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학 관장의 고판화 특강 ④ 삽화판화의 세계

판화의 발전은 인쇄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문자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림만 보아도 그 내용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글의 내용을 압축해
삽화를 표현했으며, 이러한 삽화의 발전이 판화가 독자적인 미술의 한 장르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삽화로 표현된 고판화를 종교 삽화, 궁중 삽화, 민간 삽화로 나누어 분류하고 해석해 보고자한다


종교 삽화의 세계

인쇄문화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발전했으며, 실크로드를 통해 서양으로 전달되고 난 후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이때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삽화가 등장했다. 세계최초의 판화가 868년 만들어진 금강경 변상도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종교서적에서는 민중들이 종교의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삽화를 활용했다. 삽화판화는 불교, 유교, 도교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지역적으로는 중국에서 시작해 한국, 일본, 베트남, 티벳, 몽골 등에서 발전했다.

불교 삽화

불경들 중에는 경의 내용을 압축하여 이미지를 변화시킨 변상도를 책 앞부분에 배치하는 권수도나, 책 속의 내용과 함께 삽화 형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는 불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경을 읽는 신자들의 이해를 돕고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된 것이다. 현대인들은 그림을 디자인적인 이미지로 변화시킨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속에서 살고 있다. 불경 속에 디자인적으로 이미지화 되어있는 판화삽화를 불경의 내용과 함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창의적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1. 설법도 삽화

① 비로자나불 설법도
비로자나부처님이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표현한 변상도 판목이 고려시대에 제작되어 해인사에 현존하고 있으며, 남아있는 판목은 화엄경 변상도 주본 80장과 진본 변상도 12장이다. 이를 인출한 변상도 삽화가 모두 고판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비로자나불 설법도 가운데 단연 압권이라 할 수 있다.(도1) 현재 편집 디자인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변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② 석가모니 설법도
우리나라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할 당시를 드라마틱하게 삽화로 표현한 영산회상도 변상도 삽화가 권수화 형식으로 다양하게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변상도는 주로 중국 변상도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고판화박물관에 소장된 명나라 판본과 정희대왕대비 발원 판본을 비교해 보면 그 영향 관계를 잘 알 수 있다.(도2, 도3, 도4)

2. 부처님일대기 삽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비롯하여 조사들의 이야기를 모아 그림책으로 만들어진 석씨원류가 중국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는 불암사판본과 선운사판본이 번각되어 전해지고 있다. 불암사판은 그림 한 장에 내용인 글씨가 한 장 씩 들어 있는 삽화형식이며(도5), 선운사판은 그림이 책의 상단에 위치하고 그림의 내용이 하단에 기록된 상도하문식으로 표현되어있다.(도6)

3. 극락세계 삽화

인간이 생로병사의 세계를 벗어나 영원한 극락세계에 가고자하는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이들의 바람일 것이다. 아미타경에 의하면, 중생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아미타불의 명호를 진실 되게 염불하면 아미타부처님이 보내주신 반야용선에 올라 극락왕생한다고 하므로 염불을 권한다.
이때 삽화를 통해서나마 불자들이 막연한 극락이 아닌, 극락세계의 이미지를 접하고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① 아미타래영도 阿彌陀來迎圖
덕주사판 불설아미타경에 나오는 이 삽화는 아미타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변상도(도7)로 아미타부처님이 보살, 비구, 신중 등 대중들을 이끌고 구름을 타고 내려와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중생들을 내영來迎하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고 있다.

② 용선도 龍船圖
담양 용천사 판본에만 등장하는 반야 용선도 삽화는 아미타부처님이 죽음에 이른 중생들이 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반야용선을 보내 중생들을 극락으로 왕생시키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도8) 염불수행자들이 반야용선에 타고 있으며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극락으로 염불수행자들을 태운 반야용선을 내영來迎하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른 아미타경의 판본에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용선도이다.

4. 지옥세계 삽화

지옥세계 삽화는 사후세계를 심판하는 판관의 모습 등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지옥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사람들이 악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경각심을 조성한다. 지옥변상도 삽화에서는 현대 게임이나 환타지 소설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드라마틱하게 잘 표현되고 있다.

① 불교시왕 변상도
해인사 《시왕경》의 변상을 보면 십대왕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시왕도중에 제 5도인 염라왕도에는 죄인이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되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도9) 죄인이 업경대를 통해 자신의 죄업을 확인하는 모습과 우측 상단에 위치한 지장보살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염라대왕이 죄인을 심판할 때, 지장보살이 염라대왕의 스승으로서 죄인의 벌을 가볍게 해준다는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② 목련경
목련경은 석가모니부처의 십대제자 중 대목건련大目乾連이 출가, 수행하여 신통력을 얻은 후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도리천궁忉利天宮으로 구제하는 과정과 효심을 설한 경전으로 18장면의 그림이 삽입되어 있다.(도10) 지옥의 세계가 삽화로 펼쳐지고 있는데 특히 김제 흥복사판 목련경에는 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입체파 화가들의 작품을 연상시킬 정도로 파격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어있다. 중국에서 전래되었지만 한국적인 변상도로 재창조된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③ 왕생요집
왕생요집은 일본의 겐신(源信, 942∼1017)이 편찬한 불교서적으로 985년에 편찬되었으며, 여러 경전에 나오는 ‘왕생극락往生極樂’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일본 정토교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모두 3권으로 구성되며,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염불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주장한 염불수행의 지침서이다. 상권은 지옥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으며, 중권은 육도윤회의 세계가 실려 있고, 하권은 극락왕생편이 실려 있어 지옥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육도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극락왕생하는 길을 그림으로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상권에 실려 있는 지옥의 도상을 통해 지옥의 세계를 실감 있게 이해한다면 두려운 마음을 갖고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것이므로 삽화가 교화용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다.(도11)

④ 몽골 지옥경
몽골에서 발행된 불경이나 경전의 판본은 티벳어로 쓰여졌으며, 변상도의 그림 속 글씨들은 몽골어로 되어있다. 지역이나 국가는 틀려도 티벳어로 기록되어 있는 불전들은 넓은 의미에서는 티벳 관련 자료라고 분류되고 있듯이 이 불경도 티벳 관련 불경이라 할 수 있다. 티벳어나 몽골어를 번역하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림으로만 도상을 해석할 수밖에 없지만 지옥에 대한 다양한 도상해석이나 판각의 솜씨가 뛰어나 이 책이 발행되었을 때 티벳 불교가 몽골에서 성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도12)

5. 영험설화 삽화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중생을 구원하는 영험설화적인 삽화가 들어있는 불정심다라니경의 삽화는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고판화박물관에는 중국 남송본을 번각한 조선 초기 변상도 삽화(도13)부터 시작하여, 명 성화 연간에 황실 내부에서 간행된 대형 불정심다라니경(도14)이 완전하게 소장되어 있다. 이 판본은 8년 뒤 인수대비에 의해 아들 성종의 수명장수를 발원하여 번각되기도 한다. 이 판본을 다시 번각한 다양한 판본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으며, 고판화박물관에는 16세기 초기 번각본(도15)이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판본을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6. 효심을 강조한 삽화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으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유교의 충효 사상과 잘 결합되어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고 있으며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삽화가 들어가 있다. 용주사본 부모은중경은 김홍도가 삽화를 그려 더욱 유명한 판본으로 알려져 있다.(도16)



글·자료 한선학(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