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인생 50년 박성만 – “작품이 돋보이는 종이 고민, 기술자 이전에 한지 작가 돼야”

인사동에서 50여년째 국산 한지만을 판매하는 박성만 대표.
한지를 직접 만드는 것은 물론 새로운 한지를 개발하고자 투혼을 불사른다.
한지산업은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지만, 그는 빛나는 희망을 품고서
오늘도 꿋꿋이 종이를 뜨고 디자인한다.

–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한지에 손댄 지가 50년이에요. 35년 전까지만 해도 ‘한지는 그저 한지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35년차를 넘어가니 한지가 가야할 길이 보이더군요. 나이 먹어서도 논밭 팔아 한지를 연구하는 이유에요. 스스로 생각해도 미쳤다고 봅니다.(웃음)”
1974년부터 인사동에서 동양한지를 운영해온 박성만 대표(72)는 주말마다 파주에 위치한 공장에 들른다. 밤샘 실험과 테스트를 통해 새로운 한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10여년간 여주에 위치한 폐교에서 제조 공장 및 연구소를 운영해오다 해당 위치에 생태공원이 조성됨에 따라 2년 전 작업 공장을 파주 출판단지로 옮겼다.
“종이 판매하랴, 연구하랴… 숨 쉴 틈도 없어요. 종이 만드는 사람은 기술자이기 이전에 한지 작가가 돼야 합니다. 작품을 보면서 그에 어울리는 종이를 만들 줄 알아야 하죠.”
오직 연구만이 살 길
전주가 고향인 박성만 대표는 한지 도매상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지에 천착해왔다. 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한 서예붐을 거쳐 90년대부터 10여년간 이어진 한지공예 열풍, 최근의 민화붐까지 시장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부딪치며 한지에 대한 안목을 틔운 그는 ‘소재 개발만이 살 길’이라 판단하고 12년 전부터 한지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실험을 거듭하던 어느 날, 그는 아교포수의 취약성에 주목했다. 동물성 물질인 아교는 습기 등 주변 환경에 따라 균을 발생시킬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작품이 훼손될 우려도 있다는 것. 그길로 박 대표는 보존성이 뛰어난 옻을 한지에 접목하고자 심혈을 기울였으며, 더욱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분채뿐만 아니라 한국화 물감으로도 바림이 가능한 옻지를 개발해냈다. 사진 인화지로 쓸 수 있는 한지도 그의 대표 역작 중 하나다. 그가 만든 한지 위에 프린트된 사진 작품은 한지 특유의 질감과 어우러져 묘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윤길중 작가, 물나무 사진관 김현식 작가 등 유명 사진작가들을 포함해 규당 조종숙, 류영신 작가, 이진우 작가 등 걸출한 작가들이 동양한지의 한지 위에서 창작열을 200% 발휘한다. 때마침 매장에 들른 금광복 작가 역시 오랜 단골. 금광복 작가는 박성만 대표의 장인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대표님은 늘 종이에 대해 연구하시죠. 덕분에 작가들 역시 이곳 한지를 발판 삼아 작품을 발전시켜왔어요.”
박성만 대표의 연구 분야는 비단 종이에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민화 작가들이 활용하는 안료 부문에 주목, 천연 염료를 고체화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한지 위에 그린 민화, 재료부터가 세계 최고급

박성만 대표는 민화와 한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이집트 파피루스(Papyrus, 이집트 특산의 카야츠리그사 과科의 식물 및 이를 재료로 만든 종이와 여기에 그린 그림 등) 기념품과 같이 민화도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상품화되는 날이 하루빨리 와야 한다고 말했다. 재료값만 하더라도 톤 당 300만 원이 되지 않는 이집트 파피루스보다 톤 당 1억 8천만 원에 달하는 국산 한지의 품질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한지공예가 사양길로 접어든 이유는 작품의 판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화 역시 판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성장 면에서 한계에 부딪칠 수 있어요. 민화는 콘텐츠로 보나 바탕지인 한지로 보나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봅니다.”
박 대표는 사계절을 지낸 국산 닥나무의 품질 자체도 우수하거니와 나무껍질을 벗기는 과정부터 종이를 뜨고 말린 뒤 도침처리까지 인고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우리 한지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종이라고 자부했다. 한지의 가치를 잘 아는 외국인들은 박 대표에게 “한지를 쓸 수 있는 한국 작가들은 참 행복할 것”이라며 부러워한다고.

