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⑮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소장 민화Ⅲ
– 안릉행차도, 구운몽도 8폭 병풍, 호랑이와 까치

이번 시간에는 에블린 메큔의 기증품부터 미술관 구입품까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이 다양한 경로로 들여온 소장품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당시 제작 및 수집 과정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며 각 그림들을 찬찬히 감상해보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동일한 초본의 <안릉행차도>

가장 먼저 소개할 그림은 <안릉행차도>(도1)로 세로 32.4㎝에 너비 640㎝에 이르는 긴 두루마리이다. 이 그림은 마치 왕실의 어가 행렬을 그린 반차도班次圖처럼 새로 부임하는 관리의 행차를 그렸다. 화면에는 총 228명의 인물이 행렬을 이루었으며 31마리의 말과 나귀가 등장한다. 두루마리의 마지막에는 ‘요산헌樂山軒’이라는 이가 1785년에 자기 부친이 황해도 안릉安陵의 현감으로 부임하는 장면을 1786년에 화공畵工 김사능金士能에게 그릴 것을 부탁해서 제작했다는 내력을 밝혔다. 사능은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가 자주 쓰던 호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간 이 그림은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실제 각종 깃발을 든 48명의 기수, 군뢰軍牢, 중군中軍, 악대, 아전, 노비, 악사, 기생 등의 인물 묘사는 18세기 화원 화풍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다. 인물의 신체 비례가 길고 자세나 얼굴 표정을 모두 달리 표현한 것도 정조 대 반차도에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이다.

말을 탄 아녀자 중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이도 있고 세 명의 아이들이 말 위에 함께 타고 있는 도상(도1-1, 2-1)도 보인다. 쌍가마는 18명의 수종원이 옹립하고 있어 과연 현감 부임에 이렇게 규모가 큰 행렬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림에 등장하는 기물들에는 청도淸道, 홍문紅門, 홍초紅招, 백초白招, 흑초黑招, 월도月刀, 령令, 표미豹尾, 관이貫耳 등 그 명칭을 빠짐없이 기입하여 보는 이에게 최대한의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정말 김홍도의 진작이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그 필치의 수준이나 그림의 출처가 의심스럽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 작품과 크기 및 도상이 거의 동일한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라는 작품(도2)이 전한다. 이 국립중앙박물관 본은 1937년에 이왕가박물관에서 이성혁李性爀이란 인물로부터 200원에 구입했다는 기록(도3)이 남아 있다. 거래 당시 내역에도 이미 ‘김홍도 필 안릉신영도’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샌프란시스코 본과 국립중앙박물관 본은 도안이 완전히 일치하며 두루마리 말미에 있는 제발도 같다. 부분 도판을 비교해보아도 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본이 좀 더 정세한 묘사력을 보이기는 하나(도1-2, 2-2) 도안은 일치하여 두 본이 모두 동일한 초본을 활용한 작품임을 확신할 수 있다.

