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㉒ 스미소니언 미술관 소장 한국미술품 Ⅲ

스미소니언 소장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국 유물은 스미소니언의 전신인 미국국립박물관이 1882년 조미수호조약 이후 7~8년 간 직접 수집한 것들이다. 이번 시간에는 당시 군인이자 스미소니언 특별담당관이었던 버나두가 수집한 회화들을 통해 미술품 수집에 대한 의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스미소니언 협회가 하나의 체계로 통합을 이루기 전까지 한국 미술 소장품은 국립자연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아서 새클러 미술관(Arthur M. Sackler Gallery),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 of Art) 세 군데에 분산되어 있었다. 세 기관 중 뒤의 두 곳은 미술품을 전문적으로 소장하는 ‘미술관’이다. 그런데 지난 두 달간 본 연재를 통해 소개한 스미소니언 소장 한국 미술품은 원래는 모두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입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서구가 동양 문화에 관심을 보였던 역사적 배경 및 구미 기관에서 처음 한국 미술품을 수집하며 견지한 관점과도 긴밀히 결부된다.

미국국립박물관, 민속학적 연구 위해 한국 미술품 수집 시작

스미소니언 소장품 가운데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한국 유물은 1882년 조미수호조약 이후 7~8년 간 스미소니언이 직접 개입하여 수집한 것들이다. 스미소니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미국국립박물관은 1884년부터 조선에 전문 인력을 파견하여 적극적으로 한국 유물을 수집한 바 있다. 이 때 한국을 방문해 유물을 수집한 미국인은 두 사람으로 해군 장교 출신 존 버나두(John Baptiste Bernadou, 1858–1908)와 스미소니언의 연구원이었던 피에르 주이(Pierre Louis Jouy, 1856-1894)였다(도1, 도2). 버나두는 스미소니언 특별담당관으로 1884년 3월부터 1885년 4월까지 미공사관에 파견되어 있었다. 버나두는 본래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1876년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입대한 후 1884년 군인 신분이자 스미소니언 특별담당관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조선에 도착한 직후 버나두는 두 달간 윤치호(尹致昊, 1865-1945)에게 집중적으로 한국어를 배웠다.
이에 대해 버나두는 ‘조선의 민족학(Ethnology)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인들과의 소통이 꼭 필요했다고 기록했다. 이후 버나두는 개성, 평양, 의주, 운산 등을 여행하며 스미소니언을 위해 다양한 유물을 구입하는 한편 미국 해군으로서 조선의 경제 및 전략적 잠재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당시 버나두가 수집한 것들은 미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었다기보다는 인류학적, 민속학적 수집 대상으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버나두가 입수한 수집품 목록은 상당히 잘 정리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버나두는 그림 외에도 지도, 도서, 생활 도구, 도자기, 복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품을 모았다.
1883년 5월 스미소니언의 연구원으로서 조선에 파견되었던 피에르 주이는 본래 뉴욕 태생으로 조류鳥類에 관심이 많은 자연과학자였다. 주이는 스미소니언 소속으로 1881년에 이미 중국 및 일본을 여행하면서 동물 표본 및 민족학 관련 자료를 수집한 경험이 있었다. 미국국립박물관은 버나두와 주이가 수집한 유물 외에도 의사이자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되었던 호레이스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이 기탁한 유물을 정리하여 1892년에 《버나두, 알렌, 주이의 한국 수집품(The Bernadou, Allen, and Jouy Korean collections)》이라는 책을 간행한다. 호레이스 알렌은 1884년에 처음 조선에 들어왔지만 1887년부터 1889년까지는 워싱턴 D.C.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참찬관參贊官으로 일했다. 알렌은 1890년에 주한미국영사관이 있던 서울로 다시 돌아올 때 고종에게 하사받았던 물건을 포함한 다양한 한국 유물을 미국국립박물관에 기탁했다. 이로 인해 스미소니언은 1890년까지 수백 점에 이르는 한국 유물을 소장하게 되었고 이 성과를 정리한 간행물이 1892년에 나온 것이다. 사실상 여기에는 위의 세 사람 외에 1883년 주일미국대사관의 서기관이었던 구스타브 고워드(Gustavue Goward, 1845-1908)와 중국에 파견되었던 외교관 윌리엄 록힐(William Woodville Rockhill, 1854-1914)이 수집한 한국 유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이 조선과 국교를 맺은 지 10년 만에 발간한 이 성과물은 130년 전의 미국의 정보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미국이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정보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민화부터 왕희도 병풍까지, 버나두의 다양한 수집품

