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⑱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Ⅲ – 신선도 세 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이하 LACMA)은 로버트 무어 컬렉션을 인수하며 한국관의 규모는 물론 유물의 미술사적 가치 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어쩌면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 문화를 사랑한 이들과 그 수집품 이야기.


1965년 육영수 여사의 방문 이래 본격적으로 한국 미술과 인연을 맺은 LACMA는 2000년도에 기관 내 한국 미술 수집 역사에 있어 커다란 전기轉機를 맞이한다. LA를 중심으로 활동한 한국 미술 전문 딜러이자 수집가인 로버트 무어(Robert Moore, 도1)로부터 수준 높은 한국 유물 250여점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당시 LACMA의 아시아 미술부 부장이었던 조지 쿠와야마(George Kuwayama)는 로버트 무어의 수집품을 인계받기 위해 무어와의 대화를 시작했고 쿠와야마가 퇴직하자 키스 윌슨(J. Keith Wilson)이 실무를 담당하여 마침내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기증과 매매가 섞인 로버트 무어 컬렉션은 LACMA 소장 한국 미술 소장품을 설명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유물을 포함하고 있다. 이미 1990년대 이전부터 무어 컬렉션은 상당한 양과 수준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그 구성도 도자기, 회화, 직물, 가구, 조각, 공예가 고루 포함되어 있고 유물의 제작 시기 또한 고대부터 조선까지 2000년을 넘나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다양한 유물 가운데에서도 무어 컬렉션의 핵심은 단연 조선시대 회화라 할 수 있다. 초상화, 산수화, 화조화, 무신도 등 여러 장르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궁중 회화부터 민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고루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별 작품 수준도 상당해 수집가의 높은 안목眼目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군으로서 한국과 맺은 각별한 인연

최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로버트 무어는 자신이 보통의 컬렉터가 그러하듯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큰 유산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1955년 미군으로서 서울과 부산에서 복무하며 한국의 문화와 미술에 눈을 떴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당시에 미술 수집을 하기에는 자본과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에 한국 체류 중에 수집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1957년 그가 처음 손에 쥔 한국 유물은 작은 청동 숟가락 하나였다. 이후 청자, 백자, 회화, 조각, 가구, 공예 전 영역을 넘나들며 총 700여점 이상의 유물을 거래했다. 로버트 무어는 1959년 제대 이후 무역과 자동차 판매를 하면서 생활하였고 한국계 미국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가 지난 50여 년 간 한국을 방문한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횟수에 불과하며 수집 과정에서 그가 상대한 이들은 주로 한국에 거주한 적이 있는 미국인 선교사나 외교관, 혹은 그 후손들이었다. 로버트 무어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한반도에서 군정軍政이 이루어졌던 기간 동안 서울에서는 하루에 한 트럭 이상의 유물을 구입할 수 있으리만치 많은 유물들이 거래되었다고 회고했다. 로버트 무어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 유물들을 하나씩 수소문하여 찾고 협상하는 과정을 통해 수백 점의 유물을 수집할 수 있었다.

무어 컬렉션의 가치 높인 또 다른 공로자

LACMA 소장 로버트 무어 컬렉션의 학술적 가치와 미술사적 의미가 조명된 데에는 또 한 사람의 역할이 크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 이하 UCLA) 미술사학과의 교수였던 부르글린트 융만(Burglind Jungmann, 도2)이다. UCLA는 미국 내에서 가장 수준 높은 한국학 프로그램을 갖춘 학교 중 하나로 융만 교수는 한국 미술사 전문가로서 미국 대학에 처음 임용된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대학에서 처음으로 한국 미술사 분야의 박사 과정을 만든 장본인이다. 1999년 UCLA에 부임한 융만 교수는 이후 LACMA와의 지속적인 공조를 통해 LACMA 한국관의 개관과 소장품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이 과정에서 융만 교수는 LACMA 소장품을 다룬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학과 미술관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 과정에서 LACMA의 로버트 무어 컬렉션에 대한 한국국제교류재단 및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구 지원도 이어졌다.

