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학 관장의 고판화 특강 ⑧ 예술의 세계로 안내하는 화보류 판화Ⅰ



회화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친 화보는 중국판화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에서는 명 말인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경에
다양한 화보들이 유행했으며 이 화보들은 한국이나 일본에도 전파돼
회화 교과서, 복제 명화집으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번 시간에는 주요 화보류 판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글·자료 한선학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화보류 판화는 중국화의 각종 기법을 종류별, 계통별로 편집한 책으로 중국의 판본기술이 확립된 송대宋代에 등장했으며 화가나 문인이 그림을 배울 때 읽는 입문서이다. 화보라는 말은 북송北宋 선화宣和 연간에 나온 북송의 휘종 황제가 궁정 내에 소장하고 있던 역대 명가들의 회화 작품을 기록해 놓은 《선화화보宣和畫譜》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보는 《선화화보》와 같이 그림을 곁들이지 않고 문자로만 설명한 것과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와 같이 삽화를 곁들여 설명한 것 등 두 종류로 나눠지며 삽화판화가 곁들어져 있는 화보는 회화교본, 복제명화집, 시화집, 회화교본과 복제명화집을 겸한 것 등으로 크게 분류하기도 한다.
회화의 대중화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 화보는 중국판화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명 말인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경에 다양한 구성을 지닌 화보들이 유행했다. 회화교본과 그림의 모티브가 되는 화집으로서 화보가 성행하면서 화가들을 포함해 회화를 감상하고 수집하는 사람들의 저변이 확대되었고 중국에서부터 미술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유행한 화보는 한국이나 일본에도 전파되어 화가들의 회화 교과서로서의 역할과 복제 명화집의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에서는 화보를 구하기 위한 경쟁이 뜨거웠으며, 일본에서는 아예 중국의 유명한 화보들이 복각 및 출판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다. 고판화박물관에는 중국 명판본 《고씨화보》, 세계최초의 채색판화집인 《십죽재 화보》, 명대에 발행된 《당시화보(육언)》, 《시여화보》, 《삼재도회》, 《방씨묵보》와 일본에서 복각된 《도회종이》, 《당시화보(오언, 칠언)》, 《고금화보》, 《매난국죽보》, 《초본화시보》, 《목본화조보》, 《장백운명공선보》, 《정씨묵원》, 《이소도》와 대정시기에 석판본으로 발행된 《태평산수도》를 비롯하여 청 때의 대표적인 화보인 《개자원 화보》, 《만소당죽장화보》, 《무쌍보》 등 다양한 중국 화보가 망라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유명한 화가들이 직접 만든 화보인 우타마로의 《충류화보》와 호코사이의 만화를 비롯하여 《조선풍속화보》도 소장하고 있어 전문가와 애호가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도1 《고씨화보》 (염립본 그림)



(왼쪽) 도2 《고씨화보》 (재간행본) 목록, (오른쪽) 도3 《고씨화보》 표지

고씨화보顧氏畵譜

고판화박물관 소장품인 《고씨화보》(도1)는 궁정화가로 활약했던 고병顧炳이 밑그림을 그리고 편찬하여 명 만력 31년(1603)에 간행했으며 별칭으로 ‘역대명공화보歷代名公畵譜’로도 불린다. 고병의 출신지인 항주의 쌍계당雙桂堂에서 초간본이 출간되었다. 이 화보는 인물, 산수, 화조 등 모든 장르를 다루고 있고, 육조시대의 고개지로부터 고병과 동시대인인 왕정책에 이르는 중국 역대의 유명화가 106인의 작품을 한 작가 당 한 점씩 판화로 복원하여 수록하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의 소장품은 고병의 아들이 재간행한 작품(도2)으로 화가 1명이 추가되어 있으며, 윤두서의 고택 소장본과 동일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낙질 2권으로 책 겉장(도3)에는 감지에 아름다운 능화판 문양이 박혀 있으며, 책장마다 장지로 배접되어 《고씨화보》를 수시로 보면서 그림 공부를 하던 책 주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조선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고씨화보의 면면을 잘 드러내는 책이다.