이 중 버나두가 모은 것들은 대부분 1884~1885년 평양과 서울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버나두는 유물을 수집하면서 보통 구입 장소나 수집 경로를 기록해두곤 하였다. 당시 버나두가 조선에서 미국으로 보낸 수집품은 총 180점인데 그 중 회화는 화첩, 민화, 병풍을 포함해서 20점 정도였다. 이 중 민화로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버나두가 서울에서 구한 것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태극화훼도>(도3)와 <십장생도>(도4) 등이다. 이 두 작품 모두 서울에서 수집했다는 점이 명기되어 있다. 이 밖의 버나두 수집품 가운데에는 1888년 조선을 방문하여 다수의 민화를 구입해 갔던 프랑스인 샤를 바라(Charies Varat, 1842-1893)의 수집품과 동일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입수 경위와 제작 하한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1885~1888년경 서울에서 유통되던 한국 민화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버나두가 수집한 유물 가운데에는 <왕회도王會圖 8폭 병풍>(도5)과 같이 민화로 분류하기 어려운 유형도 있다. 왕회도는 조공을 바치러 온 외국 사절단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규모 있는 화면에 병풍으로 꾸며졌다. 이 주제는 왕실의 화원화가를 뽑던 차비대령화원 녹취재 시험에도 단골로 출제되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보이는 복잡하고 화려한 도안 및 정교한 묘사력, 다채로운 안료의 활용 등을 고려할 때 이를 단순 민화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버나두가 이 작품을 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 미술품을 사랑한 미국 기업인들

스미소니언 소장 유물 가운데 1890년 이후에 수집된 것들은 국가 차원에서 모은 것이 아니라 기증 받거나 구입한 것들로 대부분 새클러 미술관과 프리어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이 두 미술관의 소장품은 ‘민족학적 연구 대상’으로서 수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형적인 ‘민화’ 유형의 미술품은 포함되지 않았다. 프리어 갤러리를 설립한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 1854-1919)는 철도 및 자동차 사업으로 큰 부를 이룬 기업가로 엄청난 양의 미국 당대 미술과 아시아 미술을 모았다. 특히 말년에는 한국 도자기에 매료되어 마지막 20년 동안 한국 미술을 집중적으로 수집하고자 애썼다. 프리어가 모은 것 가운데에는 최석환(崔奭煥, 1808-?)의 <포도도 병풍>(도6)과 같은 회화도 있지만 대부분이 도자 및 공예품이다. 그 결과 프리어는 130점의 고려 청자와 80점의 조선 자기를 포함하여 총 500여 점의 한국 미술품을 모았고, 이것이 프리어 갤러리 소장 한국 미술의 근간이 되었다. 아서 새클러(Arthur Mitchell Sackler, 1913–1987) 또한 엄청난 동양 미술품을 모았던 기업인으로 스미소니언을 포함한 여러 박물관의 한국 미술품 수집 과정에 기여한 바가 크다.

유기체처럼 항시 변하는 미술품의 의의

스미소니언의 한국 미술 수장사를 검토해 보면 ‘미술품수집’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미에 대한 동경이나 수집에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만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의 기관 안에서도 유물의 의미나 위상은 시간을 두고 변화한다. 때로는 유물은 그대로이나 기관이 통폐합되고 조직이 재편되며 기관명이 바뀌기도 한다. 이는 서구 열강이 동양을 바라보던 시각 자체가 상당 부분 수정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한국 유물 안에서도 기저에 머물렀던 민화가 새삼 독립 예술군으로 그 지위가 격상하는 현상도 확인할 수 있다. 미술이란 화석이나 박제와 달리 미술관 안팎에서 그 위상이 보다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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