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㉑
스미소니언 미술관 소장 한국미술품 Ⅱ – 화조 자수 병풍

고종이 서양인들에게 하사한 미술품 가운데에는 유독 자수 병풍이 많았다. 의사이자 선교사였던 호레이스 알렌이 기증한 스미소니언 소장 유물을 비롯해 제중원 원장을 역임한 존 윌리엄 헤론, 외교 고문으로 활약했던 뮐렌도르프의 구장품 등이 그 예로, 이 병풍들은 단순한 외교 관계에 대한 징표를 넘어 작품의 제작 연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법무부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으로 한국에 장·단기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37만 명에 육박한다.
이 숫자는 2018년 현재 한국 인구 100명 중 4.6명이 외국인이라는 의미다. 약 120년 전인 1897년 통계에 따르면 당시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외국인은 4,000명 정도였다. 이 중 중국인과 일본인을 뺀 소위 ‘서양인’은 300명 내외로 추산된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외교관, 대사관 직원, 선교사, 의사, 군인, 상인, 학자, 사업가, 과학자, 광부, 여행가, 작가, 기자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1882년 조미수호조약을 통해 미국에 문호를 개방한 조선은 같은 해 영국 및 독일과도 유사한 조약을 맺었다. 이후 1902년까지 20년간 차례로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조선이 이전까지 오랜 이웃인 중국 및 일본과만 공식 외교를 유지했던 것을 감안하면 갑작스런 ‘양인洋人’들의 등장은 조선인들에게 매우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 고종高宗은 서양인을 선교사, 의사, 외교관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자나 외교 고문으로 직접 초빙한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서양인들은 한국의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거나 선물로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간 미술품들은 현재 국외에 소장된 한국문화재의 중요한 근간이 되고 있다.

조선 의료 및 정치 부문에서 크게 활약했던 알렌과 자수병풍

이달에 소개할 스미소니언(The Smithsonian Institution) 소장 유물은 조미수호조약 직후 한국을 찾은 의사이자 선교사였던 미국인 호레이스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이 기증한 것이다. 알렌은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에서 출생하여 웨슬리언 대학교 신학과를 나온 후 다시 도4 <화조자수 10폭 병풍>, 견본자수, Smithsonian Institutio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Photo by James Di Loreto) 마이애미 의과대학교를 졸업했다(도1). 1883년 미국 장로회가 파견한 의료선교사 자격으로 중국 상하이에 입국했던 알렌은 본부의 명에 따라 1884년 조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조선국 주재 미국 공사였던 루시어스 하우드 푸트(Lucius Harwood Foote, 1826~1913)는 알렌이 쉽게 조선에 입국할 수 있도록 미국 공사관부 무급의사(Physician to the Legation with No pay)로 임명했다. 조선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렌은 이름을 낼 기회를 얻는다.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으로 치명적인 자상을 입은 민영익閔泳翊(1860-1914)의 외과 수술을 집도하게 된 것이다.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민영익이 무사히 회복하자 조선 왕실은 서양 의학에 대해 큰 신뢰를 갖게 된다. 알렌은 이 일을 계기로 1885년 고종으로부터 병원의 건물을 얻게 되며, 이 자리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훗날 제중원으로 개칭)의 초대 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알렌이 조선에서 의사로 근무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선교사 집단 내의 불화와 여러 상황이 얽히면서 알렌은 활동 방향을 틀어 조선 왕실의 정치 및 외교 고문으로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알렌은 1887년 참찬관參贊官 자격으로 전권 공사 박정양朴定陽(1841-1904)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으며 미국 국무성을 방문해 조선이 독립국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1890년에는 주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후 총영사 및 대리 공사를 역임했다(도2). 알렌이 소장하고 있었던 고종의 어가 행렬 사진은 당시 알렌이 왕실과 가까이 지냈던 정황을 보여준다(도3). 알렌은 조선 외교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04년 고종으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기도 했으나 1905년 조선이 외교권을 잃자 이내 본국으로 돌아갔다.
스미소니언에는 알렌이 소장했던 도자기, 민속품, 복식품 등이 전해지는데 이 중 자수로 된 화조 병풍 한 점이 있다(도4). 이 자수 병풍은 총 10폭으로 각 화면마다 꽃이 핀 괴석을 중심으로 벌, 나비, 여치 등이 배치됐다. 알렌의 조선 체류 기간을 고려할 때 이 유물은 1884~1905년 사이에 얻은 것이 분명하며 자수의 높은 격조를 고려하면 왕실에서 하사한 병풍일 가능성이 높다. 스미소니언의 유물 카드에도 1928년 알렌 기증품이며 ‘궁녀들이 만든 자수(embroidered by ladies in palace)’라고 표기되어 있다.

