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⑳
스미소니언 미술관 소장 한국미술품Ⅰ- 자수 병풍 두 점

이번 달부터는 미국 스미소니언 협회(The Smithsonian Institution, 이하 스미소니언)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미술품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첫 순서로 고종과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측에 선물한 자수 병풍을 살펴보고 여기에 수놓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스미소니언은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여러 박물관, 미술관, 연구소, 도서관, 동물원을 연합한 기관이다. 이 거대한 조직은 1846년 8월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슨(James Smithson, 1765-1829)이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에는 미국국립박물관(United States National Museum)으로 명명되었으나 1967년 여러 기관들이 행정적 통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개칭됐다. 스미소니언은 워싱턴 D.C에 소재한 기관만 총 19개의 박물관, 21개의 도서관, 1개의 동물원, 9개의 연구 센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외의 지역에도 부설 기관이 있다. 이 전체 기관의 소장품은 총 1억 5천 4백만 점에 육박한다. 스미소니언은 제임스 스미스슨이 남긴 유산과 함께 ‘미국 워싱턴에 스미소니언 협회라는 이름으로 인류의 지식 확산을 위한 기관을 세워 달라’는 유언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스미스슨이 남긴 유산은 당시 미화로 약 500,000 달러였으며 이는 현재 가치로 130억 정도이다. 스미소니언은 이 돈을 기본 재원財源으로 하여 지난 180년 동안 미국 정부의 재정지원을 통해 운영되어 오고 있다.

80년의 시차, 국왕과 대통령이 선물한 두 점의 병풍

이 달에 소개할 유물은 우리의 외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로버트 슈펠트(Robert W. Shufeldt, 1822-1895)와 데이비드 딘 러스크(David Dean Rusk, 1909–1994)가 구장하고 있던 자수병풍 두 점이다. 해군 제독이었던 슈펠트와 국방장관이었던 러스크는 각각 1880년대와 1960년대에 한미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이 80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고종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받은 선물이 모두 자수로 된 병풍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조선시대 내내 병풍은 외교 예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 명청明淸에서 온 천사天使들은 조선의 국왕이 직접 제작한 어필御筆 및 어제御製 병풍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정례적으로 조선 왕실에 금병풍을 보냈으며 조선 왕실은 이에 수묵 병풍으로 화답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유독 조선 왕실은 서양인들에게 만큼은 서병書屛이나 수묵 병풍이 아니라 자수 병풍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러한 배경하에서 슈펠트와 러스크 구장舊藏 자수 병풍의 의미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의 문호를 개방한 로버트 슈펠트

로버트 슈펠트는 조선이 중국 및 일본 외에 처음으로 공식 국교를 맺은 국가인 미국의 해군 제독이었다(도1). 슈펠트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1867년으로 이 때 슈펠트는 1866년에 평양의 군민軍民에 의해 불태워진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의 행방을 수색하기 위하여 황해도 오차포吾叉浦에 입항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후 슈펠트는 1879년 군함 티콘데로가(Ticonderoga)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던 길에 1880년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 때 슈펠트는 조선과 조약을 맺고자 일본 정부에 중개를 부탁하는 한편 동래부사에게 개국開國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청나라의 리홍장(李鴻章, 1823-1901)에게 중개를 요청하여 승낙을 얻자 1882년 3월 미국 전권 대사의 자격으로 리홍장의 명을 받은 마젠중(馬建忠, 1845-1899)과 딩루창(丁汝昌, 1836-1895)과 함께 인천항에 들어와 조선의 전권 대사였던 신헌(申櫶, 1810-1884) 및 부관 김홍집(金弘集, 1842-1896)을 만나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체결했다.
1886년 고종의 초청으로 다시 조선 땅을 밟은 슈펠트는 당시에 자신의 딸인 메리 슈펠트(Mary A. Shufeldt)와 동행했고 이 때 메리는 김준근의 풍속화를 119점 구입했다.
그 중 현재 22점은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스미소니언에 소장되어 있다. 지금 소개할 자수 병풍 또한 메리 슈펠트가 아버지 서거 이후에 스미소니언에 일괄로 처분한 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 유물은 1901년 처음 등록될 당시에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인류학 분과로 입수됨으로써 스미소니언 산하의 소장품이 되었다.

