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학 관장의 고판화 특강 ⑩ 예술의 세계로 안내하는 화보류 판화 Ⅲ

정운봉을 비롯한 많은 유명 화가들이 판화 작품에 개성을 더해 삽화 판화를
발전시켰고, 이들의 삽화 판화는 출판된 뒤 화보 역할을 했다.
이번 달에는 유명 화가가 그린 삽화 판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글·자료 한선학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정운봉과 묵보

정운봉은 판화작품에 개성을 발휘한 선구적인 작가이다. 판화산지로 유명한 안휘지방에서 태아나 소주와 송강에서도 활동했으며, 명말의 대표적인 묵보(墨譜, 먹의 표면을 장식하는 도안집)인 방씨묵보와 정씨묵원에 판화작품을 남겼다. 묵보를 만들어 문인들의 서화제작에 필수적인 먹을 장식하는 것은 지적, 예술적인 감각을 살릴 뿐 아니라 뛰어난 화기를 발휘하는 작업이다. 산수·누각·인물·수석·화훼·동물 등 다양한 작은 도안은 큰 화면의 그림에 견주어 보아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도1 《방씨묵보》, 명 말



① 《방씨묵보方氏墨譜》
휘파판화의 근거지인 신안의 2대 먹을 만드는 재묵가(먹을 만드는 집안)중 하나인 방우노가 만력16년경(1588)에 편찬했다. 밑그림은 정운봉, 각공은 신안의 유명한 황수언 등이 참여했다. 고판화박물관에는 명시대 작품(도1)이 낙질로 남아 있다.


(왼쪽) 도2 《정씨묵원》 채색 영인본 / (오른쪽) 도3 《정씨묵원》 일본 번각본, 대정시대



② 《정씨묵원》
명대 말기 신안의 2대 재묵가인 정대약程大約이 방우노가 먼저 간행했던 《방씨묵보》(1588)에 대항하여 만력34년(1606)에 편집했다. 정운붕丁雲鵬·오정우吳廷羽 등의 화가가 도판 밑그림을 그리고, 목판은 황인 등이 새겼다. 정씨묵원의 삽화는 기술적인 면에서 다색쇄의 삽화가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부분 판목을 사용한 다색중쇄가 아니라, 한 장의 판목을 각 부분으로 나누어 정성껏 색을 칠한 후 한 번에 인쇄를 마친 초보적인 다색 판화(도2)였다. 고판화박물관에는 일본 대정시대 번각본(도3)과 다수의 영인본이 존재한다.


(왼쪽) 도4 <수호엽자> 영인본 / (오른쪽) 도5 <박고엽자> 영인본

진홍수의 인물판화

진홍수(1598-1652)는 정운봉보다 한 세대 뒤의 화가로, 유형화되고 획일적이었던 인물판화를 쇄신시킨 명말청초의 인물 화가이자 목판화의 예술적인 경지를 한 단계 성숙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진홍수의 인물화는 그대로 삽화판화로 재현되어 인물화와 판화 밑그림의 제작 태도에는 차이가 없다. 진홍수는 목판화가 새로운 조형표현 수단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목판화의 특성상 도상을 보다 명쾌하고, 간결하며, 호흡이 긴 선을 강조할 수 있어 회화용 붓과는 또 다른 표현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홍수는 많은 인물판화를 남겼는데 책의 삽화와 주패(酒牌, 게임카드) 각 장에 도안으로 남아 있다. 주패 중 유명한 것이 <수호엽자>(도4)와 <박고엽자>(도5)로 수호지의 인물과 고대 성현, 위인, 유명인을 모은 내용으로 이뤄졌다. 고판화박물관은 다수의 영인본만을 소장하고 있다.

소운종이 제작한 《이소도》와 《태평산수도》

소운종은 명말 청초에 안휘파를 대표하는 화가중의 한 사람이다. 인물판화에서는 진홍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산수판화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로 두 종류의 중요한 판화작품을 남겼다. 바로 명왕조가 붕괴된 순치 2년(1645)에 간행된 인물판화 《이소도》와 순치5년(1648)에 간행된 산수판화인 《태평산수도》이다.


도6 <천문도> 중 <치구예형영알우산도>, 일본 대정 번각본



① 《이소도離騷圖》는 <구가도>와 <천문도> 2부로 구성된 삽화로 이색적인 인물판화이다. 소운종은 《이소도》를 통해 자신의 형편과 사회상황에 대해 토로했는데, 망해버린 명 왕조 유민으로서의 심정이나 청 왕조에 대한 반항 의식 등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소도》에 나타난 이색적인 인물판화는 청조 인물판화에서 드러난 개성적인 표현에 대한 시발점이 되었다. 고판화박물관은 <천문도> 번각본과 영인본을 소장하고 있다. <천문도>에 나오는 <치구예형영알우산도>(도6)에서 솔개와 거북이에게 육신을 쪼아 먹히는 있는 사람을 등장시키는 등 충격적인 장면을 연속적으로 <천문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소운종이 명말 정치가 부패하고 윤리의식을 상실한 세태에 대한 상심을 그린 것이다.

