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학 관장의 고판화 특강 ② 고판화의 특성

지난 9월호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고판화가 지닌 특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고판화가 탄생한 배경, 원류, 유물이 지닌 가치 등을 숙지한다면 고판화를 더욱 즐겁고 알차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판화란 판으로 찍어낸 그림이다. 판화는 판(plate, 나무판이든 동판이든 두꺼운 종이판이든)을 이용하여 제작하는 회화의 한 방법으로 간접표현 회화라고도 한다. 결국 판화는 인쇄와 회화의 복합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고판화는 대체적으로 인쇄의 한 방편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많다. 인쇄된 그림인 판화는 동아시아에서는 주로 목판을 새겨 종이에 인출하는 목판화로 발전했다. 고판화의 특성은 목판화와 인쇄 부문에서 찾을 수 있다.

고판화의 미술적 특성

① 복제예술
판화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복수성이다. 판이라는 중간적 매개체를 통하여 반복해서 찍어내면 똑같은 작품을 여러 장 생산해 낼 수 있다. 이러한 복제성(도1)으로 인하여 고판화는 인쇄의 한 방편으로 사용돼 왔다.

② 선묘에서 비롯된 디자인성
동양 고판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선묘線描(도2)이다. 선의 굵고 얇음, 각이 진 선과 둥근 선, 날카로운 선과 부드러운 선, 물결과 구름 또는 산의 주름에서 문양에 의한 상징처리, 인물 표정 등이 선묘로 표현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판화다운 멋의 핵심이다. 판화는 그림을 붓으로 그리듯이 화고(작품 준비 과정에서 초벌로 그린 그림)를 만들면 판각가가 판을 새길 수 없으므로 판각 원화를 그리는 작가는 칼로 새길 수 있도록 화고를 새로 디자인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목판화로 제작된 동양판화들은 태생적으로 디자인성이 강하며 그 자체가 디자인 콘텐츠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③ 인쇄예술 – ì¹¼ 맛과 눌린 맛
판화의 미감 중 하나가 각수가 조각도로 화가의 밑그림을 표현할 때 나타나는 이른바 ‘칼 맛’이며 이것은 붓만으로 표현되는 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판화의 매력이다. 또 다른 판화의 미감 중 하나는 판각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원판을 활용하여 인출 장인이 한지에 찍어 낼 때 눌리는 힘(도3, 도4)에 의해 나타나는 ‘눌린 맛’으로 회화에서 먹과 물감이 종이나 비단 위로 부상하는 느낌과는 다른 판화다운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④ 동아시아 문화의 보편성과 차별성
중국을 통해 전파된 동아시아 고판화는 동양 사상 근간을 이루는 문화를 담고 있다. 중국에서 없어진 고판화 판본을 한국이나 일본에서 찾거나 한국이나 일본에서 없어진 것을 베트남에서 발견하기도 하는데 이는 동아시아 고판화가 지닌 보편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고판화는 중국 판화를 원류로 하였지만 각 나라별 정체성이 가미되어 발전하면서 차별성을 획득했다.

⑤ 회화와의 긴밀한 관계
회화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화보 판화가 만들어졌듯이 불교회화 뿐 아니라 유명화가의 작품도 판화로 만들어져 많은 대중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회화사에서 이름만 남고 사라져 버린 작품일지라도 판화로 남아 회화사 연구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⑥ 희소성의 역설
고판화의 복제성이란 특성상 각 1점씩 제작된 회화작품에 비해 수집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인식이 팽배했으나 고려, 조선시대의 인쇄 관례상 수십 본에서 많아야 200본 정도 인출하기 때문에 현재는 유일본이거나 희귀본인 경우가 많아 고판화 역시 다른 고미술품과 같이 유일성 및 희소성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⑦ 목판의 조형성
목판은 판화를 찍기 위해 제작되었지만 목판 원판 그 자체가 입체적인 조형성(도5)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출된 판화보다 목판원판은 더욱 희소가치가 있어 고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고판화의 대중 교육적 특성

고판화는 책속의 삽화나 불화를 제작하는데도 사용되었으며 세화나 연화, 우키요에, 타르초 등 각국의 특색에 맞는 민화로도 발전됐다. 더 나아가서는 대중을 종교적, 윤리적으로 교화하는 교육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실용적인 특성도 지니고 있다.

① 종교 교육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수단으로 인쇄된 경전 중에는 신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삽화(도6)가 등장하여 가르침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적 기능을 하고 있으며 유교의 충, 효 교육을 위해 행실도류 판본(도7)에서는 삽화의 기능이 극대화되고 있다.

② 사회 계몽 운동
독일 콜비츠의 영향을 받은 중국의 루쉰에 의해 신목판 운동이 전개되어 중국의 계몽운동에 목판이 활용되어 연안시절부터 마오쩌둥에 의해 중국 전통 연화를 공산주의사상 주입교육에 활용(도8)되기도 했다. 연화는 일 년 내내 집안에 붙여 놓는다는 점을 활용하여 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오윤 등의 작가들이 주도하는 민중판화운동이 나타나, 판화가 80년 민주화 운동의 선봉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③ 창의성 교육
앞서 언급했듯 고판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디자인 콘텐츠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 때문에 고판화는 창의성 교육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고판화 목판 원판으로 찍어낸 문양(도9)이나 삽화의 내용들이 창의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지는 등 문화콘텐츠로써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④ 생활 예술 교육
조선시대 판화는 대체로 독자적인 예술적 성과를 얻기보다는 생활 영역으로 스며들어와 자리 잡았다. 능화판, 떡살, 보판, 화보, 지도나 전각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많은 판화 유산들이 생활 속으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는데 우리 선조들은 능화판을 제작하여 책표지를 아름답게 장식했고 떡살을 만들어서 장식성을 더했다. 또한 보판을 활용하여 이불보(도10)를 아름답게 찍는다든지, 반자지를 찍어 벽지나 장롱의 안쪽을 장식하는데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지도를 목판으로 찍어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판화를 생활예술로 활용하였으며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날염의 한 방법으로 목판을 활용하여 아름다운 옷감을 만들어서 입었다.

⑤ 다문화교육
고판화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티벳 등으로 전파되어 각국별로 독창적으로 발전하면서도 그 밑바탕에는 아시아의 근본정신이 깃들어 있다. 고판화를 통해 우리는 중국, 일본, 티벳 등 다양한 나라들과 소통하면서 문화를 주고받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다문화교육이 고판화를 통해 예전에도 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11~도14)


참고문헌
김구림, 《판화collection – 보는 법에서 수집까지》
유홍준, 이태호, <고판화의 특성과 미술사적 의의>, 《조선의 고판화》
최은주, <한국판화의 사적고찰>, 《현대미술연구4》



글·자료 한선학(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