헤론 구장품 통해 동일한 초본작들의 제작 연대 추정 가능

알렌의 뒤를 이어 제중원의 원장이 된 존 윌리엄 헤론(John W. Heron, 1856-1890)도 고종에게 자수 병풍을 하사받은 바 있다(도5). 헤론은 1858년 영국 출생으로 1870년 미국 테네시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한 인물이다(도6).
테네시주의 메리빌 대학 의학과를 졸업한 헤론은 1883년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식 의사 면허를 따게 된다.
헤론은 1885년 5월 미국 장로교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같은 해 6월 20일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입국했다. 헤론은 제중원의 원장으로 있던 1890년 7월 전염성 이질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그 시신은 양화진에 묻혔다.
그의 자수 병풍은 헤론의 차녀 제시 캐롤(Jessie Elizabeth Caroll, 1888-1978)이 보관하던 중 그녀의 유언에 따라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 유물은 8폭 전체가 속수 위에 다시 겉수를 둔 전형적인 궁수宮繡로 완성되었다. 장황도 색이 다른 비단 사이에 흰 종이를 겹쳐 마감한 방식으로 궁중 양식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물과 동일한 초본을 활용한 다른 작례들이 전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초본(도7)은 창덕궁에서 전래된 것이다. 8개가 낱장으로 전하는 이 초본에는 첫 번째 폭에 ‘남’, ‘유’, ‘’, ‘초’라는 색상 명칭을 적은 묵서가 있다. 헤론 구장품이 국립고궁박물관 본과 2폭과 3폭의 자리가 바뀐 것을 제외하면 양자의 도안과 크기가 일치한다. 그런데 이들과 동일한 작품이 한국자수박물관과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Victoria & Albert Museum)에도 전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헤론 구장품, 한국자수박물관 본, 빅토리아 앨버트 본 3점의 장황 순서와 바탕 비단의 색은 조금씩 다르지만 도안에 있어서는 세 점 간에 큰 차이가 없다. 이들 작품에 모두 작가나 연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헤론본이 1885~1890년 사이에 구득됐다는 점은 나머지 작품의 제작 연대를 추정하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다.

묄렌도르프의 구장품, 나아가 고종이 서양인에게 하사한 병풍의 역사적 의의

사실상 1882-1902년 사이에 고종이 서양인들에게 선물한 미술품 가운데에는 유독 자수 병풍이 많았다. 왕실의 고문 역할을 했던 독일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 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 1848-1901)가 하사받았던 자수 병풍도 현재 독일 드레스덴 세계민속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도8). 병풍은 색실로 ‘수복壽福’을 자수로 놓은 것인데 보통 이런 작례는 ‘수복’을 연달아 반복하는 게 상례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1, 3, 5, 7면은 오직 ‘수’자로 가득 채웠으며 2, 4, 6, 8면은 ‘복’자만을 가득 채웠다. 각 폭에 36자가 들어가니 수 144자, 복 144자로 꾸며진 것이다. 묄렌도르프가 처음 아시아에 온 것은 청나라 주재 독일 영사관에 근무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 묄렌도르프는 리홍장李鴻章(1823~1901)과 친분을 쌓게 되는데 당시 리홍장은 중국의 대외 업무를 맡고 있었다. 1882년 조선 왕실은 청나라측에 외국어가 능통하고 국제적인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고문으로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고, 리홍장의 추천으로 조선에 입국한 묄렌도르프는 1882년 말부터 외교부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도9). 이 때부터 묄렌도르프는 조선이 독일(조독수호통상조약), 영국(조영통상조약), 러시아(한로수호통상조약), 이탈리아(한이수호통상조약)와 통상 및 우호 조약을 체결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이 밖에도 묄렌도르프는 해관 총세무사, 전환국 총판 등을 역임하면서 2년 10개월 동안 조선 왕실을 위해 일했다. 묄렌도르프가 해당 자수 병풍을 정확히 언제 하사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가 조선에 체류했던 1882년부터 1885년 사이임은 분명할 것이다.

서양인들이 선물 받은 왕실 하사 미술품은 단순히 미술을 통한 외교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그치지 않는다. 왕실미술의 특성상 제작 연대와 작가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의 제작 하한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작품을 수령한 시기를 선물 받은 이의 한국 체류 기간으로 좁힐 수 있기 때문에 당시 조선 왕실 미술 부문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수월해진다는 얘기다. 바로 이 지점이 국외 소장 문화재가 기준작으로서 갖는 강력한 역할일 것이다.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