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학 관장의 고판화 특강 ③ 고판화의 제작과정

이번 시간에는 고판화가 탄생하기까지 전반적인 제작 과정을 알아보도록 한다. 화고제작, 판각, 인출 등 각 단계별 작업의 내용과 더불어 한국, 중국, 일본 등 나라별 전통판화의 제작 방식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들여다본다.


동양 고판화의 제작기법은 대체적으로 나무를 잘라 목판의 원판을 준비하는 연판과정을 시작으로 밑그림(화고)을 그리고, 그 밑그림을 새기고자하는 목판 원판에 뒤집어 붙인 후, 조각도로 판각하는 방식이다. 판각된 원판에 수성 안료를 바른 후에 한지나 선지 등을 붙인 후 사람의 모발이나 말총으로 만든 바렌으로 문질러서 판화를 인출했다.

화고제작

① 화고 그리기
판화의 밑그림은 일반그림과는 다르게 조각도로 새길 수 있도록 디자인화 되는 경향이 있다. 제작자는 판화의 내용을 결정한 다음 제작자 자신이 화고를 그리거나 화가를 초빙하여 화고를 창작하며 먼저 묵선고(墨線稿, 먹으로 인쇄할 그림의 원고)를 그린다. 일반적으로 초안을 잡아 수정한 뒤 원고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화가는 우선 목탄이나 먹으로 초고를 그리고, 완성된 초고를 제작자에게 보내어 의견을 구한 다음 수정하여 먹으로 그려 완성한다. 선이 선명하고 균형이 잡혀야 하며 묵선고가 완성된 다음에는 채색 인쇄가 끝나 작품의 채색이 완성되었을 때의 형태를 보여주는 화고인 채색양고彩色樣稿를 제작해야 한다. 이 채색양고에 근거하여 4-5장의 각각의 색에 필요한 분색고分色稿를 그려 다색 인쇄 목판인 채색투판彩色套版을 조각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채색투판은 적은 편이 좋지만, 칼라 목판(투판套版)으로 인쇄되어 나온 화면의 색채는 선명하고 변화가 풍부해야 한다.

판각版刻

① 판목의 재료
동양의 고판화는 모든 판의 재료가 거의 나무로 만들어졌다. 가래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 후박나무, 돌배나무, 산벚나무 등 결이나 내구성이 좋은 나무이며 주로 돌배나무, 산벚나무, 자작나무 등이 사용됐다.

② 연판과정
판 새김은 먼저 베어낸 나무의 연판처리鍊板處理 과정을 밟는다. 적당한 크기와 부피로 나무판을 켜서 바다의 짠물에 일정한 기간 담가 새기기 쉽게 결을 삭이는데, 만일 짠물이 없는 경우에는 웅덩이와 같은 민물을 이용한다. 밀폐된 곳에서 쪄서 진을 빼고 살충한다면 더욱 좋다. 뒤틀리거나 뻐개지지 않게 응달에서 충분히 건조시킨다. 대장경 경판에 사용한 목재의 경우도 판을 오래 보존하고 뒤틀림이나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3년간 바닷물에 담가두었다가 이것을 다시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린 다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건조 과정이 끝난 후 목수가 나무판의 양쪽 표면을 대패질하여 반드럽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③ 판각 과정
평평하게 다듬은 목판위에 풀을 칠하고 묵선고를 뒤집어 붙여 풀이 마른 다음에 향유香油를 한 겹 칠한다. 향유를 칠하면 화고인 도안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목판을 윤택하게 만들어 습기로 인해 조각할 때 조각도가 목판에 끼는 것을 방지하며, 또한 판면을 바삭바삭하게 만들어 조각하기 편하게 한다.

④ 판각 용구
판목을 새기는 도구인 조각도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발전하였으나 우리가 초, 중, 고 시절에 사용하였던 조각도는 일본에 의해 정형화된 것이다. 각 나라별로 독특한 도구를 제작하여 쓰는데 중국에서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창칼의 모양이 반달 모양으로 되어 있다.

⑤ 판각 방법
판각 방법은 기본적으로 화고에 부합되어야 하며 또 칼맛과 나무의 멋을 충분히 발휘시켜야 한다. 대량으로 인쇄하여 목판이 마모되었을 때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인쇄 할 수 있도록 판각자版刻者는 판각할 때 칼을 세워 선을 조각하여야 하며 양각된 선은 반드시 일정한 깊이가 있도록 해야 한다. 판각법으로 중국이나 일본은 조각도를 손으로 당기거나 밀면서 사용하는 인각법人刻法을 사용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손으로 조각도를 잡고 다른 손으로 망치로 두드리는 타각법打角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오륜행실도 등 책 속에 사용된 정교한 삽화들은 인각법으로 새겨져 있어 인각법에 대한 전승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출印出

