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⑩ 보스턴 미술관 소장 우리 민화

책거리와 포도도 병풍 그리고 이백기경도

지난 시간에 이어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 민화들을 소개한다. 한국 미술 전문가인 제인 포털이 부임하면서 보스턴 미술관의 한국 회화 컬렉션은 불화, 수묵화, 채색화로 고른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작품들 중 병풍 그림 2점은 모두 제인 포털이 부임한 이후 구입한 한국 민화 작품이다. 보스턴 미술관의 한국 회화 컬렉션은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한국 미술 전문가를 키워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편집자 주)


이번 호에는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병풍 그림 2점, 단품 1점, 사진 1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 회화는 기증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그간 미술관 측이 회화 작품을 적극적으로 구입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2008~2014년에 한국 미술 전문가인 제인 포털(Jane Portal)이 보스턴 미술관에 부임하면서 한국 회화가 새로 구입될 수 있었다. 이것은 한국 회화 컬렉션이 불화, 수묵화, 채색화로 고르게 구색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제인 포털은 북경대학과 연세대학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는 인물로 1987년부터 2008년까지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 재직하였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간 보스턴 미술관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다시 영국박물관으로 돌아간 이래 현재까지 아시아 미술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세부 묘사가 살아 있는 책거리 병풍

이번에 소개할 두 개의 병풍은 모두 제인 포털이 보스턴 미술관에 부임한 직후에 뉴욕의 고미술상인 강금자 대표를 통하여 구입한 작품들이다. 먼저 <책거리 10폭 병풍>은 본래 교토의 게이고 오모리가 소장하였던 것을 2008년 강금자 대표가 구입하였고 다시 2009년 보스턴 미술관이 입수하였다. 화면은 10폭으로 꾸며졌으며 전반적으로 파란색,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의 원색을 사용하였다. 매 폭의 배경에는 비단 장정으로 된 책이 완질完帙로 쌓여 있고 좌우 측면에는 화분이 놓여있다. 화면 하단에는 책갑, 머릿장, 소반, 문갑 등의 가구 위에 소품들을 올려놓은 구성을 하였다.
오른쪽부터 1폭에는 필통, 반닫이, 곰방대가 보이며 2폭에는 시계, 안경, 수박, 파초, 호피 문양의 작은 병풍이 보인다. 수박은 단면을 잘라 씨가 보이며 시계는 로마자와 알파벳을 흉내 낸 글자를 그려 넣었다. 3폭에는 필통, 술병, 석류, 분재가 보이며 4폭에는 통천관通天冠과 가지가 보인다. 5폭에는 매, 공작 깃털, 다구茶具, 안경집, 포도가 있고 6폭에는 부채가 꽂힌 필통, 고양이, 향로가 보인다. 7폭에는 생황笙簧, 수묵화가 그려진 접선摺扇, 벼루와 연적이 있으며 8폭에는 필통, 겹쳐 쌓은 세 개의 잔, 물고기 형태의 장식품이 보인다. 9폭에는 어항, 경대, 문갑장이 있으며 10폭에는 새장 속의 새 두 마리와 바둑판이 보인다.
이 작품은 안료의 색감이나 종이 상태를 고려할 때 20세기 이전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2폭 시계(도2)에 보이는 로마자와 알파벳은 글자를 쓴 것이 아니라 그린 편에 가깝고 4폭 통천관(도3)이나 10폭 새장(도4)도 자주 보이는 소재가 아니다. 이 작품에는 보통의 책거리에 보이는 거의 모든 종류의 기물이 망라되어 있는데 그 세부를 살피는 재미가 크다.


