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⑨ 보스턴 미술관 소장 우리 민화

20세기 초, 서구인들을 매료시킨 동양 미술 용龍과 문자도

이번 호부터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한국 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살펴볼 유물은 용 그림 1점과 문자도 8폭 병풍 1점이다. 찰스 베인 호이트가 수집한 용 그림은 조선시대 기우제에 사용되었던 화룡의 이미지라 생각된다. 문자도 8폭 병풍은 5폭과 8폭의 자리가 뒤바뀌어 있으나 전형적인 ‘효제충신예의염치’ 8자 병풍이다. (편집자 주)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은 19세기부터 동아시아 유물을 수집한 미국 내 대표적인 미술관 중 하나이다. 보스턴에서 일찍부터 동아시아 미술을 수집할 수 있었던 까닭은 우선 그것을 감당할 만한 인적 자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1878년 일본 메이지 황실은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당시 하버드 대학 출신이었던 에른스트 페놀로자(Ernest Francisco Fenollosa, 1853~1908)를 도쿄 대학에 초빙한 바 있다. (도1) 페놀로자는 8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정치 경제와 철학을 가르쳤다. 이 기간 동안 일본 미술에 깊은 조예를 갖게 된 페넬로자는 미국으로 귀국할 때 많은 일본 미술품을 가지고 돌아갔다. 페넬로자의 수집품은 1890년 보스턴 미술관에 대거 유입되었고 페넬로자는 보스턴 미술관을 거점으로 중국 및 일본 미술 관련 전시를 기획하고 관련 강연을 펼쳤다. 보스턴 미술관은 현재 일본 바깥에서 일본 미술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 미술에 일찍 문을 열게 된 보스턴 미술관은 이후 중국 및 한국 미술품의 수집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 달부터는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한국 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살펴볼 유물은 용 그림 1점, 1883년에 촬영된 사진 1점, 문자도 8폭 병풍 1점이다.

1950년 보스턴 미술관에 기증된 용龍 그림

먼저 용 그림은 세로 113.5㎝, 가로 72.5㎝의 크기로 현재 액자 상태이다(도2). 이 작품은 1950년에 보스턴 미술관에 입수되었는데 본래는 찰스 베인 호이트(Charles Bain Hoyt, 1889~1949)의 수집품이었다. 호이트는 위스콘신(Wisconsin) 주의 커노샤(Kenosha) 출신으로 1940년 보스턴에 정착하였다. 20대부터 부모와 함께 일본을 여행하며 도자기 및 판화 수집을 시작한 것을 인연으로 40여 년간 시베리아부터 동남아시아, 중동, 지중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호이트는 말년에 하버드 대학 포그 미술관(Fogg Museum of Art, Harvard University)의 명예 큐레이터로 활동하였다. 본 용 그림을 포함하여 호이트의 컬렉션 대부분은 호이트가 사망한 이듬해인 1950년 보스턴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호이트는 유물 자체를 남긴 것 뿐 아니라 유물 구입 용도의 기금을 따로 남겼기 때문에 미술관은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아시아 유물을 구입하고 있다. 그가 수집한 한국 유물은 대부분 도자기로 특히 고려청자가 많다. 보스턴 미술관에서 1952년에 열린 호이트 추모 전시회에서도 한국 유물은 오직 도자기만 소개되었다.
본 용 그림은 검은 구름을 뚫고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담았다. 오른쪽 상단에는 ‘冠角而被鱗, 淵潛而天飛. 觀乎無一極之外, 息乎太荒之墟, 窮短睨盡變化者, 其龍也歟’라는 제발이 남아 있다. ‘관에는 뿔을 달고 도깨비의 가죽을 쓰고 나른하게 자맥질하여 하늘을 날며, 극점 너머의 것을 관망하며 태양이 위치한 곳에 숨 가쁘게 다다라 그 몸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용이다.’는 의미이다. 제발의 시작은 ‘계산관稽山館’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화가의 호일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세로의 크기가 1미터 남짓한 용 그림은 현재 온양민속박물관 본을 포함하여 상당히 많은 수가 전한다. (도3)

