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학 관장의 고판화 특강 ⑪ 예술의 세계로 안내하는 화보류 판화 Ⅳ

조선에서는 주로 해외 유명 화보집을 수입해 사용해오다 조선말에 이르러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아 독자적인 한국 판화 화보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명말 청초의 유명 화보들을 수입하기도 했으나 중국의 화보류 판화를 번각하거나 유명 화가들이 자신의 화보류를 판화로 제작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과 일본의 화보류 판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 글·자료 한선학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조선의 화보류 판화

한국에서는 주로 중국의 명, 청 시대 유명한 화보집인 고씨화보, 개자원화보등의 다양한 유명 화보집을 수입해 화보류 판화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 와서 해강선생의 난보와 죽보가 소개되었으며, 조선말 일제강점기에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모아 만들어진 판화집인 《대방초간독》이 제작되어 독자적인 한국의 판화 화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① 해강 김규진의 화보
김규진(金奎鎭, 1868 ~ 1933)은 구한말의 서화가로 본관은 남평, 호는 해강이며 평안남도 중화군 출신으로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해인사 일주문 현판 글씨와 서울 창덕궁 희정당 내부의 벽화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가 대표작이다. 김규진은 자신의 서화에 대한 이론을 책으로 내 교과서로 사용하였는데, 영친왕의 스승 시절 서화교본으로 만들었던 것이 《김규진 화첩》이며, 서화연구회에서의 서화교육을 위한 교재로 만든 것이 《서법진결書法眞訣》(1915), 《육체필론六體筆論》(1915),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1916) 등이었다. 이들 책은 서화 교재가 귀했던 근대기에 초보자들의 눈을 뜨게 한 미술사적으로 귀한 출판물이었다.

(왼쪽) 도1 김규진, 《해강죽보》 석판화, 1918년 / (오른쪽) 도2 김규진, 《해강난보》 목판화, 1918년



도3 김규진, 《해강난보》 음각판화, 1918년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

김규진이 가장 잘 그린 그림은 <대나무 그림(묵죽)>으로, 김규진의 대나무 그림은 힘이 넘치면서도 유려하고 과감한 필력을 보인다는데 장점이 있다. 난초나 모란 등 다른 갈래의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화가로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역시 대나무 그림이라고 한다. 얽매임 없이 화면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왕죽王竹, 풍죽風竹, 세죽細竹 등을 거침없이 그렸으며 그동안 조선시대 화가들의 사군자가 문인화를 대변하기는 하였지만, 선비들의 취미 그림처럼 소심한 면이 많았다. 그러나 김규진의 묵죽을 중심으로 한 수묵화는 활달한 필치를 바탕으로 거침없는 예술가의 포효를 보이며 회화적으로도 완성된 경지를 보인다. 특히 그의 굵은 대나무를 그린 <왕죽>은 청나라 화가들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양식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김규진의 묵죽은 1916년에 《해강난죽보》(도1~도3)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여 미술교과서인 화보로 제작되었으며, 지금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도4 《신찬대방초간독》 석판화, 1921년, 영창서관 발간



(왼쪽) 도5 《신찬대방초간독》 석판화, 1921년, 영창서관 발간
(오른쪽) 도6 《신찬대방초간독》 석판화, 1921년, 영창서관 발간



② 신찬대방초간독新撰大方草簡牘
《신찬대방초간독新選大方草簡牘》이란 책 제목에서 말하듯 ‘신찬대방’은 넓고 크게, 그리고 새롭게 선별한 것이라는 뜻이며, ‘초간독’이란 초서체로 쓴 좋은 편지를 모아놓은 교본을 이르는 말이다. 《신찬대방초간독》은 넓고, 크게 새롭게 선별한 초서체로 쓴 편지를 모은 서적을 말한다.
대방초간독은 1921년 영창서관의 대표인 백두용白斗鏞이 이전의 초간독草簡牘을 보강하여 편저를 하고, 청운 강진희姜璡熙가 편집을 새로이 하면서 당대의 서화가들의 글씨와 삽화를 받고 이를 목판으로 옮겨 첨가한 뒤 석판화(일본말로 ‘대비끼’라고 하는, 오늘날의 수동 옵셋)로 인쇄하여 발간한 1권 2책(도4~도6)이다. 초서로 구성된 서간문 사이에는 당대의 서화가들의 글씨와 그림이 목판으로 판각된 뒤 다시 석판으로 인쇄되어 첨가되었는데, 글씨로는 고종황제의 왕자인 이강李堈을 비롯하여 죽파 김동진金東振 등 개화기 명필들의 문장이 실려 있고, 그림은 심전 안중식安中植의 산수, 몽인 정학교丁學敎, 김규진의 대나무, 백련 지운영池運永의 산수, 남파 홍의완洪義煥의 향로, 백송 지창한池昌翰의 산수, 김응원의 난초, 윤용구尹用求의 난초와 대나무, 소림 조석진趙錫晉의 산수 등 당시 최고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실려 있어, 미술교과서인 화보의 역할도 충분히 수행하였던 작품이다.
책의 앞부분에는 해사 김성근金聲根, 하정 여규형呂圭亨, 우당 윤희구尹喜求등의 서문과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디자인한 ‘한남서림翰南書林’이라는 전각이 실려 있다. 오세창은 이 책을 제작한 인쇄소인 한남서림을 격려하기 위하여 이 전각을 남겼다.