위기일로에 놓인 한지산업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지산업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모양새다. 60~70년대 한지공장의 생산 규모는 한 군데만 50톤에 달했지만 현재는 전국적으로 취합해봐야 겨우 50여톤이다. 원주, 전주 등 상당수의 한지 제조 공장은 60~70대의 공장 대표 내외를 중심으로 소규모 인원이 간신히 꾸려가는 실정이다. 그가 운영하는 100여평 규모의 공장에서는 아들과 기술자 두 명이서 꿋꿋이 전통한지를 만들고 있다.
“전주에 위치한 한지 제조 공장에 가보면 70대에 접어든 사장이 종이를 뜨고, 사장의 아내가 종이를 말리고, 아들까지 합세하면서까지 어떻게든 한지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제가 국산 닥으로 만든 한지를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노력하니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가 대부분 민화쪽에서 팔립니다. 다른 분야로는 채 10%가 되지 않아요. 민화 덕분에 그나마 한지 공장들이 유지되고 있는 거죠. 민화 작가들께 감사드립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다른 공장에서는 한지를 연구할 엄두조차 내질 못한다. 통상 종이 한 장 뜨는데 200~300원의 수익을 책정하는데 하루에 400여장을 떠야 일급 10만 원을 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한지 제조사들이 종이를 한 장이라도 더 떠야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려 생각하고 연구할 시간이 없다는 것. 박 대표는 한지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유휴 노인의 인력 활용 정책 등이 절실하다고 탄식했다.
“정부든 지자체든 한지산업에 도통 신경 쓰질 않아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입이 닳도록 설명해봤자 담당 공무원도 계속 바뀌고…답답한 심정입니다. 국내에서 종이 뜨는 사람들은 대부분 70이 넘었어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지 산업의 수명은 10년 남은 셈이죠.”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갈 뿐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박성만 대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특히 나날이 성장하는 민화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소위 창작민화로 불리는 현대의 민화는 요즘의 주거공간과도 잘 어울리는데다 동양화, 서양화를 불문하고 실력파 미술 전공자들이 유입되고 있어 화단의 필력과 작품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것.
다만, 복지관 및 문화센터 등 각 기관에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민화아카데미로 인해 수업료가 터무니없이 낮아진다거나 화단 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작가들이 상호 배려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작가들이 작품의 영역을 한정된 테두리에 가두지 말고 비구상 및 추상화로 확장시켜 나갈 때 민화의 인기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 제언했다.
“너도나도 민화계로 들어오는 요즘, 이제 선생들은 비구상으로 넘어가 차별화된 작품을 선보일 때라고 봅니다. 저는 그때를 바라보며 종이를 개발하지요.”
새로운 한지를 창작하고자 날마다 심혈을 기울이는 한지 작가, 박성만 대표. 그가 만든 작품 위에서 작가들은 붓을 놀리며 색색의 꿈을 그려낸다.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 했듯, 그의 진심 어린 한발자국 한발자국이 끝내 한지산업의 희망찬 새 길을 트길 기원한다.

박성만 대표가 전해주는 한지 사용 팁
✚ 좋은 한지는 표면이 윤택하고, 섬유가 고와 실크 같은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저렴한 한지는 거칠고 바림할 때 표면이 때처럼 일어난다. 한지의 품질이 좋으면 안료 채색시 번짐 현상이 적고, 작품의 보존력이 높아진다. 튼튼한 섬유를 지닌 국산닥은 수입닥보다 내구성이 훨씬 뛰어나다. 일례로, 수입 한지의 보존력이 100년 간다면 국산 한지의 보존력은 1,000년.
✚ 대개 많은 작가들이 작품 배접지는 싸구려로 해도 무방하다고 여기곤 하지만, 배접지야말로 바탕지보다 중요하다. 작가가 표구사에 직접 구매한 배접지를 챙겨줄 정도로 신경 써야할 정도다. 시간이 흐르면 작품이 그려진 바탕지가 삭을 수 있는데 이때 배접지가 튼튼해야 작품을 붙들고 백 년, 천 년 갈 수 있기 때문. 경매에서 80년대 대가들의 작품이 헐값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작품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작품이 박물관에, 경매장에 나올지 누가 아는가? 품격 있는 작품은 좋은 재료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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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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