일평생 한국 문화와 함께한 에블린 메큔

이 작품은 에블린 메큔(Evelyn Becker McCune, 1907-2012)(도4)이 1991년에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다. 에블린 메큔은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이자 교육자의 딸로서 190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이후 계속 한국에서 성장하던 메큔은 미시건 주에 있던 알비온 대학(Albion College)과 조지아 주에 있는 아그네스 스캇 대학(Agnes Scott College)에서 수학한 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 입학하여 1930년에 학사를 마쳤다. 졸업과 동시에 한국에 다시 돌아온 에블린 메큔은 1932년까지 서울 외국인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1933년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던 또 다른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인 조지 메큔(George McAfee McCune, 1908-1948)과 결혼했다. 이 신혼부부는 결혼 후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지속하였고 조지 메큔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한국 역사학으로 194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조지 메큔이 당시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있던 에드윈 라이샤워(Edwin O. Reischauer, 1910-1990)(도5)와 함께 만든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이 바로 ‘메큔 앤 라이샤워 시스템’이다. 2000년도에 한국 정부에서 한글 개정 표기법을 발표하기 전까지 메큔 앤 라이샤워 시스템은 오랜 기간 한글의 공식 로마자 표기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옥시덴탈 대학(Occidental College)에서 한국의 역사와 언어를 가르치던 조지 메큔은 1948년 심장병으로 아까운 생을 마감하였고 1950년 에블린 메큔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한국 역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에블린 메큔은 1945년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및 아시아 전문가로서 미 정부 및 군의 산하 기관에서 일했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에는 서울에 파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및 그 밖에 전쟁으로 파괴된 한국문화재의 현황을 파악하여 미국 국회도서관에 보고하였다. 이후 캘리포니아에 완전히 정착한 에블린 메큔은 이 일대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및 한국 역사를 가르쳤다. 1962년에는 《한국의 미술The Arts of Korea: An Illustrated History》(도6)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1983년에는 《한국의 병풍The inner art: Korean screens》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그녀는 한 평생을 교육, 연구, 출판 작업에 헌신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에 기여했다.
전 생生을 한국과 함께 하였던 그녀의 궤적을 떠올리면 미술관에 기증된 한국 유물의 의미가 더욱 오롯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에블린 메큔이 어떤 연유로 <안릉행차도>를 소장하고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20세기 전반에 외국인들을 겨냥하여 김홍도 화풍 계열의 풍속화나 행차도가 인기리에 유통되었던 만큼 이 유물 또한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입부터 기증까지, 국외 한국 컬렉션이 형성되는 과정

<구운몽도 8폭 병풍>(도7)은 19세기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던 구운몽도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1997년에 구입된 것이다. 병풍은 틀을 포함한 전체 높이가 164.1㎝, 너비가 409.5㎝로 대중적으로 선호된 규모를 보인다.
오른쪽부터 첫 번째 폭은 주인공인 양소유에게 자기 집을 안내하고 있는 계섬월의 모습이다. 두 번째 폭은 양소유와 진채봉이 만나는 장면으로 누각 안에 있는 진채봉이 나귀를 타고 가는 성진을 바라보고 있다. 세 번째 폭은 양소유가 정사도의 사촌인 정십삼랑의 계책에 속아 시동을 데리고 종남산 계곡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나귀를 타고 사모관대 차림을 한 양소유는 과거에 급제하여 명관名官이 된 모습이다. 네 번째 폭은 양소유의 어머니가 양소유의 집에 방문하여 잔치가 열린 장면이다. 다섯 번째 폭은 낙유원에서 월왕을 위해 벌어진 잔치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양소유의 여러 부인들이 총출동했다. 그 중 심요연은 칼춤을 추고 백릉파는 비파를 연주하고 있으며 적경홍은 준마를 탄 채 활로 꿩을 겨누고 있다. 여섯 번째 장면은 대원수가 된 양소유가 자객 심요연을 만나는 장면이다. 일곱 번째 폭은 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라는 것을 깨달은 양소유가 육관대사를 만나려는 찰나이다. 여덟 번째 폭은 성진과 팔선녀가 석교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보통 구운몽도의 도입부에 나오는 장면으로 병풍의 가장 오른쪽 첫 폭으로 자리를 옮기는 편이 맞을 것이다.
<호랑이와 까치>(도8)는 전 대한조선공사大韓造船公社 회장이었던 남궁련(1916-2006)이 2000년도에 기증한 작품이다. 남궁련은 한국일보 사장을 지내기도 한 기업인으로 이미 1950년대부터 문화재를 모은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업을 하는 과정에서 외국 출장이 잦았던 남궁련은 꼭 현지의 박물관에 방문하여 안목을 넓혔다고 한다. 특히 남궁련은 자신의 소장품을 살아생전부터 사후에 이르기까지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대학교 박물관 등에 기증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울러 한국 문화재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취지에서 자신의 소장품을 영국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위시한 외국 기관에도 적극 기증했다. 바로 이 <호랑이와 까치>도 남궁련이 도자기 몇 점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 기증한 유물 중 하나이다.
앞서 살펴본 그림들은 국외 기관 내 한국 컬렉션이 구성되기까지 소장품의 유입 과정에 대한 대표적인 세 가지 유형, 즉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수집, 기관의 구입, 한국인의 의식적인 국외 기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학술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