포도 덩굴에 몸을 숨긴 다람쥐와 꿀벌

두 번째 병풍은 8폭 포도도(도5)이다. 이 병풍은 1폭에서 시작된 포도 넝쿨이 힘 있게 왼쪽으로 뻗어나가 8폭에서야 끝이 난다. 보통의 포도도 병풍이 중반부 어딘가에서 시작하여 좌우로 뻗어나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1폭에서 시작한 줄기는 가지가 열 개에 이르러 그 기세가 상당하다. 마지막 8폭에는 별다른 인장이나 관서 없이 ‘天寶中沙門植之 丈高數仞蔭地十 餘丈望之若帷蓋 時人號曰草龍珠帳’라는 제발이 있어 구불구불한 포도 덩굴을 푸른 용에 비유하였다. 이 글은 당나라의 문인인 단성식段成式(?~863)이 쓴 《유양잡조酉陽雜俎》 18권의 일부를 발췌하여 글자의 출입을 바꾼 것이다. 《유양잡조》는 종교나 풍속과 관련한 다양한 우화와 우스꽝스런 일화를 모은 잡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숨어 있다. 그것은 포도 덩굴 뒤에 몸을 감춘 다람쥐와 포도에 날아든 꿀벌들이다. 덩굴 사이의 다람쥐들은 농담을 달리한 먹으로 몸에 난 줄무늬를 표현한 탓에 언뜻 봐서는 알아보기 어렵다(도6). 8폭 제발 부분에 보이는 꿀벌들은 세부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준다(도7). 이 작품은 1983년까지 서울에 있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1990년대에 부산의 개인에게 넘어갔다. 다시 2006년에 미국 LA로 건너갔다가 2009년에 강금자 대표에 의하여 보스턴 미술관에 입수되었다.


이백기경의 고사를 표현한 단품

세 번째 작품은 1939년 찰스 파커(Charles H. Parker)가 기증한 작품으로 한 사내가 물고기를 타고 가는 모습을 그린 단품이다(도9). 허리춤에 호리병을 찬 사내는 애주가로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701~762)일 것이며 이 고사는 이백기경李白騎鯨으로 보인다. 이 고사는 이백의 생애 마지막 날의 이야기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이백은 최종지崔宗之와 함께 술을 마시며 뱃놀이를 하였다. 여느 때처럼 한껏 취한 이백은 밤의 정취를 즐기다 강물에 비친 탐스러운 달에 마음을 빼앗겼다. 급기야 달을 잡으려던 이백은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지게 된다. 이 때 갑자기 고래가 나타났고 이백은 그걸 타고 승천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것이 고사의 골자이다. 본 작품에서 화려한 문양의 붉은 상의를 걸친 이는 이백이라 할 만하지만 이백이 탄 물고기는 도저히 고래로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상주 남장사에 전하는 이백기경도 또한 고래의 자리에 잉어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사람들은 고래를 사생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도10).

흑백사진 속 인물의 배경에 놓인 10폭 병풍

마지막에 소개할 사진(도11)은 1883년에 조선을 방문하였던 로웰(Percival L. Lowell, 1855~1916)이 촬영한 것이다. 사진 속 고관은 쌍학흉배 차림이며 양손을 소매 안에 감추고 있다. 인물의 배경은 아주 독특한 화제를 가진 10폭 병풍으로 꾸며졌다. 병풍은 흑백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장대한 규모나 섬려한 필치가 돋보여 궁중 양식이 십분 발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면은 섬과 섬 사이에 배들이 분주하게 오가거나 이를 무지개다리로 연결한 이국적인 광경을 묘사하였다. 여러 섬에는 화려한 건축 누각이 자리하였다. 화면의 전면은 구름으로 섬과 섬을 구획하였고 후면은 강을 통하여 공간 구획이 이루어졌다. 여기저기에 이화梨花로 추정되는 꽃들이 만발한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은 강남춘의도江南春意圖 계열일 것이다.
해외 기관에 소장된 한국 컬렉션은 보통 한국에 연고를 가졌던 기증자에 의하여 형성된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관에 한국 미술 전문가가 있어야 별도의 구입을 통한 컬렉션 형성이 가능하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보스턴 미술관의 한국 회화 컬렉션이며 이것이 국제적인 한국 미술 전문가를 배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학술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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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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