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⑧ 와그너 교수의 책거리 관련 아카이브 자료

화원들의 가계를 통해 밝혀진 조선후기 회화사

메리 버크 컬렉션에 이어 11월 연재에서는 하버드 대학에 소장된 ‘와그너 교수의 책거리 관련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조선후기 회화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버드 대학에서 34년간 한국사를 가르친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는 책거리 전문 화원들의 가계도 조사를 통해 조선후기 회화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학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가 남긴 수백 장의 육필 원고와 슬라이드 사진, 복사본 그림들은 향후 이 분야에서 어떤 연구가 필요할지 알려주고 있다.(편집자 주)


하버드 대학에는 ‘에드워드 와그너 개인 아카이브(Edward W. Wagner personal archive)’라 이름 붙여진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이 자료는 총 35개 박스와 플로피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다.(도1) 관련 연구를 원하는 누구든 직접 하버드 대학 아카이브에 방문하면 자료의 열람이 가능하다. 이 방대한 자료를 남긴 이는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 Wagner, 1924~2001) 교수(도2)로 그는 1959년부터 1993년까지 34년간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르쳤다. 와그너 교수가 한국학에 입문한 것은 하버드 재학 시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수 년 간 일본과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1945년 종전이후 그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한국의 미군정 외무부서 문관으로 일하였다. 1948년 미국에 돌아온 와그너는 하버드 대학에서 1949년에 학사, 1951년에 석사, 1959년에 박사 과정을 마쳤다. 와그너 교수는 미국에 한국이란 나라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절부터 한국학에 투신하여 남은 생 전체를 한국사 연구에 매진한 인물이다. 미국 내 1세대 한국학의 개척자이자 하버드 대학 내 한국학의 기반을 다진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화가들의 가계조사로 책거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현재 하버드 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와그너 교수의 개인 자료는 그의 부인인 김남희(Namhi Kim Wagner, 1923년생) 여사가 수 년 간의 정리 끝에 하버드 대학에 기증한 것들이다.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남희 여사(도3, 도4)는 하버드 대학 옌칭 도서관의 사서이자 하버드 대학 한국어 강사로 남편 못지않게 긴 시간을 한국학의 성장에 이바지하였다. 현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도자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From Senior Preceptor to Master Potter at Harvard – Namhi Kim Wagner’라는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도5). 최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여사는 와그너 교수가 남긴 자료 가운데 일부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1935년생) 교수가 가져갔고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를 하버드 대학에 넘긴 것이라는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상 와그너 교수가 주력한 연구는 한국의 미술사나 민화 연구와는 전혀 무관한 분야였다. 그는 주로 조선시대의 사화士禍, 15,000명에 달하는 과거 합격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그 의미, 중인 계층의 형성 문제, 현대 한미 관계를 연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그너 교수가 조선후기 회화사와 책거리 연구에 끼친 영향력은 상당하다. 1차적으로는 그가 진행하였던 중인 계층 연구를 통하여 조선 후기에 복잡한 통혼通婚 관계로 얽힌 사자관寫字官과 화원 가계에 대한 상당한 자료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2차적으로는 중인 가계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책거리를 전문으로 그린 화가들의 가계를 밝힌 것이 큰 성과이다. 특히 1993년과 1998년에 미술사가인 케이 블랙(Kay Black) 여사와 공동으로 집필한 논문에서는 이형록李亨祿, 이응록李應祿, 강달수姜達秀, 한응숙韓應淑의 인장印章이 찍혀진 책거리 작품(도6)을 소개함으로써 이 분야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당시에 책거리의 인장에서 이형록이라는 이름을 찾아낸 사례는 국내에서도 알려진 바가 있었으나 이형록이 아닌 작가의 이름이 논의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와그너 교수의 연구를 발판으로 응록과 택균宅均이 이형록이 사용하던 이명異名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현재 이 세 개의 이름이 사용된 책거리 작품이 총 10점 가까이 발굴된 상태이다.

미완의 원고로 남겨진 책거리 프로젝트

블랙 여사와의 공동 작업에서 와그너 교수는 자신의 장기인 족보 및 가계 연구를 통하여 이형록이 당대 최고의 화원 가문이었던 전주 이씨 출신임을 밝혀냈다. 아울러 가계도(도7)를 고증함으로써 이형록이 증조부 이성린李聖麟(1718~1777), 조부 이종현李宗賢(1748~1803), 부친 이윤민李潤民(1774~1841), 숙부 이수민李壽民(1783~1839)에 이어 화원 직역을 계승한 인물임을 구명하였다. 또한 이 가계도가 이형록의 아들들인 이재선李在善(1843~1876년 이후)과 이재기李在基(1830~1856년 이후), 손자 이덕영李悳泳(1870~1907년 이후)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밝혀냈다. 아울러 또 다른 책거리 화가인 강달수가 전주이씨 가문과 통혼 및 입양 관계를 통하여 하나의 가계도에 그려지는 인물(도7, 도8)이었다는 사실도 구명하였다.
이 같은 성과는 모두 하버드 아카이브에 있는 와그너의 육필 원고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와그너 교수가 남긴 총 35개의 서류 박스 중 ‘책거리 프로젝트 파일(Ch’aekkŏri project files)’로 분류되어 있는 박스는 4개이다. 안타깝게도 1986년에 시작된 책거리 프로젝트는 1998년에 쓰다만 미완의 원고를 남긴 채 끝이 났다. 와그너 교수의 알츠하이머 지병이 깊어지면서 더 이상 책상에 앉는 것도 손에 펜을 쥐는 것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내 순회 전시로 높아진 책거리의 위상

2016~2017년에 있었던 미국 내 책거리 순회 전시가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뉴욕-캔사스-클리블랜드를 거친 장장 13개월의 순회 전시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미국 내 책거리 소장 기관들은 작품의 제목을 본래 사용하던 ‘book and things’와 같은 영어 제목에 ‘Chaekgeori’라는 한글 고유 명사를 병기하고 있다. 아울러 그간 미국 내 미술 시장에 풀려 있던 책거리 매물들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이는 1993년에 처음 책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논문을 냈던 와그너 교수도 흐뭇해 할 뉴스이다.
와그너 교수가 남긴 수백 장의 육필 원고 속에는 아직 정체가 다 드러나지 못한 책거리 화가의 이름들이 남아 있다. 아카이브 자료 속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슬라이드 사진과 복사본 그림들이 있다. 이 자료들은 앞으로 이 분야에서 어떤 연구가 필요할지를 보여준다. 한자와 한글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쓰고 붉은색 표점과 실선·점선·화살표로 표식을 한 가계도도 수 십 장이 나왔다. 지난 여름 며칠 간 종이 먼지를 마시며 이들을 뒤적이노라니 노학자의 궤적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 절절한 시간 앞에서 간혹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보다 어떤 태도로 공부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학술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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