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민화 컬렉션 ⑥ – 미니애폴리스 미술관 소장 메리 버크 컬렉션 화조화 병풍과 연화거북도

8월호에 이어 이번 연재에도 메리 버크의 컬렉션을 살펴보려 한다. 9월호에는 <화조화 8폭 병풍>과 <연화거북도>를 소개한다. 조선시대의 스테디셀러였던 <화조화 8폭 병풍>은 비단 왕실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계층에서 인기가 있었던 그림으로 여겨지며, <연화거북도>는 창호나 벽장의 문에 붙였던 일종의 벽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1900년대 초에 촬영된 사진 속 화조 병풍과 벽장문지를 통해 당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편집자주)


지난 연재에 이어 이번에도 메리 버크(Mary Griggs Burke, 1916~2012)가 수집하여 미니애폴리스 미술관(Minneapolis Institute of Art)에 기증한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 소개할 <화조화 8폭 병풍>(도1)은 궁중 화풍의 청록 안료를 단아하면서도 섬세하게 사용한 수작秀作이다. 이 작품은 매 폭의 병풍에 두 쌍의 꽃, 세 쌍의 새, 한 덩어리의 암석을 그렸다. 화면의 기본 구성은 측면에 동백, 매화, 작약, 모란 등의 꽃나무를 넣고 하단에 암석을 배치하였다. 바닥에서는 수선화, 국화, 참나리 꽃 등이 피어나고 있다. 매 폭에는 세 쌍의 새가 배치되었는데 그 종류는 금계金鷄, 꿩, 청둥오리, 황오리, 까치, 제비, 기러기, 앵무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 새 묘사에는 앞에 나왔던 동일한 종種이 다시 반복된 경우도 있다. 암석에 가해진 화려한 청록의 광물성 안료 그리고 새와 꽃에 채색된 단정한 식물성 안료가 화면에 강약强弱을 만들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화조화 병풍은 여러 계층에서 꾸준하게 인기가 있었던 스테디셀러(steady seller)였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조화 8폭 병풍>(도2)도 미니애폴리스 본과 거의 유사한 구성을 보인다. 하단과 측면에 청록풍의 암석을 배치하고 매 폭 다른 종류의 꽃나무를 배치하였다. 배경 속 꽃나무인 작약, 모란, 목련, 모란, 매화, 연화, 동백, 백합은 하나하나의 꽃송이가 참으로 탐스럽다. 땅에서 자라난 나팔꽃, 참나리, 수선화도 암석과 꽃나무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병풍의 매 폭에는 두 쌍의 새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되는 한 쌍은 유독 크게 그려 오른쪽 1폭부터 8폭까지 차례대로 1폭 금계, 2폭 청둥오리, 3폭 비둘기, 4폭 앵무, 5폭 까치, 6폭 황오리, 7폭 원앙, 8폭 꿩임을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특히 수컷과 암컷의 묘사에 분명한 구분을 두어 이들이 완벽한 한 쌍으로서 부부의 화합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미니애폴리스 본과 통도사 성보박물관 본은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하여 제작한 것인지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러나 국립고궁박물관에 전하는 <화조화>(도3)는 창덕궁에서 유전한 것이 분명한 작품이다. 이 또한 화려한 괴석怪石을 배치하고 측면에 꽃나무, 하단에 또 다른 꽃을 그려 넣은 배경 위로 두 쌍의 새를 묘사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 본은 통도사 성보박물관 본보다 배경이 소략하여 공간감이 덜하며 미니애폴리스 본보다 한 화면에 들어가는 새가 한 쌍 줄었을 뿐 기본적인 구성 원리는 앞선 두 점과 동일하다. 이들은 현재 축 형태로 전하나 원래는 병풍으로 꾸며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7년에 혼례 용품을 일괄로 촬영한 사진(도4)은 이러한 화조화 병풍이 비단 왕실에서 뿐 아니라 여러 계층에서 인기가 있었던 정황을 짐작하게 한다. 사진 중앙에는 농籠이 자리하였는데 열린 문 사이로 켜켜이 쌓인 이불이 보인다. 그 앞에는 새색시의 단장에 필요하였을 경대鏡臺와 새 식구들의 의복을 짓는데 쓰일 실패와 반짇고리가 놓여 있다. 흑백 사진 속 10폭 짜리 화조화 병풍에는 연꽃, 모란, 작약, 매화를 배경으로 한 쌍의 새가 서로의 금슬을 뽐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당시의 새색시들이 가장 탐냈던 혼수 목록이리라. 그 중 화조화 병풍은 새색시가 거처할 안방을 환하게 꾸며줄 실내 장식품이었을 것이다.

