 작품이 있다(도5). 이 작품에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자명종과 산호 걸이 계열의 시계 외에 새롭게 회중시계 도안이 포함되었다(도5-1, 도5-2, 도5-3). 게다가 이 세 가지 종류의 시계는 모두 하단에 초침 다이얼까지 있어 진전된 시계 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이 중 회중시계는 일반적인 책거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도안으로 아라비아 숫자까지 그려져 이 작품이 20세기 이후의 것임을 확실시 해준다. 실제 회중시계는 1900년대부터 국내에 널리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미국 시계 회사인 월섬(Waltham)사가 제물포에서 광고지를 만들어 조선의 신사들에게 시계를 판매했던 자료가 남아 있기도 하다. 이 때 월섬이 팔았던 회중시계는 국립중앙박물관 도안과 거의 동일하게 시계 하단에 초시계가 하나 더 달린 형태였다(도5-3, 도6). 특히 이 월섬 시계 중에는 1932년에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가 구입했던 것도 남아 있다(도7). 《백범일지》에 따르면 이 시계는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의 거사를 앞두고 김구金九(1876-1949)에게 넘긴 것이라고 한다. 이는 월섬 시계가 20세기 전반에 꽤 널리 사용되었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사실상 국립중앙박물관 본 책거리는 마치 당시에 나온 모든 종류의 시계를 구비하였음을 과시하고자 한 것처럼 세 종류의 회중시계, 자명종, 산호 걸이 시계를 꼼꼼히 묘사하였다. 지금껏 다른 책거리에서 괘종시계 도안이 발견된 바가 없음을 고려하면 메트로폴리탄의 사례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시계 도안 외에도 메트로폴리탄 본 책거리에서는 화분에 심은 파초와 그 잎사귀가 비친 거울 도안이 눈에 띈다(도1-3). 이 도상은 호림박물관과 선문대학교 소장본 등 여타 책거리 계보에서도 종종 보인다(도8, 도9). 이러한 구체적인 도안은 특정 아이디어가 공유되지 않는 이상 우연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동일 공방의 작품이거나 특정 도안의 초본이 여러 공방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을 정황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희귀한 참새 도상이 등장하는 근대기 화조 병풍

두 번째로 살펴볼 화조도 병풍은 1993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마유야마 류센도繭山龍泉堂를 통하여 구입한 것이다(도10). 마유야마 류센도는 1905년 마유야마 마츠타로(繭山松太郎, 1882-1935)가 창립한 일본의 골동 미술 취급 전문 회사로 지금까지 성업 중이다. 1935년에 부친을 따라 가업을 이은 마유야마 준키치(繭山順吉, 1913~1999)는 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에 공을 들였다. 그 일환으로 준키치는 본 작품을 포함하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아시아 미술 수집에 크게 공헌했다. 본 화조도 병풍은 1폭에 다산과 다복을 상징하는 닭과 병아리, 3폭에는 참새, 4폭에는 앵무, 7폭에는 부부간의 화목과 금슬을 상징하는 원앙, 8폭에는 백로, 9폭에는 노안老安을 상징하는 기러기와 갈대, 10폭에는 금계를 그렸다. 이 중 참새는 보통의 화조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아니다(도10-1). 그러나 화면을 가득 메운 참새는 실제 참새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교한 묘사력을 보여준다(도11). 전통적인 소재인 노안蘆雁과 사생력이 돋보이는 참새 떼를 하나의 병풍으로 꾸민 것에서 이 작품 또한 19세기 이후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장황 또한 화려한 문양의 비단을 써서 일본에서 한 차례 개장改裝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도10-2).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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