② 《태평산수도》는 화가가 제작한 최초의 산수판화이며, 실제 풍경을 소재로 삼은 산수판화 가운데 걸작으로 손꼽힌다. 안휘 당도當塗의 회고당懷古堂에서 순치 5년(1648)에 출판됐다. 태평부 장관으로 있던 장만선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추억이 담긴 경치를 기념하고자 소운종에게 밑그림을 맡기고, 유영劉榮, 탕상湯尙, 탕복湯復에게 판각을 의뢰하여 제작한 것이다. 안휘성 태평부를 기념해서 제목을 정했으며 황산, 당도, 무호, 번창 일대의 경치가 빼어난 42개 지역의 경색과 권두에 실린 태평산수전도를 합하여 43장면으로 구성했다. 《태평산수도》는 ‘방고(倣古, 옛것을 본뜸)를 표방하는데, 이는 역대 고화의 제작 정신을 따르는 것이 성행한 명말 화단의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태평부 경승지의 이름을 빌려 방고화책倣古畵冊의 형식을 이룬 복제명화집이다. 각 도판은 실제로 고화가 지닌 외형적인 특징을 목판으로 복원했다기보다는 고화의 정신을 추종하면서 소운종이 독자적인 양식으로 유명화가의 화폭을 재구성한 것으로 소운종 자신의 회화작품을 복제한 산수명화집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태평산수도》에는 고향산천의 모습을 먹으로 찍어 단색목판 표현 기법을 다채롭게 구사하면서 자신의 모필 산수화의 특색을 복원하여, 저명한 화가로서는 최초로 본격적인 산수화집을 완성시켰다. 고판화박물관은 일본에서 발행된 《태평산수도》 석판화(도7) 1질과 한지 영인본 1질을 소장하고 있다.

청 시대의 인물판화

인물화의 명수로서 자타가 인정하던 화가인 유원, 김고량, 상관주, 임웅 등 유명 화가들이 청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판화 밑그림을 제작하여 중국 판화사에 중요한 궤적을 남겼다. 고판화박물관은 《무쌍보》와 《만소당죽장화전》, 《백미신영도전》을 소장하고 있다.

① 《무쌍보無雙譜》
《무쌍보》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중국 역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을 소재로 강희 29년(1690)에 간행된 것으로, 40여점의 인물판화는 청시대를 대표한다. 절강성 소흥 출신인 인물화가 김고량金古良이 밑그림을 그렸다. 고판화박물관은 청시대 《무쌍보》 목판본(도8) 1권을 소장 중이다.


(위) 도8 《무쌍보》, 청 후기 목판본 / (아래) 도9 《만소당죽장화전》, 청 1743년 목판본



② 《만소당죽장화전晩笑堂竹莊畵傳》
회화교본으로 만들어진 《만소당죽장화전》은 무쌍보가 간행된 지 반세기 후인 건륭 8년(1743)에 출판되었다. 밑그림은 복건성 장정의 화가 상관주가 그린 것인데, 그는 만수성전도 등의 궁중판의 밑그림 제작에도 참여했던 유명한 화가이며 이 작품은 그가 78세 때 간행된 것이다. 상관주는 서문에서 ‘고대 사람의 시나 글씨를 통해 그 사람의 형상을 연모할 수는 있으나,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초상화로 재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라고 기술하고 있다. 《막소당죽장화전》이 인물 화보로서의 역할을 의식하고 발간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판화박물관은 청 시대 목판본(도9) 1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 목판본은 청 시대 인물 판화 교본을 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도10 《백미신영도전》에 그려진 양귀비의 모습, 청 후기 목판본



③ 《백미신영도전百美新詠圖傳》
중국 미녀 100인을 모은 시화집이다. 작업은 건륭 말기부터 시작하여 가경 9년(1804)에 발간한 책으로 밑그림을 그린 화가는 건륭 연간에 화원으로 활동했던 인물화 명수 왕해이다. 서시, 탁문군, 우희, 도엽, 양귀비등 역사와 전설 속의 미인 100인의 삽화가 담겨진 시화집이지만 인물화보로서의 내용도 갖추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은 4권으로 이루어진 청 시대 목판본(도10)을 소장하고 있다

한선학 |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동국대학교 불교미술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물관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고판화학회와 세계고판화연구보존협의회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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