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소장 민화
– 나전·별갑·어피 병풍, 포도도, 화조도

지난달에 이어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이 소장한 민화를 추가로 소개한다.
다양한 종류의 병풍을 통해 작품의 시대적 배경 및 당대 장인들의 폭넓은 미감의 세계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바다향이 물씬 나는 6폭 병풍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에 소장되어 있는 <나전·별갑·어피 6폭 병풍>(도1)은 여러 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흥미로운 작품이다. 병풍은 왼쪽부터 각 폭에 용, 봉황, 사슴, 호랑이, 학, 모란이 시문되어 있는데 그 재료는 별갑鱉甲, 어피魚皮, 나전螺鈿이 고루 결합돼 있다. 예를 들어 1폭에 등장하는 용의 발톱은 어피로 처리한 반면 몸통은 나전으로 마무리했다. 배경에는 거북이 등껍질인 별갑과 함께 황동으로 된 선線이 감입되어 있다(도1-1). 이 병풍은 에브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 1887-1975)가 1961년에 미술관에 기증한 것인데 무엇보다 작품의 재료를 모두 바닷가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교통의 발달이 여의치 않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나전 공방은 응당 재료를 구하기 쉬운 바닷가에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중 경상남도 통영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나전칠기로 이름이 높았다.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실명 계보가 추적되는 장인들도 대부분 이 일대 출신이다. 이로 인해 나전 분야의 역대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은 모두 예외 없이 통영 출신이거나 그들의 제자 혹은 후손이다.

전문 장인들의 협업으로 완성한 역작

나전의 대표적인 기법 두 가지는 끊음질과 줄음질인데 해방 이후 국가 지정 최초의 끊음질 기능 보유자는 송주안(宋周安, 1901-1981)이다. 그는 1917년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시 업계 최고의 명인으로 꼽혔던 박정수(朴貞洙, 생몰년 미상)의 문하생이 되었다. 1920년부터는 일본에 유학하여 7년간 일본 공예계를 경험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조개껍질을 끌로 끊어 인두로 붙이는 끊음질 기법은 그 아들인 송방웅(宋芳雄, 1940년생)이 전수받았고, 그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조개껍질을 줄로 썰어 도안대로 오려붙이는 줄음질의 최초 기능보유자는 김봉룡(金奉龍, 1902-1994)이다. 김봉룡도 역시 통영 출신으로 1919년부터 박정수의 문하생이 되어 기초를 다졌다. 이후 통영칠기주식회사에 입사하였으며 중년부터는 일본 및 유럽에 진출하여 국제무대에서 활동하였다. 김봉룡 사후에는 그의 제자였던 이형만(李亨萬, 1946년생)이 줄음질 기능보유자 직을 이어 받았다. 이러한 업계의 지형도를 고려한다면 샌프란시스코 본 또한 통영의 공방 혹은 통영 계보의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방 자체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나전과 함께 어피 및 별갑을 공정할 수 있는 곳도 지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930년 《매일신보》에는 화가 이도영(李道榮, 1884-1933)이 동화상회에 전속되어 도안을 제작한 나전 병풍(도2)이 소개된 바 있다. 20세기 전반에는 당대 최고의 화가가 도안을 그릴 만큼 나전 공예의 수준이 높았음을 방증한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는 통영 지역에서 수습된 것을 포함하여 300점 가량의 나전 도안 견본(도3, 도4)이 소장되어 있다. 이들의 주제는 화조, 동물, 식물, 기하학 문양 등으로 다양하다. 샌프란시스코 본도 기량 있는 화가들이 제작한 초본을 바탕으로 나전, 별갑, 어피 전문 장인들이 협업하여 완성한 역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창적 구성과 고난도 장황의 포도도 병풍

19세기 이래 병풍에 자수, 나전, 이금泥金, 호분胡粉과 같은 기법이나 재료를 활용한 경우는 상당한 고급품에 속했다. 자수는 매우 노동 집약적인 기법이며 나전, 이금, 호분은 재료부터가 고가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소장 최석환(崔奭煥, 1808-1883년 이후)의 <포도도>(도5)는 수묵만으로 완성된 병풍이다. 최석환의 작품은 현재 전하는 수가 적지 않은데 대부분의 기본 도안이 대동소이하다. 아울러 최석환의 작품이 시장에서 매매된 정황이 있어 그가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남아 있는 최석환의 작품들은 산수, 화조, 영모가 고루 보이지만 특히 포도도의 수가 많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석환의 포도도는 30여점이 훌쩍 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병풍으로 꾸며졌다. 샌프란시스코 본도 최석환 포도도 병풍이 가진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우선 나무 기둥은 생략된 채로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시작한 포도 덩굴이 왼쪽 하단까지 힘차게 뻗어 나가는 모습이다. 초룡草龍이라는 포도의 별칭답게 여덟 폭의 병풍 화면을 가로지르는 덩굴의 용트림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농담農談을 조절한 포도 알갱이의 묘사와 구불구불한 덩굴을 표현한 붓질의 속도감은 가감 없이 화면에 묻어난다. 제발에는 ‘1870년 가을 국화가 필 때 63세 최석환이 그리다’라는 내용이 있다. 최석환의 <포도도>는 병풍의 폭 수만큼 여러 포도나무를 그린 각폭 형식도 있지만 샌프란시스코 본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은 하나의 덩굴을 연결하여 그린 연폭 형식이다. 병풍에서 연결된 화면 전체를 활용한 형식은 각 폭을 독립 화면으로 꾸민 형식보다는 훨씬 다루기가 까다롭다. 전자는 배접 과정에서 그림이 잘리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그림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연결 부위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폭 병풍을 꾸밀 때는 그림을 그린 화가가 직접 장황을 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의 지방 화사들이 그러하였듯이 최석환 또한 그림을 그린 후 직접 장황까지 마무리 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석환의 포도도는 유독 해외에 소장된 경우가 많은데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 of Art),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디트로이트 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 작품이 대표적이다(도6).

벽장화로 추정되는 화조도 4폭 병풍

마지막으로 소개할 유물은 에브리 브런디지가 기증한 <화조도 4폭 병풍>(도7)이다. 이 작품 또한 병풍 4폭 전체가 연결된 형식이다. 복숭아꽃, 사과꽃, 모란꽃이 어우러져 있으며 하단의 괴석 위에는 금계金鷄 네 마리가 앉아 있다. 하늘을 날고 나무에 앉은 나머지 여덟 마리는 한 종種으로는 보이나 실존하는 새로 특정하기가 어렵다. 이 병풍은 4폭이라는 흔치 않은 형식에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율을 보인다는 점에서 벽장화였을 가능성이 있다. 창덕궁에서 유전한 벽장화 가운데에 이 정도 크기와 규모의 유물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도8). 안료의 수준이나 섬려한 공필의 흔적을 고려하여도 왕실 소용 혹은 그에 준하는 유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폭 병풍은 활짝 펼쳤을 때 다른 배접 소재 없이 그림과 그림이 바로 붙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장황에도 손이 많이 가지만 상대적으로 화면도 쉽게 닳기 때문에 사후 관리가 어렵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각폭 병풍보다 연폭 병풍의 공임을 통상 2~30% 정도 더 받는다. 병풍은 일상적인 실내 장식과 방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관혼상제의 중요한 의구儀具로도 활용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의 병풍 소장품만으로도 병풍의 다양한 제작 방식과 사용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학술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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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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