슈펠트 구장 자수 병풍, 안주 자수로 추정

10폭의 대형 자수로 된 본 병풍(도2)은 1폭부터 10폭까지 책장이 없이 책과 기물을 빼곡하게 나열했다. 병풍이 자랑하는 대담한 바느질과 대형 규모는 이 작품이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제작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유물에는 2019년 3월호에 필자가 소개한 바 있는 스탠포드대학 부설 캔터 아트 센터(Cantor Arts Center)(도3) 및 한국민속촌박물관(도4)에 소장되어 있는 책거리 자수 병풍과 동일한 도상이 발견되어 주목을 요한다. 우선 다리가 셋인 삼족 향로(도2-1, 3-1, 4-1)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들어가 있는 유리 어항(도2-2, 3-2, 4-2) 도상의 경우 세 작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잉어 모양의 장식 도상은 스미소니언 본과 캔터 아트 센터 본(도2-3, 3-3)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다만 스미소니언 소장품에서는 제왕帝王의 상징인 통천관通天冠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도2-4). 19세기부터 조선 왕실에서 안주 자수를 자주 주문했다는 역사를 고려하면 슈펠트 구장 자수 병풍의 문화적 위상도 짐작 가능하다.

국무장관 시절 박정희 대통령 만난 러스크

1970년에 스미소니언에 입수된 <목련공작 자수 6폭 병풍> 또한 자연사 박물관의 인류학 분과로 입수된 것이다(도5). 이는 본래 데이비드 딘 러스크가 선물 받았던 것으로, 작품 뒷면에 남아 있는 ‘한국산(made in Korea)’이라는 라벨이 무색하게 형식과 주제가 모두 일본식 자수에 기반 하고 있다.
러스크는 오랜 기간 미국 정부에서 동아시아 전문가로 일했던 인물로 한국 전쟁이 발발해 있던 1950~1952년에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국 차관보 자리에 있었다. 이후 1961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정권이 들어서자 국무장관에 취임한 러스크는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 대통령 때까지 총 4회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따라서 이 유물 또한 러스크가 방한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만났던 1961년 11월, 1964년 1월, 1966년 7월, 1966년 11월 중 언젠가 선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도6).

병풍 속에 수놓인 근현대사

실제 ‘동양자수’라는 이름하에 만들어진 일본식 병풍은 1960년대 청와대의 여러 행사에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 196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 가족을 촬영한 사진 속에는 조선 전통의 병풍이 아니라 높이가 낮고 6폭으로 꾸며진 일본식 병풍들이 발견된다(도7, 8). 사실상 20세기 초부터 조선 왕실에서는 조선 전통의 병풍과는 별개로 일본에서 보냈거나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자수 병풍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일제강점기 여자학교들에서는 일제히 조선식 자수가 아니라 ‘동양자수’를 가르쳤기 때문에 일본 자수는 급속도로 확산 될 수 있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 있는 <국작도菊雀圖 자수병풍>은 일본에서 보낸 것으로 1900년대에 왕실 여인들이 직접 배설排設하고 촬영한 사진이 남아 있다(도9, 10). 러스크 구장 자수병풍은 이러한 왜식倭式 병풍의 제작이 1960년대까지 지속된 현상을 확인시켜준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었던 궁정동 안가에 조선 전통의 십장생도 병풍이 배설되어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도11).
사실상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새로운 전통은 해방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되었고 1960-1970년대 한국 사회가 급박하게 변화한 것만큼이나 전승傳承 미술의 형식 또한 큰 변화를 겪었다. 슈펠트와 러스크에게 전해졌던 자수 병풍은 한미 외교의 산물이자 급변했던 우리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 김수진 (한국민화학회 학술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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