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학 관장의 고판화 특강 ⑫ 실용도서 삽화 판화

명나라와 청나라에 걸쳐 실용도서의 삽화판화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명나라 중기에 제작된 음악서적인 《태음대전집》, 생활이나 생산 활동과 밀접한 《편민도찬》, 의학도서인 《본초강목》, 《의학입문》, 농업기술서적인 《농서》와 《농종전서》, 과학기술서적인 《천공개물》을 비롯하여, 청나라 때는 벼농사와 양잠에서 방직까지의 과정을 판화로 만든 《경직도》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고판화특강 마지막 시간에 살펴볼 판화는 실용도서 삽화 판화이다.

글·자료 한선학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천공개물天工開物》

명나라 말기의 학자 송응성(宋應星, 1587~1648?)이 지은 경험론적 산업기술서 3권으로 1637년 간행되었다. 방적紡績·제지製紙·조선造船 등 여러 가지 제조기술을 그림을 곁들여 해설하고 있어, 명나라 말엽 농·공업사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고판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공개물》(도1)은 일본에서 명화 8년(1771) 번각한 판본으로 9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도1 《천공개물》 중 <급수도>, 1771년, 일본 번각본 / (오른쪽) 도2 《본초강목》, 청 중기

《본초강목本草綱目》

중국 명明나라 때의 의사인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엮은 약학서藥學書로, 52권으로 1596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은 저자 이시진 혼자의 힘으로 30년에 걸쳐 집대성한 것으로, 원고를 고치는 일만 3차례나 하였다. 약용藥用으로 쓰이는 것을 자연분류로 분류하였으며, 1,892종의 약재가 망라되어 있다. 태의가 된 이시진은 태의원에 몇 번이나 《본초강목》을 편찬할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1년 후에 병을 핑계로 귀향했다. 귀향한 이시진은 한편으로는 진료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서를 읽거나 약초를 캐러 다녔다. 그는 하남, 하북, 강서, 안휘, 강소 등을 두루 섭렵하고 천주봉, 모산, 무당산 등 큰 산들을 오르내리며 표본을 채집했다. 약농藥農은 물론이거니와 과수를 심는 과농果農에게도 가르침을 받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독이 있는 선과(仙果, 빈랑나무 열매)도 직접 먹어보면서 만든 이 책은 각종 약재의 원산지와 형태, 그리고 재배와 채집 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뿐만 아니라 약을 달이는 방법과 성능에 대한 분석 및 그 기능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망라되어 있다. 고판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본초강목》은 청나라 때 제작된 작품(도2)과 티벳에서 19C에 만든 작품(도3)이다.


도3 《본초강목》, 티벳 19C

《의학입문醫學入門》

중국 명明나라 때 이천이 지은 한의학 서적으로 총 19책이며, 1575년에 발간되었다. 조선시대에 명판본이 19책으로 번각되기도 하였다. 《의학입문》은 《동의보감》보다 30여 년 앞서서 출간되어 《동의보감》의 편찬에 많이 인용되었고, 조선시대의 의사선발고시에 기본과목으로 채택되는 등 한국 의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고판화박물관 소장 《의학입문》(도4)은 한국에서 복각된 판본이며, 중국에서 만든 의학서적(도5)과 일본에서 만든 의학서적(도6)도 소장되어 있다.


(왼쪽) 도4 《의학입문》, 조선 19C 번각본 / (오른쪽) 도5 《의학서적》, 청 18C



(왼쪽) 도6 《의학서적》, 일본 18C / (오른쪽) 도7 《기효신서》, 일본 18C 번각본

《기효신서紀效新書》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절강성浙江省 참장參將으로 있을 때 왜구倭寇를 소탕하기 위하여 1560년(嘉靖 39) 편찬하였다. 권1 속오편束伍編으로부터 권18 치수병편治水兵編에 이르는 총 18권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왜구는 주로 해안선을 따라 습지가 많은 중국의 절강 지방 등을 노략질하였다. 이를 소탕하는 데에는 종래 북방 유목민족을 소탕하기 위하여 편제된 군제軍制와 무기 및 전술이 적합하지 않았다. 책에는 왜구의 기습적인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소부대의 운용과 접근 전에 적합한 전술을 고안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병법을 절강지방에서 나왔다고 하여 절강병법浙江兵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명확한 지휘편제와 연대책임을 강조하는 속오법束伍法을 채택하고, 조총鳥銃·등패藤牌·낭선狼筅·장창長槍·권법拳法 등 다양한 무기와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1월 평양성전투 후였다. 선조는 명나라의 이여송李如松의 군대가 《기효신서》의 전법으로 왜군을 격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입수하여 그 전법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발전시킨 것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등의 병서이다. 이 책의 부대편제 방식은 1894년까지 계속되어오다가 갑오개혁으로 근대적인 군제가 도입되면서 폐지되었다. 고판화박물관 소장 《기효신서》(도7)는 일본에서 18C에 번각된 작품이다.

《경직도耕織圖》

안락한 궁궐 생활에 젖어 있는 통치자로 하여금 백성들의 생활을 이해시켜 스스로 근검절약하게 하고 바른 정치를 하도록 지난 잘못을 거울로 삼아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경계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과 잠직업(蠶織業, 누에를 치고 명주明紬를 짬)의 풍속을 월령月令 형식으로 읊은 《시경詩經》의 내용에서 유래하였다. 중국의 남송 때 현령을 지낸 누숙樓璹이 송 고종에게 바치기 위하여 처음 그렸다고 하여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라 하였다. 《누숙경직도》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시기는 1498년(연산군 4)이며, 정조사正朝使 권경우權景佑가 명나라로부터 가져온 《누숙경직도》를 성현이 연산군에게 바쳤다고 한다. 《누숙경직도》를 청나라 때 다시 만든 것이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이다. 경직도는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지시에 의하여, 송본인 《누숙경직도》을 토대로 1696년 흠천감원欽天監員인 초병정焦秉貞이 동판화를 통해 배운 서양화의 원근법을 이용하여 밑그림을 그리고 벼농사에서 양잠에서 방직까지의 과정을 판화로 제작하였다. 경 23도, 직 23도로 이루어졌으며 각 도판의 상단에는 어제 칠언시가 삽입되어 있다. 18세기 초·중엽에 한국에 전래되어 《패문재경직도》가 병풍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등 왕실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판화박물관에는 청나라 때 목판화로 제작된 경직도(도8)와 일본에서 석판화로 만든 경직도(도9), (도10)등 다양한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왼쪽) 도9 《패문재경직도》, 일본 명치, 석판화 / (오른쪽) 도10 《패문재경직도》, 일본 소화, 석판화


이번 호를 끝으로 2019년 9월호부터 연재한 <고판화특강>을 마칩니다.
고판화박물관의 귀중한 소장품으로 고판화의 폭넓은 세계를 상세히 안내해주신 한선학 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집자주)



한선학 |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동국대학교 불교미술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물관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고판화학회와
세계고판화연구보존협의회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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