조선시대 기우제에 사용되었던 화룡畵龍

대부분 이런 그림들은 기우제祈雨祭에 실질적으로 사용된 화룡畵龍 이미지라 생각된다. 화룡을 그려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은 조선 전기에 수십 건 발견된다. 조선 왕조 실록의 예를 살펴보면 1411년 5월 21일, 1427년 6월 6일, 1428년 윤4월 22일에 화룡을 그려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1474년 윤6월 10일에 용 그림을 그려 화룡제를 열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만으로는 용 그림이 어떻게 기우제에 활용되었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보스턴 용 그림은 화면 전체에 가로 방향으로 박락剝落의 흔적이 가득하다. 이는 이 그림을 벽에 부착했다가 떼어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침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사진 가운데 이 용 그림의 용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예(도4)가 남아 있어 주목된다. 이 사진은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1855~1916)(도5)이 촬영한 것이다.

1855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로웰은 1876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수년 간 세계를 여행하였다. 1883년에는 2달 간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이 때는 1882년 조미 수호 조약이 체결된 바로 이듬해였다. 로웰은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초기 방문자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비록 한국에서 특별한 선교나 외교, 학술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로웰이 촬영한 사진 중에는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 자료가 많다. 본 사진은 정확하게 어느 장소에서 누구를 촬영한 것인지를 밝히기는 어려웠다. 다만 사진 속 등장인물들이 모피로 된 겉옷으로 걸친 점이나 그들의 머리 모양과 복식을 고려하면 중국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일군의 사람들 옆으로 일종의 간이 벽壁 같은 구조물이 보인다. 이 벽 위에 용 그림이 부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기우의 용도라기보다는 일종의 벽사辟邪의 의미였을 것으로 보인다.

주황색과 녹색을 주조로 꾸민 문자도 8폭 병풍

마지막으로 문자도 8폭 병풍을 소개하고자 한다. (도6) 이 병풍은 전형적인 ‘효제충신예의염치’ 8자 병풍이다. ‘효孝’자에는 잉어와 죽순이라는 전형적인 효자 고사 도상이 보인다. ‘제悌’자에는 할미새 두 마리와 앵두꽃이 형제간의 우애를 전하고 있다. 왼쪽에는 책가冊架를 형상화한 도상이 보인다. 3폭 ‘충忠’자는 대나무와 새우를 통하여 충성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4폭 ‘신信’자에서는 벌레를 물고 있는 새와 사당이 보인다. 이 병풍은 5폭 ‘예禮’자에 들어갈 자리에 ‘치恥’가 있다. 5폭과 8폭의 자리가 뒤바뀐 것이다. 따라서 8폭의 ‘예’자를 먼저 보면 닭과 책가가 있다. 6폭 ‘의儀’자에서는 물고기 꼬리 한 쌍, 서로를 마주보는 꾀꼬리 한 쌍, 매화로 보이는 꽃장식이 있다. 7폭 ‘염廉’자는 수탉인지 봉황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새가 글씨 위에 자리하였으며 왼쪽 옆 글씨의 획 사이에는 사당祠堂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5폭에 들어가 있는 ‘치’자는 연꽃과 매화로 장식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백세청풍 이제지비百世淸風 夷齊之碑’라 적힌 비문이 있다. 이렇게 주황색과 녹색을 주조로 하여 8폭의 문자도를 꾸미는 것은 경상도 지역에서 크게 유행한 형식이었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도7), 개인(도8), 프랑스 기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례들이 바로 이 유형에 속한다. 이 작품이 수습된 곳이 경상도 어디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작품은 2007년까지 일본 교토의 케이고 오모리라는 인물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뉴욕의 고미술상 강금자 대표가 인수하였던 것이다. 보스턴 미술관은 찰스 베인 호이트 펀드를 통하여 2009년에 이 작품을 구입하였다.
20세기 초반 서구에 동양 미술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동양의 미에 매료되었다. 그에 대한 강한 동경과 열망은 사람과 유물이 태평양을 건너게 하였다. 그 유산이 현재까지도 빛을 발하는 셈이다.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학술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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