도4 《십죽재서화보》, 중국, 광서 연간 복각본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

전 18권으로 이루어진 《십죽재서화보》의 경우 그림 대부분이 고대 유명화가가 아닌 오빈, 고양, 고우, 위지황, 귀창세를 포함하는 30여명의 동시대 화가 및 편저자의 그림에 의거하여 판화로 구성한 복제화집이라는 점이 새롭다. 편저자인 호정언(胡正言, 1584-1674)은 휘주(안휘성) 휴녕 출신으로 명 말에 중서사인의 관직에 올랐다. 그는 고미술품이나 진귀한 고서를 수집하고 직접 서화와 전각도 했던 풍류인으로, 금릉에 살면서 폭넓은 교유관계를 통해 동시대의 많은 화가의 구도를 직간접으로 밑그림으로 이용했다. 십죽재는 그의 서재 이름이기도 하며 이 화보는 휘주의 각공과 인쇄공, 유명 산지의 선지와 공인들, 재료 등을 충분히 선택하고 음미해서 만들어졌다. 화보의 구성을 살펴보면 매보에서 시작하여 석보, 난보, 죽보, 과보, 영모보, 묵화보로 이어지며 각종 꽃을 그린 서화보로 끝을 맺는다. 만력 47년(1619)에 제작을 시작했고 천계 7년(1627)에 완성되었다.

(위) 도5 《십죽재서화보》 영모본, 일본, 에도시대
(아래) 도6 《십죽재서화보》, 독일, 1950년대



《십죽재서화보》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점은 획기적인 인쇄기법에 의한 칼라 도판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새롭게 개발된 ‘두판채색투인餖板彩色套印’이라는 분판 분색에 의한 다색중쇄 기법을 통해 만들어 낸 미묘한 색조와 농담의 변화, 그라데이션 효과는 수작업 인쇄의 판화로만 가능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화면을 창출해 내며, 많은 미술사가들이 이 기법에 대해 모필 채색보다 우수해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호정언의 친구이자 유명한 문인화가인 양문총楊文聰은 십죽재 화보의 영모보 서문에서 “호씨는 판목으로 비단을 대신하고, 조각칼을 사용하여 전대미문의 작품을 만들었다. 색채의 밝고 어두움, 농담의 변화, 입체감 모두를 멋지고 훌륭하게 포착하여 정교함과 치밀함이 극에 달한 사생의 묘품을 만들었다. 아, 얼마나 신기하고 환상적인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한 정취가 있다”라고 표현하며 놀라움이 가득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에는 청 광서 연간에 복각한 《십죽재화보》 4권 4책(도4) 《오색五色 아라판珂羅版 십죽재화보》를 비롯하여 일본에서 복각된 다양한 《십죽재화보》(도5)와 1950년대에 미국과 독일에서 인쇄된 《십죽재화보》(도6)등이 소장되어 있다.

(위) 도8 《개자원화전》 2집 매난국죽보, 강희40년 (1701), 가경 복각판
(아래) 도9 《개자원화전》 3집 영모보, 강희40년 (1701)



도10 《개자원화전》 4집 인물보, 가경 23년 (1818)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청초기 강희 18년(1679)에 남경에서 《개자원화전》 전 5책이 간행되었다. 책명은 남경의 명사 심심우의 정원 이름에서 따왔고, 이어李漁가 서문을 썼으며 금릉파 화가 왕개가 심씨가 소장해 온 명 말의 화가 이유방의 화보를 증보하여 밑그림을 그렸다. 《개자원화전》은 최초의 본격적인 산수화보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여러 차례 중판되었다. 이 초집은 건륭판과 가경판 등의 중간본이나 그 내용을 조금 바꾼 후인본으로 다수 출판되었다. 중국에서 출판된 지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일본에 전해져 번각본이 나왔고 일본 근세 화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에도 초간본에 가까운 판본들이 고판화박물관과 이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점을 보아 출판 초기에 전래되어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강희 40년(1701)에는 초집에 이어서 사군자인 매, 난, 국, 죽의 각 화보를 정리한 《개자원화전》 2집과 초충, 영모, 화훼화보인 개자원화전 3집이 왕시, 왕개, 왕얼 삼형제에 의해 편집되었다. 《개자원화전》 2집, 3집은 화조화보라는 장르를 넘어 청 왕조의 다색중쇄 판화의 정점을 이룬 가장 아름다운 작품집이다. 3집의 영모보는 활짝 핀 매화, 모란, 해당화 등에 선명한 색상의 새나 벌레를 덧붙인 복합적 모티브를 분판분색에 의한 다중중쇄의 특성을 살려 표현하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에는 조선시대부터 전래되었던 강희 초간본에 가까운 1집 판본(도7), 가경 연간에 발행된 2집인 《매난국죽보》(도8), 947년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묵서가 적혀있는 초간본에 근접한 《영모보》(도9)와 가경 23년(1818년)에 발간된 4집인 《인물판화집》(도10), 민국시기까지 발행된 다양한 목판본과 석판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일본에서 복각된 판본도 다수 소장되어 있어 《개자원화전》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선학 |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동국대학교 불교미술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물관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고판화학회와
세계고판화연구보존협의회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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