① 인쇄용 안료
인쇄용 먹물로는 송연먹(松煙墨 : 숯먹)과 유연먹(油煙墨 : 기름먹)이 있으며, 송연먹은 소나무를 태워 만든 그을음과 아교를 녹여 섞어 찧어 만든 것으로 먹색이 진하고 선명하여 주로 목판인쇄에 사용하였다. 유연먹은 기름을 태워 만든 그을음과 아교를 녹여 섞어 찧어 만든 것으로 먹색이 희미하나 걸지 않아 필사용에 좋으며, 또 기름은 번지지 않고 응고력이 좋아 금속활자를 찍을 때 사용되었다. 인쇄용 먹물은 먹을 분쇄하여 물에 담가 풀어지게 한 다음 먹물 그릇에 담아두고 인쇄할 때 술 또는 알코올성 물질을 섞어 사용한다. 이는 먹물이 골고루 침투하면서도 증발이 빨라 번지지 않고 아교의 응결을 촉진시켜 윤기를 내게 한다. 채색 판화의 안료는 원래 천연 식물성이나 광물성에서 채취한 천연 안료를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화학 안료가 대종으로 쓰이고 있다. 중국 연화 제작자들은 천연 안료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② 인쇄용 종이
닥으로 만든 저지가 으뜸이며 닥 껍질을 원료로 하여 먼저 삶고 고아 찧은 다음 표백하여 풀 닥을 섞어 치밀한 대발로 떠서 만드는데, 장지와 같은 상품은 두껍게 떠서 풀까지 먹여 다듬이질하므로 반드럽고 빳빳하고 희고 윤이 나며, 사뭇 질겨서 오래 보존이 된다. 이를 백추지白硾紙라 한다. 중국이나 일본, 티벳, 베트남 등지에서도 인출하기에 좋은 전통 종이 만드는 방법으로 제작된 인출용 종이를 사용한다.

③ 인출용구
먹솔, 먹비, 인체(말총이나 모발을 뭉쳐 만든다), 밀랍, 먹판, 먹물그릇이 사용되었다. 특히 바렌(문지르개)의 경우 한국에서는 사람의 모발을 이용해서 제작했고 대장경을 인출할 때 왕비의 머리카락을 하사했다는 구전도 전해지고 있으며 중국에서 주로 연화를 찍을 때 사용하는 바렌은 종려棕櫚 나무 잎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정교한 작업을 할 때는 말총으로 바렌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는데 주로 영보재榮寶齊 등 수인水印판화 전문점에서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나무 껍질을 활용했으며 베트남에서는 수세미를 사용하고 티벳에서는 야크 털을 뭉처서 밀랍을 바른 후 사용하고 있다.

④ 인출방법
목판이 말라 있는 경우 종이에 찍혀져야 할 잉크가 목판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판화를 찍어낼 종이에 촉촉할 정도로 수분을 주고 찍으면 인출이 잘 된다. 하지만 종이에 수분을 주는 작업이 하루정도의 시간이 걸리거나 고르게 분무되는 스프레이가 없을 경우 인출에 지장을 초래 할 수 있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인출하는 것이 유리하다.
목판에 스프레이로 수분을 준 후 목판에 수분이 적당히 스며들면 마른 걸레로 수분을 닦아낸다. 목판에는 적당한 수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수성잉크인 먹물이 판화 종이에 잘 인출 된다. 인출의 성과는 먹 솔로 먹물을 얼마나 고르게 칠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수분이 적당히 베인 목판에 먹 솔로 먹물을 균일하게 칠해야 한다. 먹이 칠해진 목판에 종이를 올려놓고 그 위를 바렌에 밀랍 또는 기름을 칠하여 위아래로 고루 가볍게 비벼서 박아 낸다. 인출된 판화는 종이칼로 자른 후 건조대에서 말린 후 판매한다.

전통 판화 인출 방식

① 반인 반회 半印 半繪
가장 초보적인 다색판화 인출 방법으로 반은 찍고 반은 색깔을 입혔다고 하여 반인 반회라고 한다. 밑그림을 모사한 후 그림을 그리는 우리나라 민화 방식과 흡사하며 먼저 주판인 흑색판을 찍은 후 붓으로 색깔을 입히는 방법으로 중국의 양류청 등 다양한 지방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한국이나 베트남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② 투판 인쇄 套版 印刷
명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다색 투인 목판은 주판인 제일 면판은 먹선판이라고 하며 나머지를 투판이라고 한다. 투판용 판은 4판이 주로 많으며, 투인할 때 서로 맞물려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일본에 전파된 투판인쇄법은 판목에 표시금인 겐또(けんとう, 見当)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세계적인 다색판화인 우키요에 시대를 활짝 열게 되었다.

③ 탁본 인쇄 拓本 印刷
비석에 새겨진 명문이나 그림 등을 찍을 때 사용하는 인쇄법으로 목판에서는 주로 음각으로 새겨진 판목을 찍어낼 때 사용하며, 중국에서는 사천성 면죽綿竹 지방의 연화를 찍어낼 때 많이 사용하고 있다.



글·자료 한선학(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