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인생 반세기 안동한지 회장 이영걸
“8,000년 내구성의 한지, 선대의 지혜 집결된 엄청난 문화유산”



1970년, 멋모르고 한지업에 뛰어든 패기 왕성한 청년은 현재 한국 최대 규모의 한지공장을 일궜다.
부富를 쫓지 않고,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지 인생 반세기를 기념해 《안동한지 오십년사》를 발간한 이영걸 회장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안동한지(회장 이영걸)가 최근 《안동한지 오십년사》를 발간했다. 서적에는 이영걸 안동한지 회장이 걸어온 발자취부터 전통방식으로 한지를 제조하는 방법까지 안동한지에 대한 모든 것이 총망라됐다. 이영걸 회장은 “한지 아니면 죽는 줄만 알고 온힘을 다했던 시간이 벌써 50년”이라며 빙긋 웃었다.

《안동한지 오십년사》

1970년, 30세였던 이영걸 회장은 조카사위의 권유로 제천에 위치한 한지공장에 들어가며 한지와 인연을 맺었다.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뛰어든 일이었다. 3년 간 밤낮으로 일하며 기술을 전수받고, 부지를 물색해 제천시 영천동에 야심차게 영천한지 공장을 설립했으나 이내 파산하고 말았다. 독자적 기술력이 부족하여 우후죽순 생겨나는 경쟁업체들에게 내밀린 것.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경험을 밑천 삼아 다시 작은 공장을 차렸다. 닥나무 껍질인 피닥을 모으고 삶아 전국 한지 공장에 공급해주는 창고형 공장이었는데 안동산 닥의 우수한 품질로 입소문이 나며 주문이 쇄도했다. 다행히 돈은 모았지만 연료로 폐타이어 등을 태우다보니 주민들의 원성을 샀고 1년 동안 새로운 공장부지를 물색한 끝에 1987년 안동한지의 모태가 된 풍산한지를 설립했다. ‘고품질’에 회사의 명운을 내걸고 심혈을 기울여 고급 한지를 선보였고, 이에 매료된 단골고객·거래처가 서서히 늘어났다. 위기의식을 느낀 경쟁업체들이 풍산한지 불매운동을 하는 바람에 판로가 막히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품질로 담판을 내리란 이 회장의 뚝심은 사업 번창 및 공장 확장으로 이어졌다. 현재 안동한지는 6,000여 평의 대지 위에 닥나무원료창고, 한지상설저시관, 한지공예관 등 20여 채의 건물을 품은 국내 최대 규모의 한지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 공자·맹자 종손 등 해외 귀빈이 챙겨 방문하는 지역 명소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지난 50년 간 한지와 동고동락한 가족, 직원들,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한지애호가들 덕분”이라며 함께 한 이들에게 공을 돌렸다.

닥나무원료창고에 가득 쌓인 닥나무 껍질들. 이영걸 회장은 닥껍질을 매만지며 “조상들이 보물보다 귀하게 여겼던 것”이라고 말했다. 낙동강의 강풍, 청정수질이 풍부한 곳에서 자란 안동산 닥나무는 품질이 우수해 안동한지를 명품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한지, 상품 아닌 작품

한지는 ‘백지百紙’라고도 불린다. 닥나무를 채취하여 물에 삶고 불리고, 다시 닥섬유가 죽이 될 때까지 방망이로 두드려 풀어내 한지를 뜨고 건조한 뒤 이를 다듬이질하여 완성하기까지 전통 방식의 제조 공정 과정만 100여 단계에 달하기 때문.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는 세월이 지날수록 결이 고와지고 습기 흡수성이 뛰어나 안료와도 잘 어우러진다. 한지를 구성하는 섬유 사이엔 공간이 있어 공기를 소통시키고 햇빛을 투과하여 방문에 발라두면 방안의 온도와 습도까지 조절하므로 한지를 ‘살아 있는 종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영걸 회장은 “전통방식으로 만든 한지는 단지 상품이 아닌 작품”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안동한지가 생산하는 품목은 순지, 창호지, 배접지, 포장용 색한지 등 70여종에 달한다. 2015년 전통한지 재현 사업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여 2016년부터 현재까지 정부의 각종 훈포장용지를 만드는 데 한지를 납품하고 있으며 해인사 팔만대장경 영인본 사업,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등 문화재 복원 사업에도 참여했다. 민화 작가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고객층이다. 국산 닥나무, 천연풀인 황촉규 등 우수한 원료를 사용함은 물론, 고객과 수시로 소통하며 피드백을 곧바로 반영하는 맞춤 서비스 덕분이다. 이영걸 회장의 아들 이병섭 사장은 ‘소비자가 왕’임을 강조했다.
“한지를 만들 때 최대한 작가들의 의견을 수렴합니다. 원하는 종이의 두께, 옻칠했을 때의 번짐 정도 등 필요한 조건들을 반영해서 민화를 그리기에 최적화된 종이로 탈바꿈시키기 위함이지요.”

(위) 한지를 뜨고 있는 이병섭 사장 / (아래) 안동한지 공장 전경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지, 정작 국내에선 풍전등화

무려 8,000년. 한지의 내구성이 지속되는 기간이다. ‘견오백지천년絹五百紙千年(견은 오백 년, 종이는 천 년 간다)’는 통설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탈리아 종이 문화재 복원 관련 학자들이 결성한 그룹(Group) 130이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바티칸박물관이 개최한 심포지엄 ‘고문서 및 예술작품 복원에 있어 한지의 유용성’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그룹 130의 대표격인 파올로 칼비니 베네치아 카 포스카리대 명예교수는 ‘복원용 종이는 내구성, 유연성, 복원용 접착제와의 상호 유용성 등을 갖춰야 하는데 실험 결과 한지는 거의 모든 항목에서 탁월했다. 한지야말로 유럽의 종이 문화재 복원에 적극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8년 이탈리아 지류 복원 전문기관인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는 1505년 다빈치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새의 비행에 관한 코덱스> 복원에, 2017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선 <막시밀리안 2세 책상> 손잡이 복원에 한지를 사용했다. 이 대목에서 한지의 장밋빛 미래를 점쳐볼 수도 있으나 이영걸 회장은 탄식을 내뱉었다.
“해외에서 사용하는 한지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한지 가운데 극히 일부지요. 현재 한지산업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말살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통문화가 사라진 뒤에는 수 조원을 들여도 이를 되돌리기 쉽지 않아요. 국가적 차원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우선 원료를 확보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값싼 종이를 선호하다보니 많은 업체들이 외국산 수입닥을 대거 수입하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국내에서 닥을 재배하던 농민 상당수가 손을 놓는 바람에 국산닥의 가격이 치솟고 공급이 두절될 위기에 놓인 것. 시대가 변하여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직원들의 임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에 봉착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인재를 영입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안동한지를 비롯, 국내 10여개 남짓 남아 있는 한지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 대부분이 고령층이다.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2세대의 평균 연령대도 50~60대. 이영걸 회장은 진정한 대국의 저력은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선조들이 남긴 기록유산의 바탕에는 한지가 있지요. 종이 자체가 문화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 가치가 과소평가돼 있습니다. 우선, 한지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전통한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야 합니다. 일본의 화지, 중국의 선지도 유네스코에 등재됐는데 한지가 빠지다니요. 저희 역시 한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전통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위) 안동한지 상설 전시관에서는 전국에서 한지로 제작한 공예품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래) 다양한 한지 공예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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