고졸미를 지닌 신선도

이 달에 소개할 LACMA 소장 민화는 로버트 무어 컬렉션에 포함된 세 점의 신선도이다. 이 세 점의 신선도는 크기가 모두 69.5×36.8㎝이며 동일 재질의 종이와 안료를 사용했다. 첫 작품(도3)은 화면 가운데 지팡이를 짚은 노인과 그 곁을 둘러싼 세 명의 동자와 통천관通天冠을 쓴 선인으로 구성됐다. 노인의 정수리가 높고 민머리로 표현된 것은 그가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노인壽老人임을 보여준다. 오른쪽 동자는 노인으로부터 복福주머니를 받고 있으며 왼쪽의 두 동자들은 연잎으로 된 쟁반을 옮기는 중이다. 연잎 위에는 복숭아 세 개와 함께 수壽자 모양의 복숭아나무가 있다. 한 번 먹으면 삼천년을 산다는 천도天桃는 수노인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나 유독 그 나뭇가지로 글씨를 형상화 한 점이 눈에 띈다. 이렇게 길상吉祥 문자의 도상이 신선도나 동자도와 결합한 작례는 조선 후기에 심심치 않게 제작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는 나무줄기를 수壽, 복福, 만萬, 세歲 등의 글자로 표현한 작품(도4)이 있다. 이 중 2폭(도4-1)에는 ‘수’자를 형상화 한 복숭아나무를 쟁반에 들고 옮기는 두 명의 동자와 신선 도상이 보인다. 이 밖에 국립민속박물관의 또 다른 <문자신선도>에도 거의 유사한 도상을 기본으로 사슴을 추가한 작품(도5, 도5-1)이 있다.

이 밖에 길상 문자를 결합한 동자도(도6)가 삼성미술관 Leeum에 전한다. 여기에서는 나뭇가지로 수복壽福, 강녕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경성景星, 경운慶雲, 서우瑞雨, 상일祥日이라는 글자를 형상화했다. 특히 Leeum 본은 도상의 짜임새가 뛰어나며 안료의 수준과 화격이 높아 당대 최고의 화원화가가 그렸음직하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는 《진도금견본첩眞鍍金見本帖》(도7)이라는 초본草本 모음집이 있다. 이는 1832년에서 1866년 사이에 화원화가 안건영安建榮(1841~1877)이 제작한 초본들을 모은 첩이다. 여기에는 신선과 동자가 부富, 귀貴, 여如, 의意 등 길상을 뜻하는 글자를 형상화한 나무를 들고 가는 도상의 초본 여러 장이 포함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삼성미술관 Leeum 본은 이러한 초본을 활용하여 화원화가에 의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 작례에 비하면 LACMA 소장 <수노인도>에 보이는 필치와 안료의 수준은 매우 고졸한 편이다. <수노인도>와 짝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유해劉海와 종리권鍾離權>, <동방삭東方朔>이다. 이들 또한 현재는 축軸 상태로 전하나 국립민속박물관 본과 Leeum 본처럼 본래는 8폭 병풍이었다가 후대에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유해와 종리권>은 LACMA에서 붙인 제목이지만 화면 하단의 유해를 제외한 도상(도8)은 분명치 않다. 필자는 가장 오른쪽에 남루한 차림에 호리병을 든 인물은 주로 쌍상투에 파초선芭蕉扇을 들고 나오는 종리권이기보다는 이철괴李鐵拐의 도상이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운데에 자리 한 인물은 비록 검劒을 찬 것은 아니지만 건巾과 유복儒服 차림으로 보아 여동빈呂洞貧일 가능성이 있다. 화면 왼쪽의 동자는 피리를 불어 신선들의 흥취를 돋우고 있다. 보통 하마선인蝦蟆仙人이라고도 불리는 유해는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데리고 다닌다. 두꺼비는 유해가 이곳저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게 해주는 요물이지만 한 번씩 숨어버리곤 했기 때문에 유해는 다섯 개의 엽전이 달린 끈으로 두꺼비를 낚아 올리곤 했다. 이 작품 속에서도 물고기를 탄 유해가 헝겊 뭉치로 보이는 미끼를 던져 두꺼비를 낚아 올리고 있다. 동방삭은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은 장난기 많은 신선으로 알려져 있다(도9). 이 그림 속에서 동방삭은 복숭아를 들고 있으며 영지버섯을 손에 들고 있거나 어깨에 멘 세 명의 신선들과 다섯 명의 동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 많은 신선들은 본래 장수와 만복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졌을 터이다. 누군가의 사랑방에나 펼쳐졌을 법한 이 그림들 속 신선들은 백년 후에 태평양 건너의 이국에서 본인들이 이리 오래 살게 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학술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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