일본의 화보류 판화

일본에서는 명말 청초의 유명한 판본이 수입되었으며, 조선과 틀리게 대부분의 중국의 화보류 판화가 번각되어 출판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유명한 일본 화가들이 자신의 화보류를 판화로 제작하여 출판하였다.

(위에서부터)
도7 우타마로, 《충류화보》 채색목판화, 1892년
도8 우타마로, 《충류화보》 채색목판화, 1892년
도9 우타마로, 《충류화보》 채색목판화, 1892년



① 우타마로의 충류화보
에도시대 미인화의 대가인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麿, 1753?-1806)는 1780년대 교카(재치있는 암시와 동음이의어의 익살을 사용함으로써 일본 고유의 고전 시인 와카를 패러디하고 개량한 시의 한 형태)를 모은 삽화시집인 《에혼무시에라비》(화본충선畵本虫撰)를 1788년에 출판했다. 전체 15장면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그림에 2종류의 벌레를 그리고 그것을 읊은 교카 2수가 걸려 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새, 꽃, 벌레를 그린 우타마로의 자연주의는 18세기 후반 일본의 미술에 경험주의가 대두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유럽에도 소개되어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명치시대에 충류화보蟲類畫譜(도7~도9)라는 이름으로 재발행되었으며, 고판화박물관소장품은 1892년(명치25년)에 도쿄의 대창서점에서 발행된 판본이다.


도10 호쿠사이, 《만화》 채색목판화, 에도기



도11 호쿠사이, 《만화》 채색목판화, 에도기



② 호쿠사이의 만화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는 에도 말기의 우키요에 화가로 《만화漫畵》라는 화보를 제작했다. 가츠카와 슌쇼의 밑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유명 작가들의 삽화를 그리면서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가차카와파, 가노파, 도사파 등의 화풍은 물론 서양, 중국의 화풍도 습득하여 가츠시카파를 완성한다. 호쿠사이는 자연의 물상에 자신의 주관을 반영하여 그리는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고, 그의 그림은 서양 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부악삼십육경’을 비롯하여 모두 4천여 점의 그림을 남겼으며, 1999년 미국의 라이프 잡지에서 일본인으로는 유일하게 ‘밀레니엄 시대를 이끌었던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다양한 그림 사조를 연습했던 호쿠사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50세 중반부터 60세까지 6년 동안 그렸던 《호쿠사이 만화》는 사후 출판된 것을 포함하여 15권(도10, 도11)이나 되는 대작이다. 만화라고 되어 있으나 지금의 만화책처럼 하나의 스토리로 된 것이 아니라 서민의 일상생활을 스케치해서 모은 일종의 데생집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호쿠사이가 그리는 기법이 오늘날 만화의 시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한문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에서 통용되는 만화漫畵란 용어도 호쿠사이 만화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초편 서문에 따르면 1812년 가을 무렵 나고야에서 300여 점의 밑그림을 그렸으며, 1814년에 나고야의 출판사에서 첫 편이 간행되었다. 당초에는 1편으로 완결할 예정이었지만, 호평이 이어져, 출판사를 변경하면서 판행이 계속 되어 1878년(메이지 11년)까지 15편으로 완결되었다. 1832년에는 네덜란드에서 발간한 에, 《만화》가 소개되어 유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도13 나카무라 킨죠, 《조선풍속화보》 석판화, 1910년



③ 조선풍속화보
《조선풍속화보朝鮮風俗畵譜》(도12, 도13)는 일본인 화가인 나카무라 킨죠가 1902년 대한제국 고문이었던 가토 마쓰오의 집에 머물면서 그린 조선의 그림과 1905년 다시 조선으로 건너와 그동안 그린 백여 점의 그림을 책으로 내고자 하여, 1910년 일본에서 출간한 조선의 풍속화 도록으로 46컷의 삽화를 담아 편찬한 것이다. 당시 화가 기산 김준근金俊根의 삽화그림과 너무도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들어있는 그림은 상세한 서민들의 일상모습,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장인들, 취미, 부녀자, 서민들의 풍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시금 옛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각종 풍속 장면은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며, 조선 풍속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선학 |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동국대학교 불교미술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물관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고판화학회와 세계고판화연구보존협의회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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