국제적인 미술상 마유야마에게 구입한 병풍도

이 작품은 메리 버크가 마유야마 류센도繭山龍泉堂를 통하여 구입한 것이다. 마유야마 류센도는 마유야마 마츠타로(繭山松太郎 : 1882-1935)(도5)라는 일본인이 창립한 골동미술 취급 전문 회사이다. 1905년 베이징으로 건너간 마유야마 마츠타로는 중국의 골동품이 구미의 시장에서 크게 각광 받는 현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골동품의 유통 경로를 파악하게 된 마츠타로는 기민한 감각과 안목으로 청대 도자기를 일본에 들여오기 시작하였다. 마츠타로는 일본에서의 중국 골동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1916년에 일본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도쿄에 골동상점을 열었다. 마츠타로의 사업은 일본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며 성공을 이루었다.
1935년 마츠타로가 타개하자 장남인 마유야마 준키치(繭山順吉 : 1913~1999)가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이에 모친을 도와 가업을 승계하였다. 그는 회사를 보다 국제적으로 키우는 데에 관심을 쏟으며 미국 시장을 개척하였다. 준키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애틀 박물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록펠러 3세 등 당대 최고의 기관과 수집가를 상대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마유야마’라는 이름을 구미에 널리 알렸다. 우리에게 있어 마유야마 준키치는 조선 초기의 명작으로 꼽히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일본 텐리대학天理大学에 넘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창호나 벽장 도배지로 추정되는 연화거북도

두 번째로 소개할 <연화거북도>(도6)는 37.5×37.6㎝라는 크기와 종이 재료만으로 일정 부분 그림의 용도가 짐작되는 유물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연잎 위에 신령스럽게 생긴 거북이가 떡하니 자리를 잡았고 화면 뒤편으로는 연꽃, 연밥, 연잎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화면의 하단에는 살이 오른 잉어가 수풀 사이로 유영遊泳 중이다. 화면은 동그란 테두리로 윤곽이 둘러 있어 아마도 창호窓戶 혹은 벽장壁欌의 문을 장식하는 일종의 도배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전반에 일본 다이쇼 하토(Taisho Hato)에서 발행한 엽서 가운데에는 한 집안의 남성들의 모임이라는 제목의 사진(도7)이 있다. 배경에는 벽장을 도배지로 꾸민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도배지가 바로 미니애폴리스 <연화거북도> 정도의 크기일 것이다. 실제 미니애폴리스 본은 가로줄로 박락의 흔적이 있어 어딘가에 부착했던 것을 떼어냈을 가능성이 있다.
1910년이라는 촬영 시기가 분명한 또 다른 사진엽서에도 벽장에 도배지를 바른 모습(도8)이 남아 있다. 엽서에는 ‘김석생세제일회기념융희사년사월오일金石生世第一回紀念隆熙四年四月五日’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어 1910년 4월 5일에 촬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김석이란 인물의 돌잔치 사진을 벽장 앞에서 찍은 것이리라. 벽장은 벽을 뚫어 중요한 물건을 수납하는 가구의 용도로 활용된 건축 공간이었다. 이를 꾸밀 도배지는 주인의 형편에 따라 고급으로도 저급으로도 마련되곤 하였다. <연화거북도>는 그런 도배지 그림이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안착한 경우일 것이다. 본래의 내력을 잃은 채 해외 기관에 ‘작품’으로서 소장된 유물들의 사용 맥락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남아 있어 다행인 대목이다.


글 김수진(한국민화학회 학술이사, 하버드 옌칭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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